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20화
바로 NBC 의 전 사장이었다. 테 드 터너의 신들린 구조 조정 솜씨 가 발휘되고 있는 NBC였는데, 테 드 터너가 사장으로 낙하산 타고 오기 전까지 NBC를 맡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NBC의 부진에 대해 책임을 지 고 내려왔지만, 능력 자체는 대단 히 좋은 양반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식 방송 시스템을 한국에 이식하는 데 이보다 적임자 는 없었다. 공중파였다면 외국인 사장이 자리잡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케이블 방송국에는 아무런 제 약이 없었다.
오히려 문제는 미국의 공중파 사 장이었던 사람이 한국의 조그만 케 이블 방송국 사장을 하도록 유도하 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유재원도 생각이 있었다.
온게임넷, 엠넷23 그리고 조만간 출범할 예능TV까지 세 개의 개별 방송국을 하나의 방송국 시스템으 로 통합해 덩치를 키워 놓고, 여기 에 인터넷 신문사 같은 매체를 추가시켜 미디어 그룹이라는 구색을 맞춰 놓는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미디어 그룹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선진 시스 템을 성공적으로 이식시킨다면, 명 예 회복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을 해 놓은 상태다.
NBC로 돌아가게 하든, 아니면 ID 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맡기든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고, 아 더 왓슨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었 다.
재미있는 점은 유재원이 인수식에서 언급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단어가 단숨에 유행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90년대 중반 IMF가 터지기 직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잠깐 통 용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IMF로 인해서 흐지부지되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른 게 정치 인들의 꿈이 걸린 무대 대선이 코 앞이었다는 점이다.
각자의 꿈을 품은 후보들이 난립 하는 중이었고, 남다른 비전을 발 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특히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터진 군대 부패 문제로 인해 악습은 철 폐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는 국민적 갈망이 커진 상태였 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은 그야 말로 국민들의 귀에 쏙 박혀 들어 오는 마법의 단어였고, 대선 후보 들이 너도나도 인용했다.
인기가 있으니 가져다 쓰는 후보 도 있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는 유력한 후보들도 많았다.
보통은 말뿐인 공약으로 끝날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온 12 월 21U 토요일.
유재원이 한국에 들어온 지도 거 의 한 달이 다 되는 시점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기에 길 거리마다 캐럴이 넘쳐났고, 백화점 부터 쇼핑몰, 상점에는 크리스마스장식으로 화려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추위에 옷 깃을 여미었지만, 손마다 선물 꾸 러미가 가득해 연말 분위기는 훈훈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희망은 하나도 없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었지만, 2002년 겨울에는 경기가 완전히 풀 리면서 IMF 이전의 분위기를 찾고 있을 정도였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 도 절로 흥겨워지는 분위기였다.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 중인
차 안에서 화려한 거리의 풍경을 보던 유재원도 처음엔 분위기를 즐 겼다. 그러다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거. 카드 대란의 전조는 아니겠지?'
전생에도 IMF 조기 졸업은 있었 다.
그 직후 경제 활성화라는 명목하 에 신용 카드 발급 요건이 거의 없 다시피 하면서 길거리에서, 학교 앞에서 신용 카드를 만들라 하는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신용 카드 발급 요건에 가장 중 요한 건 사용자의 신용도였지만, 직장인이든 대학생이든 그저 신청 만 하면 프리미엄 카드도 따박따박 나왔다.
조기 졸업 직후 경제가 막 살아 난 것처럼 보였던 건, 신용 카드 남발로 인한 착각이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은 새로운 카드 회사에서 신용 카드를 만들어 돌려 막았다. 잠깐의 시간을 벌 수 는 있었지만, 돌려 막기가 무한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돌려 막기로도 막지 못할 만큼 큰 빚이 쌓인 이들이 개인 파 산을 했고, 그러한 이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신용 카드 회사까 지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국 신용 카드 회사 1위 였던 금성카드의 부도설도 돌기 시 작하자 정부에서 부랴부랴 나서서 급한 불을 껐다.
IMF 시절에만 들어봤던 공적 자 금이란 말이 다시 신문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겨우 IMF를 탈출했는데, 신용
카드 대란으로 또다시 IMF를 겪을 수 없다고 생각한 국민의 정부에서 다시금 혈세를 가져다 부실 기업을 지원했다.
유재원은 눈을 크게 뜨고 길거리 를 살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신용 카드 만들라고 판촉하 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길거리를 몇 분이 나 지켜봐도 그런 건 보이지 않았 다. 혹시나 싶어 안드로이드폰을 들고 인터넷으로 검색했지만, 신용카드 발급 요건 완화 같은 기사는 없었다.
투자 은행이라는 예방 주사를 한 방 맞았던 덕이다.
ID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 은행 이 생기고 나서 우후죽순 투자 은 행들이 생겨났다. 제2의 ID 인베스 트먼트가 되는 걸 꿈꾸며 대기업부 터 자그마한 지방의 은행들은 물론 이고 증권사에서도 투자 은행을 만 들었다.
당연히 경쟁은 치열해졌다. 경쟁 이 치열하다 보니 커다란 수익을 약속하면서 투자자를 모았다. 수익 률을 맞추기 위해 리스크가 큰 투 자를 감행했다가 돈을 날리고 파산 한 투자 은행이 수두룩하게 생겨나 자 그때서야 설립 요건이 강화되며 진정이 되었다.
더욱이 투자 은행으로 크게 데인 회사들이 많았기에, 신용 카드 영 업에 회의적인 회사들도 많아지면 서 과거와 같은 과열된 모습은 나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뭔가 날카로워진 유재원의 모습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티파니가 이유를 물었다.
"이제 좀 연말 분위기가 난다 싶 어서 말이야. 몇 년 전엔 침울했거 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신용 카드 대란과 관련된 과거의 일을 운운할 수 없었던 유재원은 최대한 상식적인 말로 티파니의 관 심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티파니는 궁금증이 충분히 해소되었던 모양이다. 더욱 이 두 번째 스케줄이 있는 장소에 다 도착한 덕에 화제는 곧 전환되 었다.
ID 디지털미디어센터 개장식.
오늘 유재원 부부가 참여할 메인 이벤트의 이름이었다.
흑석동의 상징이었던 대한일보 회장님네 저택을 밀어 버리고 지어 진 거대한 공연장의 이름이기도 했 다. 올해 초에 건물 공사가 끝났지만, 공연용 무대 장치나 대형 오디 오 시스템 등등 내부 설비 작업은 끝나지 않았던 탓에 개장 일정이 지금까지 늦춰진 것이었다.
ID 디지털미디어센터는 천만 명 이 넘는 거대 인구가 모여 사는 대 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제대로 된 실내 공연 시설이 없다는 걸 잘 아 는 유재원이 오로지 사비로 지은 초대형 공연 시설이었다.
수용 인원 9,300명!
극장처럼 콤팩트한 좌석을 놓았 다면 1만 명 정도는 훌쩍 뛰어넘는 숫자를 달성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좌석 은 ID란 고급스러운 아이덴티티에 맞지 않았다. 비즈니스석만큼은 아 니어도 옆사람과의 공간은 약간 여 유를 두었고 좌석 앞뒤 사이에도 간격을 여유롭게 해서 쾌적한 관람 환경을 만들었다.
특히 강조한 게 오디오 시스템이 었다.
무대에서 어쿠스틱 밴드가 라이 브를 한다고 하면, 맨 뒷자리까지 각 악기들의 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최고급 스피커를 장 착했고, 센터 내부 구조 설계까지 도 공을 들였다.
이러한 설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부 기둥이 없다 는 것이다. 기둥을 두면 경제적으 로 안전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대신 기둥을 삭제한 것으로 사각이 없어졌고, 소리의 품질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지하에도 커다란 시설이 있다. 지 하 2, 3층에는 주차장, 1층에는 쇼 핑과 휴식 공간이었다.
건물 외관도 특별했는데, 21세기 중반의 건물들의 디자인을 최대한 계승했다. 덕분에 90년대 스타일의 건물이 즐비한 흑석동에서 눈에 확 튀는 건물이 ID 디지털미디어센터 였다.
건물은 평소에는 각종 행사나 공 연에 쓰이고 때때로 e스포츠 경기 장으로도 쓸 계획이지만, 메인은 공연이었다.
ID 그룹의 사회 공헌 취지였기에 대형 공연장 구경이 힘든 인디 밴 드나 극단 등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대관을 해 줄 계획이었다.
나중에 팟캐스트도 뜨고, 북콘서 트도 유행이 된다면 ID 디지털미디 어센터는 얼마든 자리를 내어줄 것 이다. 디지털미디어라는 키워드에만 부합한다면 위에서 열거된 카테고 리에 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다만 장소는 하나인데 너도나도 빌리고 싶다고 할 사람들은 넘쳐날 수 있기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예약 시스템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실제로 공연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약 사이트만 열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공연 시설이 부족해 연말, 연초 에는 콘서트 공연장을 잡는 게 전 쟁이었다. 그러던 차에 9,300명 정 원의 거대 실내 공연장이 생겼으니, 숨통이 트인 것이다.
게다가 대관료도 저렴하니 잡기 만 하면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회장님!"
자동차에서 내린 유재원 부부가 제일 먼저 본 얼굴은 최강욱 부회 장이었다.
유재원을 대신해 한국과 동아시 아 전반을 책임지는 최강욱 부회장 은 언제 봐도 든든한 모습이었다.
ID 디지털미디어센터가 무리없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도 최강욱 부 회장이 잘 챙긴 덕이었고, 최근에 있었던 케이블 방송국 인수도 완벽 했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건 백호 펀드의 운영이었는데, 대호중공업을 대표로 백호 펀드를 통해 회생된 기업들이 수도 없이 많아서 재계의 화타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다.
"오늘 행사를 빛내 주기 위해 찾 아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예, 딱 봐도 어마어마하네요."
유재원이 살짝 고개를 돌려 보면 ID 디지털미디어센터 로비 앞에 구 름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올해 지방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 한 고건 서울 시장을 필두로 여야 의 정치인들이 총출동한 모양새였 다.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물론 이고, 국회 의원들도 가득했다. 평 소엔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나라당이나 민주한국당 대표도 있었다.
의도는 뻔했다.
유재원의 인기에 묻어가겠다는 것 이었다.
ID 그룹의 위상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고, 유재원의 인기 역 시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에서 존경 하는 기업인을 꼽을 때 유재원의 인기는 항상 톱이었다. 그것도 2등 과 몇 배의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 이었다.
비단 젊은 층에서만 좋은 게 아 니라, 60대 이상의 노년 인구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이런 유재원과 악수한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 놓는 게 선거에서 유리했다.
유재원이 최강욱의 안내로 정치 인분들과 악수를 할 때면 플래시가 사정없이 터지는 것도 그 이유에서 였다.
그렇지만 유재원과 악수를 할 수 있는 이들은 거물급 정치인들이나 가능했다. 정치 신인들이나 시의원, 구의원들은 밀리고 밀려서 한참 뒷 전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기업인들입니다."
오늘 ID 디지털미디어센터 개장 식을 기념하기 위해 와 주신 VIP들 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정치인들 만이 아니라 기업인들도 상당했다.
" 어?"
유재원의 눈이 커졌다.
"ID 디지털미디어센터의 개장을 축하드립니다, 유 회장님."
의외의 인물이 유재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로 일성그룹 부회장 최재영이었다.
"부회장님이 직접 와 주실 줄은 몰랐네요."
기업인들 사이에서 제일 존재감 넘치는 인물이 바로 일성그룹 최재 영이었다.
미래그룹이나, TG, 심지어 부산 그룹처럼 유재원과 남다른 친분이 있는 회사에서도 임원이 나왔는데, 일성그룹만 로열패밀리가 직접 나 온 것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