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69화 (669/1,007)

32권 3화

"여기가 회장님의 사무실입니다."

앨런 사장은 직접 유재원의 사무 실을 소개했다.

"여기가요?"

"예!"

임명한 PD가 되물은 건, 딱히 사무실 밖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회장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 다. 원래는 한 공간이었을 자리에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리벽을 세워 별도의 공간이 만들어진 사무 실이었다.

"한 달에 몇 번 방문하는데, 일 부러 특별히 꾸밀 필요는 없죠. 적 당히 넓은 책상에 좋은 컴퓨터, 푹 신한 의자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렇긴 한데……

유재원의 부가 설명에도 임명한 PD가 말을 흐렸다. 그렇긴 한데, 그것뿐이지 않느냐는 어필이었다. 일반 직원들과의 차이점은 개인 공 간이 좀 넓다는 게 전부였으니 말 이다.

"실리콘 밸리는 다 이래요."

아직도 어색한 얼굴의 임명한 PD에게 유재원은 짧게 설명하고 본론 으로 들어갔다.

"일단 2와 3에 대해 보고 받고 싶네요. 보고 준비됐나요?"

"물론입니다."

앨런 사장은 곧 본인의 i웍스 노 트북을 책상에 올려놓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그러자 회장실의 천장에 서 프로젝터가 자동으로 내려오며 전면에 커다란 스크린을 만들었다. 휑해 보이는 회장실이지만 프로젝 터처럼 매립형으로 감춰진 기기들 이 좀 있다.

곧이어 스크린에 ID 프레젠테이 션이 띄워졌고 슬라이드 쇼가 시작 되었다. 그러면서 유재원이 말한 2 의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엑스박스 2였다.

엑스박스가 세상에 나온 지 이제 3년이다.

보통 비디오 게임기의 수명은 5 년이니 이제 슬슬 차기 머신에 대 한 계획을 잡고 있어야 할 시점이 었다. 더욱이 유재원은 경쟁 게임 사와 달리 엑스박스 1의 수명은 딱 4년만 보고 있었다.

소니에 대한 압박도 있지만, 현 재 엑스박스로는 슬슬 역부족인 게 임들이 많아지고 있었던 탓이다. 말 그대로 엑스박스의 스펙은 이제 구식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최신 PC의 성능은 엑스박스 대비 몇 배의 성능을 자랑했다.

그나마 엑스박스나 플레이스테이 션 2가 PC에 대비해 버틸 수 있는 건, 오로지 게임으로만 디자인된 시스템이란 장점과 독점작 덕이었 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다. 1년만 더 지나면 고물로 전락할 것 이라는 게 ID 테크놀로지의 의견이 었다.

화면에 뜬 건 엑스박스 2의 디자 인과 간략한 스펙이었다.

"좋군요!"

단순한 슬라이드 한 장이지만, 이걸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상당 했다.

기존의 엑스박스 디자인을 계승 하면서도 세련된 느낌도 주고, 한 층 뜨거워지는 열기도 확실히 제어 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했던 탓이다. 기존의 엑스박스 1도 뜨거운 열기를 제어하기 위해 통짜 구리 쿨러를 써야 했는데, 이제는 그보 다 더 강력한 쿨링 방식을 써야 했 다.

엑스박스 2의 스펙은 1에 비해 몇 배는 더 상승했기 때문이다.

CPU만 해도 쿼드 코어였고, 메 모리 용량도 2기가에 작동 방식은 DDR2라는 최신형 아키텍처였다. 가장 중요한 GPU는 ATI사에서 설 계하는 최신형인데 올해 말, 혹은 내년 초에나 발표될 라데온이란 크고도 강력한 모델이었다.

다른 부품들은 샘플이 나왔지만, GPU만 아직 페이퍼 상태였다. 그 래도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따져 볼 수는 있는데, 최소한 기존 엑스박 스 1에 12배 성능이었다.

최신 게임의 모든 그래픽 옵션을 다 켜더라도 720P의 HD 해상도는 완벽히 정복이고, 1080P인 FHD 해상도도 GPU에 부담이 되는 몇몇 옵션을 조금 낮추는 정도에서 충분 히 구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디어 드라이브도 DVD

차기 버전이 유력했다.

문제는 높아진 성능만큼이나 커 진 발열이었다.

발열 문제를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친다. 과거 MS가 이 문제로 얼 마나 큰 손해를 보았나 따져 보면, 안전성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 게 정답이었다.

물론 돈을 아끼겠다고 적당한 쿨 러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회귀 전 그렇게나 욕을 했던 MS와 똑같아지는 것이니 절대 사양이다.

"3의 준비도 착실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3이란 바로 3세대 안드로이드 스 마트폰이 었다.

몇 달 후면 애플의 개발자 콘퍼 런스인 WWDC가 개최되는데 거기 에서 차세대 아이폰이 발표될 게 분명했다.

그 물건이 작년에 나온 안드로이 드 S2를 능가할 거라는 생각은 조 금도 들지 않지만, 사람들은 언제 나 새로운 것에 대해 열광한다.

그러니 유재원도 안드로이드 S2 의 마이너 업그레이드판인 S3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기기의 성능이 대대적으로 업그 레이드되는 건 2년의 텀을 두고, 다음 해에는 추가적인 업데이트로 완성작을 내는 게 유재원의 전략이 었다.

안드로이드 S3의 변경점은 M4 프로세서의 작동 속도를 10% 끌어 올리고, 전후방 카메라 모듈의 성 능을 업데이트하는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저기, 회장님. 이거 대외비 자료 아닌가요?"

임명한 PD의 조심스러운 질문이 었다.

그는 유재원이 앨런 사장에게서 차기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에 대해 모두 보고 받기 시작할 때부터 조 용히 구석으로 가서 촬영만 했다.

그런데 거기서 엑스박스 2가 나 왔고 안드로이드 S3 스마트폰이 나 와 버린 것이다.

임명한 PD도 엑스박스 게이머였 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였 다. 조금 전 봤던 정보들은 딱 봐 도 진짜였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유재원은 흔쾌히 방송에 써도 문 제없다고 했다.

스펙이나 디자인이 최종 확정된 건 아니었으니, 공개되더라도 문제 는 없다. 오히려 공개된 자료를 보 고 차기 플레이스테이션을 준비할 소니나, 애플이 더 큰 압박을 받을 게 분명했다.

소니만 해도 회귀 전과 다르게 전폭적으로 업그레이드된 플레이스 테이션2 때문에 게임 사업부의 적 자 크기는 훨씬 커져 있었다.

작년 말부터 겨우 이익을 보는 중이었는데, 엑스박스 2로 인해서 차기 비디오 게임기는 이전보다 더 더욱 큰 성능이 필요하다는 걸 알 게 될 테니 말이다.

이렇게 ID 테크놀로지에서 중요 한 프로젝트 2개의 진행 상황을 확 인한 유재원은 촬영팀을 이끌고 다 음 건물로 이동했다.

파이어피스트 게임즈의 제2 스튜 디오가 입주한 곳이었고, 레전드 리그라는 판타지 유니버스의 차기 작의 제작 상황을 체크했다.

ID 테크놀로지에서 프로젝트의 상황을 맛보기로 보여준 것처럼, 파이어피스트 게임즈 제2 스튜디오 에서도 맛보기로 풀린 정보들이 많 았다.

그중에서 임명한 PD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건 오프닝 타이틀용 으로 제작 중인 시네마틱 동영상이 었다.

NBC 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래곤볼

"으로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면, 판타지 리그 오프닝 타이틀은 그 RM을 뛰어넘었다. 다 완성된 건 아니었지만, 15초 정도 되는 티 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것도 그냥 쓰셔도 됩니다."

tvM이 개국하고 리얼카메라의 첫 방이 나갈 타이밍에 판타지 유니버 스-레전드 리그의 티저 영상도 공 개될 예정이니 문제없다.

"대박입니다!"

임명한 PD는 그저 입이 떡 벌어 졌다.

방송과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 을 주제로 방송을 만들 때, 재미있 는 그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 렇기에 작가들이 열심히 움직여 상 황을 만들어야 했는데, 유재원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누굴 만날 때마 다 분량이 펑펑 터졌다. 오히려 1 회 방송만으로 이 모습을 다 보여 줄 수 없으니, 최소한 2회로 편성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뭐 하나가 더 터져 준다면 3회 방 송도 문제없을 것 같다.

오후 5시. 파이어피스트 게임즈 제2 스튜디오에서의 업무도 다 끝 나가는 시간.

띵!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이 경쾌한 알람을 울렸다.

"응? 영식이가 무슨 일이지?"

ID톡 발신인은 영식이였다.

긴급이라는 단어로 시작한 영식 이의 ID톡은 한마디로 한국에 인터 넷 대란이 터졌다는 소식이었다.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들이 완전마비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은행은 물론이고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의 POS도 마비라고 하니 엄청난 일이 터진 것이다.

영식이의 메시지와 함께 첨부 파 일도 하나 있었다. 인터넷에 빠르 게 퍼지고 있는 악성코드 샘플이었 다.

유재원은 바로 본인의 i웍스 노 트북을 열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과 연동 상태인 ID톡을 열어 첨부 파일을 풀었다.

그리곤 곧장 리버스엔지니어링에 들어가 코드를 분석했다. 정교한 암호화가 걸린 코드였지만, 유재원 에겐 큰 문제될 게 없었다.

심지어 유재원은 코드를 분석하 며 머릿속에서 기억의 궁전을 더듬 어 2003년 인터넷 대란 사건에 대 한 정보를 찾았다.

역시나 있었다.

KT의 혜화지사 내에 있는 DNS 서버가 슬래머 웜에 감염되어 대량 의 트래픽이 발생했고, 슬래머 웜 은 DNS 서버를 타고 빠르게 퍼졌슬래머 웜이라는 건 SQL 서버 프로그램의 취약점을 노린 악성코 드였는데, 복구가 힘든 건 아니었 다.

이번 인터넷 대란도 마찬가지였 다.

암호화된 코드를 풀고 분석해 보 니 고난도의 악성코드도 아니었다.

"이건?"

심지어 악성코드가 공격하는 취 약점을 살펴보니 이미 해결책을 만 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것도 2년 전, 2001년 9-11 미 중 사이버 전쟁 때 말이다.

한국은 난리였다.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인터넷 이 이미 한국인의 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인터넷이 먹통이 되자 모든 생활이 불편하게 변했다.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건 온라인 게임으로 영업하는 PC방이었다. 일부 게임을 제외하고는 홈페이지 접속과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거 의 모든 게임이 먹통이었다.

혈맹 시리즈로 대표되는 한국산 온라인 게임 중에 제대로 플레이가 되는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 다.

그나마 스타크래프트와 월드 오 브 워크래프트 같은 ID 엔터테인먼 트에서 출시된 게임은 정상으로 플 레이가 되었다.

TJ 소프트의 온라인 게임도 혈맹1은 제대로 플레이가 되는데 혈맹2 는 먹통인 이상한 상황이었다. 게 다가 먹통이 된 혈맹2 게임이라고 해도 대란이 터지기 전에 접속한 이들은 계속 플레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 포털 사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은행들도 전산망이 마비되어 업무 처리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편의점에서는 POS가 마비되 어 물건도 못 사는 경우가 생겼다.

"이게 무슨 난립니까?"

인터넷 대란 속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당연히 문제가 된 KT 의 혜화지부였다. 그리고 그에 못 지않게 난리통이 된 건 체신부에서 이름을 바꾼 정보통신부였다.

"오丁는 뭘 하고 있는 겁니까?"

"DNS 서버 문제라고 합니다!"

"정상화까지 걸릴 시간은요?"

정보통신부 장관 진대제의 목소 리가 높아졌다.

인터넷이 마비된 건 정보통신부 장관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만 전화는 정상이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ID톡과 같은 앱들도 기 본 앱은 살아 있었다. 덕분에 조금 전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날아와 당 장 문제를 해결하라는 닦달이 떨어 졌다.

"ID 그룹에선 무슨 연락이 없습 니까?"

진대제 장관이 제일 먼저 찾은 건 역시나 ID 그룹이었다. 그렇다 고 유재원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긴급 대책 회의로 차관과 부장들만 모인 자리였지만, 어떤 식으로든 기사화 가 되면 후폭풍이 예측되지 않았던 탓이다.

진대제 장관이 보기에 이번 인터 넷 대란은 ID 그룹의 책임이었다.

네트워크 전문가의 긴급 분석 자 료를 보면 인터넷 대란은 인터넷 서버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 씬 많은 패킷을 인위적으로 양산해 서버를 다운시키는 슬래머 웜의 변 종이라고 했다.

서버를 공격하는 패킷이 만들어 지는 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취 약점이었으니 ID 그룹이 해당 취약 점을 막는 패치를 배포해 줘야 근 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 다.

제법 그럴듯한 판단이었다.

또한, 보통의 장관과 달리 실무 에도 밝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보 통 장관은 낙하산으로 내려와 실무 에 대해 깜깜한 게 일반적이었다. 진대제가 기존 장관들과 다른 건 실무 경험이 풍부했다는 점이었다.

80년대 중반에 미국 IBM에 입사 해 연구원으로 지냈고, 90년대 중 반부터는 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의 임원으로 근무하며 세계 최초 16메가 D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 러다가 일성전자가 ID 그룹에 넘어 가면서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생겼 다.

진대제의 능력이라면 ID 일렉트 로닉스로 고용 승계가 충분히 이뤄 지고도 남을 정도였는데, 본인이 먼저 박차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더니 국민의 정부의 국가 과학 기술 자문 회의의 자문 위원이 되었고, 2002년 말에 작은 개각과 함께 정보통신부 장관에 올랐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IT 분야에 대한 실무 경험은 풍부하다 못해 넘쳐나는 실정이었다.

다만 세간에서 보는 의문은 있었 다.

대선이 3월이니 임기가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초단명 장관을 하 겠다고 들어오는 게 이상한 그림이 었던 것이다.

진대제의 입장에선 사실 도박수였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노무현과 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였다. 만 약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유임이 확정되는 것이다. 물론 노 무현이 아닌 다른 후보들이 대통령 이 되면 물거품이겠지만, 확률은 제법 높았다.

"장관님! ID 그룹에서 패치를 발 표했습니다!"

때마침 전화통을 붙잡고 있던 브 로드밴드 담당 부장이 목소리를 높 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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