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13화
NBC 인수에 관해 전권을 부여 했던 테드 터너로부터 연락이 온 건 어제였다.
-330억!
마치 요즘은 숫자로 짧게 말하는 게 유행이 된 것 같았다. 유재원이
"터너 아저씨."
하고 말하자마자 330억이란 숫자를 자랑스레 부르는 테드 터너였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게 말해도 유재원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NBC의 최종 인수 가격이 330억
달러로 확정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최대 400억 달러까지 생각하고 있 었던 유재원이었으니, 테드 터너는 70억 달러나 후려쳤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흐흐,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테드 터너는 악당처럼 웃으며 어 떻게 후려칠 수 있었는지 술술 풀 기 시작했다.
-입찰 경쟁자가 사라지면 당연히 가격 경쟁도 사라질 것 아니겠나? 유니버설-GE 컨소시엄이 박살 났 는데, 본전 생각이나 하는 바보들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었지.
역시 악당이었다.
결과적으로 테드 터너의 악당 짓 은 유재원에겐 큰 이익으로 돌아왔 다. 100조 원에 달하는 현금이 있 는 유재원이지만, 그래도 70억 달 러는 큰돈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돈이 나갈 구석도 상당한데, 70억 달러라면 그중에 몇 가지 구멍은 메울 수 있는 액수 이기도 했다.
"인센티브 기대하셔도 좋아요."
-어이쿠, 그렇게 말하면 이 몸이 돈만 보고 NBC를 후려친 것 같지 않은가. 타임워너 넥스트컴을 위한 애사심과 자네를 위하는 마음이었 단 말일세. 자네 덕에 요즘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인센티브란 말은 하지 말게.
실제로 테드 터너는 요즘 제2의 전성시대를 즐기는 중이었다.
앙숙인 머독은 영국에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어마어마한 변호인 단을 꾸렸지만, 실형은 피하지 못 할 거라는 이야기가 확실했다.
게다가 머독의 아들 라클란이 강 제로 계승한 뉴스콥의 여러 채널들 은 시청률이 추락 중이었다.
새롭게 뉴스콥의 수장에 오른 라 클란은 세계의 신문 스캔들로 얻은 교훈이라며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 하기로 하고, 뉴스콥이 거느린 모 든 채널과 신문에 대한 자체 조사 도 벌이기로 했다. 그러자 자극적 인 맛으로 보던 폭스 뉴스가 밋밋 해져 버렸다.
폭스 뉴스를 보던 이들의 정치 성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채널은 돌아갔다. 그리고 거 대한 채널을 가진 타임워너 넥스트 컴도 그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는 중이기도 했다.
" 진짜요?"
유재원은 반색하며 되물었다.
-허허, 농담이야. 적당히만 챙겨 주게.
그제야 테드 터너의 본심도 나왔 다.
하여튼, 70억 달러나 절약했기에 모두가 즐거운 결과였다.
반면 NBC의 주주들에겐 뼈아픈 타격이겠지만, 그래도 현재의 NBC 주가를 따져 보면 상당한 이익이었 다. 100%가 넘는 인수 프리미엄이 주어지니 말이다.
-하여튼 NBC 이사회는 지금 몸 이 달은 상태라네. 하루가 지날 때 마다 호가가 떨어진다고 말이야. 아마 사인하자고 서울로 부르면 당 장 달려갈 걸세.
테드 터너의 말에 유재원은 혹했 다. 한창 즐거울 때 미국으로 가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곧 바뀌었다. 서 울의 ID 글로벌 헤드쿼터 빌딩에서 서명식을 하는 것보다는 NBC 로 고가 크게 걸린 NBC 본사에서 하 는 게 훨씬 임팩트가 넘치는 그림 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유재원 부부는 미국에 다 녀오기로 한 것이다.
"북한 건은 어떻게 됐어요?"
"아, 언제 물어보나 했는데, 지금 이군."
유재원의 미국행에는 동행이 더 있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자 대 북 특사였다. 요즘 홍길동처럼 동 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존재감 을 과시하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 지역에서의 연합군 유해 수습에 큰 관심을 보이는 중 이었다. 군인에 대한 예우가 남다 른 미국이었고, 정책 차원에서도 늘 신경을 쓰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911 테러 이후로 미국에서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에 힘을 쓰고 있었다.
6.25가 미국에선 이제껏 잊힌 전 쟁이란 별칭이 붙을 만큼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새 롭게 부각되는 중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6명이나 되는 납북자를 송환 받 으면서 대대적인 행사도 이뤄졌다. 그와 함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북송이 즉각 결정되기도 했다.
북한과의 종전으로 인해 비전향 장기수라는 애매한 존재는 전쟁 포로로 아이덴티티가 확실해졌다.
그리하여 전쟁 포로 교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중이었는데, 지금은 남북 모두 2002 월드컵에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어서 아직 구체적 논의 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6명을 먼저 돌려받 았으니, 비전향 장기수 6명을 돌려 보내기로 결정이 된 것이다. 보통 이면 정치권에서 제법 큰 논란이 있을 법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큰 반대 없이 확정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자민당이 아전 인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중이었다.
납북자를 돌려받게 된 건 그동안 자민당이 북한과 미국에 꾸준히 문 제 제기를 한 덕이며, 이번 4명의 귀환은 시작에 불과하고, 수백 명 의 납북 일본인 모두가 돌아올 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동시에 클린턴 특사에 대한 영웅 만들기도 본격적이었다.
"일본 때문에 난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다시 정치를 할 것도 아닌 클린 턴에겐 난감한 일이었다. 실제로 클린턴은 본인이 먼저 납북자 문제 를 꺼낸 것도 아니었고, 북한 측에 서 먼저 준비했던 일이니 말이다.
"원래 일본이 좀 그래요."
일본에 대해 많은 걸 안다고 자 부할 수 있는 유재원은 클린턴의 푸념에 적극 공감해 주었다. 그렇 게 주변에 대해 한참 이야기한 다 음에 본론이 나왔다.
"북한은 광명성 계획이라는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이더군. 우주의 평화적 권 리는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 것이 지만, 북한이란 나라는 아니기에 우리로서는 껄끄러운 일이지. 그렇 다고 독재자의 마음을 마음대로 꺾 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레짐 체 인지는 더 어려운 일이니 워싱턴은 북한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플 거 야."
"그건 그렇죠."
이번에도 유재원은 클린턴의 말 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에게 좋은 아 이디어가 있거든요. 공동 개발이요."
유재원이 꺼낸 아이디어란 바로 공구였다.
"북한을 상대로 한국만큼 확실한 카드는 없죠. 게다가 한국도 우주 개발은 백지상태거든요. 그래서 러 시아와 협력해 나로호 계획을 만들 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북한도 공 동으로 발사체 개발을 하면 여러모 로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러시아 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한국이 참 여하는 거니 껄끄러움도 덜할 거고요."
"아! 그거 괜찮군."
유재원의 아이디어에 클린턴이 바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클린턴의 내공도 상당했기에 공 동 개발에 담긴 의미를 바로 파악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동 개발을 명목으로 북한의 로켓 기술 과학자 들의 리스트도 뽑아 볼 수 있고, 로켓 기술의 수준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북한에서 거부한다면 이를 빌미 로 우주 개발에 대한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걸 의심할 수 있는 카 드이기도 했다.
변수는 러시아지만, 이제 러시아 는 미국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나 라였다. 모라토리엄 이후 아직도 골골대고 있는 러시아는 과거의 영 광을 되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으니 말이다.
"워싱턴 DC에 다시 가면 잘 전 해 주도록 하지."
클린턴 역시 괜찮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는지 첨언까지 곁들였다.
"네, 잘 부탁해요."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좋은 것 이니 유재원도 부탁한다는 말로 마 무리했다.
다만 나로호 개발 계획에 북한을 참가시킨다는 건 아직 한국에 전하 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게 조금 걸 리긴 했다.
그렇지만 본인이 아는 김대중 대 통령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거 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매우 편안한 마 음으로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다음날.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동 서로 5번가의 복합 건물 단지. 풀 어 쓰자면 긴 주소였지만 뉴요커에 겐 짧은 단어 하나면 충분했다.
록펠러 센터라고 말이다.
NBC의 본사가 자리한 곳이기도 했고, 유재원이 오늘 NBC 인수 계 약서에 사인하는 자리도 바로 여기 록펠러 센터다.
건물의 이름처럼 석유 재벌 록펠 러 2세가 지은 건물로 1939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건물의 주인들은 많이 바뀌었다.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가 정점을 찍던 시절에는 미쓰비시가 2,200억 엔에 매수하기 도 했다. 하지만 거품 경제 붕괴 이후 바로 매물로 나왔고, 이후 여 러 사람의 손을 거쳤다.
그렇다고 NBC 소유의 건물은 아니었다. NBC는 단지 임대 계약 으로 입주한 상태였고, 어제까지는 그 주인이 GE였다.
오늘부터는?
당연히 유재원이다.
NBC 인수를 하면서 록펠러 빌 딩까지도 같이 사 버렸다. 요즘 GE의 경영 실적은 날로 악화일로 였고, NBC 인수전에서도 머독 때 문에 독박을 쓰면서 주가는 더욱 떨어지는 중이었다.
록펠러 빌딩도 유동성 확보를 위 해 2년 전쯤부터 매물로 거론되던 빌딩이었는데, 살 만한 사람이 안 나타나 팔지 못하던 상태였다.
"서명하겠습니다."
서명식은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NBC 이사회 의장과 함께 하는 330억 달러짜리 계약서 였고, 두 번째는 GE의 CEO와 하 는 33억 달러짜리 록펠러 센터 매 매 계약이었다.
간단한 기념 촬영이 있었고, 그 와 함께 잔금도 즉각 치러졌다. ID 그룹의 법무팀이 외부의 거대한 법 무 법인을 끼고 정밀한 실사 작업 도 하면서 꼼꼼하게 만들어진 계약 서였기에 시간을 오래 끌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거래를 마치고서 유재원 은 록펠러 센터의 스카이라운지에 올랐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내려 다보는 유재원의 표정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무슨 생각해?"
유재원의 팔짱을 끼고 있던 티파 니도 처음 보는 표정이라 조심스럽 게 물었다.
"오래전, 미국에서 사업을 막 시 작할 때, 헤리티지 재단의 초청으 로 뉴욕에 온 적이 있었거든. 그때 기억이 좀 났어."
그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스 카이라인에 올라 뉴욕의 마천루들 을 바라보며, 저 중에 하나는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 었던 기억이었다.
10년쯤 지난 오늘 비로소 이루어 냈다.
사실 유재원이 마천루 몇 개 산 다는 마음만 먹었으면 진작에 사고 도 남았을 테지만, 아무런 부담 없 이, 마치 부루마블 게임에서 주사 위 돌려 얻은 땅에 빌딩을 올리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증 사진 하나 찍을까?"
"응!"
티파니의 경쾌한 대답에 유재원은 안주머니에서 안드로이드폰을 꺼냈 다. 그리곤 렌즈 모양 아이콘을 눌 러 사진 앱을 실행해 적당히 구도를 잡았다.
본인과 티파니의 얼굴을 중심에 놓고, 록펠러 센터 옥상에 걸린 NBC 방송국의 공작새 로고도 확실 히 보이는 사진을 한 장을 남겼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톡톡을 실행 해 짧은 단어 하나를 쓰고 사진도 업로드했다.
-Welcome!
NBC 인수 계약서에 사인을 했 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 었으니 긴말은 필요 없었다.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검색어에 잘 걸리도록 하는 해시태그가 없었 음에도 세계 3위 팔로워를 자랑하 는 덕에 수없는 리톡이 시작됐다.
띵
티파니와 인증 샷 한 방을 남겼 으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데,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이 울렸다.
ID톡이 온 것이다. 그런데 발신 인은 참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응? 게이브로부터 선톡은 오랜 만인데."
"게이브 사장님? 아, 스팀?"
게임을 좋아하는 티파니였던 만큼, 게이브라는 이름에 바로 스팀 을 떠올렸다.
"응!"
정답이다. 안드로이드사에 있다 가 온라인 소프트웨어 유통 시스템 인 스팀의 사장으로 승진한 게이브 뉴웰의 긴급한 ID톡이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더욱이 ID톡 메시지는 시작부터 사과였다.
"무슨 일인데요? 자세히 말해 봐요"
유재원도 다급하게 물었다.
게이브 뉴웰이 큰일이 났다고 한 다면, 꽤나 심각한 일일 테니 말이 다.
스팀에서 제작 중이던 게임들이 엎어졌나? 아니면 해킹이라도 당해 서 상당량의 데이터가 유출이라도 되었나?
더욱이 회귀 전에도 스팀은 개발 중이던 게임 데이터를 도난당해 게 임 출시일이 1년은 더 늦춰진 사건 도 있었다.
-사고가 났습니다.
"설마 해킹이에요?"
지금은 그룹의 모든 시스템을 하 나로 통합했고, 그만큼 강력한 방 화벽이 모든 계열사에 공통으로 제 공되면서 보안성이 대폭 강화된 상 태였다. 중국의 사이버 전쟁에서도 뚫리지 않았던 방화벽이었는데 이 게 뚫렸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앗! 그런 종류의 사고는 아닙니 다. 2002 월드컵 이벤트로 만든 쿠 폰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습 니다! 이대로 두었다간 천문학적인 손실금이 발생하게 됩니다.
게이브 사장이 말한 이벤트 쿠폰이란 소리아팀이 승리할 때마다 10%씩 할인율이 올라가는 그 쿠폰 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치명 적 결함이라니?
-이벤트 쿠폰은 단일 상품에만 적용되어야 하는데, 장바구니 전체 에 적용되는 겁니다! 프로그램이나 게임을 수십 개씩 넣고 쿠폰을 적 용하면 전체 금액에 할인이 들어가 서 할인 금액이 수백, 수천 달러를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지금은 30% 할인율인데도 이 런 상황입니다. 게다가 2CH.com과 같은 커뮤니티에 꼼수를 쓰는 법이 알려지면서 쿠폰 발급량이 무섭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쿠 폰 이벤트로 잡아 놓은 300만 달러 의 예산은 순식간에 바닥납니다!
게이브 사장의 말은 무척이나 다 급했다.
유재원은 쿠폰에 무슨 문제가 있 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게이브 사 장처럼 다급함이 전달되진 않았다.
오히려 유재원에게는 이거 재미 있는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