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8화
이 자리에서 제일 얼떨떨한 사람 은 카일 소머였다.
공항에서 픽업돼 유재원의 집에 도착하고, 지금까지도 떡 벌어진 입 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카일 소머에 게는 Aeon64까지도 워너비였기 때 문이다.
유재원에 대해 논하기는 입이 아 플 지경이고, 마이크 사장은 그야 말로 현실적인 꿈이었다.
Aeon64까지도 비슷했다. 유즈맵 개발자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 닉네임 Aeon64였던 제레미 폴이었다면, 카일 소머는 이제 겨우 하나 만들었을 뿐이다.
덕분에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이름값이 제일 낮은 사람이 카일 소머이기도 했다.
"카일 소머 씨, 와 주셔서 고마 워요! 날짜를 너무 급하게 잡은 거 같은데, 많이 곤란하셨죠?"
유재원은 그런 카일 소머에게 제 일 먼저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유 회장님이 부르면 누구라도 다 저처럼 했을 겁니다! 게다가 보통 일도 아니고 바로 그일 때문이라면요! 불러주셔서 영광 입니다!"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맙죠.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여기 카일 소머 씨가 바로 워크래프트 2의 고대인 의 방어①efence of the Ancients) 유즈맵을 만든 분이에요."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인 Aeon of Strife에서 시작된 AOS의 바람은 카일 소머의 고대인의 방어 유즈맵 에서 싹을 틔웠다.
라인압박이란 아이디어가 훨씬 더 구체화되었고 워크래프트 2에서 맵 에디터의 자유로운 카메라 설정 을 이용해 쿼터 뷰를 정착시켰다. 또한, 각 진영을 대각선으로 배치 해서 역동성이 더욱 올라갔다.
미니언 처치 시 얻는 경험치로 플레이어 캐릭터의 레벨 업을 이룰 수 있고, 플레이어의 스탯 혹은 스 킬을 업그레이드하고, 자금도 얻어 서 회복이나 스탯을 올리는 아이템 까지 살 수 있다.
무엇보다 5 : 5의 최대 10명의 플 레이어로 AOS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립했다는 게 카일 소머의 놀라운능력이었다.
"제레미 씨가 Aeon으로 보여준 아이디어를 강화했을 뿐입니다."
유재원의 칭찬에 카일 소머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 제레미 폴의 덕이라며 공을 돌리기까지 했 다.
스스로 자기를 자랑하는 것에 거 부감이 없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다만 칭찬과는 별개로 개인이 만 든 것인 만큼, 아직 엉성한 부분은 많이 있었다. 이미 AOS 완성형의 끝을 본 유재원의 눈에는 현재의 유즈맵들은 작은 씨앗 수준이었다. 이걸 제대로 키워 전 세계 게임 시 장을 집어삼킬 거대한 세계수로 만 드는 것이 유재원의 목표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이 거 대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마이크 사장의 매니지먼트 능력!
게임 시스템과 리소스 개발에 천 부적인 감각을 가진 파이어 피스트 게임즈의 개발팀장!
제레미 폴과 카일 소머의 오리지 널 AOS DNA!
멀티 롤 능력자이자 게임 트렌드 를 보는 능력이 특출한 게이브 사 장이 밸런스 담당이다.
마지막으로 유재원 본인의 자본 력과 노하우로 처음부터 완성형인 AOS 게임 개발을 위한 모든 준비 가 끝났다.
"프로젝트 제목은 제가 생각해 둔 게 있어요."
유재원은 그렇게 말하며 i웍스 블레이드 노트북을 조작해 모두가 볼 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 화면 을 띄웠다.
거기엔 '판타지 유니버스 - 레전 드 리그'라는 글자가 압박적으로 박혀 있었다.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제목 후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제목보다 판타지 유니버스 - 레전드 리그라는 제목보다 더 적 합한 것은 찾지 못했다.
비록 몇 년 후 발표될 AOS 게 임의 히트작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부제로 달아 놓았다는 게 살짝 아 쉬운 포인트였다.
하지만 유재원은 그 회사의 인력들도 미리 영입할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지금 모아 놓은 개발진 도 대단하다고 말하겠지만, 유재원 은 아니었다.
AOS의 오리지널리티를 그대로 아우르는 인재 영입으로, 그 어떤 AOS 게임보다 근본력 넘치면서 재 미도 잡는 타이틀을 만들 계획이었 기 때문이다.
AAA급 타이틀을 능가할 규모의 엄청난 프로젝트였기에 대단위 개 발 인력은 필수였다.
"오! 느낌 있습니다!"
마이크 사장이 프로젝터로 띄워진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감탄했다.
다른 이들 역시 수긍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판타지 유니버스 라는 타이틀로 세계관 설명은 끝이 다. 온갖 차원에서 활동하던 히어 로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이유 를 판타지 유니버스에서 이미 보여 줬으니 말이다.
비즈니스적으로 히어로들의 라이 선스 갱신도 쉬워진다. 히어로들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온갖 회사 들과 ID 엔터테인먼트를 단순한 단발성 계약이 아니라 '판타지 유니버 스'와 그 후속작으로 묶은 덕이다.
레전드 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히어로들이 5명씩 팀을 이뤄 팀 전을 펼친다는 걸 부제로부터 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AOS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 아 쉬운 건 Aeon of Strife의 제작자인 제레미였지만, 그렇게 크게 실망하 지도 않았다.
블리자드 게임들은 물론이고 판 타지 유니버스에서까지 AOS 류의 유즈맵은 쏟아지는 중이었기에, 유재원의 설명대로 AOS는 장르를 뜻 하는 단어가 되는 게 더 적합했다.
카일 소머가 만든 고대인의 방어 (Defence of the Ancients), 보통은 줄여서 도타라고 하는 그 유즈맵만 봐도 AOS로부터 한참 발전한 게임 이었다.
"제목은 오픈 베타를 할 때까지 비밀로 하고, 우리끼리는 프로젝트 LL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유는 다 들 아시죠?"
유재원의 물음에 다들 한목소리 로 답했다.
카피캣 정도를 넘어서 산업 스파 이들이 제일 많이 공격하는 게 바 로 ID 그룹이었다.
IT 계열의 특성상 따라하는 게 쉬웠기에 어느 정도 인기가 있다 하면 유사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 다. ID 엔터테인먼트의 차기작이 AOS 게임이라는 게 알려지면 다른 회사들도 우후죽순 AOS 타이틀을 내서 신선함을 희석시킬 거라고 확 신할 수 있다.
"그러면 계속할까요?"
유재원이 준비한 슬라이드는 제목뿐만이 아니었다. 슬라이드를 넘 기자 이번에는 정사각형 형태의 미 니맵이 나타났다.
"히어로들이 전투를 벌이게 될 전 설의 협곡을 살짝 그려 봤습니다."
그림판으로 그린 것처럼 단순한 형태라서 눈에 확 들어오진 않았다.
대신 요소요소 디테일은 확실히 살렸다.
오른쪽 상단의 레드팀, 왼쪽 하 단의 블루팀 진영. 탑, 미드, 바텀 라인. 라인 사이에 오솔길이라는 라인을 넘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들, 라인마다 듬성듬성 자라 있는 갈대밭. 그리고 상점 등등.
그림판 그림이었지만, 거기엔 도 타보다 한 차원 더 발전된 게임 요 소들이 가득했다.
완성형 AOS에서나 볼 수 있던 모 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세상에! 이게 다 뭡니까?"
도타를 만든 카일 소머마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원시적 AOS를 엄청나게 발전시 킨 카일 소머였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도 AOS 게임들을 많이 했거 든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어질 지, 게임이 풍성해질지 생각해 보 니 이런 것들이 나오더군요."
"대단하네요."
유재원이 생각해 둔 아이디어는 엄청났고, 아직 1%도 보여주지 않 았다.
판타지 유니버스-레전드 리그는 가상 현실 버전까지 생각하고 있었 으니 말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가상 현실이 대 중화된 세상이 오더라도 ID 엔터테 인먼트의 위상은 압도적일 것이다.
"무조건 이렇게 가자는 건 아니에 요. 이건 제 생각일 뿐이고, 여러분 들의 의견을 무시할 생각은 없으니 까요.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제시하 거나, 아이디어를 내시면 됩니다."
"아!"
유재원의 말에 마이크 사장이 짧 게 감탄했다.
"그 말씀은 프로젝트 LL에 회장 님도 참가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어진 마이크 사장의 물음에 유 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여러분들을 이 자리 에 모은 사람이 저였다는 거, 벌써 잊으신 거 아니죠? 저도 끝까지 참 여할 겁니다!"
판타지 유니버스-레전드 리그의 근본력을 위해서 제레미와 카일을 데려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몇의 개발자들이 외부 수혈될 것이다.
이들의 능력은 이미 검증이 끝났 지만, 이런 능력자들이 한자리에 있다고 마스터피스가 바로 튀어나 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산으로 가지만 않으면 다 행인데, 그러기 위해선 방향을 제 대로 설정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바로 유재원 본인이었다.
유재원의 목표는 간단했다.
회귀 전보다 더 나은 AOS 게임 을 만드는 것!
어렵게 보이는 일이지만 모두가 함께 뜻을 모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신 분?"
유재원은 마지막으로 자리에 모 인 이들을 하나하나 보며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다음 슬라이드를 보기 전에 계약부터 할까요?"
그럴 줄 알고 유재원은 준비된 계약서를 꺼냈다.
마이크 사장과 게이브 사장은 따 로 계약할 필요가 없지만, 어제까 지만 해도 외부인이었던 제레미와 카일은 정식 계약으로 묶어 둘 필 요가 있었다.
"아! 잠깐!"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받아든 둘은 제법 두툼한 계약서를 다 보 지도 않고 사인하려고 했다.
"끝까지 읽어 보시고 사인하세요!"
그 모습에 유재원은 바로 제지했 고, 둘은 머릴 긁적이며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헉! 연봉이 12만 달러?"
특별히 연봉을 많이 챙겨 준 것 은 아니다. ID 그룹은 이제 주먹구 구식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었고, 직급과 보수에도 시스템이 갖 춰졌다.
초봉 12만 달러라는 건 이례적이 고도 파격적인 액수였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상당한 금액이었 으니 말이다.
ID 그룹에서는 스탠퍼드, MIT, 칼텍 등등의 유명 대학교 출신의 신입이 받는 것보다 더 높았다. 이 들의 경우엔 10만 달러 선에서 정 해졌으니 말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신입들에게 그 렇게 많이 퍼주면 남는 게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보통은 이제 막 창업한 벤처 기 업의 사장들이나 대기업 임원들이 그랬다.
답은 당연히 '남는다'였다. 그것 도 '엄청나게' 말이다.
현재 ID 그룹의 재무 상황을 보 자면 마진 항목은 아직도 높았다.
ID 일렉트로닉스와 ID 디스플레 이라는 제조업을 갖추고 있었지만, IT 기업의 본질은 여전했다.
인건비 항목으로 비용 처리를 많이 하지 않으면 세금만 늘어난다.
차라리 파격적인 대우로 우수한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게 남는 장사였다.
더욱이 ID 그룹의 개발직들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과제들이었다. 운영 체제 개 발, 완벽한 보안, 협력사들의 각종 문제 해결 등등.
유재원이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를 처음 만들 때부터 미래 지식을 활용해 수준을 높여 놓은 탓에, 이 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의 수 준도 높아졌다.
덕분에 우수한 두뇌의 수요는 더 욱 늘어났는데, 이들을 ID 그룹으 로 데려오는 데에는 높은 보수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제레미와 카일 역시 특별한 두뇌 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스탠퍼드나 칼텍 출신 의 신입 직원보다 20%는 더 높은 보수를 제시했다.
물론 이 둘에겐 20%의 프리미엄 을 받을 이유가 충분했다.
이렇게나 파격적인 연봉으로 시 작하는 대신 지켜야 할 조건들도 제법 빡빡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가장 크고 굵직한 글자로 강조된 사안은 바로 보안 서약이었다.
ID 그룹이 다루는 기술들은 시대 를 앞선 것이 많았고, 이를 노리는 사람들은 엄청났다. 이들에 대한 경계는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실제 ID 그룹에서 이뤄지는 감사 업무 중 가장 비중이 크고, 처벌도 확실한 것이 기술 유출이었다.
신입에게도 돈을 많이 주는 만큼 완벽한 보안 의식을 요구했고, 그것 들은 모두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좋습니다!"
계약서를 끝까지 확인한 둘은 시 원스레 사인했다.
"자, 그럼 이것으로 테스크포스 팀의 구성이 끝났네요! 어디 한 번 게이머들을 폭발시켜 봅시다!"
유재원의 선언에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