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8화
석유 업계의 후원금은 보통 공화 당 후보에게 집중되는데, 셰브롱의 경우에는 앨 고어 쪽이 더 많았다. 석유 업계 중 재선을 준비 중인 앨 고어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후원금 을 낸 곳도 셰브롱이었다.
이러한 결정에는 유재원과 티파 니의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객관적 으로 봐도 앨 고어의 재선은 무난 했다.
이라크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었지만, 극동 아시아의 평화는 이룩해냈다. 더욱이 중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해서 청나라 채권 상 환이라는 막대한 배상금까지 얻어 냈다.
매년 수백억 달러의 수익이 가만 히 앉아서 생겨났고, 반대로 중국 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돈이 쌓이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새로운 경제 엔진인 IT도 꾸준히 성장하면서, 미국은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호황기가 쭉 이어지는 중이었다.
더욱이 앨 고어나 백악관 수뇌부 는 꿈에서도 모르겠지만, 이라크전쟁을 벌이지 않은 덕에 절약된 자금도 엄청났다.
그에 따라 소득 지표부터 고용 지표, 산업 선행 지수까지 거의 모 든 경제적 지표들이 기록적인 상승 률을 찍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앨 고어의 지지율도 고공 행진 중이다.
무려 61%라는 기록적인 수치였 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4년 차에 이 정도 지지율을 보인 대통령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내년에 있 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무난하게 재선을 예측했다.
반면 공화당은 죽을 맛이었다. 앨 고어와 자웅을 겨룰 만한 후보 를 선출해야 어느 정도 싸움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앨 고어의 지지 율이 너무도 막강한 탓에 도전해 보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없었던 탓 이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자율 주행 전기자동차 말고도 대비해야 할 게 많습니다."
"그래? 그게 뭔가?"
"인공지능입니다."
" 인공지능?"
앨 고어는 순간 입이 턱 막혔다.
20세기 사람인 앨 고어에게는 인 공지능이라 하면 너무도 먼 이야기 였다. SF영화에서나 나올 물건인데, 이걸 대비해야 한다니?
"리얼카메라를 계속 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그럼 계속 재생해 보게."
보좌관의 말에 앨 고어는 화면에 집중했다.
리얼카메라에서 F2의 분량은 초반 10분 정도까지였다. F2는 하루 종일 특집으로 다뤄도 될 만큼 놀 라운 자동차였지만, 그에 비견되는 아이템이 ID 하이테크 연구소에 많 았다.
"자, 이게 뭔지는 다들 아시겠 죠?"
유재원은 아쉬움 가득한 임명한 PD와 촬영팀을 데리고 자리를 옮긴 다음,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안드로이드 S2로군요. 저도 쓰 고 있습니다!"
작년에 출시해서 오늘 시점까지 3천만 대 이상을 팔아 치운, 세계 에서 제일 많이 팔린 스마트폰을 유재원이 들고 있었다.
"네, 겉은 안드로이드 S2의 모습 이죠. 하지만 설치되어 있는 앱들 은 많이 다릅니다. 하이테크 연구 소에서 한창 연구 중인 앱들이 들 어 있죠. 그중 하나를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AI 아이즈라는 앱 이죠."
유재원은 안드로이드폰의 잠금을 풀고 큼지막한 렌즈 모양의 앱을 실행했다.
그러자 카메라 앱과 비슷하게, 카메라로 보이는 화면이 스마트폰 에 나타났다.
그에 맞춰 연구원이 그림책 하나 를 꺼내 펼쳤다.
동물도감처럼 온갖 동물들의 사 진이 큼지막하게 담겨 있는 그림이 었다.
"이게 무슨 동물인지 아시겠어 요?"
유재원은 동물도감 책 중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이며 임명한 PD 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임명한 PD는 책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 거렸다.
몸통이 통통하고, 귀는 동그랗 고……. 분명 쥐인 거 같긴 한데, 생쥐는 아니다. 꼬리에도 털이 복 슬복슬했으니 말이다.
"답이 생각나지 않을 때, AI 아 이즈를 사용하는 거죠."
유재원은 AI 아이즈가 켜진 카메 라를 임명한 PD에게 전해 줬다. 스 마트폰을 받아든 임명한 피디는 혹 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 렌즈로 해당 사진을 비췄다.
- 친칠라.
-쥐목 친칠라과의 크기가 작은 남아메리카산 설치류. 안데스 산맥 의 습기가 없고 바위가 많은 지역 에 흩어져 삽니다. 멸종 위기 동물 입니다.
놀랍게도 AI 아이즈에 사진을 비 추자 3초도 안 되는 시간에 답이 나왔다. 심지어 조금은 인공적인 목소리로 설명까지 곁들어서 말이 다.
"다른 사용법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명함을 슬쩍 렌즈에 비추는 것으로 새로운 주소 록에 등록이 된다든가, 종이 메모 를 텍스트로 바꾸어 저장하는 등의 이용법을 즉석에서 시범으로 보였 다.
자율 주행 자동차도 놀라웠지만, AI 아이즈라는 앱도 뒤로 넘어갈 만큼 놀라운 물건이었다.
동물도감에서 식물도감으로, 그 것도 모자라 인터넷으로 무작위 검 색한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맞히 는 것까지 보여주는 유재원이었다.
무작위 검색에서는 속도가 더욱 느려졌고, 틀리는 것도 있었다. 이 를테면 한 단어로 콕 찍어낼 수 없 는 애매한 이미지들, 한 화면에 수 많은 오브젝트가 나오는 길거리 이 미지 같은 경우엔 정의할 수 없음 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대신 자동차, 도로, 사람들, 건물, 간판 등등 다양한 오브젝트가 섞인 길거리 이미지에서 마우스 커서를 이용해 특정 지점을 클릭하면 해당 위치의 오브젝트에 대해선 확실하 게 판별해 냈다.
"이건 간단한 시범이고 보다 효 율적인 응용법을 보여드리죠."
유재원은 시범을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본인의 i웍스 노트북과 안드로이 드 스마트폰을 USB 케이블로 연결 했다. 그리곤 ID 오피스의 ID 워드 를 실행했다. 현재 시중에 발매된 ID 오피스의 최신 버전인 2003의 차기 버전으로 한창 개발 중인 베 타 버전이었다.
"ID 워드로 하는 서류 작업 중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게 기존의 종이 문서를 디지털로 옮기는 작업 이죠? 그걸 일일이 손으로 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직접 작업하 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겁니다. 뭐, 스캐너로 아예 이미지 파일로 뜨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렇게 하면 색 인이나 검색을 할 수 없죠. 하지만 앞으로는 그 일이 무척이나 간단해 질 거예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오래된 서류 하나를 꺼냈다.
80년대 시절 발표된 논문이었다.
언어는 당연히 영어였고, 복잡한 그래프와 도표도 많이 들어가 있는 논문이다.
유재원은 ID 워드에서 입력 장치 를 키보드에서 AI 아이즈로 바꾸어 선택했다. 그리곤 스마트폰을 들고 논문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그러자 마법처럼 텅 빈 ID 워드 의 작업 화면에 논문의 내용이 고 스란히 옮겨지기 시작했다. 심지어그래프와 도표도 직접 손으로 만든 것처럼 옮겨졌다.
A4 용지 한 페이지를 옮기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놀라우리 만큼 빠른 속도였다.
"아직 완벽하진 않아서 오타가 좀 있어요. 그건 직접 수정해 줘야 해요."
엄청난 퍼포먼스였지만, 유재원 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니! 이 정도면 완벽한데요!"
임명한 PD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 목소리가 큰 건 김 작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ID 워드를 통한 문서 작업은 PD보다 작가가 훨씬 많이 다뤄야 할 일이었다. 종이 문 서를 IDW 파일로 옮기는 일도 많 이 해 봤던 김 작가에게 지금 유재 원이 보여주는 건 그야말로 혁명이 었다.
"대체 이게 무슨 원리입니까? 인 공지능입니까?"
"네, 인공지능 기반의 이미지 해 석 기능과 문서 작업을 결합한 것 이죠."
유재원은 간단히 설명했다.
하지만 임명한 PD나 김 작가 모 두 단순하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리얼카메라 후반부는 인공지능 특집이라는 부제를 붙여 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을 정 도다.
그런 임명한 PD의 모습에 유재 원은 부연 설명을 추가해 줬다.
"사실 깊이 들어가면 아직 여러 분이 생각하시는 인공지능에는 도 달하진 못했습니다. 다만 인공신경 망을 구성해 기계 학습을 시켰고, 지금은 이미지 해석이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해서 공개하게 되었죠. 냉정히 따져 보면 정교한 통계학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통계학이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기계 학습의 기본이 되는 알고리즘 몇 개를 공 개했다.
제일 유명한 몬테카를로 알고리 즘의 경우에는 1930년에 쓰였던 알 고리즘이었기에 거리낌은 조금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겁니까? 그리고 언제부터 인공지능 을 개발하신 거죠?"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투가 역력 한 임명한 PD였지만, 짐짓 이해한 사람처럼 말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음, 대충 11년은 된 거 같네요."
"11년 전이요? 그러면 92년? 세 상에!"
임명한 PD의 얼굴에 경악이 서 렸다.
지금 유재원의 나이는 26살. 세 계 최대 기업인 ID 그룹의 회장이라는 타이틀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숫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11년 전이면 15 살 때의 이야기였다.
"네, 그때가 2CH.com이라는 커 유니티 사이트를 만들었을 때였는 데, 처음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문제가 생기더 라고요."
"문제라니요?"
"악성 댓글이죠. 이대로 두면 혐 오와 증오만 확대 재생산될 것 같 아서 필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기로하고, 프로그램을 짜 봤습니다. 그 러다가 이걸 이용해 사람의 언어를 컴퓨터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규모를 확대했죠."
말이 필터링 시스템이지만, 실상 은 언어 학습이었다는 걸 이제야 밝히는 유재원이었다.
"처음엔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윤곽이 보였습니다. 그 러다가 몇 년 전에 이미지 해석 모 듈과 언어 학습 시스템을 결합하면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았지요."
유재원은 그러면서 이미지 해석 모듈과 언어 학습 시스템이 F2의 자율 주행 시스템에서 활용되는 모 습을 간단히 설명했다.
F2에 장착된 이미지 센서들이 포 착한 이미지를 통해 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와 장애물을 구별한다. 그리고 도로 표지판과 신호등의 신 호도 읽어서 이를 주행에 참고한다.
"여기서 보이는 하얀색 선이 내 비게이션 데이터로 찍힌 목표까지 의 경로입니다. 그리고 하얀색 선위에 연두색으로 조금 더 두껍게 오버레이 된 것이 F2의 자율 주행 시스템이 안전하게 이동해도 된다 고 판단한 경로지요."
유재원은 단순히 말뿐이 아니라 i웍스 노트북과 연결된 프로젝터를 이용해 프레젠테이션도 함께 했기 에, 이쪽 방면으로는 배경지식이 전무한 임명한 PD도 고개를 끄덕 이며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장애물이 갑자기 나타나 면, 이렇게 붉게 오버레이 됩니다. 장애물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게 이뤄지는데, 제일 위험하게 평가하는 건 역시나 사람이죠."
스크린에 떠오른 건, 조금 전 야 외에서 있었던 시범 영상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이 갑자기 차도에 뛰어드는 상황을 연출했던 것인데, F2의 자율 주행 시스템은 도로에 가까이 오기 전부터 파악한 상태였다.
사람과 똑같은 형태였으니, 당연 히 사람이라 분석해냈고, 도로에 나오자마자 안전거리보다 훨씬 먼 거리를 두었음에도 속도를 줄였다.
그러다가 마네킹이 하얀색 경로 선 안으로 침범하자 더욱 강하게 제동을 걸면서 완벽하게 피했다.
"오오."
임명한 PD는 감탄과 함께 고개 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는 인공지능의 핵심 알고리즘을 이해한 게 아니라, 단 순한 작동 원리에 대해 이해한 수 준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만 되 어도 충분했다.
"앞으로 어디까지 보고 계십니 까'?"
"지금은 언어 모듈과 이미지 모 듈의 결합인데, 여기에 음성 모듈 도 결합할 예정입니다. 사람의 목 소리도 알아듣게 만드는 거죠. 만 약 제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무난하 게 도달한다면, 이제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은 각자 똑똑한 비서의 맞 춤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유재원의 스케줄 관리는 비서실 에서 해 준다. 원하는 관심사에 대 한 스크랩도 비서실에서 알아서 해 준다. 하지만 유재원처럼 비서가 없는 사람들은 본인이 손수 해야 한다.
인공지능 비서가 생기면 말 한 마디면 된다.
물론 사람이 해 주는 것과는 질 적인 차이가 엄청나겠지만, 인공지 능의 수준이 고도화될수록 그 격차 는 줄어들 것이다.
유재원이 보기에 2020년 정도면 인공지능의 IQ가 웬만한 사람을 뛰 어넘을 것 같았다. 회귀 전이라면 2030년에나 있을 일이지만, 기술 가속을 해 놓았으니 아무리 보수적 으로 잡아도 전보다 10년은 빨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