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12화 (612/1,007)

29권 21화

일각에서는 ID 그룹이 문어발 확 장이라는 오명을 피하려고 백호 펀 드라는 투자 회사를 별도로 만들었 다고 말한다. 그 예시로 든 것이 신일본투자은행 이었다.

신일본투자은행은 투자은행이라 는 이름과는 달리 일본의 우수한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지주 회사 같이 움직였다.

일본 언론들도 뒤늦게 이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신 일본투자은행은 일본 경제계에 뿌 리 깊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백호 펀드는 달랐다.

"대호중공업이 수주한 천연가스 운반선은 20척이 넘습니다. 또한, 대호건설과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한 플랜트 산업에도 무척이나 긍정적 입니다. 앞으로 4년간은 신규 수주 가 없어도 문제없을 정도로 말입니 다."

일본의 장인 정신 신화를 골로 보내버린 고베철강 스캔들의 반사 이익은 한국이 다 먹었다. 그중에 서도 대호중공업의 초강세가 두드 러진다.

시작가는 일본 조선소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러면서도 성능은 일본 조선소와 동급이다.

게다가 커스텀 주문도 문제없이 수주해서 돈을 더 쓰면 그만큼 기 대에 부응하는 성능을 내주었다.

"그러면 매각해도 문제없겠군요."

"국내 기업이나 해외에서도 눈독 을 들이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회생이라는 단어에 이보다 적합 한 회사가 없다.

셰브롱을 움직이고, 대호중공업과 주선해 반전의 실마리를 만들어 낸 건 유재원이지만, 아쉬움은 전 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호 펀드 산하 기업으로 계속 보유하는 것도 이상 했고, 그렇다고 ID 그룹에 편입시 키는 것도 이상했으니 말이다.

전자, 반도체, 소프트웨어와 콘텐 츠, 통신과 미디어 등의 IT 중심 회 사가 ID 그룹이었는데, 여기에 중공 업이 끼어드는 건 누가 보더라도 영 이상한 일이었다.

"국내 기업 중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미래와 일성이고, 일본과 유 럽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덩치가 크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거 같네요. 매각 예상 금액은요?"

"대략 3조 원 정도로 보고 있습 니다."

최강욱의 말에 유재원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그룹이 해체될 때, 회생 불 능인 계열사들은 모두 정리하고서 그나마 건설, 중공업, 전자, 다이너 스티 클럽과 같은 건실한 것만 남겼다. 이 모든 회사들은 백호 펀드 에서 인수했고 그 대금이 1조 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대호중공업 하나 만으로 3조 원이니 단기간에 몇 배 의 수익을 거둔 대박 투자가 된 것 이다.

"대호건설의 경우엔 2조 2천억 원으로 은호아시안그룹에서 큰 관 심을 보였습니다."

"아, 은호."

은호아시안그룹은 아시안에어라 인이라는 항공사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해외여행 붐이 일어나는 지금, 갈퀴로 돈을 긁어 모으는 회사가 바로 은호아시안그룹이었다. 게다가 회귀 전에도 대호건설을 가져갔던 회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기업의 덩치에 비해 대 호건설은 너무도 컸고, 생각처럼 건설 경기가 오르지 않아서 소화를 다 시키지도 못하고 뱉어내야 했다.

이번엔 괜찮을까?

잠깐 생각해 봤던 유재원은 고개 를 저었다. 은호아시안그룹의 행보로 봤을 때, 딱히 긍정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일성은 관심이 없대요?"

대호건설을 무리 없이 인수할 수 있는 회사는 국내 재벌 순위 10위 권 이내에 있는 기업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제대 로 낼 수 있는 회사로 유재원은 일 성을 꼽았다. 전자 회사를 ID 그룹 에 넘긴 일성은 자동차와 중공업, 통신 회사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있을 겁니다. 다만 일성도 최우 선은 대호중공업이라 대호건설이 뒤로 밀린 것 같습니다."

"대호중공업은 미래에, 대호건설 은 일성에 넘기는 걸로 한번 거래 들 만들어 보세요. 다만 인수 대금 은 현금이 좋겠어요. 전액 현금이 면 할인도 가능하다고 하세요."

"예, 회장님."

최강욱은 문제 없다는 듯 바로 답했다.

예전이었다면 부정적으로 생각했 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 일을 하면 서 한국 경제의 이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되자 여러 가지 인식이 달라진 상태였다.

한국의 오랜 신화처럼 자리 잡고 있던 대마불사도 산산이 박살내 버 렸던 IMF였다.

그때 충격에 재벌들이 집단 트라 우마라도 생긴 것일까.

사내 유보금으로 어마어마한 현 금을 쌓아놓고 있다는 건 익히 아 는 이야기였다. 문어발 확장으로 대표되던 90년대 경영 스타일을 철 회했고, 오직 돈 되는 곳에만 아주 보수적으로 투자했다.

그러면서 각자 자리 잡은 분야에서 크나큰 성과를 내니 회사에 돈 이 쌓아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너무 쌓기만 하고, 분배에 는 소홀하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불 만이 쌓이는 중이었다. 회사가 올 린 성과에 비하면, 월급이 올라가 는 속도는 너무 더딘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IMF 때 구조 조정이 휘 몰아치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긴 했기에 아직 그 불만이 표출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좀 달랐다.

"다만 노조에서는 이번 매각에 대해 무척이나 불안해하고 있습니 다. 어쩌면 단체 행동이 있을 가능 성도 높습니다."

최강욱의 목소리에는 깊은 우려 가 담겨 있었다.

유재원은 무슨 이야기인지 딱 감 을 잡았다.

어쩌면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었 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면 대호중공 업 매각 소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 면, 100% 노조가 반발할 것이 분 명했다.

ID 그룹에도 노조는 있었으니 말 이다.

안드로이드사에도 있고, ID 일렉 트로닉스에도 대호전자와 미래전자 시절 결성된 노조 조직이 결합해 생긴 단일 노조가 있었다. 대부분 기업이 인수되면서 노조 조직도 숭 계된 것이지만, 유재원은 이를 딱 히 문제 삼지 않았다.

노조도 ID 그룹의 대우에 만족하 면서 아직까지는 큰 문제를 일으키 진 않았다. 하지만 백호 펀드는 좀 달랐다.

일단 대호중공업의 노조는 민주 노총 전국 금속 노동조합 소속이었 다. 민주 노총 투쟁에서 가장 선봉 에 설 만큼 강성했다.

지금까지는 IMF 위기 상황 극복 이라는 대과제와 백호 펀드의 위탁 경영에 만족해하며 잠잠했지만, 매 각 소식이 알려지면 크게 반발할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중공업 노조 가 은근히 바라고 있던 건, 대호전 자처럼 ID 그룹의 일원이 되는 것 이었다.

그룹 해체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람들인 만큼, 지금의 근무 조건 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ID 그룹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백호 펀드의 관리 아래에 있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 을 정도다.

당연히 최악은 외국 회사에 팔려 나가는 것인데, 미래그룹 역시 외 국 회사처럼 취급이 좋지 않았다.

미래그룹의 노동 쟁의 역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던 탓이다.

또한, 사업장의 규모에 비해 고 용된 인력이 더 많은 상태였으니, 미래그룹이라면 과감하게 구조 조 정을 시작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낙제점을 받은 회사들입니다."

최강욱이 백호 펀드 운용 보고서 를 만들 때, 살생부라는 별명이 붙 여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호중공업처럼 다시 날개를 펴 고 날기 시작하는 회사도 있는 반 면, 그렇지 못한 회사들도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인수한 기업들이었지만, 유재 원도 만능은 아니었기에 100% 완 벽하진 못했다.

이러한 회사들은 이번 기회에 모 두 정리하기로 했고, 그 리스트가 지금 유재원에게 전해졌다.

"새원정보통신?"

리스트 최상단에 있는 기업은 유 재원도 익히 알고 있는 회사였다.

코스닥에 닷컴 열풍이 몰아쳤던 시기,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의 시 가가 30만 원을 뛰어넘었고, 시가 총액도 5조 원에 이를 만큼 대단했 던 회사였다.

하지만 버블 붕괴 후에는 하늘 높이 올라갔던 주가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후로 지하실 아래에 더 깊은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알려주며 끝없 이 추락했던 새원정보통신을 백호 펀드가 100억 원이란 헐값에 인수 했다.

VoIP를 기반으로 한 기술은 나

름 쓸 만했고, 일성그룹 관련 주식 도 조금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회생이 완전히 불가 능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유재원도 최강욱의 의견을 수용 해 해체를 결정했다. 그걸로 한때 나마 코스닥의 황제였던 새원정보 통신의 운명엔 마침표가 찍혔다.

이후 유재원은 최강욱을 시작으 로, 디스플레이와 일렉트로닉스, 인 베스트먼트, 마이크로크래딧 등등의 한국 계열사 사장들과 면담을 하며 기업의 현안들을 일일이 챙겼다.

마지막 날에는 판타지 유니버스 제작을 위해 출범한 개발팀과 현판 식도 하고, 회식도 함께했다. 참여 인원만 100명이 넘을 만큼 제법 시 끌벅적한 행사였다.

현판에 박힌 이름은 파이어피스 트 게임즈, 한글로는 불주먹 게임 단이다. 불주먹이란 이름답게 로고 도 정권 모양 아이콘에 화염이 일 렁이는 모습이었다. 너무 대충 지 었다는 느낌이 다분했지만, 직접 보면 그럴듯했다.

차후 게임 개발 상황에 따라 인력 충원이 빠르게 이뤄질 예정이기 에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의 한 층을 다 쓰기로 했다.

파이어피스트 게임즈의 개업식을 마지막으로 한국 일정을 마치고 돌 아온 유재원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왔다.

-연방 통신 위원회, 타임워너 넥 스트컴 NBC 인수 승인 유보.

-빅딜에 따른 후폭풍에 대한 상 세한 조사 필요.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NBC 인수 작업에 급제동이 걸려 버린 것이다.

상세한 조사 필요라니?

소식을 확인한 유재원은 비행기 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NBC 인수 작업을 총괄하던 테드 터너 부회장 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따지기 시 작했다.

"터너 아저씨! 아니, 터너 부회장 님! 허가를 자신한다면서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테드 터너를 믿고 한국을 다녀온 것인데, 이런 결과라니. 너무나도 실망이었다.

유재원이 한국에서 설 연휴를 보 내고, 그룹의 현안이나 판타지 유 니버스와 같은 사심 가득한 일을 수행할 때에도, 세계의 시간은 멈 추지 않았다.

국방부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놔 도 시간은 흐르는 것처럼, 세계의 시간도 흘러가면서 크고 작은 일들 을 만들었다.

미국 연방 통신 위원회가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미국 공중파 방송국 NBC의 합병 승인 요청에 대해 보 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어난 사건 중 하나였다.

방송이나 미디어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딱히 신경 쓸 일도 아니겠지만, 유재원과 같은 직접 당사자에겐 깜짝 놀랄 일이었다.

-아, 미국으로 돌아왔나?

테드 터너 역시 직접 당사자였 다. 공식 직함이 타임워너 넥스트 컴의 부회장이고, NBC 인수 프로 젝트의 실무 책임자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유재원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테드 터너의 목소리는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차분했다.

-머독, 그 빌어먹을 작자가 움직 였다고 하더군.

아, 차분했다는 게 아니라 속으 로 분노를 곱씹고 있었던 모양인지 목소리에선 분노가 느껴졌다.

특히 머독이란 단어에 강한 악센 트가 붙어 있었다. 유재원 역시 머 독이란 소리에 물음표가 가득 떴다.

"머독이요? 그 양반이 뜬금없이 왜 나타난 거죠?"

테드 터너와 머독의 관계는 최악 이었다.

앙숙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방 송 산업이란 영역에서 수도 없이 맞붙었던 사이이기도 했고, CNN 대 폭스TV라는 대표 방송사의 성 향 차이에서 드러나듯 정치 성향도 완전 달랐다.

CNN은 현장의 뉴스를 신속?정 확하게 내보내겠다는 모토 속에서 태어난 뉴스 전문 채널이었고 정치 성향도 크게 보면 친민주당이었다.

반면 폭스TV는 순발력은 최악이 지만 자극적인 뉴스로 가공해 내보 내는 것이 특징인 채널이었다.

MSG 정도가 아니라 약을 친다 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자극 적인 뉴스를 보도했다.

과거 뉴에그 PC 제조에 유태인 학살에 쓰인 포스겐 독가스가 사용 된다는 ID 그룹 역사상 최악의 오 보를 낸 곳이 폭스TV이기도 했다.

-유니버설의 애송이 사장 녀석이 도움을 요청한 것 같더군. 들리는 소문에는 게이츠도 유니버설-GE 컨소시엄에 투자금을 보탠다고 하 더라고.

"게이츠?"

-흐흐, 자네에게 게이츠라고 하 면 누가 있겠나?

"설마 그 고마운 빌 아저씨 말인 가요?"

유재원의 ID 그룹에 구 MS, 지 금은 안드로이드사라 불리는 커다 란 기둥을 만들어 주고 떠나간 은 인이 게이츠였다.

ID 그룹이 거슬린다고 밟아 버리 려다가 제 꾀에 걸려 넘어진 게이 츠였다. MS의 대금으로 60억 달러 쯤 챙겨 줬는데, 이후 게이츠의 행 보에 대해선 관심을 끊고 살았었다.

돈이 될 것 같아서 유니버설-GE 컨소시엄에 참가하는 것인지, 아니 면 유재원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지 는 몰라도 어쨌든 이름을 올렸단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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