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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713화 (713/1,007)

33권 22화

러시아 타이셰트부터 시작해 키 렌스크, 올레민스크를 거쳐 블라디 보스토크의 코즈미노까지 가는 총 길이 4,739km의 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프로젝트가 바로 화면 속의 주인공이었다.

티파니 혼자만의 결정으로 이렇 게 긴 송유관을 건설할 수는 없었 다. 위의 그림은 러시아 내륙의 유 전에서 뽑아낸 원유를 태평양까지 가져와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미 국에 팔겠다는 러시아의 에너지 전 략으로 만들어진 청사진이었다.

여기에 숟가락을 올리겠다는 것 이 티파니의 선택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키렌스크까지 가 는 지선을 연결하기만 하면 동시베 리아-태평양 송유관을 사용할 수 있다.

"트란스네프트에서도 지분 참여 에 대해 긍정적인 답신이 왔습니 다."

덩치가 커진 트란스네프트지만 4,739km에 달하는 송유관을 건설 하는 비용을 단독으로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송유관을 사용할석유 기업들 혹은 투자 회사에게 지분을 주고 투자를 모집했다.

물론 아무나 참가할 수는 없었 다.

송유관이란 곧 에너지 권력이었 기에 러시아의 에너지 전략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들만 참여할 수 있었 다.

과거였다면 셰브롱이 동시베리아 -태평양 송유관 프로젝트에 참여하 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참여를 했 다더라도 투자금 대비 보장받는 지 분의 크기는 작았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미국의 석유 메이저 업체라는 게 러시아에서는 감점 요소였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 졌다.

이르쿠츠크 유전 개발이 유례없 는 대규모로 성공하면서 셰브롱의 입지는 탄탄해졌다. 그렇기에 동시 베리아-태평양 송유관 건설 지분도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가 가 능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반대로 셰브롱 내부에서 나올 굳이 큰돈 줘 가면서 불안한 러시아에 투자를 해야 하느냐 따위 의 반대 의견을 걱정해야 할 판이 다.

"트란스네프트에서 우리에게 양 도할 수 있는 지분의 최대치는 25%라고 밝혔습니다. 가격은 30억 달러 선에서 논의되는 중입니다."

"역시 사만다네요!"

헉 소리가 절로 날 액수였지만 티파니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만다라는 여성은 티파니보다 10살은 더 많다. 그럼에도 사만다 는 나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티파니의 칭찬에 꾸뻑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시했다. T&U 리 서치 때부터 함께 손발을 맞춰온 사이였고, 지금은 티파니가 제일 신뢰하는 인재였다.

사만다 역시 티파니가 본인을 중 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 기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지금 사만다에게 맡겨진 일은 트 란스네프트와의 협상이 었다.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사업 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지분을 얻어내는 것의 실무 협상이 사만다의 역할이었다. 해당 사업의 사업비는 110억 달러였으니 25%의 지분이라 면 27억 5천만 달러가 정확한 계산 이다.

그렇지만 그 계산법은 러시아 내 부 기업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이었 고, 셰브롱과 같이 외부 기업에게 나올 때엔 프리미엄이 붙는 게 당 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프리미 엄이 10% 미만이니 무척이나 협상 을 잘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만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승인이 날까 모르겠 어요."

셰브롱이 30억 달러가 없어서 빌 빌거리는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헛돈을 쓰는 기 업은 더더욱 아니었다. 티파니가 로열패밀리라고 해도 30억 달러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승인 이 필요했다.

사만다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 모두 부정적인 생 각이 컸다. 30억 달러가 한두 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건 여러분이 걱정하지 마세요."

반면 티파니는 자신만만했다.

이사회의 늙은 임원들이 무슨 말 을 하며 반대를 표명할지는 그야말 로 뻔했다.

그들이 할 말은 뻔했다. 유조선 을 띄울 수 없는 내륙의 유전이니 러시아의 석유 업체에 파는 게 최 선의 선택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티파니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하루 100만 배럴씩, 100년을 뽑 아낼 수 있는 이르쿠츠크 유전의 우수함은 이제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중국과 한국, 일본이란 에너지 수입 대국이 있었다. 특히 중국은 에너지 자원의 블랙홀과도 같았다.

러시아의 동시베리아-태평양 송 유관 프로젝트는 아예 중국으로 직 행하는 노선을 따로 빼 두기도 했 다.

이르쿠츠크 유전에서 생산된 원 유를 중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중국 에너지 시장 장악 은 식은 죽 먹기였다. 거기서 거둘 수 있는 이익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3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러시아란 단어에 움찔하는 이사 회가 중국 소리에는 더 기겁할 게 선했지만, 티파니에겐 확신이 있었 다.

티파니의 모습은 전략기획실에 자리한 다른 이들이 안심할 정도로 확실한 표정이었다. 재미있는 건 티파니가 가진 확신의 바탕에는 고도의 계산으로 산출된 데이터 따위 가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2010년만 돼도 G2라는 말이 나올 거야.

-바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 에 오른 중국을 묶어서 말하는 단 어지.

바로 유재원이 며칠 전 했던 말 이었다.

청나라 채권 때문에 중국의 경제 성장률을 2, 3%씩 하향 조정하는 월스트리트의 경제 전문가가 많은 지금이다.

그래서 티파니도 처음엔 쉽게 믿 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직접 살펴본 데이터는 달랐다. 청나라 채권 상 환이라는 패널티를 안고도 매년 5%대 이상 꾸준한 성장을 보이는 괴물 같은 나라가 중국이었다.

더욱이 중국 지도부는 작년부터 청나라 채권의 빠른 상환을 위해서 라도 국가에서 주도해 경제를 활성 화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 지출을 늘리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양적 완화가 이뤄지는 중인데,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컸지만, 상 하이나 광저우 같이 먼저 개방을 했던 도시는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도시 전체에 대규모 토목 사업이 이루어졌고, 자고 일어나면 마천루 들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모습이 매 일 바뀌는 중이었다.

또한, 수출도 적극 장려했고, 중 국에 투자하거나 중국에 공장을 세 우려는 해외 기업과 자본에 특혜를 남발 중이었다.

윗돌 빼서 아랫돌을 막는 격인

데, 의외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이대로 사업계획서 를 만들어 보자고요. 모자란 점이 있다면 외부 컨설팅에도 의뢰해서 보충하고요."

티파니는 즉각 이사회와의 한판 을 시작할 준비에 들어갔다.

몇주 후.

실리콘 밸리 남쪽에 자리한 ID

테크놀로지 본사는 평소와 달리 떠 들썩해졌다. 덕진공과대학 1회 졸 업생으로 구성된 인턴들의 MTV} 끝났기 때문이다.

거의 한 달 정도 걸린 MT 기간 동안 덕진공과대학 졸업생들은 ID 그룹의 기업 문화를 익히는 데 많 은 시간을 보냈다. 그와 함께 병행 된 것은 졸업생들의 적성 검사였는 데, 1년 간 인턴 생활을 할 곳을 배정하기 위함이다.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먼저 MT 중인 덕진공과대학 졸 업생들 대상으로 ID 그룹의 계열사 중에 일하고 싶은 곳을 적어 내도 록 했다. 근무지 배정에 최우선적 으로 고려되는 기준점이 바로 본인 이 지망하는 곳이었다.

문제는 인기 부서와 비인기 부서 는 지원자의 숫자가 극과 극이 되 는데, 그걸 고르게 분포시키는 것 이 바로 적성 검사였다.

자체적인 검사가 아니라 인재 개 발을 전문으로 하는 외부 전문 업 체에서 만든 시험이었다. 만능은 아니어도, 기준으로 삼을 만한 데 이터가 되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분류를 시킨 다음에도 남 는 사람의 경우엔 일명 뺑뺑이를 돌린다.

의외로 뺑뺑이가 돌려진 사람들 은 제법 많았다. 아무래도 인지도 가 높은 부서 쪽으로 사람들이 몰 린 탓이다. 대략 1/3 정도인 80여 명이 뺑뺑이로 돌려지면서 드디어 분류가 끝났다.

그렇게 해서 오늘 덕진공과대학 졸업생이자 ID 그룹의 첫 번째 인턴십 참가자들은 모두 정해진 보직 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일부 아주 멀리 가는 경우엔 뉴 욕 맨해튼에 발령이 난 사람도 있 었다.

"형님! 휴가 나면 꼭 봐요!"

"그래, 내가 기필코 뉴욕으로 간 다!"

홍범수는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조카처럼 어린 녀석을 부러운 눈으 로 보았다. 무려 ID 인베스트먼트 본사로 발령이 난 행운아였다. 그 것도 대학 시절 본인과 제일 친하게 어울렸던 녀석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라니.

골드만삭스와 JP 모건 채이스 등 등 세계 유수의 투자 회사들과 함 께 이름을 올리는 곳이 ID 인베스 트먼트였다. 비록 규모에서는 밀려 도, 창사 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투자 실패도 없는 불패 신화를 자 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존재감은 남달 랐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이룬 중산층이라면 ID 인베 스트먼트의 펀드 계좌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기본이 되었을 정 도다. 그도 그럴 것이 외환 위기가 지나고, 경제가 안정된 한국은 금 리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복리로 10% 이상 이자를 쳐주는 제1금융권은 이제 씨가 말랐다. 짠 곳은 4%, 많아야 5%를 주는 상황 인데, ID 인베스트먼트는 가장 안 정적인 상품이라도 20?30%대의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말이 다.

그런 ID 인베스트먼트에 왜 컴퓨 터공학과 출신의 공돌이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흥범수와 가장 친했던 녀석을 비롯해 4명이나 인 턴을 뽑아갔다.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 겠지만 뉴욕 맨해튼이라는 근무지 만으로도 다른 동급생들의 부러움 을 자아냈다.

홍범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홍범수는 배치표에 ID 그룹 이라고만 나와 있어서 더욱 그랬다.

처음 ID톡으로 통보를 받았을 때 엔 뭔가 싶어서 가까운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기다려 보라는 말뿐이었다.

아니, ID 그룹은 직접 고용 인원 이 수십 만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 이었다. 얼마나 거대한 조직인데, 딸랑 ID 그룹이란 말인가. 뉴욕 맨 해튼이 아니라도 시애틀이나 댈러 스 등등 근무할 곳은 널리고 널렸 는데 ID 그룹이라는 뭉퉁스러운 통 보라니.

참고로 홍범수가 최우선적으로 지원했던 곳은 바로 넥스트컴이었 다. 한국에서 일성SDS의 사내 벤처 로 네이버를 차렸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던 홍범수지만, 그래도 아직 실행해 보지 못한 아이디어도 있었 다.

다만 넥스트컴 역시 인턴들의 최 우선 지망 순위 상위권에 드는 인 기 직종이었던 게 문제였다. 파룻 파릇한 신입생이 가득한 인턴생 중 에 홍범수보다 적합한 인재들은 많 았다. 게다가 홍범수는 본인의 남 다른 나이도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다들 갈 길을 찾아가는 데, 혼자 남겨진 홍범수는 인턴MT의 통솔을 담당했던 직원을 찾 아보려고 했다.

"홍범수 씨?"

조바심이 난 홍범수가 한 발 떼 기 전에 먼저 홍범수를 부르는 목 소리가 있었다. 누군가 하고 고개 를 돌려보던 홍범수는 입을 떡 벌 렸다.

본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비서 실장 김대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동하시죠."

"네? 어디로요?"

"어디긴요? 베이스, 아니 회장님 저택이죠. 비서실 인턴이 되었으니 회장님께 인사드리는 게 먼저니까 요."

"엑! 비서실이요?"

비서실이란 소리에 홍범수는 깜 짝 놀랐다.

덕진공대 생활 때처럼 낙동강 오 리알 신세구나 싶었는데, 비서실이 라니 말이다. 두 번째 대학 시절인 덕진공대에 다닐 때 따돌림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급우들과 잘 어울 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본인을 낮추고 격 없이 다가선다고 해도 나이 차이는 엄청 났으니 말이다. 더욱이 덕진공대 학생들은 ID 그룹 입사 혜택 때문 에 재학 중 군대에 가는 걸 선택하 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쭉 마치고 인턴 생활까지 끝낸 다음, ID 그룹 의 정직원 합격증을 받고 군대에 가는 게 기본 루트였으니 말이다. 공문이 온 건 아니지만 덕진공대생 들끼리 암묵적으로 합의한 모양새 였다.

군대에 다녀온 2년 6개월 후에는 어떻게 변할 줄 알고 군대에 가느 냐고 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군대에 다녀오면 머릿속이 초 기화된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급제가 확실히 작동하는 덕진 공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 러니 4학년까지 스트레이트로 학교 를 다닌 후에 ID 그룹의 합격 목걸 이를 받고서 군대에 가는 게 합리 적이었다.

덕분에 홍범수는 그나마 어울릴수 있는 복학생들도 찾을 수가 없 었지만 말이다.

"차에서 설명해 드리죠. 일단 타 실까요."

"아! 네네!"

김대석의 말에 홍범수는 바로 움 직였다.

인턴 MT 해산식이 있었던 ID 테크놀로지 본사 광장은 주차장과 바로 접해 있었기에 많이 걸을 필 요는 없었다.

"이 찹니다."

와?!

홍범수의 귀에는 김대석 비서실장 이 이 차라고 하는 말에 자부심이 가득 담겨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인 월급으로는 살 엄두가 나지 않는 빨간색 페라리 575M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부심이 느껴질 만한 게, 김대 석 비서실장이 제 돈 주고 페라리 를 산 게 아니라 회사로부터 받은 포상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확실히 챙겨 주기로 유명한 기업이 ID 그룹 아니던가.

김대석 비서실장뿐만이 아니라 그룹 전체를 둘러보면 스포츠카를 포상으로 받은 이들이 수백 명은 넘는다. 존 카멕과 같이 출시하는 족족 대박을 터트린 사람이라면 포 상으로 받은 슈퍼 카가 5대를 넘기 기도 했다.

김대석이 먼저 운전석에 올랐고, 홍범수도 바로 조수석에 앉았다. 곧이어 페라리는 우렁찬 엔진 소리 와 함께 깨어났고, 빨간 잔상을 그 리며 출발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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