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09화 (609/1,007)

29권 18화

월드컵 붐으로 뜬 상품과 서비스 는 한둘이 아니었지만, 치킨의 대 중화나 치킨과 맥주의 조합이 제대 로 갖춰진 건 2002 월드컵이 계기 였다.

"음,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가 얼마만큼 올라갈 것 같으세요?"

유재원은 단도직입적으로 두 사 장님들이 예상하고 있는 축구 국가 대표팀의 예상 성적을 물었다. 본 인이 알고 있는 것과 확연한 차이 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축구라는 게 흠 어드밴티지를 잘 받는 종목이니, 첫 승은 기본일 테고, 적어도 조별 예선은 통과하 지 않겠느냐?"

"나도 그렇게 본단다. 경우의 수 를 따지지 않고 진출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16강은 가겠지."

역시.

조별 예선 정도만 보고 있으니 2 배 정도 준비한 것이겠지.

하긴, 그 누구도 2002 월드컵에 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파란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나마 두 분 사장님처럼 홈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조별 예 선은 뚫지 않을까 생각하겠지.

"재원이 생각은 다른 모양이구 나?"

"네. 저는 8강은 무조건 가고,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 8강?"

유재원의 말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축구 국가 대표팀의 국제 대회 성적을 보자면 8강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다들 이렇게 생각한 탓에, 16강을 넘고 8강을 갈 때 난리가 났다. 치킨집에 치킨 이 없고, 마트나 편의점에선 맥주 가 동이 났다.

생닭을 웃돈 주고 구하려고 했지 만, 공산품과 달리 양계라는 건 병 아리가 자랄 시간이 필요한 산업이 었다.

"3배, 아니 4배 정도는 너끈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해요."

유재원의 말에 아무리 그래도 그 게 되겠느냐 하는 얼굴이지만, 반 박하진 못했다. 회사의 부하 직원들이 올린 보고였다면 바로 따져 물었겠지만, 온갖 기적을 만들어낸 유재원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두 사람은 원래 계획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준비하기로 마음 을 먹었다. 그만큼 유재원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월드컵에 관해 이야기를 나 누는데,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정보팀에서 보낸 ID 톡이었다.

-회장님, 지시하셨던 보고서가

완성되어 보내드립니다.

한 달 전쯤 알아봐 달라고 했던 일성의 황태자 최재영에 대한 작업 이 끝난 모양이다. 그런데 메시지 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 북한 내부 분위기 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이에 대 해 별도의 보고서를 첨부했습니다.

북한?

북한이 이맘때 무슨 사고 치는 게 있었나? 기억의 저장소를 뒤져 봐도 그런 건 없었다.

설마 서해 NLL을 넘었나? 아니 면 미사일 도발이라도 계획하고 있 나?

종전 선언 이후로 한반도의 역사 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회귀로 얻 은 지식은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인지 유재원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유재원은 두 분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곧장 첨부된 파일을 열었 다.

IDW 형식으로 되어 있는 파일 이었기에, 안드로이드 폰에서 열람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 었다.

다운로드된 파일을 터치하면, 뷰 어 프로그램이 알아서 실행되어 깔 끔한 문서 화면을 보여줬다. 스마 트폰용 디스플레이의 DPKDots Per Inch)는 일반 컴퓨터용 모니터보다 훨씬 높았기에, 글꼴의 형태가 매 우 미려했다.

다만 유재원은 파일의 내용을 보 기 전에 한 가지 더 거쳐야 할 절 차가 있었다. IDW 파일에 걸린 암 호였다.

일괄적으로 고정된 암호가 아닌, 특정한 법칙에 따라 암호가 생성되 는데, 키포인트는 문서 파일 이름 이었다. 파일 이름을 보고 12자리 의 알파벳 대소문자와 숫자, 특수 문자를 입력했다.

-확인되었습니다.

나름 복잡한 수식을 갖고 있었지 만, 한방에 풀렸다.

북한 최신 동향 긴급 보고서라는 이름의 문서는 A4용지로 1장 분량 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보팀 장의 장담대로 제법 심각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중국, 상하이 당서기 천량위, 북한 방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당일 영접.

-다음 날, 제2 포병 사령부 방 무

'제2 포병 사령부?'

이름만 들으면 재래식 포탄을 마 구 쏴 재끼는 군부대처럼 들린다. 각종 구경의 견인포랄지, 북한이 자랑하는 다련장포, 대공포 따위를 운용하는 부대처럼 말이다. 하지만 제2 포병 사령부의 핵심 전력은 바 로 전략 미사일이었다.

노동 미사일부터 대포동, 화성, 광명성 등등 단거리부터 대륙 간 탄도 미사일까지. 북한의 비대칭 전력 중 핵심인 전략 미사일을 관 리하는 부대가 바로 제2 포병 사령 부였다.

천량위라는 양반도 무게감이 있 었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 국가이니 야 당은 없지만, 공산당 안에 파벌이 여러 개 있었다. 지금 중국의 국가 주석인 후진타오는 공청당이란 파 벌의 수장이라면, 천량위는 상하이 방의 정통 후계자였다.

중국의 전대 국가주석인 장쩌민 이 제대로 밀어주고 있는 인물이었 던 것이다.

'장쩌민이 움직인 건가?'

군권도 내려놓으며 후진타오 주 석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한 것처럼 보이는 장쩌민이지만, 후진타오는 아직도 제 마음대로 정치를 할 처 지는 아니었다. 중국 권력의 핵심인 공산당 상무위원에는 아직도 장 쩌민의 입김을 받는 인사들이 가득 했으니 말이다.

이번에 천량위가 북한을 방문한 것도 장쩌민이 뒤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후진타오가 사람을 보냈으면 당 연히 공청당 소속 인물을 보냈을 텐데, 본인과는 대척점에 있는 상 하이방의 사람, 그것도 장쩌민이 편애하는 천량위를 보낼 이유는 없 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일 천량위를 접견했고, 다음 날에 는 사이 좋게 제2 포병 사령부를 방문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중 국의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국제 정세가 돌 아가는 상황을 보면 한가하게 친목 을 다질 만한 상황은 절대 아니다.

"진짜 미사일 도발인가?"

중국은 궁지에 몰렸다.

크래커들을 양산해 음지에서 각 종 지저분한 방법으로 돈을 벌 때 는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의해 중국 크래커들의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지금은 국가적 수치였다.

여기에 청나라 채권 문제까지 터 졌다.

중국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는 걸 알아차린 미국은 청나라 채 권 환수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청나라 채권을 대놓 고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명분은 간단했다. 중국이 그동안 청나라 채권을 보유한 개인들의 상환 요구를 거부했던 건 분명 잘못 된 일이며, 국제 금융 시장의 신뢰 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미국이 대표로 중국과 협상을 대신할 테니, 청나 라 채권을 소유한 이들은 미국 정 부에 협상을 위임해 달라고 했다.

대신 협상에 성공해 중국이 상환 을 하면, 상환 액수의 일정 비율만 큼 미국이 수수료로 챙기겠다는 이 야기다.

채권 보유자들에겐 나쁠 게 하나 도 없었다.

중국이 상환을 거부하면서 그냥 낡은 종이 쪼가리로 전락할 처지였 는데, 미국이 대신 나서면서 전액 은 아니어도 일부라도 받을 수 있 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역시 중국을 압박하면 서, 동시에 커다란 수수료도 챙길 수 있게 되었기에 서로서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소식으로 장롱 안 에 잠들어 있던 청나라 채권이 다 시 세상에 나오는 강력한 계기가 되면서, 수량도 많아졌다.

단적으로 P 마켓이나 이베이와 같은 거래 사이트에는 청나라 채권 매물이 조금씩 나오곤 했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청나라 채권 을 공식 언급하고 나서부터는 매물 이 싹 사라졌다. 기대감이 그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당연히 미국 정부에 위임한 청나 라 채권 중에는 유재원의 것도 있 었다.

앨 고어 대통령에게 힌트를 주기 전까지 청나라 채권을 열심히 모았 으니 말이다. 그 액수는 현재 가치로 대략 1천억 달러가 좀 넘는다.

이처럼 미국 정부에 위임되는 액 수가 많아질수록 중국에게는 더없 는 압박이 되었다.

아무리 전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 면서 막대한 무역 흑자를 올리고, 내수 시장도 빠르게 확대되며 경제 가 성장하는 중국이지만, 갑자기 수천억 달러의 빚이 생기면 그야말 로 엄청난 부담이었으니 말이다.

"미사일? 갑자기 웬 미사일이 냐?"

박상권 사장님의 물음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한다고 했던 유재 원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해졌는 데, 갑자기 미사일 도발이란 심상 치 않은 단어가 튀어나오니 물어보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그게요."

유재원은 잠깐 고민하다가 미국 의 청나라 채권 상환 요구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 를 간략히 설명해 드렸다.

한국의 정보팀이 국정원보다 나 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긴 한데, 그 것도 하루이틀 정도 앞서는 것에 불과했다.

며칠 지나면 다 알게 될 일이니, 먼저 언급을 해 주는 것으로 두 분 사장님에게 도움이 되면 그걸로 충 분한 유재원이었다.

"청나라 채권? 그 일이 북한까지 이어진다는 말이냐?"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월드컵이 깨지는 건가?"

북한 하면 아직도 80년대 체제 대결을 하던 때가 생각나는 두 분 인지라, 무척이나 과격한 말들이 절로 나오셨다.

"북한이 생각이 있으면 거기까지 가진 않겠죠."

북한의 현재 상태는 과거와 비교 할 바가 되지 않는다.

고난의 행군도 없었고, 남북 경 협은 물론이고 경제특구로 4%대의 성장을 꾸준히 이뤄내고 있는 중이 었다.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으로 매 달 돈이 들어왔고, 철광석이나 석 탄 수출도 좋았다.

심지어 평화 자동차라는 자동차 공장까지도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 다. 게다가 딱 한 달 뒤에는 제네 바 합의의 결과물인 경수로의 완공 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완공된 경수로 출력은 1,OOOMW, 제법 거대한 규모였다.

대한민국이라면 어림없는 일이지 만, 산업 시설도 적고 전기 사용량 도 적은 북한에서는 경수로 하나로 평양은 물론이고 북한의 웬만한 도 시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 이었다.

평양 이외의 도시에서는 전기 공 급이 제대로 안 되어 중국산 태양 열 패널을 가져다 전구를 밝히는 데 쓰고 있는 게 유행일 정도였는 데, 경수로가 제대로 가동되면 그 문제가 깔끔히 해결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 로 평양의 연락 사무소가 대사관으 로 격상될 일이 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어설픈 도발을 했다가는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김정일이 생각이 있으면 미사일 도발 같은 건 하지 않으리 라 보는 게 정확하겠지만, 유재원 은 확신할 수 없었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상식적인 판단을 했을 터인데, 북한의 지도 자들이란 사람들은 정상인의 범주 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핵 개발 같은 어처구니없는 도발은 걱정하지 않 아도 된다는 점이다.

경수로의 첫 삽이 떠질 때, 영변 의 실험로는 가동을 정지했고 IAEA의 꼼꼼한 사찰 후에 파괴되 었으니 말이다.

부시 대신 앨 고어가 대통령이 되면서 악의 축 발언도 터지지 않 았고, 클린턴 때의 합의를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일로 북한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할 좋은 기 회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 았다.

그와 함께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자기가 저지른 삽질에 대해 수습할 생각도 없으면서 어설프게 북한을 건드린 중국을 가만둬서는 안 되겠 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참느라 혼났네."

정보팀이 보낸 문서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최재영 부부 관련 보 고서였다.

어째서 문제의 셋째가 태어나지 않는지 궁금해하다가, 갑작스러운 별거 소식에 깜짝 놀라 자세히 알 아봐 달라고 했고, 그에 대한 정보 가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한 파일이 다.

북한과 관련된 사안은 공적인 성 격도 있어서 카페에서 열어 봤지만, 이 파일은 개인적 사안이었기에, 모임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살 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분 사장님과 오랜만에 만난 터라 그 시간이 길어졌다.

술자리로 이어질 기미까지 보였기에, 유재원은 양해를 구하고 먼 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인이 된 유재원이었기에 술을 먹어도 문제 없었지만, 술을 마시는 스타일은 두 분과 완전히 달랐던 탓이다.

유재원은 맥주 한두 잔 혹은 포 도주를 마시는 쪽이지만 그분들은 위스키는 기본이고 폭탄주도 기가 막히게 말아 드시는 분들이었다.

더욱이 파일 안에 담긴 내용도 특별할 것이기에 유재원은 집에 돌 아온 후, 살며시 서재로 들어와 안 드로이드 폰을 켜는 중이다.

"무슨 막장 드라마가 숨겨져 있 으려나?"

그도 그럴 것이 재벌 집안의 속 사정은 드라마를 능가하는 일이 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암호를 입력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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