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86화 (686/1,007)

32권 20화

"시추 시설의 꼭대기에서 노란 불꽃이 크게 일고 있다는 말은 유 정 내부의 압력이 크다는 이야기지. 막말로 빨대만 꼽아도 기름이 뿜어 져 나오는 유전이 바로 이르쿠츠크 유전이다. 신기한 건 근처의 볼가-우랄 유전의 양상과는 다르다는 점 이야. 거긴 유정 내부에 압력을 많 이 가해 줘야 원유를 끌어올릴 수 있거든. 실제로 원유를 분석해 보 면 함유된 성분도 많이 달라."

이르쿠츠크의 원유 품질도 무척 이나 좋았는데, 황과 납 등 석유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오염 물질의 함량은 낮은 반면, 나프텐기와 경질 유의 함량은 제법 높았다.

덕분에 정제하는 데 비용이 크게 들지 않고, 돈이 되는 가솔린을 쉽 게 추출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역시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바로 회귀 전 열심히 조사한 지 질 정보에 있는 데이터와 동일했으 니 말이다.

회귀 전 이르쿠츠크 유전은 21세 기 중반, 러시아의 마지막 목숨줄 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단한 유 전이었다. 지금이야 경제적 매장량이 300억 배럴 정도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용량 을 자랑했으니 말이다.

셰일 가스 혁명이니, 핵융합 혁 명이니 하는 에너지 혁명이 이어져 도 이르쿠츠크의 중요성이 덜해지 진 않았다.

21세기 중반에 와서 미국에서 핵 융합 발전에 성공했어도, 발전소 건설 비용은 무지막지했으니 말이 다. 게다가 완전히 안정되었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대체 에너지원이 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유재원이 핵융합 발전 성공 소식 에 관련 기술 공부를 시작하고 나 서, 눈을 감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호기 성공 이후 다음 소식은 없었던 상 태였다.

핵융합 발전 성공 소식에 석유와 석탄 등등 전통의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들이 폭락했지만, 몇 년이 지 나고 보니 낙폭을 다 복구하고도 남았다.

론스타라 명명된 최초의 핵융합발전소가, 1호기 이후로 추가 건설 이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끝내 밝혀지진 못했다.

"23번 유정은 초심자의 행운이라 고 볼 수 있지. 두 번째 셰일 가스 채굴 성공에도 설마하는 의구심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 이르쿠 츠크 유전에 와서 확실히 알았어. 이건 행운 따위가 아니라 실력이라 고 말이야."

그러는 사이 프레더릭의 말은 이 어졌다.

처음부터 실력이었지만, 전통적사고관의 프레더릭은 이르쿠츠크 유전 개발 성공에 와서야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하단 얼굴이군."

마치 유재원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바로 정곡을 찌르는 프 레더릭이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어쩔 수 없지. 자네도 내 나이가 되면……. 아니지. 자네 같은 천재라면 다르긴 하겠지. 하 여튼 나 역시 젊었던 시절에는 뭐 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 기름이 날 것 같은 땅은 죄다 내전 중이었고, 애써 유전 개발에 성공 하면 전쟁이 왕왕 터졌지만, 그걸 다 이겨내고 셰브롱의 깃발을 꽂았 으니 말이야."

프레더릭이 말하는 시대는 20세 기 초인 것 같았다.

셰브롱을 비롯해 원유 업계의 메 이저 업체를 두고 일곱 마녀라는 악명으로 부르지만, 일곱 마녀들 역시 나름의 노력 끝에 지금의 지 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셰브 롱의 경우 프레더릭의 청춘이 다녹여져 있을 것이다.

"만약 20세기 초였다면, 이르쿠 츠크 유전을 우리 혼자서 차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다. 만에 하나 성 공을 했더라도 엄청난 피 혹은 뒷 돈을 지급해야 했겠지."

지금도 로스네프트와 반을 나눠 야겠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계약이 었을 뿐이다.

그 어떤 나라도 외세가 자국의 자원을 빼내 가는 걸 그대로 두고 보진 않는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 지였고, 시베리아 자원 개발 사업역시 예외는 아니다.

형식만 따져 본다면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인 로스네프트가 본인들 이 가진 시베리아 자원 개발권을 가지고 T&U 리서치에게 의뢰를 한 것이었다. 셰브롱이 T&U 리서 치를 다시 인수함으로써 개발권은 셰브롱에게 인수된 것이 지금의 상 황이다.

분배 비율은 5 : 5.

그렇기에 로스네프트는 손도 대 지 않고 반을 가져가지만, 분배 비 율은 얼마든지 재조정될 수 있었다.

유전을 찾아낸 것과는 별개로 유전 개발에 드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유전이란 찾는 것도 일이지만, 뽑아낸 원유를 옮기는 것도 큰일이 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로스네 프트는 지금 여력이 없었다.

이라크 내전 때문에 매일같이 유 가가 큰 폭으로 상승 중이니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유가 상승의 범 인인 이라크 내전에 로스네프트가 심각하게 껴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내전은 겉으로는 후세인의 지배력 상실이 불러일으킨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이슬람이란 종교 문제가 컸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이슬람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스네프트는 이 라크의 유전 지대에 눈독을 들이다 가 미국이 군을 철수시키자 그 틈 을 비집고 들어갔다.

처음엔 순조로웠지만, 내전에 휩 쓸리면서 로스네프트의 장밋빛 미 래도 환상처럼 사라졌다. 내전이 터진 순간, 이라크 정부와의 계약은 그야말로 부도난 어음과 마찬가 지였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군이니 혁명군 이니 하는 집단으로부터 어렵게 얻 은 재산을 지키는 데에 총력을 기 울여야 했다. 그나마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 었다.

러시아는 이라크 내전이 터지자 마자 후세인 편에 붙어서 정규군을 파견했고, 덕분에 로스네프트의 자 산을 반란군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 다.

BP처럼 달랑 기업 인력만 들어 온 기업들은 기껏 만들어 놓은 정 유 시설이 불쏘시개가 되는 걸 구 경만 해야 했다.

그들도 그냥 이라크로 들어온 게 아니라, PMC와 계약 중이었다. 하 지만 수천이 넘는 광신도 같은 반 군이 작정하고 쳐들어오자 PMC로 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빠진 자리를 러시아와 유럽 연합이 대신 들어가 며, 미군이 흘렸을 피를 대신 홀리 고 있는 게 지금의 형국이었다.

이라크에서 큰 손실을 보는 로스 네프트에게 이르쿠츠크 유전은 뜻 하지 않은 대박이었지만, 원래 약 속된 50%를 다 가져가는 건 무리 였다.

셰브롱 입장에서는 잘만 되면 7 : 3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 라는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로스 네프트와의 협력 증대가 있다. 러 시아에서는 가스프롬이란 천연가스 기업이 제일 유명하지만, 석유 산 업을 꽉 쥐고 있는 로스네프트도 나름 존재감 있는 기업이었다.

그런 로스네프트와 엑손모빌은 남다른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르쿠츠크 유전으로 셰브 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긴 것 이다.

"이번 건까지 해서 기적이 3번이 나 일어났군. 그러니 원래대로 한 다면 티파니가 내 뒤를 잇는 건 당 연한 일이지."

프레더릭의 말에 유재원이 고개 를 끄덕였다.

티파니의 이모 둘을 아무리 봐도 티파니보다 나은 점은 하나도 없었오히려 두 이모의 행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장모님이나 티파니가 바르게 자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직도 내 마음엔 의구 심이 남아 있어. 자네 때문이지."

노란 불꽃을 보고 있던 프레더릭 이 몸을 돌려 유재원을 직시했다.

"만약 티파니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면 망설임은 없었을 것이야. 하지만 자네라는 조력자가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

"제가 도와줬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저를 믿어 준 것 자 체로 티파니의 능력 아닐까요?"

"물론이지. 그렇지만 티파니 다 음 세대에 가서는 어떻게 될까? 그 걸 생각하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이 점에 대해선 유재원도 할 말 은 없다.

프레더릭이 말한 것처럼 124년의 역사를 가진 셰브롱이었다. 티파니 라면 그런 셰브롱을 훨씬 더 장대 하게 이끌어 갈 수 있겠지만, ID 그룹과의 합병 역시 염두에 둬야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후대에 이르러 셰브롱의 오너 가 문 성씨가 테일러에서 유로 바뀐다 는 건, 당사자에겐 꽤나 심각한 문 제일 것이다.

"노파심 같은 건 나랑 상관없는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더군."

"이해합니다."

덕분에 유재원의 눈에는 프레더 릭이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

티파니에게 처음으로 프레더릭을 소개받던 그날, 저택에서 보았던 프레더릭은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자리한 거인이었다. 그런 프레더릭 이었는데, 지금은 후계를 걱정하는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그래. 고맙군. 그래서 말인데 이 번과 같은 기적을 딱 하나만 더 보 여줄 수 있겠는가?"

'하나 더'라니?

이어진 프레더릭의 말에 유재원 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티파니 다음에는 테일러가 사람 들에게 셰브롱을 물려줘야 한다든지, 아니면 ID 그룹과 셰브롱의 합 병 금지를 이야기했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반면 이르쿠츠크 유전급의 새로 운 유전을 찾는 건 유재원에겐 일 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르쿠츠크 유전 말고도 엄청난 채산성을 지닌 미발견 유전의 위치 는 유재원의 머릿속에 여럿 있었다. 단지 선택의 문제였다.

"물론이죠."

덕분에 유재원은 아주 쉽게 약속 할 수 있었다.

반면 프레더릭은 유재원이 이렇 게나 쉽게 승낙할 줄은 예상치 못 한 얼굴이었다. 적어도 조건을 놓 고 줄다리기는 있을 것으로 예상했 으니 말이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지만, 호쾌 하게 승낙하는 모습에 호감이 더욱 일어나는 프레더릭이었다.

이후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의 총리 메드베데프가 참석하고 로스 네프트의 경영진 그리고 티파니와 프레더릭이 주관한 유전 탐사 성공 과 개발 계획이 발표되었다.

러시아에서의 일을 마친 유재원 일행은 그대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유재원에게 남은 건 IDDC 2003.

세상 사람들의 눈을 번뜩이게 할 신문물을 보여줄 시간이다.

"팀장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 다. 시스템, 을 그린!"

"OK, 모두 제자리에 앉아서 대기하세요. 이제부터 실전이니까요."

부하 직원의 말에 상석에 앉은 영식이가 대답했다.

평소와 다르게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제 곧 빅 이벤트의 시작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ID 그룹의 최대 이벤트 ID 개발 자 콘퍼런스, 보통은 IDDC라 하는 이벤트의 시작이 코앞이기 때문이 다.

바로 친구이자 상사인 유재원의 메인 스테이지 발표가 3분 남았다.

매년 있는 행사였지만, 늘 이 시 간만 되면 긴장이 되는 영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식이의 임 무는 IDDC 기간 중 ID 그룹의 인 터넷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 도록 하는 네트워크 관리였기 때문 이다.

예전에는 그저 코요테 시티의 데 이터 센터를 하나 관리하는 것이었 다면, 능력을 인정받은 지금에 와 서는 ID 그룹의 전체 네트워크 시 스템을 관리하는 자리까지 올라간 탓이다.

ID 카드에 올라간 정식 직책의 이름은 슈프림 네트워크 매니저.

26살 청년에게 주어지기엔 과분 한 직책이긴 했다. 하지만 영식이 가 ID 그룹의 네트워크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 어떤 사고도 일 어나지 않았다.

다른 인터넷 회사들이 해커들의 공격에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데 이터베이스가 망가지는 등의 사건 이 터졌을 때에도 ID 그룹의 네트 워크만큼은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영식이에게 슈프림 네트워크 매니저라는 직책이 주어졌을 때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 었다.

대신 영식이 본인이 무척이나 부 담이었다.

ID 그룹의 네트워크 시스템은 세 계 최대의 크기를 자랑했고, 그만 큼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IDDC와 같은 이벤트가 벌 어지는 날이면 접속자가 폭주했으 니 며칠 전부터 초비상이었다.

올해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고도, 실 제 이벤트 오픈 시간에 맞춰 ID 그 룹의 전체 네트워크 상태를 모니터 링할 수 있는 관제실의 지박령이 되어야 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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