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77화 (677/1,007)

32권 11화

"예? 재미있는 말이라니요?"

"지금의 시스템에 이미지 해석 모듈을 올리면 더 빨라질 거라고 정말 확신하세요?"

"아, 아!"

유재원의 물음에 존 맥마흔은 흥 분했던 목소리가 바로 식었다.

기술 관료답게 바로 원인을 파악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카메라에서 유재원은 기계 학습을 위해서 초당 1테라플롭스의 연산력을 발휘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즘 시스템의 연산력은 극비 였지만, 그보다 더 강력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문제없 을 줄 알았는데, 턱도 없는 모양이 다.

하지만 이러한 짐작도 틀렸다.

"적절한 대가만 제시하신다면 프 리즘 시스템에도 이미지 해석 모듈 을 올려드릴 수는 있어요. 프리즘 시스템이라면 확장에 여유가 있으 니 이미지 해석 모듈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연산력도 금방 충당할수 있겠죠. 문제는 이미지 해석 모 듈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기계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골드의 이미지 해석 모듈은 대략 4년 넘게 학습해서 이 뤄낸 성능이거든요."

시간!

초당 1테라플롭스의 연산력으로 무려 4년이 넘게 학습했다고 한다.

그 시간을 단번에 따라잡기 위해 서는 몇백 배 더 강력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현존 최강 슈퍼컴퓨터는 일본의 어스 시뮬레이터가 35테라플롭스인 데, 비공식으로는 NSA가 보유한 롱혼으로 대략 105테라플롭스의 성 능이었다.

NSA의 롱혼을 빼 와서 이미지 해석 모듈을 구동한다면 학습 시간 을 크게 줄일 수야 있겠지만, 정부 부처가 다 그렇듯 예산이 문제였다.

"게다가 연산력이 넘친다고 분석 속도가 빨라지는 건 아니에요. 학 습 데이터가 잘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거든요. 편향적인 데이터가 쌓이지는 않는지 관리도 잘 해 줘야 해요."

기계 학습이 만능의 알고리즘은 아니다.

관리를 꾸준히 해 줘야 하는 건 여타의 컴퓨터 시스템과 동일했다. 완전히 손을 놓아 버리면 비현실적 인 꼼수만 찾아서, 쓸모없는 결과 물만 토해낼 수도 있었다.

"CIA와의 협조는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 니다."

미국에 많은 기반을 두고 있는 ID 그룹이었기에, 미국이 잘 나갈 수록 얻을 수 있는 이익의 크기도 커진다.

그렇기에 CIA와의 협력도 거리 낌이 없는 유재원이었다. 미국 또 한, 세계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최고의 기술력을 쉽게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재원을 국보처럼 대우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번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 할 수 있겠네요. 골드와 독립된 이 미지 해석 모듈을 구동하고 싶으시다면, 해 드리죠. 대신 리얼카메라 에서 봤던 수준의 퍼포먼스를 원하 신다면 엄청나게 강력한 컴퓨팅 파 워를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아마 롱혼으로도 부족할 거예요."

" 예."

NSA 의 슈퍼컴퓨터 롱혼으로도 부족할 거라는 말에 기가 팍 죽는 존 맥마흔이었다.

동시에 그의 뛰어난 머리는 곧 이어질 두 번째 제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이미지 해석에 대해서 우리 골드에게 외주를 주는 것 이지요."

"역시 외주입니까?"

"네, 대신 저와 ID 그룹이 보증 하는 특별한 보안 소켓을 별도로 내어 드릴 테니, 속도나 해킹 걱정 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보안 소켓이란 데이터 통신 보안 을 제공하는 암호 프로토콜을 말한 다. 기존의 인터넷 규격을 넘어선 독자적인 암호 체계를 사용할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보안성을 자랑 한다.

프리즘 시스템의 경우 외부 요원 들과의 접속에 1024비트 AES 암호 체계를 사용하는데, 이는 NSA의 롱혼으로도 해독에 수백만 년이 걸 릴 만큼 고난도의 암호였다.

"대신 요금은 골드에 전송되는 트래픽에 따라 부과하겠습니다. 1 기가바이트에 10만 달러 정도면 적 당할 거 같은데요."

1기가바이트면 1메가짜리 이미지 로 1천 장이다.

프리즘이 다루는 이미지 파일의 크기는 보통 수백 킬로바이트였으니, 2, 3천 장에 10만 달러라는 이 야기다. 그렇기에 약간 비싼 값은 있다.

하지만 해독이 필요한 이미지를 사람을 동원해 일일이 처리하는 것 보다 이미지 해석 모듈에 맡겨 자 동화하는 게 프리즘의 강점을 살리 는 길이었다.

사람 손이 필요해지면 병목 현상 이 아니라 아예 분석이 멈춰질 정 도였으니 말이다.

"선택은 부국장님 몫입니다."

유재원의 말에 존 맥마흔은 잠깐목을 축였다.

안타깝게도 시간을 벌기 위해 윗 선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CIA의 부국장이자, 과학 기술 최고 책임자이기에 본인 이 곧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스탠드 얼론 형태의 이미 지 해석 모듈을 도입할지, 아니면 외주를 줄지 선택할 권리도 그에게 있었다.

"홈,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겠 습니까?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해 보도록 하죠."

역시 존 맥마흔은 특별한 사람이 었다.

ID 그룹에 예속되지 않는 스탠드 얼론 형태의 이미지 해석 모듈을 도입함과 동시에, 기계 학습이 궤 도에 오를 때까지, 골드에 외주를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예산이 감당되겠어요?"

"되도록 해야죠!"

존 맥마흔이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하천 에 콘크리트 치는 것보다는 프리즘을 강화하는 게 국익에 훨씬 이익 일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중국으로 부터 상환받기 시작한 청나라 채권 으로 들어오는 예산은 한 해에 수 백억 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막대한 세수가 생겨남과 동시에 사용처도 마구 생겨나고 있 었다.

걸신들린 아귀처럼 이익 단체는 물론이고 지역구 민원을 받는 국회 의원들까지 난리였다. 낡은 도로를 새 포장하는 건 물론이고, 하천 재정비까지 이어졌다. 미국 전체가 재개발 열풍에 휩싸인 것이다.

존 맥마흔은 그 아귀다툼을 멀리 서 혀를 차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재원이 인공지능 골드 를 발표하면서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다.

아귀다툼에 끼어들어 기필코 프 리즘 시스템의 강화 예산을 따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쳤다.

"그럴까요?"

반면 유재원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ID 그룹의 덩치가 워낙 커진 덕 에 프리즘에 이미지 해석 모듈을 납품하는 정도의 사업은 이제 콩알 만 하게 보이는 까닭이다.

더욱이 존 맥마흔의 생각에 동의 도 잘 되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치는 게 미국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채권 상 환 대금으로 하는 SOC 사업 중 하 나가 뉴올리언스 하구의 제방 보강 사업이었으니 말이다.

내년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치 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제방이 붕 괴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일으킨다.

하구 제방 붕괴 위험성은 늘 지 적 받았던 것이었는데, 뉴올리언스 주 정부는 예산을 핑계로 보수를 미뤘다.

그러다가 평균을 아득히 넘어서 는 슈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제방 이 무너졌고, 어마어마한 피해로 이어졌다.

그런 뉴올리언스에 중국에서 넘 어온 돈이 퍼부어졌고, 제방이 보강되기 시작한 것이다.

앨 고어로서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선심을 쓰는 것이고, 존 맥마 흔 부국장처럼 콘크리트질이라고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내후년을 생각하면 제일 잘 쓴 예산인데 말이다. 물론 제방을 보 수했다고 슈퍼 허리케인을 완벽히 막아내진 못하겠지만, 제방이 터져 서 1천 명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 프리즘과 골드 사 이에 전용선과 보안 소켓을 설치해야겠군요."

하여튼 욕심도 많은 존 맥마흔 부국장이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선택했으니, 유재원에게는 나쁜 일 이 아니다.

스탠드 얼론 시스템 설치로 큰돈 도 벌고, 인공지능 골드에 프리즘 이 연결되면서 보안 자료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유재원은 돈보다 프리즘 시 스템이 골드에게 보낼 자료가 더 궁금했다. 미국의 최전방에서 활약 하는 프리즘이 분석하는 자료라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들어 있을 것 아니겠는가.

이를 통해서 유재원이 알고 있던 회귀 전의 흐름과 회귀 후 본인이 일으킨 변화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현재를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을 테니, 뭐든 남는 장사였다.

"예! 부탁드립니다."

존 맥마흔 부국장은 그런 유재원 의 속마음도 모르고 시원하게 답했 다.

그렇지만 프리즘 시스템에도 골 드와의 연동은 나쁜 일이 아니다.

프리즘 시스템이 연산력을 대폭 확충해 독자적인 이미지 해석 기계 학습을 수행하면 당장 골드의 수준 을 따라잡을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NSA의 롱혼 슈퍼컴퓨터에 비견 되는 연산력을 가지고 기계 학습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 동안 골드 역시 멈춰 서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계 학습 알고리즘은 향상 가능했다.

유재원은 그저 현재의 시스템에 맞게 설정했을 뿐이지, 보다 나은 시스템이나 텐서 코어처럼 기계 학 습 전용 칩이 완성이 되면 그에 맞 춰 커스텀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인텔이나 AMD의 범용 CPU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것이 전용 칩이 었다.

같은 반도체 공장에서 만들어졌 다 하더라도 최대 100배의 효율 차 이가 날 정도였으니, 골드의 성능 을 후발 주자들이 따라오는 건 영 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존 맥마흔 부국장과 모든 협상을 끝내고, 보안 회선과 보안 소켓에 대한 세팅도 그날 바로 마무리해 줬다.

굳은 악수로 비즈니스를 즐겁게 마무리하고 돌아온 유재원을 기다 리고 있는 건 인공지능 윤리 문제 였다.

"회장님, 보셔야 할 게 있습니 다."

"응? 이게 뭐죠?"

김대석 비서실장이 내민 안드로 이드 태블릿에는 2CH.com의 인공 지능 쓰레드에 올라온 매우 자극적 인 글이 띄워져 있었다.

-F2는 터미네이터일까? 주인을 죽이는 킬링 머신일까?

논란의 시작은 하버드 대학교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 강의 중에 튀어나온 이야기였다.

거기서 시작된 논란은 사람들을 둘로 나누었다.

다수의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쪽 과 운전자의 목숨을 보호해야 한다 는 쪽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ID 하이테크에 도 문의가 쏟아졌고, 인공지능을 만든 유재원이 직접 나서서 답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 다.

반응만 보면 마치 유재원이 인격 이 있는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리얼카메라에서 분명히 고도의 통계학이라고 말했고, 자막으로도 크게 나왔는데 그걸 생각하는 사람 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김대석 비서실장이 보여준 태블 릿에는 ID 하이테크로 오는 문의 전화의 양이나 문의 내용 등을 정 리한 자료도 있었다.

역시나 상당한 숫자였다.

"어떻게 할까요?"

ID 그룹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고객과의 소통이었다.

버그에 대한 피드백도 빨랐고,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높이는 패치도 꾸준히 내고 있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궁금증이 폭증 하고 있는 이 시점에 그냥 묻어 버 린다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더불어 유재원의 틈 만 노리던 경쟁사들에겐 기회가 될 테고 말이다.

유재원이 생각을 거의 정리할 때 쯤, 주머니 속의 안드로이드 스마 트폰에 문자 알람이 왔다.

누가 문자를 보냈나 스마트폰을 꺼내 본 유재원의 얼굴에 약간의 놀라움이 스쳤다.

"어? 교수님?"

전기자동차라면 끔찍해하는 프레 더릭도 아니었고, 논란의 중심에 선 라이트닝 볼트사의 볼트 사장도 아니었다.

바로, 모교인 스탠퍼드대학교로 부터의 연락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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