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1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음 식 예능, 여행 예능도 앞으로 트렌 드가 될 테니 미리 준비해 주세요."
현존 최고의 PD라도 유재원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가, 앞으로 유 행할 프로그램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 음식, 여행, 건 강 등등. 앞으로 시청자들의 관심 이 쏠릴 장르와 포맷에 대해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미디어 그 룹 운영이 성공한다면 NBC와 타임워너 넥스트컴에도 적용할 수 있겠 죠. 거기에 선봉장이 미스터 왓슨 씨가 되는 거고요."
"역시 회장님이 그냥 저를 부른 게 아니었군요."
이야기가 거의 끝났을 때 아더 왓슨은 훨씬 진지한 자세가 되었다.
작년 11월 말쯤, 레밍턴으로부터 한국의 케이블TV 회사 사장으로 와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케이 블TV 몇 개와 인터넷 매체 몇 개 를 묶어 미디어 그룹을 차린다는 이야기로 구체화되었을 때는 젊은 갑부의 유별난 취향인 줄 알았다.
지금에 와서는 깊은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훨씬 크고 진지한 계획의 일환이 었고, 성공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NBC로 오점이 생긴 본인의 커리어를 훌륭하게 복귀시 킬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제시한 계획들이 성공한다면, 단순히 미국 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에 도입하는 정도에서 끝이 아니었다.
NBC는 물론이고 타임워너 넥스 트컴까지도 적용 가능한 새로운 차 원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덤으로 한국의 방송계도 미디어 그룹이 성공하는 걸 보고 바뀌기를 바라는 유재원이다. 그렇지만 그들 에게 실망도 컸던 유재원인 만큼 거는 기대는 미미했다.
"계약서는 여기 있습니다. 가져 가셔서 검토하신 후 사인하셔도 됩 니다."
"아닙니다. 바로 하겠습니다."
유재원의 배려였지만, 이미 결심 을 끝낸 아더 왓슨은 만년필을 들 고 계약서에 힘차게 사인했다.
2003년 1월 13일.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 대할 ID 미디어 그룹이 성대한 창 사 기념 행사 속에서 첫 방송을 시 작했다.
#399. tvM 리얼카메라
"어머님, 아버님 덕에 푹 쉬고 가요."
"그리 말해 주니, 우리도 기쁘네. 그래 봐야 네 집만 하겠느냐만, 언 제든 다시 오거라."
티파니와 유재원의 부모님의 작 별 인사가 한창이다.
미디어 그룹 런칭 행사를 성공적 으로 마친 다음 날, 유재원과 티파니는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인천 국제공항으로 왔다.
그리고 유재원의 부모님도 배웅 을 위해 공항까지 동행한 것이다. 그것도 온갖 꾸러미들과 함께 말이 다.
시골집에 갔다가 올 때 부모님이 참기름부터 김치까지 싸주시는 것 처럼, 유재원의 부모님도 유재원 부부를 위해 따로 준비한 재료와 음식들이 있었다. 김치처럼 일반적 인 품목에 더해 송이버섯과 산삼 등등, 특별한 물품도 잔뜩 있었다.
여기에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물 건도 있으니, 손질된 장어를 비롯 한 자양 강장 식품들이었다. 신혼 부부에게 자양 강장 식품을 챙겨 주는 이유는 뻔했다.
아기를 빨리 보고 싶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부모님의 압박을 모르는 바는 아 니었지만, 유재원이나 티파니나 아 직 아기 생각은 없었다. 유재원이 나 티파니나 각자 할 일이 많았기 에, 30대쯤에 낳아도 괜찮지 않을 까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부모님이 준비한 물건들 은 모두 포장이 되어 전용기에 실 렸다. 예전이라면 통관 때문에 물 건을 가려 받았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미국에서도 유재원의 편 의를 많이 봐주는 중이었고, 입국 때 통관 문제도 전보다 차원이 다 르게 수월해졌다.
손질된 장어와 같은 생물도 이제 는 문제없다.
"그럼, 이제 갈게요. 다시 뵐 때 까지 건강하세요."
유재원은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출국 게이트에 올랐다. 그 뒤 들 따라 유재원과 함께 출국 게이 트를 통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호원들과 수행원들이 었다. 이들은 바늘 가는 데 따라가는 실처럼 항 상 함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 람들도 이번엔 추가되었다.
" 대박!"
대박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 이 는 임명한이란 PD였다. 전직 KBS PD였지만, 작년 12월 ID 미디어 그룹에 스카우트된 인물이었다.
방송가에서는 알아주는 공중파 PD 가 tvM이라는 신설 예능 채널로 이 직한 것에 대해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ID 미디어 그룹은 신설 조직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듯, 현재 시점에서는 게임 채널과 음악 채널만 정상 방송 중이었다.
tvM이란 예능 채널의 개국은 3 월 1일로 아직 두 달이나 남았던 것이다.
원래 기반이 있었던 온게임넷, 엠넷23과는 다르게 tvM은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준비되는 규모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본격적이었다. 나중에 디지털미디어시티로 지정될 상암동에 큰 빌딩을 매입했고, 거 기에 방송 시설을 설치 중이었다.
초기 자본금만 2천억 원으로 시작했으니, 케이블 방송국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인력 확충도 한창 이뤄지는 중이 었는데, 미디어 그룹 구인 공고가 방송계에서 큰 화제가 되는 중이었 다.
아더 왓슨 미디어 그룹 사장은 유재원의 의지를 100% 이해했고, 그에 맞춘 구인 공고를 개시한 것 이다.
PD는 물론이고 작가와 보조 작 가, 연출 보조까지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것이 구인 공고의 핵심이었고, 그들에 대한 대우는 ID 그룹의 기준에 맞췄다.
더구나 PD와 작가는 개발 직군 에 들어가서 프리미엄까지 보장 받 았다.
기존 방송국 내에서도 특별 대우 를 받는 PD가 원래 받았던 것보다 훨씬 큰 보수를 받았다. 임명한 PD 역시 공무원 수준의 안정감이 보장 되는 KBS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 던 제일 큰 요소가 바로 월급 차이 였다.
PD가 이럴 정도인데 푸대접을 받던 작가들은 천지가 개벽하는 수 준으로 대우가 달라졌다.
PD들은 저울질을 하는 반면, 기 존 작가들의 동요는 상당했다. 아 주 드물게 있는 공중파 정규직 작 가들도 일단 ID 미디어 그룹에 입 사 지원을 해 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였다.
기성 방송 작가들이 이런 수준인 데, 방송 작가들을 꿈꾸는 지원자 들은 이보다 몇 배는 많은 숫자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안타깝게도 미디어 그룹이 필요 한 작가들의 숫자는 100명도 안 되 는 소수였기에 경쟁률은 하늘을 뚫 을 듯 치솟았다.
덕분에 보조 작가의 경우엔 신인 을, 메인 작가는 커리어가 증명된 이들을 뽑을 수 있었다.
이렇게 뽑힌 이들은 경력과 지원 항목을 보고 프로그램에 배치되는 데, 임명한 PD의 경우 tvM이란 예 능 채널의 리얼카메라라는 프로그 램을 맡게 되었다.
리얼카메라라는 프로그램의 기획은 아주 심플했다.
평소 만나 볼 수 없는 스타나 유 명인사들을 밀착 취재해서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었다.
PD나 메인 작가는 ID 미디어 그 룹에 입사 지원을 할 때,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서도 하나 첨 부해야 한다.
리얼카메라는 임명한 PD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기획이었는데, KBS에서는 비슷한 기획으로 2000 년 때부터 자리를 잡고 있는 VJ특 공대라는 프로그램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기획이었다.
그런데 ID 미디어 그룹에 입사하 자마자 바로 개국 특집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어 촬영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더욱 놀랄 일은 리얼카메라의 첫 번째 손님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 계에서 주목을 받는 유재원 회장을 모시게 되었다는 점이다.
입사 면접 때, 아더 왓슨이란 외 국인 사장님이 리얼카메라라는 기 획서를 보고 누굴 가장 먼저 찍어 보고 싶냐는 물음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유재원'이라고 말했던 임 명한 PD였다.
일종의 도발이었다.
감히 회장님을 하면서 반응이 나 온다면 ID 미디어 그룹도 역시 한 국 방송국과 비슷하겠다고 보면 될 것이고, 허허 웃어 넘긴다면 뭔가 특별한 프로그램을 해 봐도 되겠구 나 판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도발적인 임명한 PD였 지만, 진짜 리얼카메라 기획이 받 아들여지고 첫 방송 손님으로 유재 원 회장을 찍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유재원에겐 간단한 일이었다.
리얼카메라라는 기획을 보고 받 았을 때, 대충 어떤 프로그램인지 딱 알아볼 수 있었다. 관찰 예능은 아직 생소한 장르였지만 21세기 초 중반만 되면 아주 크게 유행하는 포맷이었다.
며칠간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 을 밀착 촬영 한다는 게 조금 껄끄 럽긴 한데, tvM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이었다.
"다음, 리얼카메라 팀."
김대석 비서실장의 호명에 임명 한 PD를 포함해 18명이나 되는 대 인원이 이동했다. 이들 중 반은 손 에 소형 HD 캠코더를 들었고, 일 부는 방송용 대형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들이었다.
임명한 PD를 비롯한 촬영팀이 찍게 될 것은 유재원의 미국 생활 이었으니 미국 귀국길에 동승하게 되었다. 따로 갈 것도 없이 전용기 에 빈 자리는 많았으니 함께 가기 로 했다.
출국 게이트를 지나 탑승구로 가 자 ID 그룹의 웅장한 전용기가 보 였다.
"촬영팀! 전용기 모습 다양한 각 도에서 잘 찍으세요!"
한 번의 비행으로 서울부터 뉴욕 까지 논스톱으로 날아갈 수 있는 보잉 737-NG 기종이었다.
귀여운 안드로이드 로봇이 동체 에 크게 그려진 전용기는 뉴스로 많이 보았지만, 그 안의 모습이 공 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네!"
뉴스로만 보던 전용기를 가까이 서 보는 건 물론이고, 함께 탑승까 지 하게 되었기에 다들 잔뜩 상기 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임명한 PD만큼은 본분 을 잊지 않았고, 촬영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거기서 나오길 정말 잘했어!'
물론 임명한 PD의 얼굴엔 웃음 이 떠나지 않았다.
KBS를 박차고 나올 때 다들 만 류했지만, ID 그룹 전용기에 탑승 하는 지금 상황만으로 이미 대박은 확신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까지, 장장 11시간이 걸린 비행이었다. 길었던 비행 시간 하 나만 빼면, 그 어떤 특이 사항도 없는 완벽한 비행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해 서 이뤄진 입국 절차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유재원과 티파니는 내국인 입국 심사대를 아주 빠르게 통과했고, 경호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얼 카메라 팀의 경우엔 약간 시간이 필요했지만, ID 그룹의 일원이라는 증명서와 유재원의 신원 보증으로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싸주신 먹거리나 한국 에서 가져온 물건들 역시 빠르게 받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 입국 심사를 끝내고 공항 앞에 준비된 차에 올랐다.
여기서 전과 다른 모습이 연출되었다.
유재원의 옆자리를 차지한 건 티 파니가 아니라 임명한 PD였던 것 이다.
리얼카메라 촬영은 인천 국제공 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티파니도 촬영에 대해 기꺼이 동 의는 해 줬지만, 유재원처럼 모든 상황을 찍는 것에는 고개를 저었다.
사생활에 대해서는 식사 같은 특 별한 경우가 아니면 등장하지 않기 로 했다.
덕분에 유재원의 옆자리는 며칠 간 임명한 PD가 차지하게 되었다.
"바로 집으로 가시는 건가요?"
"먼저 장인어른 집에 들를 겁니 다. 한국에 오래 있었으니, 안부 인 사도 드리고 찾아야 할 것도 있어 서요."
한국에서 2달을 넘게 보냈으니, 장인 장모에게 잘 다녀왔다고 인사 를 하는 건 당연했다. 덤으로 장인 집에 맡겨진 고양이 디디도 찾아오 고.
장인어른도 선뜻 촬영에 동의해주셨기에, 임명한 PD와 카메라도 장인네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전면적인 촬영을 허락해 주 신 건 아니었기에, 동행한 카메라 는 딱 한 대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카메라 하나로 임명 한 PD가 건질 수 있는 건 수도 없 이 많았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