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23화
표면적으로 전전긍긍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이던 중국이지만, 미국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미국으로 송환하는 게 어려우면, 중국에 미국의 수사관이 가서 크래 커들을 조사하는 타협안까지 내놓 았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거절당했 다.
세계에 큰소리를 쳐 놨던 미국은 행동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프가니스탄에 했던 것처럼 특수 부대를 보내고, 폭격 을 가하는 건 불가능했으니 경제적행동이 되는 건 당연했다.
중국산 수입 물품에 특별 관세 10% 일괄 부과는 강력한 수단이었 다.
미국과 중국의 20()1년 교역 규 모는 연간 4,000억 달러가 넘었는 데, 이번 결정 한 번으로 400억 달 러가 쏘아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중국이 꿈적도 안 할 거 라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유재원의 제보로 청나 라 채권의 소재를 알게 되었고, 밑 질 게 없었기에 즉각 다음 공격 수 단으로 사용되었다.
미국 정부 소유의 금고에서 썩어 가던 채권들과 인터넷에서 거래되 는 물량, 그리고 민간 보유 물량 중 교섭권을 대리하게 된 물량을 모두 모아 보니 현재 가치로 대략 5천억 달러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 국의 핵심 외교 정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일이 었다.
그리고 관세에 대해서는 큰 반응 을 보이지 않았던 중국이 청나라채권에는 펄쩍 뛰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 또한 흡족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화는 모두 미 국과 중국의 외교 라인, 경제 라인 실무진들이 만나 논의되었기에 국 민들에겐 특별한 정보가 전해지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의 실무진이 만나 격 한 고성이 오고갈 때에도 그 사실 을 아는 건 미국과 중국의 수뇌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 사람들에겐 미중 대립은 그 저 소강상태처럼 느껴졌고, 아프가 니스탄의 격변이 더 큰일처럼 보였 다.
-탈레반에 실망한 이슬람 극단주 의자들, 이탈 가속!
-탈레반, 정권 장악력 흔들!
-미군,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변 수 -앨 고어 대통령, 아프간의 영웅 들 이제는 그리운 집으로 돌아올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는 확실하게 박살났다. 극소수는 파키스탄으로 빠져나갔지만, 대다수는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미군 특수 부 대의 타격으로 사살되었다.
이렇게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 에다가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소멸 되자 탈레반도 흔들거렸다.
미국은 불필요한 확전을 자제하 기 위해 탈레반에 대한 공격은 하 지 않았는데, 이 모습이 이슬람 극 단주의자들에게는 마치 탈레반이 생존을 위해 알 카에다를 미군에 팔아 치우고 목숨을 보존한 것처럼 보였다.
뒤늦게 탈레반이 미국과 싸울 준 비를 했지만, 미군의 가공할 전투 력에 내부에서 반발이 나올 정도였 다.
자중지란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빠르게 무너졌고, 그로 인한 혼란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과거의 미국이라면, 이 혼란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친미 정권을 세우겠다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펜타곤에서는 철군을 늦 추며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인사를 찾아 새로운 지도자로 만들어야 한 다는 의견이 매일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앨 고어 대통령은 유재 원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중국 전략 에 집중하기로 했고, 철군도 확정 되었다.
이것 역시나 중국에는 커다란 압 박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손보려 한다는 게 더욱더 명확해졌으니 말이다.
더는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이 중국 수뇌부들에게 강하게 생겨 났고, 북한에도 특사를 파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일보다 먼저 세상 에 공개된 건 중국의 보복 관세 발 표였다.
-회장님! 속보 보셨습니까?
"CNN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 보고 있어요."
집에 돌아온 유재원은 장인어른 과 장모님 그리고 프레더릭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그러다가 CNN의 브레이킹 뉴스 를 보고 중국의 보복 관세 발표를 확인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엘런 사장 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세한 정보가 있나요?"
-예, 중국의 보복 관세 규모는 우리 미국이 했던 것과 같은 400억 달러라고 합니다.
CNN의 보도는 워낙 다급해서 중국이 보복 관세를 결정했다고만 했고,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전해 지지 못했다.
그런데 엘런 사장은 보다 구체적 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랑 똑같네요. 우리도 영 향을 조금 받겠어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일괄적인 관세를 부과할 때 수많은 기업에서 난리가 났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만든 공장들 이 제일 큰 타격이지만, 미국은 물 론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 시장을 노리고 들어간 기업도 있지만, 대다수는 상식 이 하로 엄청나게 저렴한 인건비만 보 고 들어간 기업도 많았다.
이러한 기업들은 중국 내수 시장 이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 전 세계 로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수출국 비중에서 미국이 제일 높 은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클린턴 시절이었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엄청나게 반발했 을 테고 국회에서도 큰 문제로 삼 았겠지만, 911 테러 이후로 달라진 미국에선 오히려 환호를 받았다.
하여튼, 기업들이 난리가 나며 미국 주식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주 식 시장도 난리통이 벌어졌지만, 중국에 진출하지도 않았고, 진출할 생각도 없는 ID 그룹은 예외였다.
만약 중국에 공장을 만들어 놓고 i웍스든 라이브팟이든 뭐든 만들었 다면 10%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 생했겠지만, ID 그룹의 생산 기지 는 한국과 미국이었으니 말이다.
반면 중국이 보복 관세를 들고나 온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ID 그룹의 스마트폰부터 컴퓨터, 운영 체제와 각종 소프트웨어의 중 국 수출 물량은 제법 묵직했으니 말이다.
정품 사용 의식이 최악인 중국이 지만, 그래도 나라 자체가 워낙 거 대한 덕에 제법 물량이 나왔다.
더욱이 당장은 복제가 불가능한 하드웨어 제품들, 특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중국에서 대세에 올랐 다.
정식 판매를 시작한 지는 아직 1 년도 되지 않았는데, 중국에서의 누적 판매량으로만 500만 대를 넘 겼으니 말이다.
중국의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말 도 안 되는 수준인데, 무리를 해서 라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사려 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보복 관세 를 물린다면 중국의 대미 수입 물 량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IT 분야가 될 것이고, 그중에서도 유 재원의 ID 그룹이 몸통으로 지목될 확률이 제일 높을 것이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의외인 점이 제법 많습니다.
" 뭔데요?"
-우리처럼 일괄 10% 부과가 아 니라는 점입니다. 카테고리마다 각 기 다른 보복 관세를 부과했는데, IT는 사실상 0%입니다.
"오?. 이건 좀 의외네요."
-중국의 수입 물량 중 IT 카테 고리가 상당하지만, 여기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가는 제 발목 잡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겠지요.
엘런 사장의 말이 정답이었다.
전 세계는 IT 혁명 중에 있었다.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었고, 스마 트폰의 보급률 역시 가파르게 치솟 는 중이었다.
IT 혁명을 따라가지 못한 나라는 영원한 2류 국가에 머물 수밖에 없 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IT 혁명을 완수한다면 한국처럼 선진국 반열 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한국이 IMF의 조기 졸업을 달성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IT 혁명 이라는 분석이 있었고, 크나큰 지 지를 받고 있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중이 었고, 그중에서도 컴퓨터 도입에 열심이었다.
그런 컴퓨터 세상을 꽉 잡고 있 는 것이 ID 그룹이었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와 ID 오피 스를 쓰지 않고 전산화를 완성하기 는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한자라는 복잡한 문자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컴퓨터 시스템 은 안드로이드 체계가 유일했다.
스마트폰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과 PC의 보급으로 마무리 될 것 같았던 IT 혁명이 아직도 현 재 진행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 마트폰 때문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 보복 관세를 부과 한다?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 연료통에 물을 넣는 것과 똑같았다.
세수가 조금 늘어나겠지만, 그게 다 중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 다.
가격이 오른 만큼 컴퓨터와 스마 트폰 보급률도 떨어질 것이고, 그 러면 전 세계가 뛰어들고 있는 IT 혁명에서 자발적으로 탈락하는 것 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보복 관세를 물리더라 도 미국처럼 일괄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미래와 경제 에 큰 타격이 없을 만한 품목에 한 정해야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약하기도 하고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분별한 대응이 아닌, 이성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약하 다는 소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아, 청나라 채권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치열합니다. 중국은 1979년에 끝난 사안이라고 하고, 우리 미국 은 당연히 아니라고 하고 있지요. 동시에 하나의 중국을 흔드는 행위 는 무엇이든 용납할 수 없다고 합 니다.
엘런은 청나라 채권 사안도 상세 히 알고 있었다.
현재 ID 그룹에서 엘런의 직위는 ID 테크놀로지 사장이지만, 테크놀 로지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 룹의 현안을 두루두루 다루고 있었 기에 가능했다.
그의 이전 직위는 그룹 법무실장 이었고, 첨예한 법리를 다투는 것 들은 모두 그의 소관이었다.
엘런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법 무실장 자리엔 법무실 팀장이 승진 발령되긴 했는데, 여전히 그룹 내최고 법률 전문가는 엘런이었다.
청나라 채권 역시 엘런에게 맡겨 진 일 중 하나였다.
하여튼 중국이 말하는 1979년에 끝났다는 건 과거에도 한 번 청나 라 채권이 부각된 때가 있었는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 법원에서 청구를 기각한 일을 말하 는 것이다.
하지만 정식 재판으로 올라간 것 이 아니기에 청구권이 완전 소멸된 것도 아니다.
"두고 봐야겠군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 다.
청나라 채권 사안이 좀 지지부진 해 보여도 유재원은 앨 고어 정부 를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앨 고어 행정부는 미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고, 소유자로부터 위임 받은 청나라 채권을 1달러까지 다 받아낼 작정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금 워싱턴 DC 정가 에 다시 회자되는 책이 바로 라이 징 차이나였다.
이와 함께 저자인 애드 로이스의 몸값이 치솟고 있었다.
중국이 개방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그저 동아시아의 큰 나라 정 도로 가볍게 인식했던 워싱턴 DC 의 정치인들이, 사이버 테러와 경 제 전쟁으로 중국의 실체를 보다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덕이 다.
중국을 보는 눈도 객관화가 이루 어지면서,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이 G2가 되어 미국과 대등
한 관계에 오르겠다는 중국을 굴복 시킬 완벽한 수단이라 인식했기 때 문이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력이 급성장했다.
5천억 달러라는 거금이 한 번에 빠져나가더라도 한국처럼 IMF 에 긴급 자금을 융통해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 투자되어야 할 돈이 빠져나감으로써 중국이 미 국과 맞먹는 경제 대국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물론 무지막지한 인구수 덕에 언 젠간 G2에 오르겠지만, 그 시일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중국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대중국 포위망을 완성하면 끝이니 말이다.
덤으로 환수된 자금을 미국에 투 자하도록 유도하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당연히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의 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보복 관세는 중국의 반격 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그럼, 진짜는 북한인가?"
과연 북한의 독재자가 무슨 결정 을 했는지 궁금해지는 유재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재원은 궁금 증을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을 필 요는 없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