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75화 (675/1,007)

32권 9화

"아! 그런데 인공지능의 이름을 안 물어봤군요. 이름이 뭔가요?"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대답했 던 유재원은 이름을 물어보는 임명 한 PD의 질문에 처음으로 입이 턱 막혔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무슨무슨 모듈 식으로 불렀지, 인공지능 시 스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은 없었다.

"공통된 이름을 사용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우리 제품을 선택해 주신 구매자님께 양보하겠습니다."

나름 빠르게 머릴 굴려 나온 결론이 었다.

회귀 전, 인공지능이 막 보급되 던 때에는 시리나 빅스비, 지니 등 등의 일관된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서비스로 시작했었다.

문제는 인공지능 비서들이 공통 된 이름을 가진 탓에, 이름을 크게 부르면 근처의 다른 인공지능 비서 들도 답했다는 것이다.

이후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발전 된 다음에는 인공지능 비서에 사용 자마다 다른 이름을 지어 줄 수 있 게 되었다.

유재원 역시 회사에서 정해 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지어 준 인공지능 비서를 사용했었다.

"대신 메인 서버에서 구동되는 인공지능은 골드라고 부르겠습니 다."

골드.

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 지만 유재원이 금이 좋아서 골드라 는 이름을 선택한 건 아니다.

21세기 중반, 최초로 기술 특이 점을 넘어선 인공지능의 이름이 바 로 골든실버였다.

인공지능의 핵심인 프로세서의 베이스 금속은 은색인데 빛을 비추 면 금빛이 반사된다고 해서 골든실 버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유재원은 본인이 만들고 있는 인 공지능이 위대한 골든실버의 뒤를 따르길 바라는 의미에서 골드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었다.

"골드? 좋네요! 우리 골드가 인 류에 찬란한 황금기를 가지고 올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우리 골드'라고 하는 임명한 PD였다.

그렇다고 틀린 소리도 아닌 게 임명한 PD가 속한 ID 미디어 그룹 도 ID 그룹의 당당한 일원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한 식구였다.

그렇게 유재원의 일상을 담은 리 얼카메라 2편이 끝났을 때, 후폭풍 은 무지막지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애플 아이폰 3G 발표!

-이라크, 내전 발발!

유재원의 리얼카메라가 매주 한 편씩, 2주간 방영될 동안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이었다.

한국에서는 대선이 끝났고, 민주 당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대통령 선거의 공식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크나큰 사건들이 연달 아 터졌다.

그중에서도 단일화로 인한 혼란은 그렇지 않아도 예측하기 힘든 선거판에 크나큰 변수로 작용했다.

시작은 역시나 이인제였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다 흙탕물로 만드는 것처럼, 독자 창 당한 이인제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 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파격적인 것은 역시나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제 안이었다.

이인제 후보 본인도 이대로 가다 간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 고 있었기에, 변수를 만들어야 했 다.

특히 굴러들어 온 돌이라 여기는 전재준이 대통령이 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전재준이 대통령이 되지 않게 하 면서, 본인의 몸값을 최대로 올릴 수 있는 건 바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였다.

노무현 후보는 이에 대해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화색을 보이는 건 그가 속한 정당인 민주 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통일국민당과의 연정으로 민주당의 존재감이 찬밥이었다.

특히 가장 쓰린 건 지난 총선이 었다. 한 자리도 아까운 국회 의석 을 나눠야 했던 탓이다.

서울의 경우 민주당 세력도 강한 곳이었는데, 연정 때문에 출마할 수 없었던 지역구도 제법 많았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은 당선 이후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노무현 후보에겐 부담이었고, 전재준 후보 에겐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전재준의 경우 통일국민당에서 최 종 경선까지 치르면서 패배한 사람 이, 탈당 후 다시 대선에 출마하는 꼴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재원이 이인제의 활약에 웃음 이 터진 지점도 여기였다. 사실 회 귀 전에 경선 불복 출마 금지법이 생긴 이유가 이인제였기 때문이다. 97년 대선에서 경선 결과에 불복하 고 독자 출마를 했던 터라, 이후 금지법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97년 대선 에서 이인제는 전명헌에 밀려 활약 할 수 없었고, 지금에서야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는 것이다.

역시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경선불복 출마 금지법을 만든다는 이야 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 사이 로 단일화가 되는 것 같았는데, 전 재준도 단일화 제안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노무현 후보를 향해서 말이 다.

굴욕적인 일이었다. 이인제 후보 가 상식 밖의 행동으로 너무도 날 뛰는 바람에 전재준의 지지율도 하 락하면서 본인의 힘으로 당선이 위 태로워졌던 탓이다.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보다는 전 재준이었다. 이인제의 국민통일당과 합쳐 봐야 국회 과반 미만이지만, 통일국민당과 합치면 안정적인 과 반 확보이니 본인의 정치 철학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재준은 유재원이 인정 한 트롤러였다.

역시나 특출한 트롤러의 능력은 어디 가지 않았고, 선거일 하루 전 전재준은 단일화 파기를 선언했다.

원래 전재준이 그리고 있던 그림 이었다.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노무현 후 보 측에 돌림으로써 실망감을 느낀 유권자들을 양산하고, 본인은 동정 표를 얻어서 1위에 오른다는 그림 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전재준의 움 직임은 회귀 전 2002 대선 때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전재준의 구상은 실패했 다.

유권자들은 선거의 판세를 냉정 하게 보고 있었고, 인터넷 커뮤니 티에서는 날카로운 식견을 가진 네티즌과 정치 전문가들이 전재준과 이인제의 속셈을 명확히 읽어냈다.

더욱이 노무현 후보의 경우 강력 한 팬덤이 있었기에, 위기 상황에 더욱 밀집하는 효과를 나았다.

그 결과 2003 대선의 승자는 노 무현 후보였다.

이처럼 한국은 극한의 다이내믹 함을 보여준 대선의 일로 떠들썩했 고, 미국에서는 맥월드를 통해 애 플이 차기 스마트폰인 아이폰 3G 를 발표했다.

안드로이드 S2보다 확실히 한 발짝 앞선 성능을 자랑했고, 디자인 도 한층 애플다워졌다.

특히 3G 모뎀의 탑재로 데이터 전송 속도에서도 Mbps단위의 속도 가 나왔다.

소프트웨어인 iOS에서도 혁신적 인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인터페이 스의 통일성이나 SNS와의 연동, 퍼 포먼스의 향상 등등.

애플이 그동안 열심히 칼을 갈고 있었다는 게 보이는 신제품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아이폰 3G 가 출시한 바로 다음 날, 리얼카메라 2편이 방영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인공지능 골드 에 쏠렸다. 하지만 애플은 인공지 능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기술이었다.

인공지능이 전혀 없는 아이폰 3G는 순식간에 찬밥으로 밀려났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과 이슬람 원리주의 반 군 사이에 내전이 터졌지만, 그 소 식이 밀려날 만큼 인공지능 골드에 대한 관심은 대폭발 중이었다.

동시에 논란도 일어났다.

인공지능이라면 필연적으로 따르 는 윤리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리얼카메라 방송과 함께 가장 먼 저 반응을 보인 곳은 주식 시장이 었다.

원래 주식 시장은 시장 선행 지 표라고 해서 현재의 경제 상황보다 6개월 혹은 9개월쯤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6개월 후의 경제 상황 을 예측해서 주가가 미리 오르거나 내린다는 이야기였다.

주가가 움직일 때마다 손실 혹은 이익이 크게 발생하는 만큼, 주식 시장은 그야말로 치열하게 미래를 예측하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리얼카메라는 ID 그룹의 미래를 보여주는 최고의 홍 보물이었다.

프로그램 방송 중에 튀어나온 신 제품이나 아이디어들 그리고 유재원의 개발 능력과 비전은 ID 그룹 이 다른 그룹과 확실히 차별되는 요소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되었을 때도 움직였던 주식 시장은 두 번 째 에피소드에서 폭발했다.

가장 큰 주가 상승을 보인 것은 역시 ID 테크놀로지였다.

ID 테크놀로지는 ID 그룹의 대 들보와 같은 기업이었지만, 상장은 늦었다.

대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 아서 상장을 할 때부터 주가 총액이 2천억 달러가 넘었다.

ID 테크놀로지가 상장할 때 미국 주식 시장의 유동성이 순간 말라 버려 다른 회사들의 주식들이 하락 해 버릴 만큼 매머드급 상장이었다.

그런 ID 테크놀로지의 주가가 리 얼카메라 2편이 방영된 다음 날 10%가 넘게 상승했다. 한국 돈으 로 20조 원이 넘는 금액이 프로그 램 한 방에 불어난 것이다.

비단 ID 테크놀로지뿐만이 아니 라 안드로이드사의 주가도 올랐다. 인공지능 골드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도 적용이 될 거라는 유재원 의 발언 때문이었다.

심지어 인공지능과 딱히 연관이 없는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주가도 올랐을 정도이니 리얼카메라가 선 사한 충격이 대단했다.

반면 프로그램 때문에 피를 본 회사들도 있었다.

리얼카메라 2편이 방송되기 전날 급소에 직격탄을 맞은 건 애플사였 다.

아이폰 3G라는 신제품을 당차게 발표했던 애플사였다.

애플의 최대 장점인 하드웨어 깎 는 장인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그동안 지적 받았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 모델이었다.

카메라 모듈부터 메인 메모리 용 량, 스토리지 전송 속도, LCD 모 듈의 해상도 향상 등등, 대폭적인 업그레이드를 이뤄냈다.

반면 제품의 가격 상승은 최대한 억제해서, 애플답지 않은 가격 정 책을 선보였다.

아이폰 3G의 최상급 모델 가격 이 799달러였으니, 안드로이드 S2보다 100달러는 더 저렴했다. 안드 로이드 스마트폰과는 가격 경쟁이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선택한 가격이었다.

덕분에 출시 당일에는 엄청난 반 응이 었다.

그런데 하루가 딱 지나자 바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인공지능 비서라니!

인공지능 렌즈라니!

아직 인공지능 관련한 응용 애플 리케이션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리얼카메라로 인공지능의 응용법을 확인한 사용자들은 그저 열광했다.

F2라는 전기자동차로 보여준 완 벽한 자율 주행을 이뤄낸 인공지능 도 있는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용 앱의 성능을 의심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올해 8월 열릴 IDDC 2003 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스마트폰 이 발표될 게 분명했기에, 신형 아 이폰을 사느니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 신제품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은 소비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식 시장은 이러한 소비자의 움 직임까지 읽어 주가에 반영했고, 그 결과가 ID 테크놀로지의 폭등, 애플사의 하락이었다.

애플사의 분위기는 초상집이었다.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한마음으로 신제 품을 준비했고 계획했던 스펙과 완 성도를 달성하면서 성공을 확신했다.

그런데 예능 다큐멘터리 프로그 램 한 방에 자신들의 신제품이 좌 초될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한 명 도 없었다.

특히 스티브 잡스의 충격은 대단 했다.

스마트폰에 대한 시장 선도는 안 드로이드에 한 발짝 뒤처져 있었지 만, 언제든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 감이 있었다.

스마트폰에 대한 상상은 스티브 잡스도 아주 오래전부터 해 왔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조단 아이브라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한 디 자이너와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리얼카메라 2편에서 나온 인공지 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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