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8화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엑스박 스2에 소극적이었던 엔비디아가 소 니에는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타도 엑스박스를 외치면서 칼을 가는 소니 역시 플레이스테이션3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CPU는 IBM의 CELL 프로세서 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GPU는 자 체 설계가 불가능했으니 선택지는 역시나 ATI 아니면 엔비디아뿐이 었다.
엔비디아는 소니 쪽에 제법 많은 할인을 해 주면서 가격을 맞춰 주었다. 아무래도 소니가 6세대 게임 기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큰 영향력을 끼친 모양이다.
다만 엑스박스2를 외면하면서 소 니에 퍼준 것은 아니었다.
엑스박스2는 G80이라는 차세대 플래그십 모델을 요구했던 것이었 고, 소니에서는 G70이라는 현세대 의 칩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엑스박스2와 플레이스테 이션3의 성능 차이가 확 벌어졌다.
GPU의 성능만 보면 5, 60%에 달하는 차이가 났다. 소니가 GPU는 아래 단계를 쓰더라도 CPU에서 압도적인 성능으로 차이를 벌리겠 다고 생각하는 게 확 보일 정도다. 그만큼 CELL CPU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로 가을에 들어서부터 소니 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언론플레이 를 시작했는데, 하나하나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CELL은 플레이스테이션2의 35 배, 엑스박스2의 2배 성능!
-플레이스테이션3는 사용자의 몸 짓이나 감정까지 인식!
-플레이스테이션3는 게임기가 아 니다!
-차세대 홈허브로써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될 것.
유재원이라도 이렇게 막 질러 놓 으면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언론플레이 에 열심인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유재원은 엑스박스2 의 시제품을 완성했고, 이제 양산 의 초읽기에 들어갔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90나노 공정을 C스텝까지 올리 고, CPU와 GPU 등 핵심 부품 공 급 업체와의 계약도 모두 마친 유 재원은 양산에 대해서는 손을 뗐다.
대신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 온 엑스박스 팀에게 그 일을 맡겼 다.
"예, 회장님. 양산은 저희가 책임 지고 수행하겠습니다."
엑스박스 팀의 팀장이 듬직하게 대답했다.
엑스박스1 때부터 양산 능력으로 크게 인정받은 엑스박스 팀장이었기에 유재원은 믿고 자리를 뜰 수 있었다.
" 연말이구나."
덕진리 집에 들러 출국 전 인사 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유재원 은 거리에서 느껴지는 연말 분위기 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물론 창밖에서는 사계절이 뚜렷 한 한국답게 차가운 칼바람이 몰아쳤지만, 유재원에겐 큰 문제는 아 니었다. 그저 광화문에서 아직도 촛불을 들고 사학법 개악 반대 투 쟁 중인 야당 의원들이 문제일 것 이다.
"이 양반들, 근성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네."
이미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됐는 데도, 장외 집회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면 꿍꿍이가 있는 거겠지."
유재원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는 그 누군가의 기사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바로 이번 사학법 장외 투쟁에서 급부상한 야당의 라이징 스타 박근 혜 의원이었다. 촛불을 손에 들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 선두에 서 있 었고 야당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2 선에서 진을 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 혜가 야당의 사학법 장외 투쟁에서 확실하게 떠오르며 그 존재감이 부 쩍 커졌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고, 그의 장녀인 박근혜 역시 21세기 한국 정치판에 대단한 기록을 남긴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한국 근대화의 아이콘인 박정희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산으 로 받았고, 이를 통해 국회 의원에 도 수월하게 당선됐다. 회귀 전에 는 한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에 오 르기까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침체기에 빠진 한국을 제2 의 근대화로 이끌어 줄 거라고 엄 청난 기대를 받으며 대통령에 올랐 지만, 그 기대를 스스로의 손으로 산산이 부숴 버렸다는 것이다.
비선실세 스캔들로 끝내는 탄핵 을 당했고, 헌법 재판소에서 탄핵 안이 인용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끝나 버렸다.
동시에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 터 물려받은 이미지 역시 박근혜의 몰락과 함께 산산이 조각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고 있던 한국의 보수 세력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런 박근혜 의원의 행보는 이번 생에도 비슷했다.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지지 선언을 통해 한나라당에 입당 했다. 그리고 대구 달성에서 국회 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사학법 개정이 시작되자 투쟁에 적극 나섰다.
박근혜 의원에게 이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 중에는 영남대학교라는 사학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학법 개정으로 직격탄을 받게 되 었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이 될 수밖 에 없었다. 심지어 유재원이 알고 있던 회귀 전보다 훨씬 강경한 태 도를 보였다.
그러자 보수 언론의 스포트라이 트는 자연스럽게 박근혜 의원에게 로 몰렸고, 자연스럽게 보수 세력 의 결집도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내년 총선은 다이내믹 해지겠어."
민주당과 통일국민당의 연정에
대항해서 야당 측도 통합의 움직임 이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 이 현재 야당 세력은 김영삼 대통 령의 한나라당과 군부 세력의 후신 인 민주한국당으로 갈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과감하게 전 두환의 사형을 집행했고, 이로 인 해 두 세력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었다는 게 유재원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가 무너진 건 2003년 대선이 기점이었다.
통일국민당 경선에서 결과에 불 복한 이인제 의원이 집단 탈당하면 서 중간 지대가 만들어졌다. 그리 고 민주당에서 후단협이 뛰쳐나오 면서 또 하나의 세력을 일궜다.
한나라당과 민주한국당 사이의 극과 극이 한층 옅어졌다.
그러다가 박근혜 의원이 사학법 투쟁에서 급부상하면서 민주한국당 도 한나라당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구도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보수 대통합으로 내 년 총선을 치러서 오만한 여당을 심판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절대 안 될 일이지."
유재원으로서는 절대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무 슨 막장이 벌어질지는 회귀 전 직 접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차라리 대통령병에 걸린 이인제나 이회창 을 밀어주는 게 낫다고 유재원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새파란 겨울이 보랏빛 석양으로 물들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몇번이나 다시 생각해 봤던 유재원이 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 히려 박근혜 의원만은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결국 유재원은 김광일 이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박근혜 의원을 의도적으로 띄우 는 세력을 경계하고, 조직적인 움 직임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라는 지 시였다.
또한 통일한국당 대표님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내년 총선 준비 에 만전을 기하고, 만약 본인의 영향력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돕겠 다고 말이다.
전명헌 할아버지를 밀어줬던 때 이후로 유재원은 정치 CF 같은 건 전혀 찍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엔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나중에 흑역사로 박제되더라도 힘을 쓰기 로 마음을 먹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 관련 법들도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덕에 전기 자동차는 안정성만 확실히 공증된다면 판매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 역시 연구 개발, 보급에 대한 가이 드라인이 정해졌다.
인공지능은 절대적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법 률로 박혔다. 또한, 인공지능을 만 드는 데 필요한 빅데이터의 관리 소홀로 피해가 일어날 경우 배상 관련 규정도 생겨났다.
또한, 개인 정보 제공자가 개인 정보의 관리 상태를 확인하고자 하 면 업체는 무조건 응해야 하고, 개 인 정보 공유를 철회하거나 삭제요청을 했을 때에도 응하도록 만들 어 졌다.
요절복통 난장판인 국회지만 그 래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공지능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으 니,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4 차 산업 여건이 좋아졌다.
"어휴. 정치라는 게 확실히 살아 있는 생물 같군."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유재원은 마음이 좀 놓였다. 그러자 오래 서 있던 탓에 다리에 피로가 쌓여 묵 직한 느낌도 전해졌다.
바로 근처의 리클라이너에 몸을 맡긴 유재원은 텔레비전을 켜 보았 다.
출국까지 몇 시간은 남아 있던 터라, 시간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 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게임이 좋지 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최고로 핫한 게임은 판타지 유니버 스-레전드 리그였고, 다음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불타는 성전이었 다. 전통의 스타크래프트도 여전히 PC방 순위 상위권에 있었다.
이러한 게임들의 공통점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라는 것이었 다. 게다가 랭킹까지도 걸려 있어 서 심심풀이로 하는 건 좀 무거운 게임이다.
머리를 식히는 데엔 그냥 텔레비 전을 틀어 놓고 있는 게 최고다.
-남우조연상?! '지구를 지켜줘' 의 백윤신!
"아. 연말이라고 시상식 시즌이네."
텔레비전을 켰을 때 나오는 건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 소식이었다.
대한민국 3대 영화제 중에 역사 가 제일 깊은 시상식이지만, 애니 깽 사태라는 작위적인 몰아주기 시 상으로 권위가 급속히 추락 중인 시상식이기도 했다.
유재원 역시나 딱히 대종상에 호 기심이 일어나진 않았다. 대신 유 재원이 꽂힌 건 시상식이라는 키워 드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이제 자체 시상식 같은 걸 할 수 있을 거 같 은데?"
넥스트 뮤직 하나만으로도 음악관련 시상식을 충분히 주관할 수 있다.
넥스트 뮤직의 역사만 해도 10년 은 넘었고, 이제 음악 스트리밍 서 비스의 기준은 넥스트 뮤직이었다. 아티스트가 예약한 유통사가 다르 더라도, 이제는 넥스트 뮤직에 음 원을 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도 그랬다. EMM 비방디, 유니버 설 뮤직은 물론이고 소니 뮤직까지 도 넥스트 뮤직에 음원을 공급했다.
다른 유통사 소속이라도 홍보는 물론 정산에서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게 증명이 된 덕이다. 그렇기에 넥 스트 뮤직의 음원 차트는 아티스트 의 대중적 인기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바로미터와 같이 쓰이고 있다.
넥스트 뮤직 차트를 기준으로 가 요대상 같은 시상식을 만들면 누구 나 납득할 수 있는 시상식이 될 것 같았다. 대종상뿐만이 아니라 연말 에 하는 각종 시상식은 늘 논란을 동반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ID 그룹은 케이블이긴 해도 종합 채널을 가지고 있었다. 게 다가 억 단위 사용자가 있는 넥스 트컴을 통해 인터넷 중계도 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올해부터 해도 될 거 같은데?"
연말에 바쁜 가수들을 모으는 게 일이겠지만, ID 그룹 클래스에 맞 게 넉넉한 출연료와 화려한 무대 연출로 보상해 준다면 문제없을 것 이다. 게다가 12월 말까지는 40일 넘게 남았으니, 시간도 넉넉했다.
마음을 정한 유재원은 바로 ID 미디어 그룹의 아더 왓슨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결정이었지 만, 이 전화 하나로 전 세계 음악 계에서 가장 뜨거운 연말 시상식이 만들어졌다.
아더 왓슨 사장과 통화를 잘 끝 낸 유재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출국 길에 올랐다.
한국행 스케줄의 목표였던 90나 노 공정의 완성과 엑스박스2의 하 드웨어를 성공적으로 만들었기에 미련은 조금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소프트웨어!
엑스박스2의 최상급 하드웨어 성 능을 120% 뽑아낼 수 있는 운영체 제와 런칭 타이틀 게임인 더 퍼시 픽의 완성뿐이었다.
미국까지는 금방이었다.
미국 시간으로 늦은 밤에 도착하 게 되었지만,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린 티파니와 불처럼 뜨거 운 해후를 풀었다.
다음 날부터 유재원은 곧바로 서 재에 틀어박혀 엑스박스2를 위한 프로그래밍 작업에 돌입했다.
그만큼 엑스박스 프로젝트는 유 재원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다. 그야말로 초 집중 상태에서 진행되 는 작업이었지만, 집중력은 곧 흐 트러졌다.
한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 이유였다.
바로 넥스트 뮤직 어워드 추진에 서 불거진 논란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