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93화 (693/1,007)

33권 2화

"또또, 시작이네."

유재원은 모니터를 보며 혀를 찼 다.

거기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속보가 떠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가 총리 에 오른 20()1년부터 계속된 연례행 사였다. 이번에도 방문했으니 3년 연속 참배였다.

다만 전과 다른 게 있었다면, 참 배 날짜였다.

2001년 처음으로 야스쿠니를 찾 았을 때는 8월 13일로, 광복절로부 터 이틀 일찍 하거나, 다음 해에는 조금 늦게 했는데 이번에는 8월 15 일에 딱 맞춰서 찾았으니 말이다.

8월 15일은 한국에선 광복절인 데, 일본에선 종전기념일이었다. 천 황을 위해 싸우다가 천황이 스스로 전쟁을 마친다고 선언한 말 그대로 종전이고 그것도 기념일이었다. 절 대 패전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우경화 때문이었다.

회귀 전의 일본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우경화의 강도는 훨씬 심해 졌다. 원인을 따져보면 역시 유재 원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원래의 흐름대로였다면 한국에서 참혹하고 화려한 피날레를 터트리 며 끝났을 것이었다. 그런데 유재 원의 개입으로 화려한 피날레는 일 본에서 터졌다.

잃어버린 10년으로 골골하고 있 던 일본이었지만, IMF가 터질 만 큼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 나 여러 가지 위기가 겹치면서 결국 이것이 뇌관으로 작동하여 제대 로 터져 버렸다. 한국보다 뜯어 먹 을 게 훨씬 많았던 일본이었으니, 피날레의 강도도 훨씬 컸다.

그로 인해서 일본의 처지도 회귀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 경제의 침체는 훨씬 깊어졌 고, 그 기간도 길어졌다. 원래대로 라면 2000년쯤엔 2만 포인트까지 도 낙폭을 회복했어야 할 닛케이 225 지수는 1만8천 포인트까지밖 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비실거리 기 시작한 닛케이225 지수는 다시 하락을 시작했고, 2003년 지금에는 역대 최저점을 다시 갱신 중이었다. 작년에 1만 포인트대도 무너졌고, 지금은 8천 포인트 밑으로 떨어져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 활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국제 정세적으로도 일본은 위기 였다. 일본이 제일 큰 영향을 받는 나라는 미국이었고, 미국의 동아시 아 전략이 크게 달라지고 있었던 탓이다.

바로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역할변화 때문이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은 곧 중국군 의 현대화로 이어졌다. 그저 숫자 만 많았던 중국 인민해방군이 낡은 장비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장비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그 전력이 급성 장했다. 여기에 중국도 막강한 핵 보유국이었기에 러시아와 함께 미 국을 위협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나마 중국이 청나라 채권이라 는 암초에 걸리면서 인민해방군 현 대화 사업을 멈출 수 있었지만, 이 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오히려 미국에 앙심을 품게 되었 으니, 청나라 채권 상환이 끝나게 되면 충돌은 더욱 심해질 거라는 예측이 합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미군이 주 둔하게 된 건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비록 1개 중대도 되지 않는 소수 의 병력이지만, 북한에 미군이 주 둔한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일본의 위기감이 한층 강해진 것 도 그때였다.

일본의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는건 자민당 정치인들이고, 이들 상 당수는 일본의 옛 영화를 그리워하 는 사람들이었다. 그때가 일본제국 시절인지 아니면 7, 80년대 일본의 경제가 황금기를 탔던 시절인지는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이들이 공 통적으로 공감하는 건 일본은 미국 과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북한과 미국의 밀월관계는 옛 영 광에 취해있던 일본 수뇌부를 자극 했다.

특히 일본의 수뇌부가 본인의 목 숨처럼 신성시하는 것이 있으니 애치슨 라인이었다.

애치슨 라인이란 1950년 미국 국무장관인 딘 애치슨이 선언한 미 국의 극동방위선이었다. 미국은 일 본과 필리핀만 지키면 되니, 나머 지는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실 제 6.25가 발발하면서 애치슨 라인 은 단순히 정치적 선언이 아님이 증명이 되었다.

애치슨 라인 밖에 있던 한국은 초토화되었던 반면, 일본은 전쟁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하면서 전쟁 특 수를 제대로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 일본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애치슨 라인이 빛 을 발했다.

그런데 북한의 등극으로 애치슨 라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일본 본토를 지나던 라인이 한반도를 포 함하게 되면서 바싹 당겨졌다.

최일선에서 밀려난 일본은 그만 큼 미국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었 다.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 자민 당 수뇌부와 고이즈미 총리는 돌파 구 마련에 고심했다. 그 결과 나오게 된 것이 바로 보통국가였다.

일본이 이처럼 찬밥 취급을 받는 건 군대가 없어서이니, 군대를 보 유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가자 는 것이 자민당 수뇌부의 판단이었 다.

그러자면 국민적 지지로 헌법 개 정이 필수였고, 헌법 개정에 탄력 을 받으려면 우경화 움직임이 필요 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8월 15일 광복절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결과가 튀어나왔다.

"흐음."

인터넷 그리고 ID 그룹 정보팀으 로 고이즈미 총리 관련 정보와 야 스쿠니 신사 참배의 후폭풍에 대해 살펴보던 유재원은 고민에 빠져들 었다.

회귀 전에도 일본의 우경화 바람 은 무척이나 거셌다. 그런데 지금 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게 일어나는 중이었다.

당연히 유재원은 고이즈미 총리 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 제대로 카운터를 날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의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파워블로그나 톡톡에다가 고이즈미 총리를 저격해 봐야 별 영향도 없 을 것 같았고, 일본 경제를 공격하 는 것 역시 실익도 없지만 우경화 의 바람이 더 심해지기만 할 것이 분명했다.

잠깐 고민을 해 보던 유재원은

취약점을 찾아냈다.

"일본이 제일 신경 쓰는 게 해외 평판이지?"

한국도 해외의 반응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국가지만, 일본만큼은 아니었다.

일본은 마치 전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른 나 라의 관심에 깊이 반응했다. 물론 그 나라들에는 한국이나 북한은 포 함되지 않았다. 일본보다 더 잘사 는 나라들, 그러니까 미국이나 유럽에만 민감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경화와 함께 혹역사 를 덮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 었다.

"그럼 이 포인트를 제대로 자극 해야겠군."

일본이 2차 대전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고, 수많은 전쟁 범죄도 부 인하면서 다시 군대를 갖겠다고 하 는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확실한 대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김 비서님, 내일 텍사스에 가야 겠어요."

-예! 회장님, 출장 준비하겠습니 다.

행동력이 남다른 유재원은 결정 을 내리자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더욱이 IDDC 행사가 끝난 직후라 외부 스케줄도 없었기에, 새로운 출장을 결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음날.

텍사스의 주도 델러스 공항에 ID 그룹 전용기가 착륙했다. 전용기에 서 내린 유재원은 얼굴을 덮치는 후끈한 열기에서 텍사스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쾌적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 는 샌프란시스코에 줄곧 살다보니 까 지금이 여름인 것도 순간 잊을 정도였다.

"회장님!"

그래도 유재원의 얼굴에는 본인 을 찾는 반가운 목소리에 짜증 대신 즐거움이 떠올랐다.

유재원이 텍사스에 도착할 때마 다 항상 맞으러 나오는 존 카맥 ID 소프트웨어 사장이 이번에도 유재 원을 데리러 나와 주었기 때문이다.

"존! 오랜만이죠?"

존 카맥은 무척이나 밝은 모습이 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소프트웨어는 매년 꾸준히 성장하면서 안정적인 자리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둠3 이 후로 한동안 신작을 내지 못하는데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현재 ID 소프트웨어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히트상품은 ID 테크엔진이 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3D 라이 브러리인 글라이드와 찰떡궁합인 ID 테크엔진은 게임엔진 분야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했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끝에 ID 테크엔진의 점유율은 60%에 육박 할 정도였다. 여기에 ID 테크엔진 으로부터 파생된 효과도 대단했다. 대표적인 것이 ID 테크엔진에 쓰이 는 모델링이나 환경데이터만 전문 으로 제작해 파는 업체로 수십, 수 백 개가 생겨났다. 그래픽 플러그 인을 만드는 전문 연구소까지도 나 온상태다.

그만큼 ID 테크엔진이 3D 게임 개발의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ID 소프트웨어 는 게임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게 임을 만들어 팔았을 때보다 더 많 은 수익을 올리는 중이었다.

유재원은 존 카맥의 안내로 ID 소프트웨어 본사에 입성했다.

ID 소프트웨어가 있는 건물 자체 는 전에 구매했던 그대로였지만, 인테리어를 다시 한 모양인지 최첨 단의 IT기업 느낌이 물씬 났다.

1층 로비는 호텔 부럽지 않을 만 큼 화려했고, 카페와 레스토랑 등 등 직원들을 위한 시설도 무척이나 잘 꾸며져 있었다.

"오늘 우리 회사에 누가 방문했 을까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존 카맥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로비에 나와 있던 이들의 시선이 전부 입구 쪽 으로 쏠렸다.

존 카맥 사장의 성격이 이리 활달했던가? 유재원의 기억 속에서 존 카맥은 남다른 패션 센스를 보 이긴 했지만, 좀 차분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직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지더니, 급기야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수많 은 악수 혹은 셀카의 요청이 이어 졌다.

"오! 안드로이드 S3네요."

놀라운 점은 유재원에게 다가오 는 ID 소프트웨어의 직원 중 상당 수가 얼마 전 출시한 안드로이드S3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루비레드가 제일 많았고, 에메랄 드 그린과 사파이어 블루도 많이 보였다. 너무도 화려한 색이라 눈 만 돌리면 바로 보였다. 아주 일부 는 아이폰 3G 모델을 들고 있는 직원도 있었다. 그래도 유재원은 악수를 해줬다.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격차는 7 : 3으로 벌어진 상태였는데, 이젠 8 : 2나 9 : 1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 으니 말이다.

시장에서의 안드로이드 S3에 대한 반응은 최고였고, 9월부터 중급 형, 보급형 호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 그야말로 초토화될 게 분명 했으니 말이다.

록스타 기분을 한껏 낸 유재원은 존 카맥의 사장실로 안내되었다. 댈러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최상층에 자리한 곳이었 다.

거기서 존 카맥이 권한 상석에 앉은 유재원은 곧바로 이번 스케줄 의 목적을 꺼내 놓았다.

"이제 ID 소프트웨어도 슬슬 자체 게임을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요?"

"아, 그렇지요."

유재원의 지적에 존 카맥이 바로 수긍했다.

여러 게임 개빌사들과 협력해 ID 테크엔진 개량에 열심이었던 ID 소 프트웨어지만, 본업은 역시 게임 개발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작 게임을 낸 지 가 좀 오래되긴 했네요."

FPS의 명가가 바로 ID 소프트웨어였다.

게임을 낼 때마다 FPS 게임에 커다란 혁신이 이어졌다. 울펜슈타 인을 시작으로 퀘이크, 둠까지 이 어지는 걸작들은 하나하나가 메가 톤급 파괴력을 선보였다.

"계획하고 있던 건 없죠?"

유재원의 물음에 존 카맥은 순순 히 고개를 끄덕였다.

ID 테크엔진을 개량하는 것만으 로도 ID 소프트웨어의 모든 인력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ID 테크 엔진은 FPS 전용으로 시작된 것인데, 이를 각종 장르의 게임에 맞게 개량해야 했던 탓이다.

슈팅과 오픈 월드는 물론이고 대 규모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까지도 지원토록 했다. 최근에는 레전드 리그를 만들면서 AOS까지 그 영역 을 넓혔다. 신작에 대한 기획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캐비닛에만 있을 뿐 구체화되진 못했다.

그 때문에 유재원 보기가 부끄러 워진 존 카맥이었지만, 유재원은 그래서 더 좋았다.

"그러면 제가 기획서를 하나 가지고 왔는데, 검토해보실래요?"

유재원은 반색하며 기획서를 언 급했다.

"물론입니다!"

존 카맥 역시 바로 고개를 끄덕 였다.

소프트웨어부터 반도체까지 IT분 야 전반에 걸쳐 올라운드 개발 능 력을 선보이고 있는 유재원이지만, 게임 개발에 있어서도 남다른 실력 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카맥이 유재원과 인 연이 생긴 것도 키보드워리어2의 게임엔진을 보고 깜짝 놀라 연락을 넣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존 카맥의 반색에 유재원은 바로 가방에서 i웍스 노트북을 꺼내 슬 라이드 쇼를 시작했다. 타이틀 화 면에 커다랗게 띄워진 타이틀은 'The Pacific(태평양)'이었다.

2차 대전의 주요 전장은 유럽이 었지만, 태평양 전쟁 역시 유럽 전 장 못지않게 치열했고, 참혹했다.

더 퍼시픽의 핵심은 전쟁의 참혹 함을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플레이 어는 태평양 전선에 투입한 미군 병사였고, 적 세력은 당연히 일본 제국이다. 진주만부터 시작해 미드 웨이, 필리핀과 난징 그리고 한반 도까지.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 를 훑으며 일본제국의 민낯을 생생 히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리얼리티 FPS라니."

이제껏 드도적인 FPS만 냈던 ID 소프트웨어와 존 카맥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덕분에 존 카맥은 노 트북에 띄워진 기획서를 살펴보는 데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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