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11화
게임 회사가 자사의 프로팀을 운 영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홍보를 위해서다.
그렇지만 전 세계적인 e스포츠 리그를 꿈꾸고 있는 유재원은 그런 근시안적인 이익을 위해서 프로팀 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스타 리그도 성장 가능성은 충분 하고, 조만간 전 세계적인 리그도 열 계획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기대되는 건 바로 레전드 리그였다.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최고 인기였고, 다음이 미국과 유럽이었다. 그런데 최고 인기 국가와 차순 위 국가 사이에 갭이 제법 컸다.
반면 레전드 리그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붐이 된다. 그 바람은 수 십 년이 되도록 꺼지지 않았고, 결 국엔 가상 현실이 현실이 된 이후 에도 계속될 정도였다.
회귀 전 이야기지만, 그때에도 레전드 리그의 개발사는 개발만 했 을 뿐, 프로팀을 따로 두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전드 리그는 시즌마다 전술 전략이 완전히 뒤집 히는 게임이었다.
당시 레전드 리그의 제작사는 전 투용 필드는 하나만 두었고, 챔피 언만 추가하거나 밸런스 패치를 해 서 분위기를 바꾸는 전략을 사용했 기 때문이다.
만약 사전에 패치가 될 내용을 인지한다거나, 테스트 버전을 먼저 받아 연습했다는 의혹이 제기가 되 면 큰 문제로 두드러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인기는 추락한 다.
유재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e스포츠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과 달리 e스포츠 프로팀 창단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을 그냥 두 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택된 게 바로 TG 그룹이었다.
지금의 TG 그룹은 엄청난 대기 업이다. 거기엔 90년대 발족한 제2 이동 통신 사업체인 TG 모바일의 지분이 대부분이다.
회귀 전 SKT의 자리를 지금의 TG 모바일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 니, 오히려 회귀 전의 SKT보다 더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당시에 통신사들은 본인들의 밥 그릇 지키기에 혈안이었다.
기기마다 다 다른 충전 방식에, 무선 인터넷도 버튼 잘못 누르면 순식간에 천 원 단위의 요금이 부 과될 만큼 비쌌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1패킷당 10원이란 무지 막지한 요금이었다.
당시 휴대폰에서 1패킷은 보통 512바이트였으니, 10KB짜리 텍스 트 파일을 받았다면 데이터 요금으 로 200원이나 부과되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도입한 통신사가 바로 TG 모바일이었다.
요금제 역시 300메가바이트 정도 는 기본 요금에 포함되어 있었고, 데이터를 추가하는 것도 그다지 비 싸지 않았다.
게다가 와이파이망이 개방되어 있기에, 무선 인터넷이 잡히면 무 료로 쓸 수 있었다.
TG 모바일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기에 이번 2002월드컵 마케팅에 가장 큰 수혜자가 된 것도 좋았다.
월드컵 기간에 그야말로 회사 기 둥뿌리 몇 개는 뽑는다는 마음으로 데이터를 뿌리고, 붉은 악마 티셔 츠를 뿌렸던 TG 모바일이었다.
길거리 응원전이 있을 때마다 대 형 인피니티 스크린을 설치했고, 이동식 중계 차량도 총출동시켰다.
타 이동 통신 사용자들은 먹통인 데 TG 모바일은 통화도 펑펑 터졌 고, 인터넷도 너무 잘 되었다.
그 결과 월드컵 기간에만 신규
가입자가 100만 명을 돌파할 만큼 엄청난 호응을 얻어냈다.
이렇게 잘나가는 TG 모바일인 데, 문제는 e스포츠에는 관심이 없 었다는 점이다.
-응? 관심이 없긴? 10, 20대들 이 가장 호감을 보이는 종목에 e스 포츠가 있다는 걸 놓치지 않고 있 었단다. 광고만 봐도 너희 다음으 로 우리가 제일 많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
바로 반박하는 이용권 사장이지 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에이, 그래도 e스포츠팀 창단은 지금 처음 고려하시는 거잖아요."
-홈, 그건 네가 프로팀 창단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아서 그랬지.
하여튼, SKT가 T1 이라는 전설의 레전드팀을 창단한 게 이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T1 이란 e스포츠팀의 행보는 모 두가 레전드였다. 잠깐의 부침이 있던 시기가 있어서 망했다는 소리 도 듣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청 난 신인이 나타나 불사조처럼 부활 했다.
오죽하면 가상 현실 세계가 열린 다음에도 최고 명문 e스포츠팀은 T1 이었을 정도다.
문제는 지금 SKT는 존재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원래대로의 역사 흐름이라면 지 금은 선경 통신이 SKT로 이름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이미 선경 통신은 일성 그룹에 인수되어 일성 통신으로 이 름을 바꾸었다.
그런 일성 통신은 모바일 안드로 이드 서드 파티에 들어와 안드로이 드 스마트폰 호환 기기를 만들겠다 고 열심이었지만, e스포츠팀 창단에 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 회귀 전 SKT의 자리에 있는 TG 모바일이 해 줘야 한다는 게 유재원의 결론이었다.
T1 이 창단한 정확한 연도는 2004년이니 제법 빠르다고 할 수 있지만, 기술 가속이 강하게 이뤄 졌고, 전 세계의 트렌드가 훨씬 빠 르게 흘러가는 중이었으니 늦은 것 은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는 유재 원이다.
-e스포츠팀이라. 그러면 규모는 얼마나 생각해야 하니?
"음, 스타크래프트에 워크래프트2 팀 정도면 충분해요. 다만 한 종목 더 추가할 준비는 하세요. 저희가 준비한 엄청난 신작이 있거든요."
-그래? 유 회장이 엄청나다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상 상이 잘 안 되는데?
"후후, 내년이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e스포츠의 성장성 역시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클 거예요. 마케팅이나 인지도 상승에도 당연히 도움이 될 거고요."
-그런가? 알겠네. 그러면 유 회 장만 믿고 무조건 가야겠군.
이용권 사장이 간다는 말에 그러 면 '더블로 가시죠'라고 애드리브를 치려다 참은 유재원이었다. 타짜라 는 영화가 나오려면 아직 3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시점이었던 탓이다.
"바로 결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러면 제가 e스포츠 전문가를 소 개시켜 드릴까요?"
-전문가? 나야 좋지!
"JM파워라고 아세요?"
-JM파워? JD파워 같은 시장 조 사 전문 기관인가? 거기서 스포츠팀 창단 컨설팅도 해 준다는 말이야?
이용권 사장의 물음에 유재원은 웃음을 참았다.
그러게 아이디를 지을 때, 좀 생 각을 하면서 지었어야 했는데, 이 녀석은 큰 고민 없이 국민학교 때 의 아이디를 그대로 가져와 써 버 렸다.
"회사가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프 로인 원주민 선수의 ID가 JM파워예요. e스포츠팀 창단에 이 녀석보 다 전문가는 없죠. 그리고 제가 믿 을 수 있는 친구기도 하고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던 주민이는 그 소원을 이뤘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 폭풍 저그 홍진호, 암흑 집정관 원주민!
스타 리그의 영원한 아이콘인 임 요환 그리고 홍진호와 어깨를 나란 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 주 민이의 위상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 거다.
테란의 황제는 e스포츠의 아이콘이었다. 폭풍 저그라는 별명보다 은의 황제 혹은 콩이라는 타이틀로 더 많이 불린 홍진호 역시 마찬가 지다.
여기에 유재원의 국민학교 친구 원주민이 추가되었다.
사실 프로토스에는 종족의 특성 때문인지 회귀 전에도 아이콘이 된 선수는 없었다.
한때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프로토스 선수도 있었지만, 1 년 이상 장기 집권한 선수는 없었 던 탓이다.
그러다가 주민이의 포텐이 터지 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른바 가을의 전설!
이상하게도 여름 시즌마다 죽을 쓰던 주민이는 1999년부터 작년까 지 겨울 시즌만 되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름 시즌에는 8강이 최고 성적 이었는데, 1999년엔 준결승, 2000 년엔 결승전에 올라 아깝게 패했다.
그리고 20()1년. 윈터 시즌에 드 디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번 에도 조짐이 보였다.
올여름에 죽을 쓰던 주민이는 9 월부터 스타 리그 겨울 시즌이 시 작되자 연승을 이어 가고 있었다.
여름에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겨 울 시즌 우승자다운 모습이 아니었 다.
천만다행히도 주민이의 망신살은 크게 뻗치지 않았다.
월드컵 때문에 스타 리그는 물론 이고 한국의 프로 리그 전체가 올 스톱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 문이다.
이런 주민이가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사용하는 게 바 로 프로토스의 암흑기사였다. 특히 암흑기사 둘을 합체시켜 만드는 암 혹 집정관에서는 주민이의 컨트롤 을 따라올 선수가 없었다.
패색이 짙어지다가 암흑기사와 암흑 집정관으로 일발 역전의 승리 를 만들어낸 게 임팩트가 대단했다.
그게 2001년 겨울 시즌의 결승 전 마지막 경기였기에 전 세계 스 타크래프트 커뮤니티는 뒤집어질 정도였다.
덕분에 암흑 집정관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주민이의 이름 앞 에 붙을 수 있었다.
그런 주민이는 현재 프로팀을 이 끄는 리더이기도 했다. 본인 이름 의 머리글자에 유치하기 그지없는 파워를 붙인 JM파워가 주민이의 아이디이기도 했고, 팀 이름이기도 했다. 스타 리그는 개인전뿐만이 아니라 팀전 리그 역시 운영 중이 었기 때문이다.
세진 컴퓨터나 슈퍼마이크로 같 은 컴퓨터 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아 팀을 운영 중인데, 스타 리그 팬들에겐 명문으로 통하는 중이다.
"늦으면 다른 기업에서 채 갈 거 예요. 이번 제안은 다른 사장님들 께도 할 생각이거든요. 물론 제일 먼저 연락을 드린 건 이용권 사장 님이고요. 우리가 보통 사이는 아 니잖아요?"
-그렇지!
유재원의 설명에 이용권 사장은 마음을 더욱 확실히 굳혔다.
그렇게 이용권 사장과의 통화를 마친 유재원은 부산 그룹의 박상권 사장, 미래 그룹의 전재구 회장, 미래자동차 그룹의 전재근에게도 연 락했다.
"음, 이 양반은……
심지어는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유재원은 일성그룹의 부회장인 이 재형의 전화번호를 넣고 통화 버튼 을 꾹 눌렀다.
e 스포츠의 프로화를 시작하는 것, 첫 단추를 제대로 껴 보겠다는 일념으로 사심은 깔끔하게 날려 버 렸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지 요."
-아, 고맙습니다. 지금은 미심쩍 겠지만,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만 에 하나 거부하셔도 패널티는 없으 니 걱정 마시고요. 그럼, 좋은 소식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뚝
전화는 미련도 없이 끊겼다.
통화 시간 4분 24초.
일성 그룹 부회장인 이재형은 전 화가 끊긴 상태의 에버콜의 화면을 잠깐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접었다.
"프로 게임단이라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룹 임원 회의 중이었기에, 사 장단들의 시선이 모두 상석에 앉은 이재형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이재형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열의가 가득했다. 더욱이 오늘 회의는 일성 그룹이 다시 전 자 분야에 진출하는 걸 결정하는 회의였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처럼 거창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스마트폰이라는 확실한 미래의 먹거리에 진출을 구 체화하는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이 었다.
만약 유재원이 모바일 안드로이드 서드 파티에 일성을 제외시켰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 봐야 했을 터인 데, 조건 없이 가입시켜 준 덕이다.
모바일 안드로이드의 소스 코드 도 확실히 전해졌고, 하드웨어 설 계에 필요한 기술 역시 전달을 받 았다.
그렇게 회의를 진행하던 중에 갑 자기 유재원 ID 그룹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그것도 비서실 로 우회한 게 아니라, 이재형 본인 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으로 직접 걸려 왔다.
처음엔 모르는 번호라고 그냥 끊 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다시 걸려 오니 비서에게 맡기며 처리하라고 했다. 그 비서가 사색이 되어 이재 형에게 되돌아오기까지 1분도 걸리 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가 유재원이였으니 당연했다.
어떻게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것인지는 뒤로 미뤄 놓 고 일단 전화를 받았고, 중요한 제 안이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아버지 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런데 그 제안이란 e스포츠 게 임단 창설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었 다. 그것도 일성 그룹 차원이 아니 라 일성 통신 산하의 e스포츠 게임 단으로 말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