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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717화 (717/1,007)
  • 34권 1화

    안드레이 소장은 유재원의 말에 워터빌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렇게 작은 마을 같은 도시를 나와 북쪽 으로 올라가니 얕은 산자락이 나왔 고, 곧이어 삼엄한 경계 초소와 함 께 긴 철조망 울타리도 나타났다.

    "이곳입니다."

    "유배지 같네요."

    언뜻 보면 죄 많이 지은 사람들 이 갇혀 있을 수용소처럼 보였다.

    "하하, 실제로 연구원들 사이에 워터빌 교도소라는 별명이 있습니 다."

    그렇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실 제 시설은 교도소와 100만 광년쯤 은 떨어져 있었다.

    중요한 원자로와 연구 시설은 지 하에 마련되어 있었고, 지상에는 잘 꾸며진 거주 시설이 있었다. 거 주 시설의 모습은 한적한 곳에 자 리한 소규모 리조트 같았다.

    안드레이 소장의 안내로 연구소 안으로 들어선 유재원은 기다리고 있던 토륨 연구팀과 드디어 대면할 수 있었다.

    "클라크 소렌센 팀장입니다. 토륨 원자로의 이론부터 실험용 원자 로인 TBR M6의 설계와 제작까지 모두 책임진 우리 연구소의 인재지 요."

    "반가워요. 유재원입니다."

    "네! 클라크 소렌센입니다!"

    인도계 미국인 클라크 팀장은 잔 뜩 상기된 얼굴로 유재원과 악수했 다.

    클라크 소렌센 팀장은 10년 전까 지 인도의 인다라 원자력 연구소에 서 근무했던 인재였다. 전 세계 토 륨 매장량을 보면 인도와 중국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중이었다. 상 당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토륨을 보 유하고 있는 인도였다. 인다라 원 자력 연구소는 그중에서도 톱을 달 리는 우수한 연구소였다.

    70년대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했 으니, 인도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사업인지 피부로 느껴진 다.

    하지만 인도라는 나라가 갖고 있 는 한계 때문에 지금까지도 성과가 없었다.

    사회 간접 자본의 크기도 달랐지만, 그보다 더 큰 타격은 바로 신 분제 였다.

    클라크 소렌센이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장본인이었다.

    인도의 신분제는 카스트였다. 카 스트 중에 제일 아래 계층에 있는 이들이 수드라로 일명 천민들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수드라보다 더 낮 은 계급이 있으니 불가촉천민이다. 도축이나 빨래, 하수구 청소 등 사 회에서 가장 힘들고 더러운 일을 도맡은 계층이었다.

    클라크 소렌센이 바로 불가촉천민을 부모로 두고 있던 사람이었다.

    인도는 공식적으로 신분제를 철 폐했지만, 사회엔 그대로 남아 있 었다. 심지어 우수한 두뇌가 모이 는 인다라 원자력 연구소 안에서도 있었다.

    그나마 클라크 소렌센은 미국에 서 탐을 낼 만큼 우수한 두뇌를 자 랑했다. 덕분에 부모와 함께 미국 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 운이 터진 모양인지 안드레이 소장 의 눈에 띄어 ID 하이테크에 스카 우트되어서 토륨 원자로 프로젝트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이 친구가 팀에서 제일 젊지만, 그만큼 진국입니다. 회장님처럼 말 입니다."

    30대 후반의 클라크 소렌센을 두 고 젊다고 하면 유재원이 애매해진 다. 그렇지만 토륨 원자로 연구팀 전체를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클라 크 소렌센 말고는 30대가 전무했 다. 그다음으로 젊은 사람이 40대 후반이었고, 대다수는 5, 60대였으 니 말이다.

    "자, 그럼 실물을 보러 가기 전에, 복장을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아무리 안전한 토륨 원자로지만, 클라크 팀장이 설계한 모델은 우라 늄과 같은 고농도 핵물질도 필요로 했다. 원자로 근처에 가기 전에 확 실한 방호복을 차려입어야 했다.

    잠시 후.

    유재원은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한 토륨 원자로를 대면했다.

    실험용인지라 크기는 작았다. 모 양 역시 유재원이 알던 일반 원자 로와 달랐다. 기존의 원자로는 경 수로든, 중수로든 물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소련 시절엔 흑연 감속 로로 냉각수 문제를 해결한 모델도 있었지만, 체르노빌 참사 후로는 신규 설치가 거의 사라졌다.

    반면 토륨 원자로는 중성자 공급 이 끊기면 핵분열 연쇄 반응도 끊 기는 덕에 냉각수에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물이 완전 필요 없는

    건 아니다. 토륨 원자로에서 발생 한 막대한 열로 물을 데우고, 이를 통해 가스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 산하는 건 기존의 발전소와 같았기 때문이다.

    "출력은 6MW로 소형이지만, 안 전성은 보고서에 올린 대로 무척이 나 탁월합니다. 덕분에 워터빌 사 람들이 저번 겨울은 전기 걱정하지 않고 따듯하게 보낼 수 있었지요."

    ID 하이테크 연구소가 워터빌에 제공하는 혜택 중 최근 신설된 것 이 공짜 전기였다. 바로 이곳 M6실험용 토륨 원자로가 운전하면서 생산된 전기는 모조리 워터빌을 비 롯한 인근 소도시에 보냈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시험로 운전 중 갑자기 문제가 생겨 끊기면, 마 을 사람들이 곤란하니 기존의 전력 시설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새로운 전력망을 구성했다. 덕분에 시험로 가 운전하지 않을 땐, 평소처럼 전 기 요금을 내며 사용하고, 운전을 시작하면 공짜로 쓸 수 있었다.

    아쉽게도 워터빌 사람들이 실시 간으로 어느 전기를 쓰고 있는지 구분은 할 수 없다. 대신 매달 말 에 전기 요금 고지서가 날아오면 비로소 확인이 된다.

    작년 겨울, 실험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워터빌 마을 사람들은 기본료만 내 고 있었다.

    "좋군요. 그럼, 이보다 규모를 키 우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상업용 원자로 설 계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회 장님께서는 어느 정도 용량을 원하 시는지요?"

    "200배면 좋을 거 같은데요."

    "예? 200배요?"

    "네, 실용화를 위해서라면 1GW 정도는 넘어야 하지 않겠어요?"

    실용화라는 말에 클라크 팀장의 눈이 번득 뜨였다.

    핵폐기물 문제, 방사성 유출 문 제 등등 온갖 단점으로 가득한 기 존 원자력 발전소를 토륨 원자로로 교체하는 게 클라크 팀장의 원대한 꿈이었다. 비록 실험실용이지만 소 형 토륨 원자로를 만드는 데 성공 했기에 그 꿈이 가시화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긴 했는데, 바로 지 금일 줄이야!

    "가능합니다! 가능해요!"

    흥분한 클라크 팀장은 안드레이 소장이 깜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 로 답했다.

    "1년 내에 가능할까요?"

    대형화가 가능하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쳤던 클라크 팀장은 1년 내에 라는 유재원의 말에 헉 소리를 냈 다. 그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생 각에 잠기는 듯했다.

    역시 어려운 일일까?

    "넵! 됩니다!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분 정도 생각 에 잠겼던 클라크 팀장은 다시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이미 가능합니다."

    "오! 진짜요?"

    "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클라크 팀장은 유재원 을 지하의 다른 시설로 안내했다. 지하에 마련된 시설 중 제일 중요한 곳이 바로 실험로가 있는 이곳 이었지만, 다음으로 비중이 있는 곳은 슈퍼컴퓨터가 있는 시뮬레이 터 룸이었다.

    거기에 설치된 슈퍼컴퓨터는 IBM 사의 슈퍼컴퓨터인 블루진/S이었다. 연산 능력은 200페타플롭스로, 1초 에 200조 번의 부동 소수점 연산이 가능한 성능이다. 끝에 붙은 S는 작 다(small)는 S였다. 풀스펙 모델인 블루진/L은 380페타플롭스의 성능을 자랑했다.

    ID 하이테크에 돈이 없어서 작은 놈을 구매한 건 아니다. 지하 연구 실에 설치할 만한 슈퍼컴퓨터는 블 루진 드가 최선이었던 탓이다.

    더욱이 유재원은 슈퍼컴퓨터 무 용론자에 가까웠다. 비싸고 운영도 힘든 슈퍼컴퓨터를 쓰느니, 클라우 드 컴퓨터가 낫다는 게 유재원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블루진 시리즈에 들어가 는 CPU는 인텔사의 제온 CPU였 다.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서 버에 들어가는 CPU 역시 제온이 다.

    슈퍼컴퓨터는 단독으로 오프라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 빼고는 클 라우드 시스템보다 나은 점이 거의 없었다.

    단적으로 ID 테크놀로지가 보유 한 클라우드 서버들의 모든 컴퓨팅 파워를 하나로 모으면 페타 단위를 뛰어넘는다. 바로 엑사플롭스 단위 였다. 1엑사란 1,000페타인데,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서버의 최 대 연산량은 337엑사플롭스였다.

    새로운 강력한 CPU가 출시되면, 가장 좋은 모델을 수십만 개 단위로 구매해 클라우드 센터를 업그레 이드하거나, 아예 증설하는 데 열 심이었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치였 다.

    다만 클라우드 컴퓨팅의 단점은 연산력을 다른 이들과 나눠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항시 운영되어야 하는 인터넷 서버 시스템들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학교와 연 구소 등의 기관에서 계약한 지분도 따로 있다.

    워터빌 연구소처럼 핵물리학을 다루는 중요한 곳이라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단독으로 돌리는 게 나았다.

    "지하에 만든 실험로보다 크기를 10배로 키운 대형 모델입니다."

    "10배? 그럼 60MW인가요?"

    "네! 그것도 보수적으로 운영했을 때이고, 최대 출력이라면 100MW 도 가능합니다!"

    유재원을 슈퍼컴퓨터 앞으로 이 끈 클라크 팀장은 슈퍼컴퓨터와 연 결된 대형 스크린에 설계도를 띄웠 다.

    조금 전 지하실에서 봤던 원자로 의 대형화 모델이었다. 크기는 크 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단지 원자로 내에 설치되는 토륨 연료봉과 중성 자를 주입하는 초우라늄씨앗의 크 기가 커지고 숫자가 많아졌을 뿐이 다.

    "시뮬레이션을 가동합니다."

    화면에 띄워진 3차원 모델링은 단순히 설계도 역할만 하는 게 아 니라, 즉각적인 시뮬레이터를 시작 할 데이터이기도 했다. 현실의 핵 물리학을 그대로 반영해서 분자 단위에서의 핵물질의 움직임을 실시 간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었 다.

    이론적으로 핵폭탄 제조에서 실 제 핵을 터트려 보지 않고, 시뮬레 이터로 대신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 로 고도의 현실성이 있었다.

    그렇게 슈퍼컴퓨터 속에서 돌아 가는 대형화된 토륨 원자로는 안정 적인 출력을 자랑하며 운영 중이었 다.

    "이 녀석이 100개가 동시에 들어 가는 원자로라면 회장님이 바라시는 1GW급 발전소가 뚝딱 나오는 것이지요."

    "좋군요!"

    클라크 팀장의 말에 유재원은 엄 지를 척 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원자로 안에 토륨 연료 봉과 초우라늄시드가 결합된 발전 모듈이 들어갈 자리를 100개로 만 들면 그게 1GW출력의 발전소라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 운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모르니, 딱 100개 들어 갈 자리만 만들지는 않고, 여유 분량을 넉넉히 확보해 놓아야겠지만, 유재원이 원하는 초대형 출력을 충 분히 뿜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1년 내에 TBR M6가 팔리겠습니까?"

    대형화 소리에 흥분했던 클라크 팀장과는 달리 시뮬레이터가 구동 되는 모습에도 차분한 안드레이 소 장의 말이었다.

    "아니, 소장님! 회장님께서 팔린 다고 생각하셨으니 말씀하신 건데 초를 치면 어떡합니다!"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는 클라크팀장이다. 본인의 실력에 대한 확 신도 강했고, 시뮬레이터 상에서도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대형화 에도 문제 없다는 것이 클라크 팀 장의 생각이었다.

    "회장님이야 넓고 멀리 보셔야 하는 게 미덕이지. 하지만 우리는 실무를 책임질 의무를 잊으면 큰일 나는 법이네. 실험용 원자로 말고 는 제대로 준비된 게 없지 않은가."

    안드레이 소장의 말 그대로다. 지금은 원자로 설계만 있지, 원자 로에서 만들어진 열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설비는 공백이었다.

    "그걸 굳이 우리가 할 필요가 있 나요?"

    하지만 에너지 변환은 기존의 원 자력 발전소의 모델을 그대로 사용 하면 될 일이기에 문제될 것 없다 고 생각하는 클라크 팀장이었다.

    "소장님 말씀처럼 저도 토륨 원 자로에 대한 안전성 입증이나, 장 기적 운영에 대한 경제성과 안정성 에 대한 인증도 필요하겠죠."

    유재원은 안드레이 소장이 지적 하는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 역시 가지고 있었다.

    "요즘 웨스팅하우스가 좀 어렵다 더군요."

    웨스팅하우스라면 미국의 대표적 인 복합 기업이었다. 주요 사업부 는 원자력 발전소 설계와 건설이었 고, 이를 기반으로 방위 산업체부 터 가전제품 생산까지 그야말로 한 국 재벌들 부럽지 않은 문어발 확 장을 보여주는 기업이었다.

    문어발 확장은 활황기 때에는 적 절한 전략이었다. 공장에서 물건을 내놓으면 쉽게 팔려나가니 기업의 규모를 순식간에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제의 사이클이 침체기에 들면 그렇게 확장한 사업부가 순식 간에 짐으로 돌변한다.

    웨스팅하우스가 그랬다.

    문어발로 확장했던 사업부가 골 칫덩이로 돌변했다. 심지어 주력 산업인 원자력 발전소도 경쟁 업체 에 뒤지면서 기업 전체가 부도 위 기에 몰린 상태다.

    "토륨 원자로라면 웨스팅하우스 를 인수하는 것도 일도 아니죠!"

    웨스팅하우스의 이름값이면 토륨원자로에 쏟아질 의문의 시선을 말 끔하게 지울 수 있다. 1886년에 세 워진 역사와 전통의 기업이었고, 원자력 관련한 특허도 엄청나게 보 유하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그 이름값이 빛바랜 상태였을 뿐이다. 거기에 토륨 원 자로와 결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임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웨스팅하우스 인수 성공 까지는 토륨 원자로 개발 성공에 대해선 비밀로 붙여 주세요. 인수하고 나서는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 를 할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안드레이 소장과 클라크 팀장이 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제껏 유재원이 한다고 했으면 무조건 이루어졌다. 그것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웨스 팅하우스 인수 후의 모습에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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