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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624화 (624/1,007)
  • 30권 8화

    다음 날.

    평양 능라도에서 2002 월드컵의 역사적 개막식과 개막전을 구경한 유재원은 그날 저녁 북한에서 나왔 다.

    개막식과 개막전 관람 후 북한에 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탓이다. 더욱이 거기에 있어 봤자, 귀찮기 만 했다.

    ID 테크놀로지의 상장으로 엄청 난 자본을 얻게 된 유재원에게서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들 만 잔뜩이었으니 말이다.

    특사로 와 있던 클린턴과 만날 수 있었다면 하루 더 머물 생각이 긴 했는데, 북한과 이야기가 잘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잘돼서 그런 건지 클린턴의 일정이 하루 더 길어진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이처럼 유재원의 개입으로 북한 부터 월드컵까지 크게 달라졌지만, 결과가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2002 월드컵의 개막전은 저번 대회의 우승자인 프랑스와 아프리 카의 신성 세네갈의 경기였다.

    프랑스는 무려 중원 사령관 지단이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세네갈은 월드컵에 역사상 처음으 로 출전한 팀이다.

    모든 축구 전문가들, 그리고 축 구 전문가 못지않게 전문적인 지식 을 갖춘 축구 팬들은 프랑스의 승 리를 점쳤다.

    그렇지만 유재원으로 인해 수많 은 미래가 바뀐 지금이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세네갈 쇼크!

    -레블뢰 침몰!

    경기 스코어 1 : 이

    그렇지만 한 골의 주인공은 프랑 스가 아닌 세네갈이었다.

    그야말로 파란으로 시작하는 2002 월드컵이다.

    사실 조짐은 전부터 보였다. 2002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부터 말이다.

    조 추첨식은 작년 12월 부산 벡 스코에서 열렸다. 여기에 참가한 사 람들 중 한국 측 VIP는 전재준 축 구협회 회장, 축구 국가 대표 홍명 호 선수, 축구 국제 심판 임은주 그 리고 축구 레전드 차범군이었다.

    과거에는 홍혜교라는 여배우가 생 뚱맞게 들어가 작은 논란이 생겼는 데, 이번엔 홍혜교 대신 차범군이 들어가서 논란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남북 공동 월드컵인 만큼, 북한 측 인사도 들어왔다.

    이렇게 확 달라진 인사가 모여 추첨 행사를 벌였는데, 편성된 조들 이 과거 2002 월드컵과 70% 정도 똑같았다.

    죽음의 조인 A조와 F조의 구성 도 그대로였고, 소리아팀이 속한 D 조도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로 동일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는 데, 역시나 조별 리그 팀이 바뀌지 않은 조의 결과들은 과거와 동일했 다.

    대신 조 편성이 달라진 조는 유 재원도 예상할 수 없는 혼돈이었다. 더욱이 한국 역시 유재원의 예상 밖에 있는 팀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수 구성이 전과 달라졌던 탓이 다. 바로 남북 단일팀 구성 때문이 었다.

    한일 월드컵이 아닌, 남북 월드 컵이 되면서 단일팀 구성의 논의도 시작되었고, 결국엔 성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본인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대표팀 선수로 발탁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최소한의 능력은 보장된다고 봐도 무방했지 만, 그렇다고 팀 전체에 도움이 되 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남북 단일팀이 회귀 전 2002 월 드컵의 신화만큼만 해 주면 참 다 행인데, 그러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세네갈 쇼크가 또 터지 는 걸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유 재원이었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유재원은 다 시금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일부러 일을 찾는 건 아니었지 만, 평소 아침마다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를 보는 건 습관화가 된 일 이었다.

    게다가 일이라는 부담감을 내려 놓고 보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다.

    -2002 월드컵 개막!

    -개막식 테마는 빛의 나라 소리 아. 실제로는 ID 그룹의 쇼케이스?

    역시 뉴스 페이지 첫 면에는 월 드컵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한눈에 사람 을 잡아끄는 자극적인 타이틀의 기 사가 뒤를 따랐다.

    ID 그룹 인터넷 사이트들에 일괄 적으로 애드센스가 걸리기 시작한 건 재작년부터였다.

    애드센스에서 제일 중요한 건 클 릭 숫자였다. 클릭 숫자에 비례해 분배되는 광고 정산금의 액수도 커진다.

    물론 클릭 수만 많다고 무조건 정산금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인 위적인 클릭을 잡아내는 기술도 동 시에 적용되었으니 말이다.

    대신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자극 하는 제목을 다는 기사들이 꽤나 늘어나는 중이다.

    동시에 정산금의 규모가 신문사 의 제목 짓는 법을 바꿔 버릴 만큼 상당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쇼케이스라니?"

    유재원은 뻔히 보이는 수법이지 만 알고도 넘어가며 클릭했다.

    역시나 안에 담긴 내용은 별것 아니었다.

    ID 그룹이 이번 월드컵 개막식에 얼마나 열심히 협조했는지 상세히 설명했고, 해외 네티즌 반응도 담 아 놓은 평범한 기사였다.

    비판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블루투스라는 무선 기술로 수만 대의 기기를 일시에 조종하는 퍼포 먼스나 경기장의 상단 4면을 장식 한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영상은 HD를 뛰어넘는 4K 규격의 영상이 며, 이러한 규격으로 다양한 각도 에서 경기 상황을 찍어 실시간으로 편집하기 위해 i웍스 여러 대가 동 시에 구동되었다는 이야기도 빠지 지 않았다.

    "역시 문화신문이네."

    어디서 썼나 봤더니 문화신문이 었다. 전명헌이 만든 신문인 만큼 태생부터 친기업적 신문인데, 전명 헌 사후에는 ID 그룹에 찰떡처럼 달라붙은 상태였다.

    -셰브롱, 텍사코 인수로 한 단계도약!

    -셰브롱의 다음 도전은 셰일 가 스! 매년 10억 달러 이상 투자할 것!

    다음 기사에는 프레더릭 테일러 2세와 텍사코의 CEO가 인수 계약 서를 교환하며 웃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티파니가 장담했던 것처럼 텍사 코 인수는 성공적이었다.

    -중국, 부패와의 전쟁으로 인한 내홍 격화!

    -이라크, 이슬람 원리주의자 테 러로 경찰 10여 명 사망!

    참으로 아쉽게도 전 세계가 모두 월드컵을 즐기지는 못했다.

    중국의 경우엔 계파 싸움이 한창 이었다.

    후진타오 주석의 계파인 공청단 에 대항해 상하이방과 태자당이 연 합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역시 돈이 걸리니 국가도 안중 엔 없는 거겠지."

    상하이방이나 태자당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만히 있으면 해외 재 산을 강탈당하는 건 기본이고, 부패 의 대명사로 찍혀 권력으로부터 영 원히 쫓겨날 판국이었니 말이다.

    중국의 혼란이 외부로 튀지만 않 으면 구경하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 할 텐데, 중국과 바로 접하는 나라 가 북한과 한국인지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아프가니스탄 에서 탈출에 성공한 소수 알 카에 다 조직원들이 일으킨 테러였다.

    테러는 혼란스러운 중동의 일상다반사 같은 것이라 기사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래서 유재원은 더 찜 찜했다.

    "설마 이게 2차 걸프 전쟁의 시 발점은 아니겠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겨우 막았 고, 중국으로부터도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받게 만들어 줬는데, 그걸 2차 걸프 전쟁에 꼬라박는다 면 너무나 실망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 을 계속 걱정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유재원은 컴퓨 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광화문에서 첫 길거리 응 원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재에서 나온 유재원이 제일 먼 저 한 일은 be the reds 라는 문구 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붉은색 티셔 츠를 챙기는 것이었다.

    오늘 2002 피파 월드컵에서 가

    장 주목받는 매치는 바로 개최국 대한민국과 폴란드의 경기였다.

    경기장은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 장이었고, 경기 시작 시간은 저녁 8 시 30분으로 아직 2시간이나 남았 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서울시청 앞 광화문 광장에 모인 붉은 물결을 보며 유재원은 감탄했 다.

    유재원이 마음만 먹으면 부산 아 시아드 주 경기장 VIP 박스에도 얼 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을 찾은 건 길거리 응원의 시발점인 광화문에 서 그 느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 오늘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의 대 폴란드전 승리를 기원하며 다시 한 번 뜨겁게 달려 봅시다! 다음 곡은 오 필승 소리아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대형 야외 무대에서는 흥겨운 응원가가 펼쳐 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대형 스크린은 유재 원의 후원으로 놓인 작품이었다.

    ID 디스플레이의 자랑스러운 인 피니티 디스플레이 기술로 만들어 진 초대형 스크린으로 가로 길이가 16m나 되는 대형이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추가로 3 대가 더 놓여서 광장 어디에 서더 라도 경기를 생생히 지켜볼 수 있 도록 했다.

    당연히 전국 곳곳에서 일어날 길 거리 응원 장소에도 인피니티 디스 플레이가 지원될 예정이었다.

    이번 기회에 LCD 하면 ID 디스 플레이가 자동으로 연상될 만큼 물량 공세를 펼칠 계획이었으니 말이 다.

    그러는 사이 무대 세팅이 끝났던 모양인지 신나는 음악이 터져 나왔 다.

    오 필승 소리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공식 서포터즈인 붉은 악마에서 발매한 공식 응원 앨범 중에 담긴 곡이었다.

    곡 자체의 기원을 따져 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용했던 곡으 로 유럽 리그에서도 어쩌다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을 YB라는 록 밴드에서 2002 월드컵을 위해 록 스타일로 그야말 로 맛깔나게 편곡해 부르며 공전의 히트를 치는 중이다.

    가사는 짧고 '오 필승 소리아'라 는 귀에 딱 꽂히는 흥겨운 후렴부 가 계속 반복되는 형식이라 따라 부르기 참 좋았던 것이다.

    오죽하면 피파에서 선정한 공식 음악이 있었지만, 텔레비전에서는 오 필승 소리아가 더 많이 흘러나오는 중이다.

    "오! 필승 소리아! 오오! 레오레!"

    유재원도 국제 정치 역학이라든 가, ID 그룹 일 등등 복잡한 생각 은 날려 버리고 방방 뛰는 중이었 다.

    얼굴이 워낙 팔린 존재이다 보니 잘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고 큰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시선이 무대로 집중된 터라 그럴 걱정이 없었다.

    더욱이 유재원은 평소에 입고 다 녔던 맞춤 정장 대신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붉은색 티셔츠를 입었고, 모자에 선글라스도 쓰고 있었 다.

    게다가 태극기 문양도 손이나 얼 굴에 그려 넣은 터라 무리에 완전 히 녹아든 상태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아도 세계 최 고의 부자인 유재원이란 걸 알아보 기 힘들 만큼 티가 나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 덩치 큰 경호원들이 여전히 있었지만, 딱딱한 정장이 아닌, 유재원과 같은 붉은 악마 티 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도드라져 보 이진 않았다.

    그들은 프로였기에 주변 분위기 에 동화되진 않았다.

    오히려 이처럼 군중 사이에서 VIP를 경호하는 건 그야말로 최고 난이도의 임무였기에 온 신경이 집 중된 상태다.

    아무리 축구 대표팀의 경기라도 절대 방심할 일은 없었다.

    이처럼 날카로워진 경호원들의 긴장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재원 은 그저 응원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 역사의 현장이니 사진을 남겨 놔야지."

    그러다가 유재원은 본인의 안드 로이드폰을 빼 들었다.

    그냥 손에 쥔 것이 아니라 셀카 봉이라는 도구에 연결해 최대한 높 이 들고 한 바퀴 돌면서 인증 샷을 남겼다.

    "이런 건 바로 올려줘야 제맛이 지."

    유재원은 곧장 톡톡 앱을 열고 이미지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그 리곤 방금 촬영한 이미지 파일 중 에 잘 나온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촬영 위치가 드러나는 곳은 피 하셔야 합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오는 것 처럼, 언제나 유재원 옆을 지키는 김대석이 우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이죠."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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