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21화
치고 나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규모 설비 투자다. 중국이 나중 에 대국굴기니, 반도체굴기니 하면 서 따라오려고 할 때, 치킨게임으 로 말려 죽여 버리는 것이 가장 확 실한 방법이니 말이다.
"각각 10조 원이면 되겠지?"
이젠 조 단위 자금도 거침없이 언급하는 유재원이었다.
재미있는 건, 돈의 규모가 거대 해질수록 투자할 분야도 적어진다 는 점이다. 단적으로 제과 산업 같 은 곳이라면 10조 원을 투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반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는 10 조 원 투자도 거뜬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는 생산 시 설 건설에 워낙 큰돈이 들어간다. 대신 10조 원 투자해 20, 30조 벌 어들이는 산업이 반도체였다.
사인 두 번으로 20조 원을 쓴 유 재원은 새로운 문서를 꺼냈다.
이번에 작성한 문서가 수신될 곳 은 바로 ID 파운데이션이었다. 매 년 순수익의 일부를 ID 파운데이션 에 기부하는 유재원이지만, 지금처럼 대박이 터지면 통 크게 기부하 기도 했다.
유재원은 이번에도 수익금과는 별도의 특별 기부를 할 생각이었다. 대신 기존의 기부금은 사용처를 ID 파운데이션에서 정했는데, 이번에는 기부금에 사용처를 명시할 생각이 었다.
이번에 강조될 사용처는 바로 수 익성, 혹은 성공 가능성이 낮아 지 원이 부족한 연구 과제에 대한 지 원이었다.
말라리아, 에볼라, 각종 희소 질환 치료제 개발과 기초 과학 분야 연구 후원을 적시했다.
"아 참! 문과도 빠지면 안 되 지!"
유재원은 문서 마지막에 가서 인 문과 사회, 경제 그리고 역사학을 급하게 추가했다.
그나마 투자라도 들어오는 이과 에 비하면 인문학의 경우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했으니 말이다.
특히 역사학의 경우가 심각했는 데 대한민국에서 일본인보다 더 일 본인을 따르는 역사학 논문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그게 다 돈 때 문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문제는 내용이다.
지금 중국 돌아가는 꼴을 보면 동북 공정은 무조건 추진될 것이고, 혹역사를 지우고 새 역사를 쓰고 싶은 일본에서는 식민지 수혜론 따 위를 주장했으니 말이다.
그 꼴을 두 번 보고 싶지 않은 유재원은 아주 굵은 글씨로 강조를 했다.
"다 됐나? 음, 빼먹은 게 있는 거 같은데."
모니터에 뜬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던 유재원은 짧은 감탄 소리와 함께 DNA 분석 기술이라는 아이템도 적었다.
띵
그렇게 열심히 돈 쓸 구석을 만 들던 유재원의 스마트폰이 알람을 울렸다. 앨런 슈미트 ID 테크놀로 지 사장이었다.
-회장님, 드디어 커뮤니티 가이 드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아, 커뮤니티 가이드!"
올해 초였나?
유재원은 ID 그룹의 전체 인터넷 정책에 적용할 최종 사용자 약관을 만들도록 앨런 사장에게 지시했다. 법조인 출신인 앨런 사장은 ID 테 크놀로지 사장이 되기 전에 법조팀 에서 활약했기에 아주 적합한 임무 였다.
그런데 지시를 내린 지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는데,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했던 앨런 사장이 드디어 오늘 초고를 업로드한 것이다.
커뮤니티 가이드라고 이름은 거 창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관이 라고 해도 무방했다.
다만 기존의 약관에는 두루뭉술 하게 넘어갔던 사용자, 콘텐츠 공 급자들의 인터넷 사용에 대한 규적 이 대대적으로 구체화되었다는 게 차이였다.
사용자들, 혹은 콘텐츠 공급자들이 올리는 콘텐츠나 리플, 게시글 등등에서 사회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에는 접근을 제한하고, 수 익 창출을 최소화해서 자체 정화 작업을 강화한다는 것이 커뮤니티 가이드의 목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인터넷은 유재원이 보기에도 문제가 많았다.
일단 인터넷의 보급이 너무나 빨 랐다. 인터넷에 대한 사회적 규정 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순식 간에 브로드밴드 인터넷이 전 세계 에 깔렸다.
인터넷의 역사가 시작된 극초반 에는 인터넷이 마치 해방구가 된 것처럼, 불법 자료들이 범람했고 뭐든 무료로 다 이용할 수 있는 것 처럼 알려지기도 했다.
유재원이 욕먹을 각오하고 불법 자료를 공유하는 와레즈 사이트들 을 고소하고, 와레즈 사이트의 업 로드 트래픽에 비례해 무지막지한 배상금을 청구하면서 좀 나아지긴 했다.
지금은 스팀을 비롯해 저렴하고 간편하게 정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불법 자료 유통 에 대해선 상당한 정화가 이뤄졌다.
대신 아직 크게 손을 대지 못한 것은 바로 인터넷 콘텐츠였다.
넥스트컴을 비롯한 사이트에 유 료 콘텐츠를 공급하는 업체들이라 면 좀 나았다. 이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100% 완벽한 건 아니었다.
일반 유저들은 좀 심각했다.
2CH.COM만 보더라도 관리자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온갖 문제의 글이나 사진들이 도배가 되니 말이 다. 짤방이랍시고 올라오는 것들이 성적인 것이나 폭력적인 것, 자극 적인 것들로 판을 쳤다.
게시판끼리 전쟁이 나기라도 하 면 그 경향은 심해졌다. 종합 커뮤 니티 사이트의 특징 중 하나가 게 시판마다 우호, 적대적 분위기가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었지만, 전쟁이라 도 나면 서로의 게시판에 달려가 끔찍한 짤방을 써서 먹통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요즘은 그 오그리쉬 닷컴의 끔 찍한 사진을 쓰는 게 유행이라고 했지?"
이름만 들어도 들어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사이트였다. 각종 사고 영상, 특히 사망 사고 영상을 모자 이크도 없이 그대로 올리는 사이트 였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동영상뿐만이 아니라 단순한 메시지도 문제가 될 내용들 이 상당했다.
이를테면 현실의 왕따가 사이버왕따로 이어지기도 했고, 증오의 표현이 가득한 메시지도 상당했으 니 말이다.
한국이라면 바로 차단해 버릴 사 이트였지만, 표현의 자유가 강한 미국에서는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 었다.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가 있다 보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글을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 관리자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 온 게 바로 유재원의 모니터에 뜬 커뮤니티 가이드였다.
커뮤니티 가이드에 동의하는 사 람만이 ID 그룹의 인터넷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 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이들이 문제가 되 는 행동을 했을 때, 확실한 조치를 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음-! 괜찮은데?"
유재원은 꼼꼼하게 초안을 살폈 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역시 앨런 사장이라는 말도 절로 나왔다. 커뮤니티 가이드의 문구는 깔끔했고 논란의 여지도 없었다.
또한, 나라마다 현지화를 조금씩 은 해야겠지만, 웬만한 나라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 만큼 범용적이기 도 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커뮤니 티 가이드 위반 유저와 법적 분쟁 이 붙었을 때도 문제없을 거라는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명 시된 권리였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인격권까지 무시하라고 만든 건 아 니었다.
지금이야 SNS나 파워 블로그가
사용자들의 수익 창출과 직결되지 않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유재원이 나서지 않더라도 SNS 에서의 인기를 이용한 수익 창출 방법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러면 팔로워 숫자를 늘리려고 사고를 치 는 사람들이 등장할 게 분명했다.
나중에 큰 문제로 비화되어 집중 포화를 맞는 것보다는 지금 만들어 놓는 게 확실한 선제적 대응이었다.
더욱이 이번에 나온 초안은 앨런사장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 그룹 의 법조팀 그리고 미국의 거대 법 무 법인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었다.
기억의 궁전에 담아온 회귀 전 인터넷 기업들의 커뮤니티 가이드 를 굳이 꺼낼 필요가 없을 만큼 이 번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았다.
겸손한 앨런 사장은 초안이라 했 지만, 이대로 확정해도 무리가 없 을 정도다.
"2CH.COM에 당장 적용해야겠 다."
유재원은 행동이 빨랐다.
퀄리티가 괜찮으니 곧장 시행하 는 것이다. 대신 전면 시행은 아닌 2CH.COM에서만 시행이다.
2CH.COM만큼 새로운 인터넷 기술이나 정책을 시험해 보기 좋은 사이트는 없었다.
이메일 주소 하나면 가입이 되 고, 설사 가입하지 않아도 익명으 로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2CH.COM이었다.
그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엄 청나게 접속해 하루에도 수백만 건 의 글을 올리는 세계 최대의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반응은 즉각 전해질 테니, 피드 백을 받은 후 전면 시행을 하면 딱 이다.
"투명성 보고서와 커뮤니티 가이 드면 그 어떤 논란에서도 우리 그 룹은 피해 갈 수 있겠지."
유재원은 부푼 기대감을 품으며 통합 전산망에 로그인해 커뮤니티 가이드 초안을 불러온 후 승인 버 튼을 꾹 눌렀다.
-ID 테크놀로지 기업 공개로 이 뤄낸 대규모 자본 행방에 모두가 주목!
-NBC 인수로 공격적 확장에 나 서는 유재원 회장!
-대규모 콘텐츠 확보 다음은? 이번엔 프리미어리그다!
-그룹 관계자, 리그 중계권 확보 는 물론 축구 클럽 인수까지 다양 한 가능성 열려 있어.
ID 그룹이 커뮤니티 가이드 도입 으로 내부적 혁신을 이루고 있을 때, 언론들은 프리미어리그와 축구 클럽 인수에 대해 주목했다.
의외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 다. 특히 NBC 내부에서도 군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실 NBC 내 부에서 판단한 몰락의 단초는 선데 이나잇 풋볼이라는 미식축구 NFL 중계권 갱신 실패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9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NFL
중계권이었는데, NBC 는 1998년 안타깝게 놓치고 말았다. 방심한 NBC 였고, ESPN의 과감한 베팅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후 시청률 그래프를 보면 NBC는 하락을 시 작했고. ESPN은 치솟아 오르기 시 작했다.
다시 NFL 중계권을 찾아오려면 앞으로 4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 긴 시간을 놀리느니 차라리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하는 것도 나 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축구팀 인수는 무리하는 거아니냐는 의견이 많이 나왔지만, 개인 돈으로 하는 것이라 ID 그룹 식구들이 뭐라고 말할 사안은 아니 었다.
"회장님, 복귀 신고 드립니다."
최근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웠던 김대석이 오랜만에 유재원 앞에 나 타났다.
"영국 여행은 즐거웠나요?"
"예! 이색적인 구경거리가 참 많 더군요. 날씨가 도와줬다면 더 즐 거운 여행이었을 텐데, 비가 너무 자주 오더군요."
김대석의 영국행은 휴가는 아니 었다. 유재원의 지시로 다녀오게 된 것인데, 대신 측근이라는 점을 배려해 가족이 다 같이 다녀올 수 있도록 했다.
"여기 매각 의사를 보였거나, 관 심을 보인 클럽팀의 리스트입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이 바로 김대석 에게 준 임무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인수를 위한 사전 조 사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했던 일에 비하면 상당 히 여유로운 일이었다. 덕분에 김 대석은 아내인 오현지와 아들들과 함께 영국에 가서 남편이자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영국에 간 원래의 목적 에 대해서 절대 잊지 않았고 프리 미어리그의 다양한 팀들과 접촉해 구매 의사를 타진하고, 프리미어리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 해 왔다.
"어디 볼까요?"
문서 파일은 제법 용량이 컸다.
3MB가 넘는 용량이라 분량이 어마어마할 것 같이 보였다. 다행 히 A4용지 기준으로는 많은 장수 를 자랑하진 않았다.
용량만 보면 수백 페이지는 될 것 같았는데, 20장 정도에 불과했 다. 그런데도 이렇게 용량이 큰 것 은 첨부된 이미지 때문이었다.
접촉한 팀의 스텝과 선수들의 얼 굴이 사진으로 정리가 되어 있었고, 남은 계약 기간을 비롯해 선수들의 특기와 성격 등등의 정보도 담겨 있었다.
"와, 보고서 수준이 기대 이상인 데요?"
"구단들이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 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들어간 보 고서였다.
덕분에 유재원은 마치 풋볼 매니 저 게임을 시작하면서 팀을 고를 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