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 7화
"유재원 회장의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
조선소년단 복장을 한 어린이 화 동이 우렁찬 인사와 함께 커다란 꽃다발을 건넸다. 그런데 한 아이 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동은 남자아이, 여자아이 이렇 게 둘이었는데 정작 꽃을 받을 사 람은 유재원 하나뿐이었던 탓이다. 아무래도 티파니와 함께 들어올 줄 알고 둘을 준비한 모양이다.
티파니의 개막식 불참에 대해 미리 연락하긴 했는데, 다들 미친 듯 바쁘게 돌아가니 현장까지 전달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구, 두 개나 준비해 주다니. 기쁨이 두 배네요. 너무 고맙습니 다."
유재원은 어색해하는 아이의 꽃 다발도 기쁘게 받았다.
마음 같아선 용돈이라도 바로 주 고 싶었는데,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북한에서 바로 나온 조선 중앙TV를 비롯해 기록 촬영용 기 사들 그리고 공항에 진을 치고 있던 외국의 촬영팀 등등.
꽃을 받자 활짝 웃는 아이를 보 니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렇게 공항에서의 화려한 환영 행사를 마친 유재원은 곧장 일정을 시작했다. 그것은 능라도 경기장 방문이었다.
개막식의 준비 상황을 남북 조직 위원장들과 함께 살펴보기 위함이 다.
역대 월드컵 개막식 중에서도 가 장 성대하고 화려하게 꾸며졌는데, 테마는 바로 최첨단 IT 기술이었다. IT 기술로 전 세계가 함께하는 월드컵이란 부제를 달았을 정도다.
당연하게도 한국의 IT 기술을 자 랑하기 위해 선택된 것들은 거의 대부분 ID 그룹 제품이었기에, 최 종 점검도 유재원이 함께하게 된 것이다.
다만 진짜로 일을 하는 건 아니 었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마음껏 쉴 거라는 유재원의 한국행 목적에 서 크게 벗어나는 스케줄이 절대 아니었다.
실무는 최강욱을 비롯한 한국 ID 그룹 직원들이 다 처리해 놓은 상 태이기에, 디데이 하루 전 경기장 투어를 하는 것이다.
덤으로 내일 열릴 개막 행사의 최종 리허설도 관람하며 준비 상태 를 체크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먼저 와 있던 최강욱 부회장의 꼼꼼함이야 원래의 명성 그대로였 고, 대규모 행사에서 일사불란한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북한 역시 그 모습 그대로였다.
ID 그룹이 준비한 회심의 아이템 (?)과의 시너지 효과 역시 기대 이 상이었다.
내일 세계인들의 반응이 무척이 나 기대되는 유재원이었다.
다음 날. 저녁, 능라도 경기장.
-3분 후, 2002 피파 월드컵 인 터 소리아의 화려한 개막 행사가 시작합니다.
북한 측에서 준비한 장내 아나운 서는 북한 특유의 억양을 그대로 살리며 우렁차게 행사의 시작을 알 렸다.
최대 수용 인원 15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능라도 경기 장이었다.
88 서울 올림픽이 확정되자 북한 에서는 대응책으로 세계청년학생축 전이란 행사를 기획했는데, 이를 위해 준비한 경기장이 여기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이었다. 마치 한국 에서 63빌딩을 짓자 류경호텔 공사를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평소에는 북한 노동당 행사를 하 거나 매스 게임을 하는 데 쓰였지 만, 천연 잔디도 깔려 있어서 축구 경기를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 었다.
오늘도 경기장은 만석이었지만, 이 중에 반인 7만 5천 명은 개막식 에 펼칠 매스 게임을 위해 모인 것 이었고, 실제 유료 관객은 나머지 7만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 각하 내외, 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 그리고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입장하십니다 .
아나운서의 멘트처럼 김대중 대 통령 부부가 제일 먼저, 블라터 회 장이 다음, 김정일 위원장이 마지 막으로 VIP 박스에 모습을 드러냈 다.
그와 함께 경기장에도 피파의 깃 발이 먼저, 다음으로 태극기와 인 공기도 들어왔다. 유재원을 비롯한 VIP석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환영했다.
"유재원 회장님이 아이디어를 주 셨다죠?"
김대중 대통령은 다른 VIP들과는 악수만 하고 넘어가다가, 유재원에 게 와서는 한마디 말을 거들었다.
"아, 네!"
"하하. 전재준 축협 회장의 칭찬 이 자자하더군요. 저도 기대가 큽 니다."
"물론입니다! 비주얼 쇼크에 깜 짝 놀라실 겁니다."
처음엔 단답으로만 답했다가 다 시금 이어진 김대중 대통령의 소감 에 유재원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실제로 개막식에 들어간 ID 그룹 의 기술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곧이어 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 김정일 위원장과도 악수를 나누었 다.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 때와 는 달리 두 사람과는 딱히 말을 주 고받진 않았다.
-2002 피파 월드컵 인터 소리아 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VIP 입장이 끝나고, 곧 개회 선 언으로 이어졌다. 남북 공동 개최 였던 만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나란히 서서 동시에 외치 는 형식이었다.
선언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개막 행사가 시작되었다.
스타디움용 대형 스피커에서 터 지는 커다란 뱃고동과 같은 울림이 능라도 경기장을 흔들었고, 그 울 림에 무채색으로 물들었던 반대편 스탠드에서 화려한 불빛이 터졌다.
북한이 자랑하는 게 바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 움직이는 매스 게임이었다.
당연히 남북 공동으로 열리는 월드컵 개막식에서도 매스 게임이 빠 질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보통의 매스 게 임과 달랐다.
그것은 매스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에는 없었던 신무기 두 개가 주 어진 것이다.
하나는 중앙 제어용 블루투스가 내장된 라이트 스틱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패드였다.
능라도 경기장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7만 5천 명의 대인원 이 안드로이드 패드를 일시에 펼치자 수백 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스 크린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2002 피파 월드컵 인터 소리아의 공식 로고가 거대하게 펼쳐졌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관객석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절로 터졌다.
이제 쇼 타임이다!
매스 게임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 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걸 꼽자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군무였고, 다른 하나는 패널을 이용해 큰 그림을 만드는 것이었다. 2002 피파 월드컵 개막 식에서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펼 쳐졌다.
대신 유재원은 종이 패널 대신 안드로이드 패드를 매스 게임을 하 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준 것이다.
안드로이드 패널 역시 블루투스 모듈이 장착되어 있었고, 중앙 제 어를 통해 패널에 표시되는 이미지 나 패턴을 일시에 조절할 수 있었덕분에 능라도 경기장 한쪽은 일 시적으로 거대한 디스플레이가 갖 춰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야말로 21세기에 걸맞는 매스 게임이었다. 종이 판자로 만든 패 널을 들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다.
그렇지만 모든 게 다 장점은 아 니었는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안드로이드 패드의 크기였다.
북한이 사용하는 매스 게임용 종 이 판자는 사람의 상반신을 가릴만큼 큼지막한 크기였다. 펼쳤다가 접었다가, 반대편으로 돌리면 다른 색이 나오는 등 개선에 개선을 거 듭한 결과물이다.
반면 안드로이드 패드는 크기가 10인치로 작았다. 사람 하나가 픽 셀이라 치면 빈 공간이 컸던 것이 다. 멀리서 보면 좀 낫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그 빈 공간 을 채우는 게 라이트 스틱이었다.
라이트 스틱은 안드로이드 패드 양 옆구리에 탈착할 수 있는 간단 한 슬롯을 붙여서 달아 놓았다. 아직은 기술력이 부족해 단색으로만 색이 나지만, 강하게 빛을 낼 수 있어서 빈 공간을 훌륭히 메울 수 있었다.
덕분에 유재원이 말했던 비주얼 쇼크가 무엇인지 수만에 달하는 관 객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TV로 개막식을 시청하고 있던 이들은 단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일부 선진국을 제외하고 는 아직도 대다수 많은 나라의 기 본적인 TV는 브라운관이었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브라운관에서는 안드로이드 패드를 이용한 매스 게임의 유일한 단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HD방송을 정식으로 시작한 한국 이나 미국에서는 틈새가 잘 보이긴 했지만, 세계 최초로 등장한 퍼포 먼스였던 터라 그걸 느낄 시간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게 최선이 었다.
여기에 화면에는 잘 나오진 않았 지만, 유재원이 준비한 마지막 카 드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능라도 경기장 상단에 달린 거대한 스크린 이었다.
가로 길이가 16미터, 세로는 9미 터로, HDTV의 표준 해상도를 그 대로 따랐는데, 화질은 기존에 보 였던 스타디움용 대형 스크린과 차 원을 달리했다. 마치 컴퓨터 그래 픽이 그대로 허공에 띄워진 것처럼 생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형 스크 린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보르 도 TV 32인치형에 들어가는 HD 패널을 다수로 연결해 만든 스크린 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스타디움용 대형 스크린 의 경우에는 레드, 그린, 블루의 색 을 내는 전구를 박아 스크린을 구 성했다. 그로 인해 픽셀이 크고 화 질도 투박했다.
기술이 발전한다면 LED로 교체 했을 테지만, 지금은 파란색 LED 의 채산성이 너무도 떨어져서 불가 능했다.
더욱이 북한은 경제난이라는 고 질병 때문에 그런 구식 대형 스크 린도 장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재원은 그걸 알아보고 보르도 TV용 패널을 가져다가 대형 스크 린을 만들도록 했다.
그렇지 않아도 화질이 좋은 HDTV 용 패널이니, 기존의 스타디움용 대형 스크린과는 차원이 다른 해상도와 화 질을 선사했다.
다만 안드로이드 패드로 펼치는 매스 게임처럼 유일한 단점은 패널 과 패널이 접하는 베젤의 두께였다.
기술적으로 최대한 줄였지만 1.5cm 나 되기에 멀리서 봐도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모기장 같은 격자무늬가 살짝 보였다.
그렇지만 압도적 화질과 크기로 단점을 상쇄했다.
-세상에! 여기가 철의 장막에 가 려져 있던 북한이 맞습니까? 이 화 려한 빛의 예술을 보세요! 별천지 에 온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개막식을 중계하던 캐 스터도 입이 떡 벌어지면서 상상도 못 한 말이 마구 쏟아져 나올 정도 였다.
개막식 중계 카메라 역시 매스 게임도 비추고, 스타디움용 대형스크린도 비추는 등 정신이 없었다.
-아!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빛의 나라 소리아'라는 매스 게임 에 제공된 디스플레이 기술은 자랑 스러운 한국 기업 ID 디스플레이의 협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합니다. 매스 게임에는 안드로이드 패드를, 경기장용 대형 스크린에는 인피니 티 디스플레이라는 기술이 적용되 었다고 합니다!
흥이 한껏 오른 캐스터는 너무도 과도한 정보를 뿌려댔다. ID 디스 플레이의 홍보는 덤이었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은 전혀 과하 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만큼 집 중했다.
-그리고 이건 매우 놀라운 뉴스 인데요! 매스 게임 참여자들이 들 고 있는 건 안드로이드 패드인데, 개막식이 끝나면 참여자들에게 선 물로 증정될 것이라 하는군요. 참 부럽습니다!
안드로이드 패드의 가격은 한 대 에 60만 원이나 하는 물건이었다.
그걸 7만 5천 개를 뿌렸으니 그 비용만 450억 원이다.
물론 이 액수는 권장 소비자가 기준이니 공장도가로 계산하면 300 억 원 이하로 떨어진다.
그래도 상당한 출혈이지만, 유재 원은 기꺼이 감수했다.
이번 개막식에서 핵심 아이템으 로 등장하면서 얻을 수 있는 홍보 효과도 대단한 것이었고, 덤으로 평양 주민들에게 뿌려지는 안드로 이드 패드의 파생 효과는 이보다 더 엄청난 것이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은 물론 북한 수뇌부도 단순히 유재원이 월드컵 성공을 위해 주머니를 팍팍 푼다고만 생각했 지, 평양에 풀릴 안드로이드 패드 의 파급력에 대해선 조금의 생각도 없었다.
10인치 정도 되는 대형 스크린 에, 인터넷은 물론 게임도 플레이 가능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건 동영상 재생 기능이다. 완전 충전되었을 때 6시간 연속 재생된다. 그리고 SD 카드를 넣을 수 있는 슬롯도 있다.
인터넷이야 북한에서는 꿈도 꿀 수 없지만, 동영상 감상은 다르다.
SD 카드는 작아서 얼마든지 숨 겨 들어올 수 있었고, 거기에 담길 콘텐츠는 한국의 드라마가 될 게 분명했다. 완벽한 휴대용 동영상 재생기다.
원래 북한 사람들이 한국의 드라 마를 좋아했다는 건 유재원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평양은 북한에서 제일 잘 사는 지역이었다. 오죽하면 평양에 거주 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는 특권이 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평양이라도 한국에 비하면 한참이나 차이가 났다.
말과 문화는 비슷한데, 발전상에 서 엄청난 차이가 벌어졌다.
이러한 차이가 잘 녹아들어 있는 게 바로 한국의 드라마였다.
한국의 드라마가 북한에 급속도 로 퍼진 것은 중국에서 저렴한 휴 대용 DVD 재생기가 들어오고 나 서부터라고 했는데, 시기상으로는 2000년대 후반이었다.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패드의 빠 른 보급으로 그 시작점을 몇 년 더 앞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세계가 달라진 만큼, 북한 역시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 안드로이드 패드 7 만 5천 대를 뿌리는 건 로우 리스 크 하이 리턴이었다.
단순 영리 활동과는 차원이 다른 원대한 목표가 있는 유재원에게 그 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