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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711화 (711/1,007)

33권 20화

"자, 이제 탑승하세요."

기다리던 승무원의 말이 떨어지 자 잔뜩 상기된 동기들이 야단법석 을 떨며 이동했다. 그 무리에는 홍 범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뜩 이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음, 어째 덕진공대 입학식 느낌 인데?"

4년 전의 기억이지만 입학식 때 의 느낌은 지금도 선명했다.

한껏 들떴던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을 더욱 자극한 것은 성비였다. 덕진공대는 일반적인 공대와 달리 성비도 나름 훌륭했다. 일반 공대 의 경우 어쩌다가 여학생이 한 명 들어오면 일명 공대 아름이가 될 정도였는데, 덕진공대는 7 : 3 정도 는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1학년 학기말 유급 폭 풍이 몰아치면서 장밋빛은 핏빛이 되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죽 어라 공부를 해야 했다.

전용기에 탑승하는 홍범수는 그 때의 기시감을 또 느끼며 살짝 소름이 돋았다. 유급제 때문에 많이 걸러졌다고는 해도, 수백 명이 넘 는 졸업생을 모두 인턴으로 채용했 다는 것은, 그만큼 일복이 터졌다 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 졌다.

"우와!"

그렇게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엔 심란했던 홍범수였지만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ID 테크놀로지의 본사에 오자 다른 동 기들과 같이 감탄이 절로 터져 나 왔다.

꿈에 그리던 그 장소에 도착하니 비행기 탑승 전의 우려 따위는 거 짓말처럼 사라졌다.

본사는 워낙 컸고, 주변에 기숙 사와 같은 숙소도 마련되어 있어서 짐을 풀고 푹 쉴 수 있었다. 그렇 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신기 한 감각이었다. 장시간 비행 때문 에 몸이 피곤한데도, 정신만은 또 렷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과연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도 궁금한 홍범수였다.

한창 업무 처리 중이던 김대석의 스마트폰에 알람이 울렸다.

-실장님! 파릇파릇한 루키들 모 두 집결 완료했습니다!!

비서실 직원이 보낸 ID톡 메시지 였다. 루키들이란 바로 덕진공대 졸업생들이었다. 메시지는 평소와 달리 느낌표가 가득했다.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전해질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인턴 중에 는 비서실에도 TO가 났기 때문이 다. 막내 탈출이니 그저 즐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주요 도로에 차량 정체가 있습니다. 베 이스에서 본사까지 차로는 1시간이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현장 상황 보고와 같은 할 일은 다 하는 부하 직원의 모습 에 김대석이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선 김대석은 바로 연 결된 엘리베이터에 탔고, 내려가기 버튼을 눌렀다. 눈 깜짝할 사이 아 래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몇 걸음 가면 바로 유재원이 있는 서 재였다.

작년에 방영된 리얼카메라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이 모습이 공개 되었을 때,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크게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벌써 몇 년을 이 저택에 서 보낸 김대석에겐 그저 익숙하고 편리한 구조였다.

"회장님,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예, 바로 가죠."

역시나 우리의 유재원 회장님은 반듯한 모습으로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김대석은 유재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최상층 옥상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헬리콥터인가요?"

"네! 샌프란시스코 시내 도로에 차량 정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김대석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출근 수단으로 헬리콥터 를 선택한 김대석의 판단에 동의한 다는 의미였다.

"홈."

빠르게 날고 있는 헬리콥터의 투 명한 창문 밖으로 샌프란시스코만 이 보였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풍경을 보며 유재원은 생각에 잠겼다.

앨 고어의 부탁 때문이었다.

작년 진주만에서 만난 앨 고어에 게 유재원은 한국의 동맹 등급 상 향을 요구했다. 앨 고어는 유재원 의 요구를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그동안 유재원이 쌓아올린 공도 있었고, 앞으로의 처우에 대해서 앨 고어와 미국의 수뇌부는 이미 지침이 있었으니 말이다.

대신 딱 하나 부탁을 했다.

거의 10년 전쯤 동아시아 전략

연구소에서 발표한 라이징 차이나 를 언급하면서, 개마고원에 미군이 주둔하는 모습을 꼭 좀 보고 싶다 는 것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본인이 퇴임하기 전에 그 모습을 보고 싶으니, 꼭 좀 부탁한다고 했 다.

현재의 미중 관계는 청나라 채권 추심 이후에 급격히 나빠졌다.

과거와 같은 무역 전쟁이 발발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 갚아야 할 막 대한 부채가 생긴 중국은 세계 최 대의 수입국 미국과의 무역이 끊기면 끝장이었으니 말이다. 대신 중 국 내의 반미 여론은 엄청나게 심 화되는 중이었다.

후진타오 주석이 열심히 억누르 고는 있었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 는 민심을 잠재우기는 불가능했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후진타오 주 석의 퇴임 시기가 빨라질지 모른다 는 결과를 내놓았고, 그 후임으로 는 중국 공산당의 독재와 통제 강 화에 적합한 인물이 선출될 거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어쩌면 일본의 우경화보다 중국의 독재 체제 강화가 동아시아 안 정에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 다.

그러니 중국 공산당 독재가 심각 한 수준으로 치닫기 전에 중국의 턱 밑인 북한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예비책을 두고 싶었다.

재미있는 건 앨 고어가 왜 하필 유재원에게 이런 부탁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개마고원에 미군 주둔 병력을 증 강하려면 북한 당국과 이야기하는 게 정답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미국도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어렵고 지지부 진한 과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 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 라 인을 유지하면서 여러 당근을 제시 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몸이 단 미국에 비해 북한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북한은 지금의 상태에도 딱히 불 만이 없었던 탓이다.

아직도 미국과는 정식 수교가 되 지 않고, 평양이나 워싱턴 DC에 놓인 사무실도 연락사무소 단계였 다.

그럼에도 북한은 불안감을 느끼 지 않았다. 중동에서도 서서히 발 을 빼고 있는 미국의 모습에서, 체 제 보장이라는 진심을 느낀 것이었 다. 더욱이 수출이나 수입도 자유 로워졌고, 국제 금융 거래 역시 자 유로워지면서 과거의 경제 제재가 거의 풀린 상태였다.

반면 경수로 때문에 미군을 받은 것을 가지고 북한에서는 지금도 말 이 많았다. 하물며 중국은 미국이나 주변국 눈치 때문에 대놓고 말 은 못 해도, 이런저런 비선을 통해 북한을 압박했고, 이는 아직도 현 재 진행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들어온 미 군의 규모를 키운다?

그것은 북한과 중국이 완전히 갈 라서야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북한 이 먼저 미군의 증원을 요구하고, 중국과는 완전히 돌아서야 하는 일 이다.

미국이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아도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가 될 확률은 전무했다. 그렇기에 규격 외의 천 재인 유재원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앨 고어와 미국의 수뇌부였다.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유재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능력이 IT와 기업 경영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 각하지만, 유재원의 파괴적인 능력 은 IT를 넘어서서 모든 영역에 발 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미국 수뇌부였다.

유재원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앨 고어가 유재원에게 북한의 일을 부탁한 근본 이유였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SOFA 재협정 과 한미 FTA 등등 한국과의 파트 너십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실시 간으로 진행 중이었다.

"흐음, 역시……. 그 방법이 최고 겠지."

북한이 먼저 중국과 척을 지도록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두 손, 두 발을 든 문제였지만, 유재원이 누 구던가. 유재원의 머릿속에서는 번 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티파니의 역할이 중요해지겠네."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는 혼자서 실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 유 재원의 반려자인 티파니의 적극적 인 조력이 필요한 방법이었기 때문 이다.

바로 북한의 유전 개발이다.

체제를 보장받은 북한이 이제 당 면한 과제는 경제 성장이었다. 지 하자원 개발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식이었다. 더욱이 북한에 는 한반도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유전이 있었다.

안타까운 일은 정작 북한 땅에서 나온 유전이지만, 북한 자체에서 소비되는 양은 지극히 적었다는 점 이었다. 개발부터 채굴까지 빨대를 꽂은 중국이란 블랙홀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려 들어가 버렸던 탓이 다.

"음, 그리고 중국 상대로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겠어."

유재원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퍼즐들이 착착 맞춰지기 시작했다.

티파니의 후계 문제, 이르쿠츠크 유전 개발의 방향성, 앨 고어가 내어준 과제가 얽히면서 제법 괜찮은 모양새를 만들었다.

ID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주어진 과제까지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결론이다. 대신 4 년 이내에 이 모든 것을 끝내려면 유재원 본인이 무척이나 바빠질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비서실의 TO를 좀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2005년 1월, 제19차 한미 FTA 회의는 신라 호텔에서 열렸다.

FTA의 사전 준비 회의로 벌써 19라는 숫자가 붙었을 만큼 오래된 회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FTA는 협정을 맺은 두 국가에 주 는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협 정을 맺는 것 역시 신중해질 수밖 에 없었다.

"오늘은 지연 전술인가?"

1시간 전, 신라 호텔에 먼저 도 착한 한국 쪽 협상 대표인 김현종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늘도 그다지 큰 진전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함께 한미 FTA 미국의 대표단 역시 새롭게 교체되었고, 한국에서는 그 수장으 로 문민정부에서 WTO 분쟁 해결 대책반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던 김현종을 선택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일 때, 세계 통상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김현종 본부장이 맡게 된 인연으로 한미 FTA 협상 대표인 통상교섭본 부장을 맡기게 된 것이었다.

"흐음."

김현종의 입에서 바람 소리가 났 다. 불쾌하단 심기의 표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측 협상 대표 가 약속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났음 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탓이다.

강골 중 강골인 김현종은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하 지만 FTA 협상에서 한국을 대표하 는 감투를 쓰고 있었고, 일부 자리 한 미국 측 인원들은 매우 안절부 절못하는 표정들이었기에 일어서진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수척한 얼굴의 미국 측 협 상 대표인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 표부 부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늦었지만 나오셨으니 다행 입니다."

협상의 우위를 위해 불편한 심기 를 그대로 얼굴에 띄우면서도 말은 괜찮다고 하는 김현종이었다. 그러 면서 내심 수척하다는 수식어와 어 울리지 않았던 웬디 커틀러가 몹시 수척해진 모습을 살폈다.

그 모습에 김현종도 살짝 놀랐을 정도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웬디 커틀러 부대표에겐 어울렸으니 말 이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4차례 이상 접촉했고, 그때마다 웬디 커 틀러는 김현종에게 철벽을 느끼게 했던 상대였다.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인데, 미국 은 그저 가져가려고만 했다. ISD부 터, 농산물 개방, 서비스 시장 개 방, 북한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품 목에 대한 한국산 불인정까지. 한 미 동맹이란 특수성과 미국 본연의 압도적인 국력을 이용해 밀어붙이 는 데 선수였다. 그리고 이보다 더 선수인 사람은 미 무역대표부 대표 인 로버트 졸릭이었다.

웬디 커틀러가 바늘로 찔러 봐야 피도 안 나올 사람이라면, 로버트 졸릭은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사람 이었다. 유럽에서 생긴 현안으로 로버트 졸릭 대신 웬디 커틀러가 자리한 지금이 한 발자국이라도 나 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예, 오늘은 유의미한 합의안이 하나라도 나오길 기대하겠습니다."

협상을 시작하자는 웬디 커틀러 부대표의 말에 김현종도 고개를 끄 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게 예정보다 늦은 제19차 한 미 FTA 회의가 시작된 지, 몇십 분 정도가 흘렀을까.

"좋습니다. 한국산 부품이 50% 이상 투입된 개성공단 생산품이라 면 한국산으로 인정하고 한미 FTA 에도 효력을 받도록 하죠."

'어라?'

웬디 커틀러 부대표의 말에 김현 종 대표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50% 이상 한국 산 부품이 투입된 개성공단 생산품 에 대한 한국산 인정은 지금까진 불가였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그저 100% 한국산 부 품이 투입된 개성공단 생산품에 한 해 한국산으로 인정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말만 그럴듯하지, 실상은 해 주 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요즘은 5인 이하의 소기업에서도 중국산 부 품을 쓰는 게 대부분이었다. 기술 적으로 고난도가 필요한 게 아니면, 중국에서도 다 만들어냈고 그 원가 도 엄청나게 저렴했다.

더욱이 저렴한 인건비를 노리고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많았 다. 그러니 한국에서 생산한 핵심 부품과 범용적인 중국산 중간 부품 을 사용해 개성공단에서 조립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무조건 한국산 100% 부품만 사 용해야 한다는 건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장난이었다. 그나마 개성공단 생산을 한국산으로 받아들인 것도, 북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 미국 의 기조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북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조 역시 북한과의 종전 선언으로 인해 달라지면서 위협을 받고 있었 던 실정이다.

그런데 개성공단 생산품 중 한국 산 부품 비율이 50% 이상이면 한 미 FTA에 적용해 주겠다는 건 대 단한 전진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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