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9화
프로젝트 LL의 위대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행동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조직도 빠르게 완성되었다.
파이어 피스트 게임즈 내에 제2 개발팀이 만들어졌고, 마이크 사장 이 제작 총괄을 맡았다.
덕분에 개발팀이 입주할 사무실 은 블리자드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 아 어바인에 마련되었다.
한국의 파이어 피스트 게임즈에 서도 제2 개발팀 모집을 받아 원하 는 사람들은 미국에 집을 마련해주고 취업 비자도 바로 나올 수 있 게 힘을 써 주었다.
파이어 피스트 게임즈의 최정근 개발팀장의 인망이 좋아서 그런 것 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일할 수 있 고, 연봉도 대폭 상승한다는 미끼 에 혹한 것인지, 상당수 인원들이 미국행을 선택했다.
제레미와 카일도 짐을 바로 쌌지 만, 마이크 사장과 달리 스팀에서 할 일이 많은 게이브 사장은 알파 테스트 단계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대신 유재원은 처음부터 파이어 피스트 게임즈의 대표였기에 딱히 조정할 것은 없었다.
개발은 순조로웠다.
애초부터 판타지 유니버스라는 게 임은 다양한 모드를 지원하도록 설 계된 덕이다. 카트레이싱부터 퍼즐 게임, 스크롤 액션 게임 등등. 동일 한 캐릭터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 기 위해서는 리소스의 재활용을 쉽 게 하도록 만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ID 테크엔진은 범용성이 좋았기에, 판타지 유니버스-시공의 폭풍을 AOS 장르로 재탄생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관건은 미국으로 건너온 개발진 들과 새로 합류한 이들이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이들이 한국에서처럼 꾸준한 퍼 포먼스만 하면 내년 초에는 알파 테스트 버전이 완성될 거란 보고서 가 올라왔다. 그러면 늦어도 가을 이나 연말에는 정식 버전이 나올 게 확실했다.
게이머들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 은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유재원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프로젝트 LL의 진행 상황은 최 우선이지만, 유재원이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없었다. 유재원이 제일 잘 하는 것은 명품과 양산품을 구분 짓게 하는 디테일을 잡는 것이었다.
타격감, 밸런스, 조작성 등등.
객관적으로 무어라 말하기는 애매한데, 명품 게임이라면 확실히 잡고 있는 요소들, 이러한 디테일 을 잡는 데 유재원보다 더 잘하는 전문가는 없다.
다만 디테일을 잡는다는 건, 게 임이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서 가능한 것이기에 유재원이 프로젝 트 LL에 당장 기여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유재원 을 반긴 건 결재 서류들이었다.
"와, 많네."
유재원의 푸념은 짧게 끝났다.
많았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ID 그룹도 크게 성장했고, 그에 따라 사장단의 역량도 상승했다.
덕분에 작은 일 정도는 사장 선 에서 처리하도록 했고, 이는 곧 유 재원의 업무 부담이 줄어듦을 뜻했 다.
실제로 지금 유재원의 메일함에 쌓인 업무용 서류들은 과거와 비교 하면 무척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어떤 것부터 볼까?"
여러 가지 서류 중에서 유재원의 시선을 제일 먼저 잡아끈 건, 스마 트폰 최신 동향 보고서였다.
문서를 열어 보자 숫자와 도표들 이 와르르 튀어 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건 IDDC 2002 에서 출시된 안드로이드 S2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별 판매량, 국가별 판매량, 국가별 선호 컬러와 스토 리지 용량 등등. 다양한 데이터들 이 숫자와 그래프로 표현되어 있었 다.
거기에서 유재원의 눈에 제일 먼 저 들어온 숫자는 최근 한 달 동안의 판매량이었다.
305만 대.
전작보다 가격이 올랐는데도, 발 매 첫 달 판매량은 전작을 아득히 넘어섰다.
무려 2년 만에 나온 신모델이었 다.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잠재적 구매 수요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주 문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었다.
ID 일렉트로닉스의 월 생산량은 대략 150만 대였으니 주문량을 감 당하는 게 역부족이지만, 아직은 괜 찮다.
IDDC 2002에서 발표하기 전에 미리 생산 중이었으니, 재고로 충 당할 수 있었다. 다만 조만간 2차 출시국에 발매가 예정대로 진행되 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예측도 담겨 있었다.
경쟁사인 애플의 동향도 이어졌 다.
내년 초 애플 월드에서 아이폰의 신제품이 발표될 확률이 매우 높다 고 한다. 유재원은 올해 추수 감사 절에 뭐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 데, 스티브 잡스가 안드로이드 S2의 완성도를 보고 깜짝 놀라 완성 도를 더 끌어올리기로 한 것 같다 고 분석했다.
애플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 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정확한 정보 라니 하며 의심할 수도 있지만, ID 그룹은 충분히 가능했다.
일단 아이폰에 들어가는 플래시 메모리는 한국산이었다. 플래시 메 모리 업계 점유율 최강은 ID 일렉 트로닉스였고 다음이 금성 반도체 였으니 말이다.
또한 아이폰에 들어가는 각종 센서 칩을 만드는 회사들 역시 유재 원이 두루두루 투자한 곳이었다.
폭스콘의 가동률과 TSMC 등의 주문량을 따져 보는 것도 애플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좋은 참고 자 료다.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에 비견 될 상대는 아직 애플이었다.
더욱이 ID만큼은 아니어도 상당 한 숫자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도 가능했다.
이러한 데이터들을 보면 신제품 출시 시기가 이번 추수 감사절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G 발표에 맞춰 내려나?"
현재의 무선 통신 규약은 2.5G 정도 수준이다.
내년이면 3G가 나올 때이니 거 기에 맞춰 애플사는 신제품을 낼 것 같았다.
애플의 동향 다음에 나온 것은 바로 오픈 모바일 안드로이드에 참 가하겠다고 신청한 기업들 리스트 였다.
유재원은 IDDC 2002에서 모바
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오픈하 기로 발표했다. 그에 따라 스마트 폰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던 수 많은 기업이 참가를 발표했다.
"역시, 빠지지 않았군."
리스트를 보던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유럽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회사들부터, 일본의 기업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앙숙이라 할 만 한 소니도 참여하겠다고 할 정도다. 당연히 중국의 이상한 회사들도 가 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일성 그룹 역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 다.
예전의 유재원이라면 일성 그룹 이라는 이름에 약간의 심적 동요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복수의 대상 이 태어나지도 못해 버린 탓인 건 지, ID 그룹과 유재원의 지위가 너 무나 탄탄해진 덕인지, 아니면 결 혼을 통해 심적 안정을 찾은 덕인 지 아직 분간은 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이제 유재원에게는 일 성이란 이름이 특별하지 않다는 점 이다.
"일성은 역시 전자 산업에 미련 을 버리진 못하는구나."
대신 일성 그룹이 전자 산업에 보내는 미련과 살아남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는 건 잘 느껴졌다.
스마트폰 시장은 조만간 PC 시 장을 능가할 거대 시장이 된다. PC 와 마찬가지로 3년 정도의 세대 교 체 주기가 있긴 한데, PC보다는 훨 씬 짧은 편이다.
더욱이 100만 원도 넘는 스마트 폰은 동남아시아와 같은 시장에서 도 잘 팔렸다. 8월에 출시된 안드 로이드 S2폰은 동남아시아 정식 발 매는 하지 않았다. 2차 출시국도 아니고 3차 출시국이니 내년은 가 야 정식 발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안드로이드 S2 스마트폰이 등록된 횟수는 수십만에 달한다. 정식 발 매된 나라에 보따리 상인들이 와서 S2폰을 싹쓸이해 간다거나, 주요 밀수품이란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의 효용이 생활에 밀착된 수준은 아니 었음에도 이렇다.
택시나 픽업 자동차를 부르는 앱 도 없었고, 번역 앱도 초보적인 수 준이다. QR코드 역시 ID 그룹에서 보급에 힘쓰고 있지만, 갈 길이 멀 다. 핀테크 역시 N페이라는 이름으 로 출시해서 열심히 보급 중이지만 오프라인은 아직이었다. 마지막으로 중강 현실이나 가상 현실은 꿈의 기술이었다.
대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쓴다는 것 자체로 사람을 다르게 보 이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마치 명 품과 동급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러한 명품력(?)을 객관적 순위 로 표시한다면 안드로이드 S2가 최 상급이었고, 애플의 아이폰들이 뒤 를 따르는 중이다.
그리고 노키아와 블랙베리 같은 제3의 스마트폰 제품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심비안이니 블랙베리 OS 니 하는 자체 운영체제를 탑재한 상 태였다. 완성도나 편의성은 안드로 이드나 애플 모바일 OS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완성도만큼 판매량도 소 수였는데, 그래도 이들 기업은 자체 적인 스마트폰을 만들 수나 있지 다 른 회사들은 그렇지도 못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주어도 스마 트폰 비슷한 걸 만드는 수준에서 그치는 중이다.
"뭐,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 제 보급에 제 돈 내고 힘써 주겠다 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유재원은 생각을 끝내자마자 일 성을 승인 리스트에 옮겨 적었다.
전자 회사를 매각한 일성전자가 어떻게 스마트폰을 생산할 생각인 것인지 유재원은 딱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회귀 전 일성이 만든 갤럭시 시리즈 같은 고품질의 안드 로이드 스마트폰이 나온다면 그걸 로 만족이었다.
"문제는 중국인데."
이미 중국은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의 짝퉁 제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ID 로고에서 I를 L의 소문자 1로 바꿔서 1D로 붙이는 건 애교였다. 알맹이는 2G 기반의 이상한 피처폰 시스템인데 겉만 안드로이드 S2 처럼 만든 물건도 나왔고, 어떤 건 바탕 화면까지도 그대로 복사했으 며, 터치까지 되는 물건도 있었다.
카피한 수준에 따라 가격도 천차 만별이고, 장난감 같은 것에서 전 화 통화가 되는 물건까지 품질도 다양했다.
"이걸 우습게 볼 일은 아니야."
기술의 발전은 우수한 제품을 복 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미 겉으로는 무척이나 비슷해 진 상태였다. 운영체제와 M4 모바일 프로세서, 스토리지인 플래시 메모리칩, 모바일 디스플레이 모듈 은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조잡한 짝 퉁만 나도는 중이었다.
만약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 제가 풀린다면 중국에서는 엄청나 게 그럴듯한 물건이 나올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M4나 플래시 메모리칩, 모바일 디스플레이 모듈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수입해야 할 테지만, 나 머지는 충분히 복제품을 쓸 수 있 었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 청나라 채 권 사태로 화룡점정을 찍은 다음, 중국 당국에서는 지적 재산권을 지 킨다고 생색을 내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그 수준은 유재원이 만 족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겨우 국제 사회에 발표할 몇 개 의 실적을 만들 정도였지, 중국인 들의 지적 사용권 의식이 성장한 건 아니었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은 IT와 같은 첨단 기술을 육성한다면서 천문학 적인 지원금을 뿌리고 있는데, 어설픈 짝퉁을 만드는 기업까지도 지 원 대상에 포함된 걸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렇게 짝퉁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 결국 성공했 다.
스마트폰은 물론 컴퓨터의 부품 까지도 하나둘 자체 개발에 성공했 고, 종국에는 중국산 제품으로만 그럴듯한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운 영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신 대세를 따라가진 못했지."
자체적인 시스템 개발이 너무 늦었다.
이미 전 세계는 안드로이드와 애 플이 양분한 상태였다. 심지어 중 국까지도 말이다. 중국 사람들도 중국 자체적으로 만든 스마트폰은 불편해서 쓰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사이버 라이프를 영 위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는 안드로 이드와 애플에 잔뜩 쌓여 있어서 자체 개발 플랫폼으로 완전히 이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흠, 이번엔 뭐가 더 빠를까?"
중국의 발전 속도나 중국 공산당수뇌부의 의지 등등, 여러모로 조 사해 보고 깊게 파고들어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오겠지만, 언뜻 생각해 봤을 때 그다지 나쁜 결과는 나오 지 않았다.
이미 기술 가속이 크게 이뤄진 상태였다.
즉,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상당 히 벌려 놓은 상태라는 이야기다.
중국이 뒤늦게 이 격차를 따라잡 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투자할 동안 한국이나 미국이 따라올 수 있게 가만 히 기다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당장 유재원만 보더라도 반도체 와 디스플레이에 각각 10조 원씩 신규 투자를 결정했다. 새로운 공 정, 대규모 양산을 위한 공장 건설 을 위한 자금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