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4화
"하위 호환 역시나 당연합니다."
역사가 짧은 엑스박스1이지만, 명 작 게임은 제법 많이 나왔다.
헤일로나, GTA3와 같은 명작은 엑스박스 진영의 강력한 무기였다. 더욱이 명작이 뿜어내는 재미는 그 래픽 퀄리티가 높지 않아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엑스박스2가 아니라 그 후속기기라도 오랜만에 꺼내서 플레이해 보면 재미있는 게 명작이었다.
"그건 어렵지 않겠네요."
이마에 주름이 가득 졌던 엑스박스 팀장은 그나마 쉽게 고개를 끄 덕였다.
PC는 세대에 상관없이 옛날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문제없이 구 동시킬 수 있다. 범용성이 보장되 어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런 PC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엑 스박스는 하위 호환에도 딱히 고민 할 게 없었다.
CPU도 x86 아키텍쳐일 것이고, GPU 역시 글라이드 라이브러리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후 유재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유재원의 주문이나 말이 쌓이 는 만큼 엑스박스2에 대한 청사진 도 빠르게 그려졌다.
"그런데 미디어 드라이브는 DVD 를 그대로 써도 되겠습니까?"
유재원의 발표가 저장 매체에 이 르러 DVD라고 말할 때, 팀원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엑스박스 팀장에게 찌릿하는 눈빛 을 받았지만 팀원은 꿋꿋하게 버텼 다.
"역시 DVD로는 부족하다는 거 죠'?"
"예, 회장님. 소니는 얼마 전부터 블루레이라는 차세대 광학 디스크 를 밀고 있습니다. DVD와 똑같은 크기인데도 용량은 최소 25에서 최 대 50기가바이트까지 저장할 수 있 다는데, DVD는 겨우 4.2기가바이 트니까요."
팀원의 지적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합당한 이야기였다. 차세대 게임기부터 광학 미디어 드라이브 도 업그레이드가 되는데, 소니에서 는 블루레이를 밀었다.
그리고 회귀 전 MS는 HD-DVD 라는 걸 선택했다. 블루레이와 같이 청색 레이저를 이용해 저장 밀도를 끌어올린 것인데, 결과만 보면 블루 레이 진영의 압승이었다.
그렇게 차세대 광학매체 경쟁에 서 승리한 블루레이는 2020년대 초 반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니 합리 적으로만 생각하면 블루레이를 선 택하는 게 옳겠지만, 유재원은 과 거의 MS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블루레이 진영에서 가장 큰 지분 을 차지하는 건 소니였기 때문이다.
소니와는 지금 다방면에 걸쳐 치 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데, 소니의 블루레이를 선택하는 건 결국 소니 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유재원이 1차적으 로 선택한 건 바로 DVD였다.
물론 DVD로는 차세대 게임기가 요구하는 대용량을 만족할 수 없다. 당연히 차선책을 생각해두고 있었 으니 바로 디지털 다운로드였다.
"디지털 다운로드? 스팀 말입니 까? 스팀이 엑스박스1을 지원한지 는 한참 됐는데 말입니다."
소프트웨어의 디지털 다운로드는 이제 혁신이 아니었다. 스팀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된 지 한참 되었으 니 말이다.
더욱이 스팀은 DVD도 이겨내지 못했다. 엑스박스1의 게임 판매량 을 보면 스팀의 비중은 30%를 넘 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팀장 이나 팀원들이 보기에 스팀으로 블 루레이에 대항하는 건 무리수로 보 였다.
2003년 9월 중순.
유재원은 업무를 위해 인천 국제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전지전능! 옴니아!
-국산 기술로 만든 최초의 스마 트폰!
-파격적인 구매자 혜택! 상큼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레몬 평생 사용권 증정!
입국 절차를 모두 끝내고 입국장 을 넘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천장부터 바닥까지 큼지막 하게 걸린 광고였다.
"음? 옴니아?"
그 유명한 일성전자의 스마트폰 인 옴니아의 광고였다.
회귀 전에도 이름을 들어봤던 스 마트폰이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 로 말이다. MS의 모바일 운영체제 를 탑재한 스마트폰이었는데, 스마 트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성능이 많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면서 전지전능하다고 광고를 했으니, 얼마나 많은 비웃음을 샀겠는가. 출시하고 나서 10년이 지 나도 그 이름을 망작이란 카테고리 안에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을 정도다. 유재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일성통신이 스카이라는 회사를 인수해서 만든 스마트폰이라 합니 다. 성능은 안드로이드 S3와 비슷 하고요."
유재원이 옴니아 광고를 보고 관 심을 보이자 김대석 비서가 자세한 설명을 해 줬다.
최신 스마트폰인 안드로이드 S3와 비슷하다는 것, 그 말은 옴니아 라는 이름이 회귀 전과 같은 웃음 거리는 되지 않을 거라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김대석 비서가 안드로이드 패드에 띄워서 보여준 옴니아의 스펙을 보니 진짜 S3와 거의 동급이었다. M4A1 프로세서 를 썼고, 램 용량도 1GB 였고, 스토 리지 용량도 기본이 16GB부터 시 작했다.
당연히 운영체제 역시 모바일 안 드로이드 운영체제였으니, 옴니아가 아니라 갤럭시라는 이름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으 로 가격도 안드로이드 S3보다 20% 저렴한 720달러, 한국 돈으로는 80 만 원 선이었다.
"이 정도면 호환 제품 중엔 최상 급이네요."
모바일 안드로이드 체계를 공개 하기로 한 후에 전 세계 주요 전자 회사들이 앞다퉈 참여했고, 한국 역시 일성은 물론 금성과 같은 대 기업들이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그게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제 일성을 시작으로 하나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우리도 긴장해야겠네요."
명색이 모바일 안드로이드를 만 드는 회사인데, 호환 제품에 뒤지 면 되겠는가. 절대 안 될 말이다. 그렇지만 절대 방심도 금물이다.
호환 제품 제조 회사를 만만히 보았다간 금세 따라잡히게 될 테니 말이다. 실제로 회귀 전에는 갤럭 시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품의 플래그십 모델이었다.
"그런데 국산 기술로 만든 최초 의 스마트폰이라니? 이건 좀 걸리는데요?"
공항에서 국산 마케팅이라니.
애국심 자극에 효과적이긴 한데, 너무 틀렸다.
무엇이 국산인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는 유재원이 만들었다. 현재 S3버 전에 와서는 시애틀의 안드로이드 사에 많은 부분을 위임했지만, 이 번에 추가된 인공지능과 같은 핵심 기술은 여전히 유재원이 만들었다.
하드웨어 역시 마찬가지다.
S3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부품이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스토리지, 디 스플레이 모두 ID 일렉트로닉스의 수원, 대전 공장에서 만들어진 부 품이었다.
센서들 역시 원천 기술은 미국에 서 나온 게 대부분이지만, 생산은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이뤄졌다. 해 외에서 들어온 부품은 메인보드, 배터리, 고릴라 글라스와 특수 염 료 정도가 전부다. 메인보드는 대 만산, 배터리는 일본산, 고릴라 글라스와 염료는 미국산이다.
옴니아 역시 안드로이드 S3와 비 슷한 부품 구성이다. 단지 배터리 만 일성그룹 자회사인 일성화학의 국산 배터리를 쓴 것 정도가 차이 였다.
유재원은 비록 사업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란 자각이 있었다. ID 그룹 역시 미국의 사업장 규모가 크긴 했어도, 시작은 한국에서 했 고 한국에 본사도 있으니 한국 기 업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일성의 국산 마케팅은 유재원에게 매우 거 슬렸다.
"자세히 알아봐서 보고 드리겠습 니다."
고개를 끄덕인 유재원은 발걸음 을 다시 옮겼다.
그런데 속도는 전보다 느려졌다. 입국 심사를 받았던 공간은 그나마 프라이버시가 있는 공간이었지만, 거길 나서는 순간 공공장소였으니 말이다. 유재원을 알아본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다가 너도나도 스마트 폰을 들고 유재원을 찍었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측한 경호 원들이 스크린을 잘 짜놓은 덕에 유재원에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 람은 없었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고 유재원을 찍었다.
그 모습에 유재원은 환하게 미소 를 지었다.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 폰 대부분에 ID 로고가 박혀 있었 으니 말이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도 않은 S3 모델도 상당수였다.
얼리어답터가 많았던 ID 소프트 웨어에서 봤던 모습을 인천 국제공항에서 또 보게 되었다. 하긴, 한국 사람들이 신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적응력은 최상이긴 했다.
세계 최고의 테스트필드 국가라 는 타이틀도 있었고, 이를 위해 여 러 기업들이 한국에 지사를 내기도 했다.
호응을 한껏 해 준 유재원 일행 은 준비된 자동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했다.
일단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에 들러 최강욱 부회장에게 현안 보고 를 받은 후, 대전으로 내려가 반도 체 신공정 완성 작업에 참여하는 게 이번 유재원의 방한 목표였다.
"와."
서울 시내에 진입했을 때, 평소 처럼 i웍스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 두고 작업을 하던 유재원은 문득 창밖을 보곤 감탄을 터트렸다.
서울의 풍경이 초가을의 빛깔로 바뀌어서? 아니면, 뭔가 새로운 랜드마크가 보여서?
둘 다 아니었다. 유재원으로부터 감탄을 이끌어낸 건 A4 용지에 한 자씩 출력해 이어 붙인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N페이 받습니다!
IDDC 2003에서 부활의 신호탄 을 쏘아 올린 N페이를 받아준다고 붙여 놓은 노점상을 보고 감탄을 터트린 것이었다.
"잠깐만요, 차 좀 길가에 세워 봐요."
유재원은 차를 세웠다.
"떡볶이와 오뎅을 좀 사 올까요?"
차를 멈추라는 유재원의 말에 김 대석이 바로 반응했다.
노점상 거리였으니 노점상에서 파는 떡볶이와 오뎅을 먹고 싶어서 차를 세워 보라는 것으로 알아들었 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재원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N페이를 받는 노점상은 처음에 눈에 들어온 한 곳이 아니 라,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점상엔 POS 기기도 없을 텐데 어떻게 N페이를 받는지 궁금해졌 던 유재원은 김대석만 대동하고 떡 볶이 노점에 다가갔다. 그리곤 김 대석에게 N페이로 주문을 해 달라 고 부탁했다.
"떡볶이 2인분, 오뎅 2인분 포장 이요."
"4천 원이요!"
"N페이로 결제하려는데요?"
"아! 총각도? 그럼, 여기 찍고 40포인트만 전송해 주세요."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A4 용지에 QR코드가 프린트된 종이를 내밀었 다. 젖거나 찢어지지 말라고 코팅 까지 해 놓으셨는데, 많이들 사용 했는지 손때가 제법 묻어 있었다.
김대석 비서는 바로 본인의 스마 트폰으로 QR코드를 찍었다. 그러 자 N페이 전송 화면에 떴고, 거기 에 40포인트를 입력하고서 전송 버 튼을 눌렀다.
땅!
김대석이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 서, 거의 동시에 아주머니의 스마트폰에서 알람 소리가 크게 났다.
"잘 들어왔네요 당첨 기원할게요!"
떡볶이와 오뎅을 넘겨주는 아주 머니는 '맛있게 드세요' 대신에 '당 첨을 기원한다'는 말을 했다.
당첨 기원.
그것으로 유재원의 의문은 완벽 히 풀렸다.
차로 돌아온 유재원은 김대석과 떡볶이와 오뎅을 나눠 먹으며 i웍 스 노트북을 다시 시작했다. 대신 i 웍스 노트북에 띄워진 화면은 조금전과 달라졌다.
수원의 반도체 공장에서 올린 수 치 데이터 대신, N페이 서버의 글 로벌 종합 데이터였다. 그중에서도 당첨자 발생 분포 데이터를 표시했 다.
역시나.
N페이가 서비스 중인 나라는 G20에 속하는 선진국들이었다. 그 런데 한국은 유독 눈에 띄는 상위 권에 위치해 있었다.
그 이유도 데이터에 나와 있었 다.
IDDC 2003에서 유재원이 제2의 부활을 알리기 전까지 N페이 사용 률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IDDC 2003에서 매일 당첨자를 쏟 아내는 대규모 이벤트를 실시하면 서 유저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 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한국이 1, 2 등을 다투고 있는 중인데, 역시나 비밀은 당첨자 분포였다. N페이 이 벤트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사용자 가 극히 적었기에 당첨 확률이 매 우 높았다. 지금도 로또보다는 높 은 확률이지만, 8월 초만 해도 100분의 1보다 더 높았을 정도다.
그나마 한국과 미국엔 사용자가 있어서 많은 당첨자를 배출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N페이 복 권(?)에 응모하려면 일단 N페이를 사용해야 하는데, N페이를 받는 곳 이 오프라인에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온라인에서 다 쓰기엔 당첨 확률을 높이는 데 그다지 도 움은 되지 않는다. 추첨기에는 중 복 당첨을 최대한 억제하는 알고리 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N페이를 많이 쓰
면 쓸수록 좋은데, 돈을 버는 남다 른 재주가 있는 이들이 이걸 바로 캐치하고, N페이를 받기 시작한 것 이다.
N페이를 받고 나서 매출이 실제 로 오르니 옆집에서도 N페이를 받 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POS 기기가 있다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간편하게 해결 되지만 카드도 안 받는 노점상의 경우엔 본인의 N페이 주소를 QR 코드로 출력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신용카드와 달리 N페이는 클릭 몇번으로 간단히 가입되었으니 노점 상이라도 문제없었다.
"이번엔 기대해도 되겠지?"
회귀 전 한국은 이상하게도 핀테 크의 대중화가 쉽지 않은 나라였다.
중국 같은 나라도 진작에 현금 대신 전자 화폐로 전환되었는데, 한국은 한참이나 느렸으니 말이다.
지금은 노점상도 N페이를 받고 있는 상태이니,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 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