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12화
e스포츠의 엄청난 성장세에 대해 서는 이재형도 보고 받은 적이 있 었다.
10대와 20대가 야구보다 더 좋 아하고, 최신의 조사에서는 축구보 다 더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온 적 도 있다고 했다.
월드컵이 끝난 지 2달 좀 지났다 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었다.
야구 같은 프로 스포츠팀에 비하 면 운영비는 염가나 다름이 없는데, 홍보 효과는 무척이나 좋았다.
한 번 진지하게 고려를 할 때는 되었는데, 유재원 회장이 직접 전 화를 준 것이다.
"패널티는 없다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유재원 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이재형이 그간 사회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바에 따르면 이건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유재원이란 인물을 보통 의 사람들과 동급으로 놓을 수 있 을까?
그건 아니었다.
그러니 없다는 건 진짜로 없다는 의미라 봐야 했다.
"김 비서."
"예, 부회장님!"
"e스포츠 프로 게임단 창설을 하 려면 뭐가 필요한지 좀 알아봐서, 내일까지 보고해. 아, 너무 빠른가? 그러면 내일모레까지."
"아닙니다! 내일 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게임단 창단 정도는 일성 그룹의 규모를 보았을 때, 일성 통신의 홍보 혹은 마케팅 파트의 팀장 선에서 끝날 일이었지만, 유재원 회장으로 부터 제안받은 일이었으니 이재형 본인이 직접 주관하기로 했다.
"자, 그럼 다시 회의를 시작하지. 팬택 인수 건에 대해 계속 보고하 시오."
다시금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돌아온 이재형은 임원 회의를 속개 시켰다.
모바일 안드로이드 호환 스마트 폰 제조를 구체화시키는 회의였다.
유재원의 전화가 오기 직전에 떠올랐던 사안이 바로 팬택이라는 휴 대폰 제조 전문 벤처 기업의 인수 건이었다.
IMF가 터지기 직전까지 일성 전 자라는 한국 최대의 전자회사를 보 유하고 있었지만, 이젠 다 옛일이 었다.
전자 기기 생산 라인 전체가 사 라졌으니 새로 신설을 해야 하고, 개발진도 모아야 한다.
그런데 공장 하나 짓는 데 드는 비용도 상당했고, 성공 가능성도 크지 않았기에, 일성 그룹은 팬택이라는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재형은 느낌이 좋 았다.
일성 그룹의 기업 문화란 객관적 데이터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오죽 하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안 지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느낌 만 보고 움직이는 건 미래그룹 쪽 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이번 일들 은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 다.
"음, KT에도 해야 하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뜬 주소 록을 보다가 유재원은 고민에 빠졌 다.
사기업들에 전화하는 것에 부담 은 전혀 없었다. 껄끄러운 이재형 에게도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을 정 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KT 같은 공기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외압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 이다.
e스포츠 프로 게임단 창설 권유 가 나중에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발생할 확률은 1%도 안 되 겠지만, 다이내믹한 소리아였으니 유재원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이 정도면 다른 기업도 대세라 고 보고 움직이겠지."
결국 유재원은 KT에 전화할 마 음을 접었다.
TG 모바일을 시작으로 부산 그 룹, 미래 그룹에 이어 일성 통신까 지.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동시다 발적으로 프로 게임단 창설에 돌입 하는데, 이걸 보고 대세라 판단하 지 않을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살짝 간만 보고 있던 기업들도 분명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게임사들, 은행들, 어쩌면 중공업 만 파던 회사까지도 관심을 보일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러면 게임단 제안은 이걸로 됐 고."
컴퓨터 다이어리에 옮겨 놓은 메 모에 처리를 의미하는 취소선을 넣 은 유재원은 마지막 항목에 시선이 멈췄다.
"남은 건, 게임 전문 방송국."
게임 전문 방송국이란 키워드에 서였다.
현재 스타 리그와 팀 리그를 방 송 중이고, 워크래프트 경기도 송출하는 온게임넷이 못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온게임넷은 열악한 사정 속에서 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선수들에 대한 대우와 경기 방송 제작 등이 ID 엔터테인먼트가 책임 지면서 부담이 한결 덜해진 온게임 넷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벤트 준비 나 결승전 무대 설치, 송출 등등의 경기 외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문제는 온게임넷뿐만이 아니라 케이블 방송사들이 공통으로 처한 시청자 확보 부족 문제였다.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유료였다.
그렇기에 케이블 TV의 보급은 아직 빠르지 못했다. 낮은 보급률 은 광고료에도 영향을 미쳐서 방송 사들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제작진들에겐 아이디어가 넘쳐나 는데, 이를 실행할 제작비는 항상 모자라다.
또한, 저변 확대를 위한 마케팅 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선택한 것은 온게임넷을 비롯해 몇 개의 케이블 방송국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벌써 타임워너는 물 론이고 NBC까지 거느리면서 완벽 한 미디어 제국을 만들어냈다.
타임워너의 위상이야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NBC 역시 삽질의 연속이었던 과거를 테드 터 너란 폭군을 통해 털어내는 중이었 다.
방만했던 조직은 빠르게 전열을 되찾고 있었고, 다른 방송국에 비 해 부족했던 드라마 파트도 보강 중이었다. 드라마국이 신설되었고, 총괄책임자로 JJ 에이브럼스를 영입하려고 교섭 중이었다.
아직은 전도유망한 감독 지망생 이었지만, 미래에는 믿고 볼 수 있 는 영화를 찍는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릴 사람이었다.
동시에 망한 시리즈를 살려내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 이기도 했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이 살려낸 시 리즈로는 미션 임파서블, 스타트렉, 스타워즈가 대표적인데 북미 사람 들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전통의 시리즈였다.
더구나 영화뿐만이 아니라 드라 마 제작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단점이라면 SF 쪽에 좀 치우쳐 있다는 것과 렌즈 플레어 효과를 너무나 과다하게 사용한다는 것 정 도다.
하여튼 유재원은 북미에서 고퀄 리티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송출 까지 하는 올인원 체제를 완성했다.
밀리언 달러 챌린지를 통해 미리 미리 확보한 양질의 이야기를 이제 야 영상화할 수 있는 채비가 끝난것이다.
이미 NBC 산하의 스튜디오에서 는 퇴마록, 하얀 로냐프강, 괴물 초 장이의 드라마화가 진행 중이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캐스팅 작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상당한 숫자의 배 우들이 오디션에 관심을 보인다는 보고였다.
오디션 통과만 하면 NBC와 타 임워너 넥스트컴의 유통망을 통해 수천만 명에게 뿌려져 단숨에 세계 구급 배우 등극이었으니 말이다.
한국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가져와 방영만 하면 된다. 그 렇기에 방송국만 인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공중파 방송 국 확보였다.
하지만 공중파 채널 신설을 위한 전파는 남아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면 차선책으로 서울 방송을 인수하는 것인데, 소유주인 태영건 설이 팔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문 제다.
지방 건설사가 웬 공중파 방송이 냐 하겠지만, 비정상이 판치던 1989년 뜬금없이 지상파 입찰에 뛰어들 어 따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특 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무성 했지만, 아직 밝혀진 건 없었다.
태영건설은 지금도 꾸준히 1등급 시공사로 남아 있었는데, 회사에 현금이 쌓여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 다.
오죽하면 IMF에 건설사들이 줄 도산할 때에도 태영건설은 별 탈 없이 넘어갔으니 말이다.
이렇게 자본력이 넘쳐나는 태영건설에서 서울 방송을 가져오려면 얼마나 돈을 많이 질러야 할지 모 른다.
조 단위를 써야 할 텐데, 돈이 남 아나는 유재원이라도 그건 무리였 다.
그러니 케이블 방송국을 여러 개 인수하고서 저마다 특화를 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이었다.
"음?. e스포츠 채널, 음악 채널, 예능과 드라마 채널 해서 3개면 되 려나?"
케이블 방송국이라도 나름 거대한 회사인데, 이걸 마치 시청 채널 에 유료 채널 몇 개를 넣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는 유재원이었다.
해당 케이블 방송국 사람들이 들 었으면 깜짝 놀랐을 일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오히려 미국에 비해 너무 작은 거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드는 중이었다. 케이블 방송 국 사업이란 ID 그룹의 전체 규모 에 비하면 1%도 안 되는 소규모였 으니 말이다.
대신 이렇게나 규모가 작은 사업 이지만 미래를 대비할 비전은 확실했다.
지금이야 케이블 시청 가구 숫자 가 적지만, 10년만 지나면 집마다 셋톱박스가 놓일 테니 말이다.
이미 진행 중인 일이기도 했다. HD 세대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데, 수신율이 충분치 않아도 그나 마 화면이 나오던 아날로그 공중파 와 달리, 디지털 신호인 HDTV는 수신율이 떨어지면 화면 자체가 나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셋톱박스를 놓는 집들 이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한국의 케이블 TV 회사들과 손 을 잡고 지금 확보하려는 채널을 기본 채널로 공급한다거나, 타임플 렉스 앱을 내장시키는 것만으로도 미디어 유통 채널을 확보할 수 있 다.
"아니면 IPTV를 직접 유통해도 상관없고."
한국의 최대 인터넷 공급자인 데 이콤이 유재원의 것이었다.
회귀 전 데이콤은 백본망과 같은 기간망 사업에 집중했다면, 지금의 데이콤은 집집마다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B2C 사업도 활발하게 맡고 있었다.
ADSL을 넘어서 VDSL을 서비스 중이었고, 조만간 사용자의 집 안 방까지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광랜 서비스를 준비 중이었다.
광케이블과 PC 사이에 모뎀이 필요한데, 여기에 IPTV와 타임플렉 스 앱을 탑재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망할 방송국 놈들."
유재원에게 한국의 방송국들은 기자들만큼이나 이미지가 나빴다.
역시나 회귀 전 경험 때문이다.
띄울 땐 대기권을 돌파할 것처럼 띄웠다가, 떨어뜨릴 땐 바닥에 처 박아 버렸다.
그냥 바닥도 아니고 진흙탕에 꽂 아 버리는데, 직접 경험해 본 당사 자로서 그 기분은 진짜 더러웠다.
물론 나중엔 바닥을 뚫고 더 내 려갈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실감 했다.
철저하게 강자의 논리, 자본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게 한국의 방송 국들이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 면 '방송국 놈들' 소리가 절로 나오 면서 이가 갈릴 지경이다.
케이블 방송국을 인수한 다음 차 원이 다른 방송국 운영으로 위기감 정도가 아니라 진짜 위기를 느끼게 만들어 줄 작정이다.
"그러면 인수할 케이블 채널은 온게임넷, 엠넷23인가? 예능 채널 인 tvM은 지금 없으니 예능 채널 은 신설해야겠군."
한국의 방송 관련된 계획들은 마스터플랜에 완벽하리만큼 훌륭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이 튀어나온 IT 분야와 달리 한국 방송계의 흐 름은 회귀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최고의 AOS 게임과 오래도록 지 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나 크고 힘든 것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유재원은 망설임 없이 전자 문서에 사안을 적고 최강욱 부회장에게 전송했다.
며칠 후.
-최강욱 ID 그룹 부회장, 케이블 TV 관계자들과 접촉!
-ID 그룹, 한국 케이블 채널 진 출 초읽기!
-타임워너와 NBC가 보유한 양 질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가장 빠 르게 전달할 수 있을 것!
최강욱 부회장의 행보가 언론에 포착되어 기사화되었다.
케이블 업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고, 공중파들은 내 심 경계를 하면서도 케이블의 영향 력이 분명한 만큼 방송계에 큰 변 화는 없을 거라고 애써 의미를 축 소하는 분위기였다.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러 한 행보가 AOS를 위한 큰 그림이 었다는 걸 눈치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