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10화
스티브 잡스는 F2라는 자율 주행 자동차보다 AI 아이즈라는 앱에 더 충격을 받았다. 딱 보자마자 응용 방법이 엄청났던 탓이다.
더욱이 유재원은 인공지능 비서 를 언급하면서 단순한 백과사전이 나 OCR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님 을 확실히 어필했다.
"여기 인공지능 구축에 대한 견 적서입니다."
애플사의 최고 기술 책임자인 제 프 윌리엄스가 턱에 손을 괴고 고 심 중이었던 스티브 잡스에게 작은 서류를 제출했다.
스티브 잡스는 말없이 서류를 받 아 읽었다.
기계 학습이라는 생소한 개념부 터 시작해서, 기계 학습 인공지능 을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짧게 정리한 문서였다.
"허!"
그러다가 한 대목에 시선이 멈춘 스티브 잡스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2억 달러라고?"
2억 달러!
기계 학습 인공지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의미했다.
다행히도 애플사도 2천만 조금 못 되는 아이폰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고, 자체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빅데이터를 어느 정도 보유하 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분석할 대형 서버 시스템은 없다.
제프 윌리엄스는 일단 초당 1테 라플롭스 정도의 연산력이 나오는 시스템으로 기계 학습을 시작하는 계획을 세웠다.
"시작 비용만 2억 달러입니다."
제프 윌리엄스는 혹시나 스티브 잡스가 전체 예산으로 오해할까 봐 부연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렇지만 제프 윌리엄스의 말에 는 확신이 담겨 있지 않았다. 기계 학습이란 분야는 최고 기술 책임자 인 그에게도 완전히 생소한 분야였 던 탓이다.
리얼카메라 유재원 편이 종료되 고 나서 부랴부랴 전문가를 찾아가 서 상담도 해 보고, 애플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ID 그룹의 정보를 알아보도록 부탁하기 도 하면서 겨우 실마리를 잡았다.
즉, 2억 달러는 기계 학습 시스 템의 물리적 시스템에 대한 비용이 고, 인공지능의 수준을 경쟁사에 준할 만큼 올리는 데엔 얼마나 들 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통계학이라는 유재원의 발언이 기계 학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쉽게 설명드리면, 대단히 거대 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통계학입 니다. AI 아이즈라는 앱을 예로 들자면, 아마 ID 그룹의 데이터 센터 에는 엄청나게 방대한 이미지 자료 가 있을 겁니다. 그 이미지를 일일 이 분석해서 정보로 가공했고, 사 용자가 AI 아이즈에 비추는 이미지 와 최대한 유사한 데이터를 찾아서 보여주는 방식이죠. 이러한 작업은 이제까지 사람이 했는데, ID 그룹 은 컴퓨터가 스스로 하도록 방법을 마련한 모양입니다."
제프 윌리엄스는 기계 학습을 주 제로 공부할수록 유재원이 무서워 졌다.
"AI 아이즈보다 더 무서운 건, 92 년부터 했다는 언어 학습입니다."
1992년!
그때 애플사는 인공지능은커녕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던 시 점이었다.
그나마 PDA니 태블릿 컴퓨터니 하는 걸 만든다고 저전력 시스템에 대해 연구했고, ARM에 투자를 해 놓은 덕에 지금의 아이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때부터 인공지 능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언어를 분석해 컴퓨터 시스템에 적용한다면, 이는 곧 사람과 시스 템이 자연어를 통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를테면 문자를 보낼 때 우리는 일일이 터 치스크린을 조작해야 하지만, 저쪽 은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을 테니 까요."
"내가 궁금한 건 8월 이전에 우 리도 인공지능 관련 앱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야."
지금이 3월 초이니 4개월하고도 며칠 남은 시점에 아이폰에 탑재할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라는 주문이었 다.
"꼭 대답이 필요하신가요?"
스티브 잡스에게 시니컬한 물음 을 되갚아 주는 제프 윌리엄스였다.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오랫동 안 애플사에 몸담고 있었던 제프였 기에, 가능한 답변이기도 했다.
그런 제프 윌리엄스에게 스티브 잡스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겉으로는 비슷하게 만들 수야 있겠죠. 빅데이터는 우리도 조금손대고 있던 분야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가공해 지능을 갖추는 건 어려운 건 둘째치고 시 간이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프 윌리엄스조차도 기계 학습 이론에 대해 스스로 완벽히 이해했 다고 자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견적을 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4개월 만에 리얼카메라에서 유재 원이 보여준 인공지능과 형태만 비 슷한 것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결과물은 책임질 수 없
다. 형편없는 품질일 게 뻔했다.
"그런 걸 넣었다간 망신만 당할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8월 IDDC 에서 발표될 안드로이드폰에 AI 아 이즈면 몰라도 인공지능 비서가 탑 재될지 확신할 수도 없죠."
"확신할 수 있겠나?"
"확신은 무슨, 분석일 따름이죠. 인공지능 비서의 핵심은 자연어 처 리입니다. 아무리 유재원이라도 그 걸 그렇게 빨리 정복하진 못할 겁 니다."
틱틱거리는 제프 윌리엄스의 반응에 스티브 잡스는 처음으로 미소 를 지었다.
제프 윌리엄스의 의견에 스티브 잡스도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리얼 카메라라는 프로그램이 주는 충격 이 너무 컸다.
그러다가 제프의 설명에 인공지 능 비서에 대한 맛보기는 아예 존 재하지도 않았다는 걸 상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저쪽이 먼저 나섬으로써 맞닥뜨리게 될 논란도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문제부터, 인공지능이 사람의 자리를 대신했 을 때 오게 될 윤리적 문제 등등. 제프 윌리엄스는 인공지능은 이제 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좋아. 아직 늦지 않았어. 시리 프로젝트는 바로 진행하지."
애플사 운영에 대한 전권을 가진 스티브 잡스는 2억 달러의 지출을 제프 윌리엄스와의 대화만으로 바 로 결정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일찌감치 결 정을 했던 사안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지만, 인공지능 분야에서 밀리 면 끝이라는 위기감은 리얼카메라 를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었다.
비슷한 시각.
하버드 대학교의 한 강당에서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 인가'라는 강의가 진행 중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분히 철학적인 느 낌인데,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는 여러 가지 예를 가지고 이론에 맞춰 하나씩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 했다.
딱딱한 철학을 무척이나 재미있 게 풀어나가는 것으로 유명했기에, 소규모로 시작했던 수업은 해가 지 날수록 정원이 늘어났고, 2003년 현재 시점에서는 대강당 하나를 통 째로 써서 수백 명의 수강생이 동 시에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 중에 유명한 예로 철도 기관사 딜 레마가 있었다. 타이밍도 공교롭게 오늘 다룰 이야기이기도 했다.
"철도 기관사 딜레마에 대해 너 무도 많이 다룬 탓에 살짝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문 제를 조금 바꿔 보겠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말에 장내에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의 학구열 은 세계 톱 클래스였다. 교양 수업 이라도 미리 공부해 오는 게 자연 스러운 일이었을 만큼, 수업에 열 심이었다. 더구나 '정의란 무엇인 가'라는 수업도 몇 년 동안 계속반복해서 진행한 수업이기에 참고 할 레퍼런스도 많았다.
그런데 기출 변형이라니!
"여기 자율 주행 자동차가 있습 니다. 안타깝게도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멈출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브 레이크가 고장난 자율 주행 자동차 앞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다섯 명의 사람이 있군요. 그럼, 여기서 문제. 인공지능은 횡단보도 위의 다섯 명 을 그대로 치고 전진해야 할까요? 아니면 핸들을 틀어 맞은편 담벼락에 충돌해야 할까요?"
다행히도 문제의 틀은 철도 기관 사 딜레마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단지 기관사가 자율 주행 자동차 F2로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리얼카메라라는 예능 다큐멘터리가 상당히 화제였기에, 학생들의 집중도는 대번에 크게 올 랐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말이 끝나자 대강당에 자리한 학생들은 여기저 기서 손을 들었고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참관하고 있던 기자를 통해 기사화가 되었다.
-철도 기관사의 딜레마, F2의 설 정값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와 학생들에게 는 그저 평소에 하던 철학적 사고 실험과 토론이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번에 있었 던 토론이 전과 다른 건 자동차 업 계는 물론이고 IT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였 기 때문이다.
리얼카메라의 반향이 컸던 만큼, 사람들은 과연 F2는 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너무도 궁금해했 다.
당연하게도 ID 그룹과 유재원을 향해 문의가 쏟아졌다.
자율 주행 관련법을 준비하고 있 던 미국 민주당과 떨떠름해하고 있 는 공화당 인사들, 심지어 학계와 언론계까지도 유재원의 입을 주목 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시작된 인공 지능에 대한 철학적 윤리 논란이 전 세계로 퍼지는 데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시작으로 여파가 막 들 불처럼 번지기 시작하던 그때, 유 재원은 몇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바로 이게 우리가 원하던 것이 었습니다! 이런 걸 만들었다고 언 질만 주셨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 드렸을 텐데요!"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은 CIA의 부국장 존 맥마흔이 었다. 기술 관료로 시작해서 CIA의 과학 기술 본부장을 역임했고, 프 리즘 프로젝트의 성공을 공으로 부 국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었다.
당연히 인공지능 골드의 이미지 분석 모듈이 보여준 퍼포먼스의 본 질에 대해 가장 많이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리얼카메라 2편에서 AI 아이즈의 시범을 보자마자 당장 출장 가방을 들고 샌프란시스코의 유재원 저택 을 방문했다.
물론 유재원의 저택은 그냥 찾아 온다고 모두 다 유재원을 볼 수 있 는 건 아니었지만, CIA의 부국장 정도가 되면 하루 전 연락으로 미 팅 약속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 말씀은 이미지 해석 모듈을 프리즘에 도입하고 싶다는 말씀처 럼 들리는군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존 맥마흔은 고 개를 크게 끄덕였다.
프리즘 시스템을 만들어 준 사람 이 유재원이었고, 이후 가동되기 시작한 프리즘은 잘 작동하면서 CIA의 능력을 몇 배로 강화시켜 주었다.
온라인에서 무적과도 같은 능력 을 발휘하니, 온라인 담당들은 틈 만 나면 프리즘을 찾았다. 덕분에 프리즘의 가동률은 늘 50% 이상이 었고, 고난도 암호를 맞닥뜨리게 되면 심심치 않게 100%를 찍었다.
암호 해석은 NSA의 주관이었지 만, 911 테러가 있은 다음에도 미국은 정보 조직 간의 통합은 요원 한 상태였다.
덕분에 NSA의 협조를 구하는 대 신 프리즘이 알아서 풀기를 기다리 는 걸 선호하는 요원들이 많았다.
"프리즘 시스템의 강점은 정보 분석 능력입니다. 그런데 정보는 텍스트뿐만이 아니라 이미지 파일 의 형태로도 갖춰지고 있습니다. 이미지 파일 형태의 분석에서는 애 를 먹고 있는데, 그때엔 인력을 투 입하며 풀어내는 중입니다. 그때마 다 엄청난 병목 현상이 나오고 있죠. 그런데 유 회장님이 보여주신 이미지 해석 모듈이라면 이것까지 도 자동화해서 프리즘의 빠른 처리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존 맥마흔이었 다.
문장 하나하나가 특급 기밀에 해 당되는 내용이었지만, 유재원의 서 재는 완벽한 보안이 이뤄지는 공간 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하,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반면 유재원은 존 맥마흔의 열정 넘치는 발언에 그저 웃기만 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