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17화
유재원도 직원들의 인사를 엉겁 결에 받으면서 허릴 숙였다.
그러면서 공식 일정마다 늘 함께 하는 김대석 비서실장에게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다. 둘이서 함께 다닌 지 10년이 넘었기에 이제는 눈빛만 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사이였다.
"이곳 서울 힐튼 호텔을 비롯해 경주, 하노이, 연변 힐튼 호텔도 백 호 펀드의 소유인 상태입니다. 대호 그룹 인수 때 인수된 계열사거든요."
김대석의 빠른 설명 덕에 호텔 직원들, 그리고 총지배인이 유재원을 향해 깍듯이 대하는 이유가 바 로 밝혀졌다.
IMF의 하이라이트가 대호그룹의 부도였다. 유재원 본인 덕에 순한 맛으로 순화가 된 IMF였지만, 대 호 그룹의 부실은 순한 맛 IMF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도가 난 대호그룹의 건 실한 계열사는 백호 펀드가 인수했 고 부실한 계열사는 폐업하는 것으 로 정리가 되었다.
힐튼 호텔도 부실 심사에서 살아 남았고, 백호 펀드로 인수된 계열사였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유재원이 오 너였고, 오너의 방문에 직원들이 잔뜩 긴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생 많으셨네요. 운영에 어려 운 사안은 없나요?"
김대석의 설명을 다 들은 유재원 은 친근한 표정으로 무척이나 긴장 한 힐튼 호텔의 총지배인에게 호텔 운영에 애로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예, 회장님. 문제 없습니다! 경 기가 나아지면서 호텔을 찾아 주시 는 손님도 많아져 정상으로 회복했습니다. 회장님께서 호텔 재정비에 예산을 승인해 주신 덕에 많은 편 의 시설의 현대화 작업과, 객실의 가전 기기도 ID 그룹의 최신 제품 으로 교체를 완료했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 하는 총지배인이었다.
그렇지만 총지배인의 답변과 달 리 유재원은 기억을 더듬어 봐도 힐튼 호텔 체인점 관련 예산에 사 인을 한 적이 없었다.
ID 그룹 동아시아 최고 담당자는 최강욱 부회장이었고, 여기엔 백호펀드 운영도 포함되어 있으니 해당 예산은 최강욱 부회장이 승인한 것 이 분명하다.
"음, 그건 제가 아니라 최강욱 부회장이 승인한 사업 같네요."
일부러 유재원의 공으로 돌리는 모양인데, 공치사는 사양인 유재원 이었다.
"아, 네네! 그렇습니다."
유재원의 지적에 바로 당황하는 총지배인이었다.
그렇지만, 호텔의 재정이 정상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라는 게 확 실했다. 로비만 봐도 호텔 분위기 가 딱 보이는데, 평일임에도 불구 하고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덕분에 유재원을 향해 스마트폰 을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제법 보 였을 정도다.
스마트폰 대중화의 부작용이겠지 만, 안드로이드 로고가 선명했기에 유재원은 웃으며 포즈를 취해 주었 다. 유재원의 등장에 직원들이 긴 장한 모습을 좀 보였지만, 위축되 었다거나 그늘이 져 있진 않았다.
총지배인에게 호텔 현황에 대해 간단히 보고를 받은 유재원은 곧이 어 약속 장소인 비즈니스 미팅룸으 로 이동했다.
"오! 대한의 자랑 유 회장 오셨 는가!"
총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비즈니 스 아트리움에 도착했을 때, 박상 권 사장님이 제일 먼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고, 대한의 자랑이라니! 그 게 무슨 말?씀이세요."
박상권 사장의 과장된 인사에 유 재원은 손사래를 쳤다.
"리얼카메라 잘 봤네. 최근엔 논 문까지 냈지? 나는 봐도 무슨 말인 지 도통 모르겠더군.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지. 인공지능이란 전 문미답의 영역에 가장 가까이 도달 한 사람은 우리 유 회장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우리 연구원들이 아주 뒤집어졌어. 유 회장 좀 만나게 해 달라고 말이야."
손사래를 치는 유재원을 두고서 박상권 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그룹은 맥주 사업에서 시작 해 성장한 기업으로 버거킹과 같은 해외의 유명 프랜차이즈 유통 그리 고 건설 장비 제조 등의 중공업에 사업 분야가 집중된 기업이었다. IT 쪽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미래를 대비한 연구는 활 발히 하고 있었다.
더욱이 유재원과의 접점으로 인해 박상권 사장의 IT에 관한 관심이 무척이나 높은 상태였기에, 인공지능 연구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여기에 모인 다른 기업들 의 오너들에게 본인과 유재원의 사 이가 이렇게나 각별하다는 걸 어필 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비즈니스 아트리움에 모인 분들은 부산그룹 의 박상권 사장에 비견될 만큼 쟁 쟁한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조카님, 오랜만일세. 일은 잘 보 고왔나?"
박상권에 이어 유재원을 반기는 이는 미래그룹 전재구 회장이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데, 마치 유재원이 청와대를 다녀왔 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미소였다.
노 대통령과 유재원의 독대는 은 밀히 이뤄지긴 했지만, 첩보 작전 수준으로 비밀스럽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독대 자리에 서 이뤄진 대화인데, 그건 영 모르 는듯했다.
"네 능력의 끝은 어디인 거니? 매번 놀라게 하더니, 이제는 너희 처가도 한 건 했더구나."
TG 그룹의 이용권 사장님도 있 었다.
이젠 약간 식상한 느낌도 드는 리얼카메라 이야기를 넘어서 셰브 롱의 시베리아 유전 탐사 소식을 언급하는 이용권 사장님이었다.
말투에는 부럽다는 느낌이 다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TG모바일이라는 내실을 탄탄히 다진 TG 그룹은 이 제 확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 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데, 에너지 분야는 그야말로 먹음직스러운 분야였다.
그만큼 막강한 강자들이 포진한 분야이기도 했는데, 셰브롱의 시베 리아 유전 탐사 성공 소식은 그렇 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유재원의 능력 역시 두말하 면 입이 아플 정도다.
부산그룹이 인공지능을 연구할 정도이니, IT 기업인 TG 그룹에서 는 당연히 부산그룹보다 더 큰 연 구 시설을 두고 투자 중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유재원의 논문을 기본으로 한 인공지능 개발을 타진 중이었는데, 가능성만 보인다면 수 백, 수천억 원을 들이부을 준비를 마쳤다.
과거의 TG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TG모바일이라는 확실한 캐시 카우에 유재원이라는 특별한 존재로 과감한 투자를 결심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재원아."
마지막으로 유재원의 이름을 친근 히 부르는 유경그룹의 류준식 사장 님도 있었다.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 많은 자리인지라 제일 말석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유재원과의 친분만 따지면 박상권 사장 못지않았다.
"네,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아, 수경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하하, 수경이는 잘 지내고 있단 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느라 바 빴는데, 최근엔 철이 좀 들었는지 회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단다."
회사 일이라면 역시 유경그룹의 일인가?
하여튼,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 었다. 그렇게 먼저 와 계신 분들과 두루두루 인사와 안부를 나누었던 유재원은 곧 단상 위로 올라갔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건, 사장 님들께 새로운 사업을 제안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핀테크라는 말 을 들어보신 분 계신가요?"
유재원이 모두를 보며 물었고, 아무도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핀테크, 파이넨셜과 테크놀로지의 합성어로, 금융 서비스를 모바일 환 경에 옮기는 기술을 의미했다.
스마트폰 보급이 겨우 몇 년 전 시작되었으니, 핀테크는 겨우 개념 만 잡히는 중이었다. 오죽하면 유재원의 ID 그룹이 추진 중인 N페 이라는 서비스 역시 시작한 지 1년 이 넘었음에도 지지부진한 상황이 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유 재원이 나서게 됐고, 그 시작점으 로 한국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최첨단 기술에 가장 빠르게 적응 하는 나라가 한국이었기에, 온갖 신제품과 서비스를 테스트하는 데 이만한 곳이 없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는 N페이라는 핀테크 서비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활용되진 못하 고 있죠. 그걸 사장님들과 함께 제 대로 띄워 보려고 합니다. 바로 AI 아이즈와 결합해서 말이죠."
N페이의 구조는 간단했다.
현금 혹은 신용카드로 N페이의 포인트를 구매하고, N페이가 등록 된 온라인, 오프라인 상점에서 결 제하면 끝이다. 결제 과정은 너무 나도 간단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N페이 버튼을 누르면 등록된 스마 트폰으로 문자가 가고, 이를 N페이 앱에서 승인하면 끝이다.
N페이를 받은 판매자의 경우에 는 즉각 환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N포인트를 어느 정도 모았다가 환 전을 신청할 수 있다. N페이 앱 자 체에서 바로 신청할 수 있고, 신청 하는 즉시 지정된 계좌로 현금이 입금된다.
해당 은행이 금융 전산망 점검을 위해 잠시 거래를 정지하는 시간만 아니면, 24시간 상시 환전이 가능 하다.
결정적으로 수수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금융 전산망 이용시 고정된 수수 료가 발생하긴 하는데, 이 정도 비 용은 N페이 서비스 자체적으로 충 분히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N페이가 어느 정도 활성 화되어 N포인트의 유통량이 많아 져야, 계좌에 현금도 많이 쌓이고 여기에서 발생한 이자와 투자 수익 으로 금융 전산망 사용비나 N페이 운영비를 상쇄할 수 있는데, 아직 이자가 비용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 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결제를 할 때 무척이나 번거 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N페이 는 그러한 복잡한 절차를 쉽고 간 단하게 처리해 줍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시범을 보였다.
P마켓에 접속해서 물건을 하나 사고, 직접 결제를 했다. 스마트폰에 서 AI 아이즈를 띄우고 결제 화면 의 QR코드를 찍는 것으로 끝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지 요. 무통장 입금은 일일이 확인해 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카드 결제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나 수 수료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N페이 라면 간단하죠."
사용자로 등록하면 사용자의 고 유키가 담긴 QR코드가 생성되는 데, 이걸 결제 사이트에 올리고 N 페이 판매자 버전과 연동시켜 놓으 면 끝이다.
N 포인트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ID톡 메시지가 전해지면서 입금을 알렸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유 회장은 우리가 하 는 B2C 사업에 N페이 결제를 도입해 달라는 말이군. 확실히 간편해지 긴 하겠어. 그런데 유 회장이 얻는 이득에 비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너무 작은 것 같은데 말이야."
미래그룹의 전재구 회장의 말이 었다.
유재원의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 던 전재구는 N페이의 대략적인 구 조에 대해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 다. N페이라는 시스템이 애초에 엄 청나게 복잡한 기술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만 N포인트의 차감이나, 실제현금이 오가는 보안 부분에 대해선 다른 회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높 은 수준의 보안성을 자랑했다.
더욱이 AI 아이즈와의 결합은 N 페이를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 까지도 확장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 는 막강한 무기였다.
QR코드를 프린터로 출력해 계산 대 옆에 붙여 놓는 것으로 N포인 트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N페 이가 대중화된다면 현금을 들고 다 니는 수고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유재원은 이처럼 오프라인 공략 을 위해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장 님들을 다 불러 모은 것이다.
미래그룹은 금강산 여행부터 백 화점, 면세점 등등의 사업이 있고, TG 모바일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한 국 최대의 이동 통신 사업체로서, 각종 프랜차이즈 가맹점들과 멤버 십 서비스를 맺고 있었다.
부산그룹 역시 주류부터 햄버거, 편의점까지 각종 소비재를 담당하 고 있었고, 유경그룹은 치킨 하나 면 끝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 물이라는 속담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사장님들의 사업체가 구슬 이라면 N페이는 구슬을 보물로 만 들어 줄 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N페이의 시 너지 효과를 설명했다.
이를테면 TG모바일의 경우 가입 자들의 월간 요금에 따라 멤버십 등급을 정하고, 등급에 따라 포인 트를 지급한다. 가맹점에서 물품을 구입할 때 포인트를 통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 포인트가 N포인트로 전환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TG모바일의 멤버십 가맹점은 다 른 통신사들보다 훨씬 큰 영역을 자랑한다. 일찌감치 이동 통신 서 비스를 시작한 덕에 선점할 수 있 었던 것이다.
하지만 온, 오프라인 전체 시장 을 감안하면 멤버십 포인트를 사용 할 수 있는 영역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멤버십 포인트가 N포인트로 전 환이 되면 그 영역이 몇백 배로 확대된다.
유경그룹도 마찬가지다.
유경치킨은 2002 월드컵을 거치 면서 국민 치킨이 되었다. 전국에 가맹점만 1천 곳이 넘으니 치킨은 유경치킨이란 말이 더는 광고의 문 구가 아닌 팩트가 되었다.
유경치킨을 비롯한 유경그룹의 서비스도 N페이가 적용된다면 접 근성의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