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5화
잠시 후.
유재원 일행은 도곡동의 ID 글로 벌헤드쿼터 빌딩에 도착했다.
로비에 최강욱 부회장이나 임원 들이 나와 유재원을 영접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차 를 몰고 들어가서 비즈니스 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으니 말이다.
부회장실에서 최강욱 회장을 만 난 유재원은 곧바로 현황 보고를 들었다.
ID 그룹의 동아시아 사업부는 언 제나 그린.
웬만한 사업 영역은 모두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었다.
이는 곧 한국 경제의 탄탄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외환 위기라는 암초와 충돌하긴 했지만, 미국에 이어 IT 혁명을 잘 탔고, 반도체 사업과 스마트폰 사 업에 큰 수혜를 나눠 받고 있는 중 이었다.
침체 일로인 일본과 매우 대비되 는 모습이다.
주가 지수, 고용률, 실업률 등등 웬만한 경제 지표들이 모두 양호한 수치를 찍고 있으니 사회적인 분위 기도 대단히 좋았다.
"여의도가 좀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만 보 면 한국은 위태위태한 것 같이 느 껴 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야당들이 똘똘 뭉쳐서 현 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 였다.
사실 2000년 16대 총선 때만 해 도 야당은 둘로 나뉘어서 서로의 텃밭을 갈라 먹었다.
그때의 앙심은 대단해서 시시콜 콜 충돌했다.
반면 여당은 연정을 통해 안정적 인 국회 운영이 이뤄졌고, 크나큰 정치적 이슈도 큰 문제 없이 통과 될 수 있었다.
"대통령께서 저들의 역린을 제대 로 때리신 거죠."
이런 국회의 상황이 갑자기 확 달라진 건, 노무현 정부가 사학법개정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다.
유재원은 노 대통령과의 독대에 서 기득권의 저항을 제대로 맛보고 싶으면 교육 개혁을 시작해 보라고 말씀을 드렸다.
노 대통령은 유재원의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홀려버리지 않았고, 본 격적인 사학법 개정에 착수했다.
골자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사학재단 이사회에 정 부 추천 인사를 임명하는 것.
두 번째는 비리, 부실 사학재단학교에 대한 정부 예산 조절이다.
사학재단이 마음 놓고 전횡을 휘 두르게 해 줬던 권한들을 헌법 정 신에 맞도록 바꾸겠다는 게 사학법 개정의 골자였다.
이게 알려지자마자 앙숙처럼 싸 웠던 두 야당이 똘똘 뭉쳤다. 야당 의 핵심 지지 세력 중 하나가 바로 사학 재벌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인제 전 대표가 수족을 이끌고 탈당했던 국민통일당이 더 해져서 세력이 커졌다.
게다가 조만간 또 하나의 세력이 가세할 기미가 보였다. 바로 민주 당의 후단협 세력이었다.
아직 이들이 민주당을 박차고 나 온 건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과의 화해는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였다.
후단협 세력까지도 떨어져 나가 야당 세력에 합류한다면 여당과 통 일국민당의 연정에 비견되는 거대 야당의 탄생이었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도 못 펴고 살았던 보수 미디어들마저 가세해서 사학법 개정에 대해 부정 적인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분위기다.
"덕분에 기득권의 저항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청와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혁 작업은 고삐를 좀 늦춘대요?"
"당연히 아니지요. 입법 일정을 더 조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여당의 전열이 무너지지 않은 건 통일국민당과의 연정과 유 재원의 지지 덕이었다.
공식적 지지 표명은 없었다.
다만, 통일국민당에 긍정적인 의 견을 표시하고 ID 그룹이 가진 매 체와 영향력으로 사학개혁의 당위 성을 전파한 덕에 보수 미디어의 공세에도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관련 입법도 이뤄질 거라 고 합니다."
최강욱 부회장의 말에 유재원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재원에게 있어 사학법보 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인공지능 관련 법률의 입법이었으니 말이다.
회귀 초기, 마스터플랜을 철저하 게 따랐을 때의 궁극적 목표는 수 신제가 치국평천하 였다 .
너무도 거창한 목표였지만, 그렇 다고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었다.
마스터플랜에 크게 구애받지 않 는 지금에도 치국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유재원이 선택한 치국의 방법은 자본력과 기술이었다.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감히 넘볼수 없는 세력을 만들고, 앞선 기술 력을 통해 법체계의 미미한 점을 부각시켜 입법으로 이어지도록 하 는 것이다.
실제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관 련해서 한국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재원이 기술을 공개 했을 때도 깜짝 놀라기만 했다.
물론 자랑스러운 한국인 유재원 이 세계를 선도하는 인공지능과 자 율주행 기술을 개발했다는 식의 자 국우월주의 보도가 쏟아지는 것은 덤이었다.
예전 한국이었다면 그렇게 국뽕 맛만 보고 유야무야되었을 일인데, 지금은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그리 고 이 기술의 바탕이 되는 빅데이 터 관련 법안들이 국회 통과를 준 비 중이다.
바로 통일국민당과 민주당의 연 정을 통해서 말이다.
통일국민당은 전명헌 할아버지로 부터 받은 유산인데, 사용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도구였다.
김광일 이사를 통해서 키워드 몇개만 전달해 주면 된다.
그러면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열 심히 공부해서 현실에 맞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생소한 기술일 테니 ID 그 룹 차원에서 기술에 대한 설명과 지원도 해 주는 건 덤이다.
그렇게 해서 인공지능과 자율주 행, 빅데이터 관련 법들의 신설 혹 은 개정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다.
통일국민당에서 민주당의 사학법 개정안에 동의해 주고, 민주당은 통일국민당의 인공지능과 자율주행관련 법에 동의해 주기로 합의도 끝났단다.
"통과되겠죠?"
유재원의 물음에 최강욱 부회장 은 선뜻 긍정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국회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 와서 유재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에서 후단 협이 나갈 예정이고, 통일국민당에 서는 이인제 전 대표의 세력이 분리된 상태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과반은 확보한 상태였다.
그런데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니.
"아무래도 야당 측에서 물리적으 로 회기 진행을 저지할 것 같습니 다."
물리적인 저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 유재원 이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사회에 나가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
더욱이 눈에 불을 켜고 국회를 지켜본 것도 아니고 본인의 사업에 도움이 될 정당에 투표를 하고, 후 원을 좀 하는 정도였다.
덕분에 국회가 얼마나 난장판으 로 돌아가는지는 잘 몰랐다.
"잠깐만요."
유재원은 곧장 i웍스 노트북을 열고 신문 기사들을 검색했다. 키 워드는 국회 파행, 물리 저지 등등.
그러자 관련 문서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 정도 수준의 기사들은 이제 기억의 저장소에 굳이 들어가지 않 아도 넥스트컴이나 구글에서 검색 이 가능해진 것이다.
2020년대쯤 되면 국회 선진화법 이라는 게 만들어져서 물리력 따위 로 국회 일정을 방해하는 건 불가 능해 졌다.
폭력을 쓰다가 고소를 당하면 바 로 의원직 박탈이 기본인 처벌을 받게 되니 다들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지금은 얼마든지 물리력을 써서 막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야생의 국회였다.
유재원은 일단 야당이 뭘 어떻게 하려나 지켜보기로 했다.
내년 4월이 총선인데, 이제 딱 반년 정도 남았다.
야당이 물리력을 써서 막는다고, 그걸 힘으로 뚫고 지나가면 국민들 이 보기에 똑같은 놈으로밖에 보이 지 않는다.
그러니 야당이 강하게 나오면 일단 지켜보는 게 필요했다.
"음, 일단 야당 발목 잡기라는 프레임은 씌워 놓죠. 이후의 움직 임은 야당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고요."
그렇다고 그냥 구경만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야당 발목 잡기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을무를 걸어 놓을 작정이다.
"아! 야당 발목 잡기! 현재 상황 에 대해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 같네요."
최강욱 부회장도 바로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턴가 신문 이나 TV에서 야당 발목 잡기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김대중 대 통령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것은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 어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진보 세력이 라는 것이다.
마치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건 오로지 진보 세력뿐이라는 인식이 언론인들 사이에 깔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발목을 잡는 건 본 인들 이익을 위해서 국회를 마비시 키는 사람들이었다.
자율주행 기술과 인공지능은 ID 그룹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비록 유재원이 논문으로 기계 학 습 알고리즘을 발표한 다음부터 경 쟁사와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지만, 인공지능 골드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무려 10년을 일찍 학습을 시작했 고, 기계 학습 알고리즘 역시 논문 에서 공개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델을 사용했다.
경쟁사들이 그 어떤 최신의 슈퍼 컴퓨터를 써서 기계 학습을 해도 골드의 지능을 뛰어넘진 못한다고 유재원은 확신했다.
이렇게나 좋은 기술을 묵혀 둔다 는 건 어마어마한 낭비다.
그러니 한시바삐 법과 제도를 갖 추고서 판매를 시작해도 시간이 모 자랄 판인데, 본인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국회를 먹통으로 만드는 건 그야말로 완벽한 야당의 발목 잡기 였다.
이후 유재원은 최강욱 부회장에 게서 백호펀드의 운영부터 ID 그룹 동아시아 지역의 현황에 대해 보고 를 들었다.
역시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핫 아이템은 안드로이드 S3였다.
한국에서도 돌풍이었지만, 중국 과 태국 심지어 베트남에서도 잘 팔렸다.
선진국과 비교해 소득 수준이 무척이나 열악한 나라인데도,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서 안드로이드 S3를 사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되고 있단 다.
예외가 있다면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보다는 아이폰이었다.
회귀 전과 똑같은 흐름이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비중이 완전히 극소수 는 아니어서 30% 중반대의 점유율 은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화웨이, 샤오미 같은 회사들이 만든 안드로이드 호환폰도 절찬리 에 판매 중이지만, 그래도 사람들 은 안드로이드 S3를 최고로 선호했 다.
특히 루비 레드 컬러는 웃돈을 주고도 못 구하는 지경이라고 하는 데, 이는 중국 사람들이 유난히 빨 간색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했다.
호환폰이 팔려도 좋고, 안드로이 드 스마트폰이 팔려도 좋은 유재원에게는 그저 즐거운 이야기였다.
그렇게 현안 보고를 마친 최강욱 과 점심도 함께 먹은 유재원 일행 은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바로 언제나 편안한 덕진리 집이 었다.
"아 참! 그전에 여주시에 잠깐 들러 주세요."
논스톱 코스로 이동 계획을 짜던 김대석에게 유재원이 던진 말이었 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