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23화
20골드라는 건 적 미니언 하나를 막타로 잡았을 때 벌 수 있는 돈이 었으니, 보부상 이용에 금전적인 부담은 거의 없었다.
다만 당나귀 보부상이 본진에서 아이템을 사 오는 건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진짜 당나귀 가 본진에 다녀오는 것이기에 20초 정도 시간이 걸렸다.
가장 중요한 건 적 히어로가 당 나귀 보부상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중립 캐릭터로 취급되기 에 버프도 걸리고, 디버프도 걸린다. 그렇게 적에게 잡히면 의뢰를 넣은 쪽은 큰 손해다.
물건을 사러 가던 중에 잡혔다면 물건값이 고스란히 적의 수중에 떨 어지는 것이고, 아이템을 사서 배 달 중이라면 해당 아이템이 적에게 떨어지니 말이다.
리스크가 상당했지만, 그만큼 사 용하는 방법에 따라 전략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당나귀 보부상이 활 성화되면 그것만으로도 강한 어그 로가 끌리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허접한 아이템을 사오라고 의뢰를 해 놓고 적의 라인 이 흐트러지는 걸 유도할 수도 있 었다.
"좋아. 단점은 메우고, 장점은 강 화시켜야지."
단 한 판의 게임으로 레전드 리 그 알파 버전의 장단점을 파악한 유재원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게임 에서 나오지는 못했다.
AOS 게임의 가장 큰 단점이 게 임을 마음대로 시작도 못 하고, 종 료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게임 을 마음대로 시작도 못 한다는 건 매칭 때문이었다. 5 대 5 대결이기 에 본인 빼고도 9명의 플레이어가 매칭이 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지금은 플레이어 수준에 맞는 랭 크끼리 매칭을 해 주는 기능이 없 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나중 에 MMR 시스템이 도입되면 3?4 분씩 기다려야 하는 건 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종료를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도 매칭 문제와 비슷했다. AOS의 장 르적 특성인데, 한 사람이 멋대로 빠지면 아무리 잘 되던 게임도 순식간에 밀려 버린다. 팽팽한 라인 싸움이 게임의 재미였고 본질인데, 하나가 빠지면 그 라인이 통째로 밀려 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 니 말이다.
이는 곧 트롤링 문제와도 연결되 고, 트롤링은 곧 악성 채팅으로 이 어진다.
친구들끼리 팀을 짜서 게임을 하 는 게 아니라면 생판 모르는 사람 들 다섯이 한 팀이 되어 게임을 하 게 되는데, 소통의 문제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AOS 게임의 치명적 단점을 해결 하기 위한 방안은 여러모로 생각해 두고 있었다. 욕설 필터링 시스템 부터 AI 운전기사까지 말이다.
하여튼 유재원은 제일 먼저 나사 빠진 것 같은 타격감부터 고치기로 했다. 알파 버전이라고 이대로 놔 뒀다간 끝까지 이어질 것 같은 가 장 심각한 문제였던 탓이다.
며칠이 지났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린 함박눈으 로 전국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 냈고, 이제는 근하신년으로 한 해 를 정리하는 분위기가 가득해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연말이면 빠질 수 없는 각종 시상식이 이어지고 있었고, 기업들도 일부는 이른 종 무식을 하며 연말 연휴가 시작되었 다.
물론 그런 기업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ID 그룹을 필두로 부산 그룹, 유경그룹 등등 유재원과 친한 기업들은 많이들 따라 했다.
반면 연말의 분위기를 조금도 느 끼지 못하는 쪽도 있었다.
정치판이었다.
각 정당은 대부분 대통령 후보 경선을 끝내고, 대선 레이스 시작 을 앞둔 채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식 선거 활동은 한 달뿐이지 만, 그 전에 이런저런 정당 행사를 통해서 대선 전의 열기를 뜨겁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기운을 내려면 미리 준비 를 잘해 놓아야 하는데, 조직부터 예산까지 그야말로 할 일이 수두룩 했다.
이러한 와중, 분위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당이 하나 있었다. 자그 마한 군소 정당도 아니었고, 한때 대통령까지도 배출한 대형 정당이 었다.
바로 통일국민당이었다.
-통일국민당, 내분?
-친이파, 경선 결과 납득할 수 없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심각한 결 점!
-이인제 전 대표, 해가 바뀌기 전 중대 결심 할지도.
유재원이 레전드 리그 알파 버전 보수 작업에 몰두해 있던 동안, 통 일국민당에서는 내분이 터졌다. 바 로 이인제 전 대표의 경선 불복이 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대통령 후보 발표 자리에서부터 문제였다. 박수도 치는 둥 마는 둥이었고, 낙 선 인사도 대충 하고 자리를 떠 버렸다. 그러더니 다음 날 통일국민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했다.
거기서부터 통일국민당의 내분이 시작되었다. 이인제 대표를 따르던 통일국민당 의원들이 경선에 대해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선 룰에 인터넷과 스마트폰 투 표가 갑자기 포함된 것은 유재원이 전재준을 밀어주려고 했던 것이란 이야기였다. 다만 이들은 소수였다.
100여 명 정도 되는 통일국민당 의원 중에 이인제 계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20명 정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큰 연못을 흙탕물로 만들 수 있듯, 이 렇게 적은 숫자의 의원들이라도 동 시에 분탕을 치면 큰 난리가 난 것 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다.
-친이계 분당 후, 이인제 전 대 표 독자 출마 가능!
급기야 친이계들이 통일국민당에 서 나와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에서 이인제 전 대표가 추 대되어 대선 후보가 될 거라는 설 이 돌기 시작했다.
-신빙성은 80% 이싱?입니다.
"에? 진짜라고요?"
유재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 물었다.
-송구스럽지만 사실입니다.
김광일 커뮤니케이션 총괄 이사 의 목소리에서 면목이 없는 듯, 힘 이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김광일 이사가 맡은 일은 ID 그룹을 위해우호적인 인사를 만드는 것에 있었 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것은 역시 나 통일국민당 의원들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국회 의원을 관리한다는 게 이상 한 말이겠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통일국민당이란 정당은 전명헌이 대통령을 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정당이었고, 국회 의원들 역시 초 기에는 다수가 연예인이었을 만큼 인지도에만 초점을 두고 공천을 했 었다.
지금이야 전문적인 영역에도 힘을 쓰는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들 어와 있는 상태였지만, 예전엔 정 말 전명헌 사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지금도 김광일 이사는 전명헌이 유재원에게 물려준 수첩과 금고를 통해서 통일국민당에 영향력을 행 사하는 중이었다.
그런 김광일도 막지 못하는 게 친이계의 독자적 행동이었다. 유재 원은 이인제 전 대표를 따르는 이 유를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은 진짜로 분당도 감행할 만큼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죠."
20석 정도가 줄어든다고 해도 연 정 중인 민주당과 합치면 그래도 과반은 넘는 숫자였다.
여소야대의 상황이라면 의원 한 명이 중요했을 테지만, 지금은 20 명쯤 멋대로 떨어져 나가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일단 나머지 의원들이나 잘 단 속해 주세요."
대신 우려가 되는 건 전재준의
멘탈이었다.
-예, 회장님. 최선을 다하겠습니 다.
이인제의 불복에 멘탈이 깨져서 돌발 행동이라도 하면 곤란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전재준은 멘탈 이 터져 버렸는지, 유재원의 안드 로이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오고 있 었다. 김광일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에 전재준의 부재중 전화가 벌써 3번이나 뜬 상태였다.
"예, 그럼 잘 부탁해요."
일단 김광일과의 통신을 끊은 유 재원은 4번째로 울리는 전재준의 전화를 받았다.
"예, 후보님. 유재원입니다."
-유 회장님! 친이계 반란 소식 들으셨습니까?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지 말라는 속담이 왜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이놈의 반 란군 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 까?
전재준은 유재원이 전화를 받자 마자 검은 머리 짐승이니, 반란군 놈들이니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래퍼를 해도 될 만큼 빠른 속사포 였고, 잔뜩 흥분해서 발음도 정확 하진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 다."
유재원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걱 정 말라, 잘 될 거라는 말 정도뿐 이었다.
이인제 전 대표를 찾아가서 탈당 을 만류한다든가, 친이계의 집단 탈당을 막는다는 건 생각조차 없었 다.
더욱이 회귀 전 전재준이 2002
대선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잘 알 고 있는 유재원에겐 그야말로 인과 응보의 순간처럼 보였다.
본인도 그렇게 트롤링을 신나게 해 봤으니, 이번에 한 번 당해 보 는 것도 인생에 있어 나쁜 일은 아 니었다.
"차라리 이인제 전 대표는 그냥 내버려 두고 민생 탐방을 해 보시 는 게 어떤가요? 재벌 출신이란 딱 지가 너무 강력하니 서민에게 다가 가는 모습을 보이면 좋을 거 같은 데요."
-민생 탐방?
"토론회 때 진보 후보 쪽에서 버 스비나 식비를 물어봤을 때 제대로 답을 못 하면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으니까요."
대신 유재원은 전재준에게 있을 혹역사 하나를 지울 수 있는 방법 을 알려줬다. 2002 대선 때는 아니 었고, 2008년쯤에 있을 일이긴 했 다.
그때 전재준에게 상대편에서 요 즘 버스비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전재준은 70원이라는 누구도 생각못 할 답을 하며 흑역사를 만들었 다.
당연하게도 분기탱천한 전재준에 겐 민생 탐방이란 권유는 귀에 잘 꽂히지 않았다. 그저 이인제와 친 이계를 주저앉히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미 그쪽은 결 단을 해 버린 상태였으니 할 수 있 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12월 31일, 2002년의 마지막 날.
결국 이인제 전 대표와 친이계 의원 22명이 집단 탈당했고, 이들 은 곧 국민통일당이라는 정당을 만 들었다.
통일국민당에서 단어 두 개만 앞 뒤를 바꾼 것으로 누가 보더라도 전재준에게 한 방 먹이려고 만들었 다는 걸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
국민통일당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속도로 창당을 마쳤고, 이인제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다이내믹한 2002년의 마침표를 찍는 데 이보다 적절한 사건은 없 을 게 확실한 만큼 임팩트는 엄청 났다.
남북 공동 개최 월드컵으로 기억 될 2002년이 다 지나고, 2003년이 되었다.
ID 그룹도 각 계열사마다 시무식 을 하고서 2003년의 첫 업무를 활기차게 시작했다. 다만 시무식의 모습은 전과 조금 달랐다.
예전이라면 유재원이 사내 방송 을 통해 계열사에 관계 없이 하나 의 비전을 제시하며 거창한 시무식 을 했을 터인데, 이번엔 각 계열사 사장에게 시무식의 주관을 맡겼다.
그렇다고 유재원이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시무식은 직접 챙겼다. ID 그룹의 근본이나 다름 이 없는 ID 테크놀로지였기 때문이 다.
-빅 데이터를 이용해 다른 기업 과는 차원이 다른 개인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ID 테크놀로지의 시무식에서 유 재원이 제시한 2003년도의 비전은 개인화였다.
21세기 중반까지 살았던 유재원 에겐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다.
이용자 하나하나의 취향을 분석 해 그 취향에 맞는 각가지 서비스 를 제공한다는 것이 개인화의 요체 였으니 말이다.
빅 데이터는 충분히 쌓였다.
사용자들이 인터넷상에서 활동할 때, 보통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 여준다.
단적으로 악플을 주로 다는 사용 자들의 실제 모습을 언뜻 상상한다 면 성격 파탄자에 어딘가 꼬여 있 는 비정상적인 사람을 그리겠지만, 잡아 보면 허우대도 멀쩡하고 그럴 듯한 직업도 갖고 있는 경우가 많 았다.
그러니 사용자의 인터넷 활동으 로 쌓인 빅 데이터의 신용도에 의 문을 표시할 수도 있지만, ID 테크놀로지가 가진 데이터는 상당히 정 확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구글 검색 엔진을 통해 수 집된 데이터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두 개의 가면을 쓴 악플러라고 해 도 검색 엔진에 거짓말은 하지 않 는 법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