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11화
미국의 특징 중 하나가 행운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가볼 로또 당첨자들은 자기 덩 치만큼 커다란 수표와 함께 기념사 진을 찍는 게 전통이 되었을 정도 다.
청나라 로또 당첨자들 역시 마찬 가지였다.
-톡톡, 오늘의 최다 리트윗, 청 나라 로또!
더욱이 지금은 SNS라는 간편한 도구까지도 있는 상태였다.
#땡큐차이나라는 해시태그를 달 고서 각종 명품, 스포츠카를 자랑 하는 이들이 갑자기 부쩍 늘어난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9자리 수, 혹은 10자리 수에 달하 는 계좌를 인증하는 사람까지 생겼 다.
톡톡의 팔로워 숫자는 사이버 세 상에서의 존재감을 의미했다.
팔로워를 늘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었기에, 자발적으로 본인들의 행운을 과시하는 데 망설 이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도 넘는 부의 과시, 범죄 표적 될 수도.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SNS에 올린 개인 정보로 인해 범죄자들의 목표가 될 수도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보다는 SNS의 스타가 되는 게 훨씬 더 즐 거운 일이었다.
청나라 로또 당첨을 인증하는 것 은 SNS 상에서 하나의 유행으로 번졌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커다 란 흐름이었다.
"대한민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 다."
"네, 고마워요."
티파니의 한국 입국 심사는 가벼 운 질문 몇 가지로 간단하게 통과 되었다.
미국 여권에 한국인 남편의 존재 가 표시되어 있고, 별다른 짐도 없 었기에 가볍게 끝났다.
입국 심사장 출구를 넘어선 티파 니는 큰 눈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마중 나온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가 티파니의 눈이 크게 떠 졌다.
"재원아!"
연락을 받기로는 비서실장인 미 스터 김이 나와 있을 거라고 연락 을 받았는데, 입국장 게이트 앞에 는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남편인 유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한달음에 남편 에게 달려가 안겼다.
바빠서 공항 픽업까진 못할 것 같다고 해놓고 나와서 기다리는 작 은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그런데 티파니의 커다란 반응에 유재원은 양심의 가책을 살짝 느꼈 다. 잠깐 티파니와 떨어져 있게 되 었을 때, 너무 좋아했던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뜨거운 포옹으로 그리움을 달랜 둘은 곧 준비된 자동차에 올라 서 울 집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을 하는 시간에도 둘 이서 잡은 손은 놓지 않았고, 이야기도 끝이 없었다.
안부로 시작했던 대화는, 티파니 가 셰브롱에서 주도했던 텍사코 인 수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인수 작업은 잘 끝났어?"
"응! 자기 도움 덕에 술술 풀렸 어."
텍사코 인수에 성공한 셰브롱은 세계 석유 메이저 업계의 2위 그룹 에 안착했다.
1등이야 변함없이 엑슨모빌이지 만, 이제 2등을 놓고 로열 더치 셸이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컴퍼니 와 경쟁이 가능해졌다.
다만 힘을 숨기고 있는 아람코를 포함한다면 셰브롱의 순위는 한 단 계 더 밑으로 내려오겠지만, 그래 도 지금은 아람코의 존재감이 옅을 때였다.
게다가 텍사코에는 아람코의 지 분도 상당수 있었다.
아람코는 현재 비상장 상태였고, 존재감도 약했기에 텍사코가 보유 한 아람코의 주식 가치도 그다지 크게 계산되진 않았다.
하지만 아람코 상장 이후에는 지 분 가치 역시 재평가될 것이고 셰 브롱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일을 해 보니 어때?"
"진행할 때는 하루하루가 힘들었 는데, 끝나고 나니 만족감이 엄청 났어. 피곤하다면서도 일에서 손을 못 놓는 자기를 보고 이해가 안 됐 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아. 성 취감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고."
티파니의 말 그대로였다.
샌프란시스코 집에서 유재원이 서재에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으면 티파니는 고양이처럼 다가 와 휴식을 강요했다.
그러다가 본인이 직접 셰브롱과 텍사코의 합병이라는 거대한 프로 젝트를 담당하면서, 큰일을 이뤄냈 을 때의 성취감을 알게 되었다.
셰브롱이라는 갑의 입장에서 이뤄 낸 것이니, 난이도를 따진다면 그다 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티파니 에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 고 상상 그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그래도 과로는 안 돼!"
"물론이지."
"치, 대답은 참 잘하네."
티파니의 반응처럼 장담은 못 한 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재원이 회사 일에 몰입하는 건 티파니가 말했던 성취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동력은 회귀 전 실패의 쓰라 린 기억이었다.
지금 유재원이 이뤄낸 성과를 보 자면 남부러울 것 없는 큰 성공이 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요즘 중국산 로또가 유행인 거 알아? 자기도 가지고 있 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마나 됐어?"
중요한 이야기를 끝내니, 대화의 무게감이 대폭 가벼워졌다.
티파니도 SNS를 열심히 하는 사 람이었고, 자연스럽게 청나라 채권 도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유재원은 간단히 오른 쪽 손가락 4개를 펼쳐 보였다.
"사……억, 아니! 사십 억?!"
티파니는 유재원의 표정을 살피 며 숫자를 부르다가 부족한 것 같아 확 올렸다.
그렇지만 그것도 유재원의 스케 일에는 부족한 숫자였다.
"400."
"에? 사백억이라고?"
40도 대단한 액수였는데, 유재원 에게는 0을 하나 더 붙여야 했다.
티파니네 집안도 미국에서 꽤나 잘 나가는 집안이라 큰돈이 많이 움직이는 걸 보았지만, 400억 달러 는 차원이 다른 액수였다.
"세상에! 그런데 자기는 ID 테크놀로지 상장도 있잖아!"
거기에 ID 테크놀로지의 상장 건 에 대해서도 남보다 훨씬 많은 정 보를 공유하는 티파니였다.
새삼스럽게 본인의 남편이 얼마 나 막강한 재력을 가졌는지 상기되 자 놀라움은 배가 되었다.
그러다가 티파니는 문뜩 떠오르 는 기억이 있었다.
"와, 요즘 차이나 로또라고 난리 였는데, 자기한테는 새 발의 피였 네'?"
"차이나 로또?"
유재원이 차이나 로또에 대해 모 르는 듯하자 티파니는 바로 본인의 안드로이드폰을 꺼내 어떤 앱을 실 행한 다음 유재원에게 내밀었다.
뭔가 하고 보니 대표 SNS 앱인 톡톡이 었다.
"며칠 전부터 이게 실시간 검색 어로 대박이 터졌어. 한 번 올리면 리톡이 기본으로 수천 번은 이뤄진 다니까."
티파니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거기엔 땡큐 차이나라는 해시태 그로 검색된 결과물이 가득했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검색 결과 숫자가 수십만 건이 넘었다.
넥스트컴만 주로 하다 보니 톡톡 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생각 이상 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호오?."
동시에 유재원 역시나 강한 호기 심이 생겼다.
"나도 해 볼까?"
사실 유재원에겐 부를 과시하는것은 뭔가 좀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차이나 로또라는 태그 와 함께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니 본인이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머니 스웩이라고 올리는 것들을 보니 한정판 신발이 나 고급 시계가 많이 보였고, 더 나아가면 자동차나 스포츠카를 사 서 자랑하는 정도에 불과했던 탓이 다.
머니 스웩이 단순한 개인적인 만 족감이나 자랑에서 한발 더 나아갈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훨씬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확실히 내가 하면 이보다 잘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진짜? 그럼 자기도 해 보려고?"
"응!"
여러 가지 생각들을 따져 보던 유재원도 한 번 참여해 보기로 마 음을 먹었다.
"그러면 내일부터 시작해 볼까?"
행동력이 언제나 가득 넘치는 유재원은 마음을 정하자마자 본격적 으로 나서기로 했다.
내일 행사는 바로 2002 월드컵 의 D조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소리아 팀과 미국의 경기였다.
경기도 군부대에서 한국 군인들 과 주한 미군의 응원전 이벤트였다.
여기에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도 함께하기로 하면서 판이 커졌는데, 더욱 큰 판으로 키우는 건 전혀 어 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늘은 특별한 응원전을 준비했 습니다!
유재원은 초여름의 보랏빛 석양 이 질 무렵, 오랜만에 톡톡에 톡을 하나 올렸다. 짧은 글과 함께 사진 도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ROKA VS US ARMY.
한국군과 미군의 엠블럼 사이에 VS 딱지가 붙어 있는 간단한 그림이었다.
경기도 연천에서 열리는 한국의 28사단과 미국의 제2 보병 사단의 응원전을 의미하는 내용이었다.
자세히 보면 한국 쪽에는 28사단 의 태풍 마크가 있었고, 미군 제2 보병 사단은 인디언 추장 마크가 선명했다.
띵
전송이 성공했습니다.
곧이어 유재원의 톡톡 계정에 새 로운 사진들이 올라왔다.
그것은 커다란 무대에 열광하고 있는 한미 양국의 군인들 모습이었 다. 1만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 모 인 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전방 부대의 특성 상 사단 구성원 전원이 축제에 참 가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부대별 상황실이나 탄약고와 같 이 경계 근무를 쉴 수 없는 곳에서 근무해야 하는 인원들은 빠질 수밖 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간접적으로 축 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점심으로는 도시락 전문 업체에 서 만든 단가 1만 원이 넘는 특제 도시락이 28사단 전체에 배달되었 으니 말이다.
당연히 도시락도 ID 그룹의 후원 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한참 전부 터 준비했던 것으로 급양관의 감독 까지 받았다.
덕분에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군인들도 점심으로 도시락 특식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건 지금 진행 중인 무대 사진
입니다. #본조비 #s.o.s
이어서 전송된 것은 드림 엔터테 인먼트 소속 최고의 아이돌 그룹 S.O.S의 무대 사진이었다.
28사단 병사들은 그야말로 뒤집 어지는 중이었다. 반면 미국 측 병 사들은 아주 차분하게 무대를 관람 했다.
대신 두 번째 사진에서는 반대의 양상이었다. 한국 28사단 병사들은 무척이나 차분해진 반면, 미군은 펄 쩍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에 오른 이는 2000년 크러쉬, 올해엔 바운스 라는 앨범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본 조비가 It's My Life라는 곡을 시원 스레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음악판에서 록과 팝이 저 물고 아이돌과 힙합이 뜨는 중이지 만, 그래도 록스타의 존재감이란 대단했다. 특히 본조비는 미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록 밴드였기에 폭발 적이었다.
"와우, 본조비라니."
오죽하면 유재원의 옆자리에 앉 은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잔뜩 상기 된 표정이었다. 티파니 역시 오늘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에 대해 사전 정보는 없었기에 클린턴처럼 깜짝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초대된 가수들은 이들 말고도 12 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인 파워풀주 니어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한미 군인들이 가장 낮은 온도의 반응을 보였던 그룹이 지만, 연천의 초중고에서 몰려나온 여학생들에겐 최고였다.
파워풀주니어의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티파니는 유재원에게 눈빛으로 이게 어제 말했던 그 스웨이냐 고 물어보았다.
유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지 못하는 일은 많다. 이를테면 본조비 같은 초대형 아티스트를 하루아침에 섭 외해 무대에 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오늘 이벤트는 3달 전부 터 계획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급하게 준비했지만, 가장 묵직한 한 방은 아직 펼쳐지지 않았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