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13화
#397.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
파란의 2002년도 이제 1달 남은 시점에서, 유재원과 티파니는 한국 에 조용히 들어왔다.
유재원의 경우 미국에서도 할 일 은 많았지만, 그보다 한국의 대선 이 더 중요했던 탓이었고, 티파니 는 그간 열심히 일했던 만큼 휴식 이 필요했던 탓이다.
"서울은 무섭게 발전하고 있구나."
티파니의 감탄이었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해 내려서 자 확 달라진 모습이 티파니의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국제허브공항으로서 앞으로 수십 년간 명성을 날릴 인천 국제공항은 티파니의 눈에도 세련되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게,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 으니, 고향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 으려면 자주 방문해야겠어."
유재원도 티파니의 말에 동의하 며 대답했다.
다만 무척이나 과장된 말이긴 했 다.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적어도 2030년 정도까지의 발전된 서울의 모습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어! 유재원이다!
-티파니 부인도 함께 있어!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조용하게 들어오긴 했는데, 공항 이란 장소는 애초에 오고가는 여행 자들로 북적거리는 장소였다. 귀빈 용 입국 심사대를 거쳐 나오면 출 구까지의 동선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바로 유재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심지 어 티파니까지도 단번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곧이어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필름 카메라 소리 같지만, 안드 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나는 소리였 다.
티파니의 말처럼 무섭게 발전한 다는 소리가 사실인 게, 사람들의 손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들 려 있었고, 카메라 앱으로 유재원 과 티파니의 모습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톡톡이나 싸이월드 같은 곳에 올릴 거라는 소리도 나온다.
찍기 전에 찍어도 되냐고 물어봐 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거 하나 없는 게 아쉬웠다. 다만 유재원과 티파니를 향해 휴대폰을 들어 올리 는 사람 중에 2/3 정도는 ID 마크 가 선명한 안드로이드 폰이라 너그 러이 이해해 주기로 했다.
더욱이 경호 실력이 출중한 경호 팀의 든든한 호위 덕에 '팬이에요!' 하고 소리치며 달려오는 이들이 근 접하진 못했다.
"회장님, 이쪽입니다!"
곧이어 둘은 비서실에서 준비한 자동차를 타고 인천 공항을 나섰다.
저번까지는 최강욱 부회장이 직 접 나와서 픽업을 해 줬지만, 지금 은 할 일이 많은 상태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오지 마시라고 했다.
차는 두 대였다.
티파니와 유재원은 입국하자마자 한국 체류 일정을 시작했고, 할 일 이 각자 있었다. 유재원의 경우엔 통일국민당 당사로 바로 가야 했고, 티파니는 셰브롱과 금성그룹의 합작 기업인 칼텍스 본사 방문, 대호 중공업 본사 방문 일정이 있었다.
더욱이 티파니는 이번 한국행 출 장에 동행한 셰브롱의 수행단도 따 로 있어서 공항에서부터 따로 출발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저녁에 집에서 봐!"
유재원과 티파니는 가볍게 포옹 과 키스를 하며 애정 표현을 한 후, 차를 나눠 타고 각자의 스케줄 을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어? 이건 뭐예요?"
"회장님께서 읽어 보실 만한 기 사들을 모아 놓은 스크랩북입니다."
꼼꼼한 김대석은 유재원을 위해 준비된 벤츠 자동차 안에 읽을거리 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안드로 이드 패드를 통해 보는 것이 제일 빠르지만, 아직은 종이 문서를 완 전히 대체할 수준은 아니었다.
더욱이 움직이는 차 안에서 보는 건 종이 문서만큼 편안한 게 없었 다.
-e스포츠 지각 변동!
-대기업 창단 러시!
-TG모바일, JM파워팀 인수, TG T1 팀 출범!
-일성통신, 1ST 칸 창단!
-미래중공업, e스포츠 창단 확실 시!
김대석의 말대로였다.
유재원이 최근까지 가장 공을 들이던 e스포츠 프로화에 관한 기사 들이 가득한 스크랩북이었다.
동시에 저번 달 열심히 전화를 돌린 보람이 느껴지는 기사들이 가 득했다. 물론 ID 톡이나 e메일로 먼저 받아 보긴 했지만, 자세한 사 정은 스크랩북을 통해서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았다.
e스포츠 프로 게임단 창단에 제 일 빠른 행보를 보인 건 TG모바일 이었다.
유재원의 친구이자 요즘 가장 주 목받는 프로게이머 주민이는 물론 주민이가 이끄는 스타크래프트 팀 까지 통째로 인수했다. 그리고 팀 명을 유재원의 추천 그대로 T1 으로 확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테란의 황제인 임요환 선수도 스카우트했 다.
T1 이란 이름답게 시대의 아이콘 이 뛰는 명문 팀의 이미지를 처음 부터 확실하게 구축했다.
"1ST 칸?"
일성통신이 창단한 팀의 이름이 었다.
1ST가 일성 텔레콤의 약자이긴
했는데, 유재원에겐 악명 높은 테 러 단체인 IS가 더 강하게 각인되 어 있던 탓에 어색하게 들렸다. 그 렇지만 칸이라는 이름은 원래 일성 그룹의 게임단이 사용하던 팀 명칭 이었다.
창단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TG T1 의 이름값에 비견될 정도였다.
폭풍저그 홍진호, 몽상가 강민, 정석테란 김정민, 물량 토스 박정 석 등등. 이름값만 보면 T1 을 능가 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T1 에 속한 게이머들과 여러모로 얽혀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덕분에 TG모바일과 일성통신 사 이에 통신사 라이벌전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축구 더비에 부럽지 않은 치열한 경기가 펼쳐질 것 같다.
여기에 KT도 프로 게임단 창단 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하니 통신사 더비가 3파전으로 확장될 수도 있었다.
이밖에도 미래중공업, 심지어 시 중의 대형 은행에서까지도 e스포츠 프로팀 창단 소식이 들려오는 중이 었다.
-프로게이머, 청소년 선호 직업 순위 1위 등극!
-게임도 실컷 하고, 돈과 명예까 지 벌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
-프로게이머 평균 연봉, 7천만 원 육박! 대기업 신입 사원의 2.5 배!
덕분에 어처구니없는 기사들도 함 께 실려 있었다.
역시 기자들이란. 동시다발적인 대기업의 프로 게임단 창단으로 인 해 프로게이머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는데, 그걸 일반화해서 써 버렸다. 게다가 청소년 직업 선호도라 는 재미로 나온 앙케트를 마치 제 대로 조사해 만들어진 여론 조사처 럼 호도했다.
평균 연봉이 7천만 원이라지만, 이는 대기업과 계약한 프로게이머 들만 가지고 평균을 낸 것이 함정 이다. 아예 계약도 못 한 프로게이 머들 지망생들의 수입은 너무도 열 악했고 데이터에 잡히지도 않았다.
유재원이 챙겨 주려고 해도 스타 리그에 올라와야 챙겨 줄 수 있었 으니 말이다.
-대기업팀 창단과 맞물린 프로게 이머 선수 협회 출범.
그나마 기대해 볼 수 있는 건 대 기업팀 창단 러시와 맞물린 프로게 이머 선수 협회 출범이다.
과거였다면 팀에서 가만두지 않 았을 텐데, 대기업팀의 창단보다 선수 협회의 출범이 더 빨랐다.
당연히 선수 협회의 가장 큰 서 포트는 유재원이었다. 선수 협회 출 범을 보고 창단 철회 운운하던 일부 기업들도 발언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원주민 선수 협회장, 선수들의 권익 보호, 팀과 선수의 상생을 우 선으로 할 것!
다른 프로 스포츠들과 달리 너무 도 원만하게 출범한 선수 협회고, 1대 협회장은 주민이였다.
"주민이 녀석, 잘 하려나 몰라."
국민학교 때부터 깃털처럼 가벼 운 주민이의 행실을 보아왔던 유재 원이었기에, 우려가 되는 건 사실 이다. 그렇지만 프로게이머 선수 전체의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주 민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도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커리어를 시작 한 1세대 프로게이머였고, 뒤늦게 잠재력이 터져서 우승컵을 손에 넣 기도 한 선수였다.
주민이를 따르는 선수들도 많았 고, 선수들 사이에서 인심도 좋았 다. 선수들에게는 한우 잘 사 주는 형으로 통했으니 말이다.
못 먹고 다니는 선수들 혹은 연 습생들이 보이면 팀이나 클랜 가리 지 않고 불러다가 배 터질 때까지 먹이는 게 주민이의 특기였다.
한우 농장을 하는 부모님을 둔
덕인데, 1년 전쯤엔 강남에 한우 고깃집을 크게 내셨다.
주민이의 부모님 사업도 그간 엄 청난 성장을 했는데, 과거엔 축사 에서 한우를 좀 기르는 것에서 이 제는 여러 농장과 연합해 한우를 유통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한우 선물 세트라는 걸 처음 만 들어내면서 백화점 입점까지 했고, 한우 등급제 시행 후에는 1++ 한 우를 키워내면서 고급 브랜드화에 도 성공한 덕이다.
부모님 파워를 이용해 선수들에게 두루두루 덕을 쌓은 덕에 주민 이를 통한 프로 리그 선수 협회는 아주 자연스럽게 안착하였다.
동시에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는 야구, 축구, 농구처 럼 엄청난 인기와 역사를 보유한 프로 스포츠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먼저 선수 협회가 출범한 건 e스포츠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스포츠계에서는 e스포츠 의 선수 협회 출범 때문에 타 스포 츠 선수들이 동요할지 모른다고 잔 뜩 경계나 하고 있으니 갈 길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유재원이었다.
스크랩북을 넘기자 이번엔 새로 운 섹션이 나타났다.
-통일국민당, 국민 참여 경선 실 시 확정!
-이인제 대표 대 전재준 전 축협 회장의 이강 구도!
-전체 여론조사 적합도로는 전재 준, 통일국민당 내 조직으로는 이 인제 강세!
-시민단체 허울뿐인 통일국민당 국민 참여 경선, 제도적 개선 필요주장!
정치 관련 기사였다.
지금 유재원이 통일국민당으로 가고 있는 이유가 숨겨져 있는 기 사이기도 했다.
전재준 is BACK!
본인의 능력에 비해 항상 과대한 야망을 가진 전재준은 역시나 대권 의 꿈을 꾸며 통일국민당으로 돌아 왔다.
그 자신감에는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라는 최신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월드컵 잘 치렀다고 전재준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도 신기한 일 이야."
전재준이 올해 보여준 것은 2002 피파 월드컵 인터 소리아의 성공이 었다.
월드컵 최종 순위 3위라는 타이 틀은 2002 월드컵의 개막전이 시작 할 때만 해도 유재원 말고는 상상 하지도 못한 순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걸 과연 전재준 개인의 역량으로 봐야 할까?
절대 아니다. 전재준이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선수들과 감독이 이뤄낸 성과였다. 퍼센티지를 따진 다면 최소 50%는 히딩크 감독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히딩크 감독을 비롯 한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충분한 보 상이 이어졌다. CF야 당연했고, 피 파로부터 정산금과 보너스도 나왔 고, 병역 면제 혜택도 주어졌다.
전명헌이 총리 시절 병역법에 대 해 손질을 보았다.
구멍이 많았던 예체능 분야 면제조항을 일괄적으로 손을 봐서 1?3 년마다 열리는 국제 대회의 경우 1 위에게만, 4년 텀 이상의 국제 대 회의 경우엔 3위까지 혜택을 준다 고 개정되어 있었다.
콩쿠르 역시 마찬가지로 1~3년 텀의 대회는 오직 1위만, 4년 텀 이상의 대회는 3등까지 혜택이 나 온다.
학술적 성과에 대해서도 마찬가 지로 년 단위 기준으로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도록 했고, 덕분에 유재원은 필즈상 수상으로 면제 혜택을 보았다.
월드컵 역시 4년마다 열리는 대 회였던 만큼, 3위 달성으로 인해 혜택이 나왔다. 그리고 이 점에 대 해 국민들 모두 공감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월드컵 3위 결 정전이 있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해 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엄청난 월드컵의 여파는 정치권에도 이어졌으니, 2003년 대 선 후보군 중 전재준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1등을 차지해 버린 것이 다.
1이라는 숫자에 의해 전재준의 허파에는 바람이 잔뜩 들었다.
회귀 전의 그 흐름과 비슷했지 만, 차이가 있다면 전재준은 신당 을 창당하지 않았고 통일국민당으 로 복귀해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통일국민당의 다음 대선 후보를 노리고 들어왔던 이인제에겐 날벼 락과 같은 일이었다.
당연히 대표라는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전재준의 입성을 최대한 방 해하려고 했다.
덕분에 통일국민당의 대통령 후 보 경선은 안개 속이었다.
물론 전재준은 이런 이인제의 움 직임에 심히 불쾌감을 표시했다.
통일국민당은 본인의 아버지인 전명헌이 만든 정당이었고, 본인은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아들이니 통일국민당도 본인의 유산이라 생 각했다.
그런데 굴러들어 온 돌인 이인제 가 주인 행세를 하니 화가 났다.
합의된 건 당원은 물론 일반 국 민들의 여론조사도 포함하는 국민경선이라는 것 하나뿐이고, 구체적 방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경선 날짜는 이제 2주 남짓 남았 는데, 이 상태라면 파국이 불 보듯 뻔했기에 유재원이 직접 오게 된 것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