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08화 (608/1,007)
  • 29권 17화

    인수 대금이 자체 조달로 부족해 진다면, 함께할 사람을 찾으면 된 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유재원에 게 감정이 많이 쌓인 이들일수록 좋다.

    스티브 버크 사장은 그런 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ID 그룹의 넓은 사업 영역만큼, 기존 사업자들과의 경쟁도 치열했고, 그 와중에 앙심 을 품게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더욱이 NBC라는 공중파는 돈만 많다고 해서 끝나는 비즈니스가 아 니다.

    명색이 국가 기관 산업인 공중파 아닌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그 녀석에게 쓴맛을 보여줄 절호의 기 회였다.

    동시에 경쟁자가 사라진다면 거 품이 잔뜩 낀 NBC의 호가도 제자 리를 되찾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스티브 버크는 아이 폰드에 저장된 주소록을 검색했고, 곧 하나의 이름을 선택해 전화를 걸었다.

    -점점 구체화되는 NBC 인수전.

    -유니버설, NBC 인수를 위해 GE와 함께 컨소시엄 구성키로.

    -타임워너 넥스트컴 대 유니버설 -GE 컨소시엄 2강 구도 확정.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유재원을 대신해 NBC 인수전 참전을 선언 한 이후에도 유니버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GE라는 든든한 동아줄을 잡고서 타임워너 넥스트 컴에 대응했다.

    "터너 아저씨, 괜찮겠어요?"

    ―물론, 그치들이 GE를 등에 업 어도 바뀌는 건 없을 걸세!

    유재원의 물음에 안드로이드폰 너머의 테드 터너는 호탕한 목소리 로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었 다.

    "그러면 왜 아직도 연방 정부에 서 승인이 안 떨어지는 거죠?"

    -공무원들 굼뜬 게 하루이틀 일 인가?

    한국인이 외국에 나갔을 때, 크게 당황하는 것 중 하나가 속도의 차이였다.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과 달 리, 유럽이나 미국은 모든 게 느렸 다. 인터넷 서비스 하나만 비교해 도 답이 딱 나온다.

    한국에서는 신청한 다음 날, 늦 어도 다다음 날에는 설치 기사가 찾아와서, 바로 개통이 된다. 타이 밍만 잘 맞으면 신청 당일 기사님 이 올 때도 있다.

    외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주일 만에 오면 다행이다.

    미국은 유럽보단 낫지만 그래도 한국처럼 빠르진 않았다. 한국의 AS 체제를 도입해 늦어도 3일 안 에 서비스 기사가 방문한다는 넥스 트컴의 서비스를 혁신으로 받아들 이는 이유가 다 있었다.

    그렇기에 NBC 인수 허가 신청 을 낸 지도 3달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느낌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유니버설 쪽 움직임을 잘 살펴 보세요."

    -알겠네. 방송국 사업에서 나보 다 전문인 사람이 있나?

    " 없죠."

    -그래. 나를 믿기만 하게.

    "물론 믿고 있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테드 터 너 씨가 아니었으면, 유재원은 다 른 대답을 했을 것이다.

    CNN과 TBS 등을 만들었고, 타 임워너와 합병, 넥스트컴과의 합병 으로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 테 드 터너였다.

    본인의 말처럼 방송국 사업에 있 어 테드 터너만큼 전문가는 없었다. 더욱이 앨 고어 행정부도 유재원에 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만약 변동이 생긴다면 먼저 연락을 해 줄 사람도 많았다.

    "저는 터너 아저씨만 믿고 한국 에 다녀올게요."

    -그럼! 설 명절 잘 보내고 오게.

    테드 터너가 설 명절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유재원과 함께 일하 게 되면서 한국식 설날에 대해서도 배웠던 모양이다.

    "자, 그럼 나도 이제 일어나 볼 까'?"

    테드 터너와의 통화가 샌프란시 스코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유재원은 안드로이드폰을 안주머 니에 챙겨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 연휴가 있는 2월 셋째 주를 통 으로 한국에서 보내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쉬는 날이었고,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한국에서 업무를 보고 일요일에 다 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일에 지친 티파니도 오랜만에 함께 한국으로 가서 쉬기로 했다.

    "일 끝났어?"

    유재원이 서재에 나오니 거실에 서 기다리고 있던 티파니가 반색했 다. 티파니 옆에는 큼지막한 캐리 어도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지낼 동안 본인이 입을 옷을 비롯 해 식구들을 위해 티파니가 준비한 선물도 담겨 있는 캐리어였다.

    "응, 가자!"

    유재원의 말에 티파니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디디야, 엄마 한국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야웅!

    아쉽게도 이번에도 디디는 함께 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환경이 바 뀌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기도 하고, 검역 문제도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유재원과 티파니가 한국 에 가더라도 샌프란시스코 집에 상 주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고양이 전문가도 수배해 놓았으니 문제는 없다.

    게다가 사이버 독(Cyber Dog) 진돌이의 눈을 통해 한국에서도 디 디를 살펴볼 수 있기에 유재원과 티파니는 걱정 없이 집을 나섰다.

    참고로 사이버 독이라는 이름은 ID 일렉트로닉스에서 넘어온 아이 디어 였다.

    가전 부문 사장과 임원들을 집에 초대했고,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차 원이 다른 가전제품을 공개했다. 진돌이와 로봇청소기가 가장 충격 적이었지만, 다른 백색 가전들 역 시 마찬가지다.

    이후 ID 일렉트로닉스에서는 이 러한 제품을 양산할 채비를 했고, 새로운 브랜드 런칭도 준비 중이었 다.

    TV는 보르도, 고급형 백색 가전 에는 클라세라고 구분지어 줬는데, 진돌이가 애매했다.

    그냥 진돌이라고 하기엔 밋밋했 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가된 게 바 로 사이버 독이라는 이름이었다.

    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자주 쓰 다 보니 꽤 괜찮았다.

    ID 일렉트로닉스에 대해서는 가전 부문 말고도 반도체도 챙길 게 많았고, 이번 한국행에서 깊숙이 다뤄 볼 예정이었다.

    유재원 부부의 한국 입국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ID 그룹의 전용기를 타고 위풍당 당하게 공항에 착륙한 것은 전과 같았지만, 착륙한 공항 자체가 달 라졌으니 말이다.

    예전엔 어쩔 수 없이 낡고 좁은 김포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면, 이제는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들어 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공항이 다 르니 입국 절차나 의전의 모습도 확 달라진 것이다.

    세계적 허브 공항으로 성장할 인 천 국제공항이 개장한 건 작년이었 지만, 일이 바빠서 한국에 들어올 날이 없어 개장 행사나 직후에 이 용해 보진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 설에 드디어 이용하게 됐는데, 역 시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새 건물이라서 뭐든 깨끗했 다. 김포 공항에 비해 규모도 커져 서 사람이 많아도 번잡하다는 느낌 이 전혀 없었다.

    마찬가지로 물류 처리도 신속했 고, 입국 절차도 훨씬 편해졌다. VIP를 위한 통로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간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 다.

    "회장님! 사모님,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역시나 공항 입국장에는 최강욱 부회장을 비롯한 ID 그룹 한국의 임원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최 부회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강욱 부회장에게 먼저 새해 인 사를 한 유재원은 임원들과도 악수 를 나눴다. 임원들은 악수만 하는 데도 껌뻑 죽어 나갔다.

    어려운 사장님을 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슈퍼스타를 만난 팬의 모 습 같았다. 실제로 ID 그룹 내에서 유재원의 존재감은 스타 혹은 히어 로와 비슷했다.

    성공을 장담 못 할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유재원만 개입하면 모든 게 대박이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더욱이 유재원은 ID 그룹이 성장 하며 벌어들인 과실을 직원들과도 잘 나누었다. 단적으로 이번 설 명 절에 내려온 보너스는 국내의 그 어떤 대기업보다 컸다.

    2001년 ID 그룹의 실적이 좋아 서 은근히 기대하는 직원들이 많았 는데, 그러한 기대를 단번에 뛰어 넘는 액수였다.

    ID 일렉트로닉스 가전 부문처럼 엄청난 손실을 본 계열사라고 해도 기본 보너스는 나왔기에 설날의 훈 훈함을 구석구석 느낄 수 있었다.

    이어 유재원 부부는 최강욱 부회 장이 준비한 차를 타고 이동을 시 작했다.

    ID 그룹의 본사인 글로벌헤드쿼 터 빌딩엔 들르지 않고, 곧장 덕진 리 집으로 이동하였다.

    유재원 부부의 설날 풍경은 일반 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께 세배했 고, 덕담과 세뱃돈도 받았다. 유재 원이나 티파니가 가진 돈이 훨씬 많았지만,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은 늘 각별했다.

    다만 유재원의 세뱃돈 봉투보다 티파니의 봉투가 훨씬 두꺼웠다는 게 특이한 포인트였다.

    이어서 큰집에도 들러 큰아버지 와 큰어머니께도 세배했고, 친척들 에게도 한 분 빠짐 없이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도니 주 머니가 세뱃돈으로 두둑해졌다. 티 파니도 한국식 설은 처음이었기에 무척이나 즐거운 모습이었다.

    최근 셰브롱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은 듯했는데, 며칠 푹 쉬며 설 연휴도 즐기니 예전처럼 얼굴에 빛이 돌았다.

    물론 일반 가정이었다면 이야기 는 좀 달랐을 것이다.

    분가한 상태이니 시집살이는 덜 했겠지만, 명절 증후군은 피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유재 원이 크게 성공한 덕에 유재원의 부모님의 명절 모습도 완전히 달라 져서 명절 부조리는 단 1도 없었 다.

    명절 음식은 전직 호텔 주방장이 차린 한식당에서 특별 주문을 해서 받았고, 집안일을 해 주는 분들도 따로 계셨으니 말이다.

    부모님은 오히려 유재원보다 티 파니를 더 챙겼다. 어머니가 티파 니와 함께 시내 데이트를 한다고 나가셨을 정도다. 아버지도 그 틈에 끼고 싶었던 모양인지 둘만 나 가니 무척이나 섭섭해하셨지만, 어 림 없었다.

    유재원은 그 틈에 집을 나와서 소중한 분들을 만났다.

    예전엔 현미유 공장 사장님이셨 다가, 이제는 대한민국 5대 대기업 중 하나인 부산 그룹의 사장님이 된 박상권 사장님.

    그리고 유경 치킨으로 시작해 닭 고기, 사료, 택배, 각종 프랜차이즈 등의 사업으로 확장해 유경 그룹을 일군 류준식 사장님이었다.

    IMF 때 잠깐 주춤하긴 했지만, 역경을 이겨낸 유경 그룹도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은 국내 20위권 내의 대기업 집단이 되었다.

    두 분 모두 서울로 활동 반경이 바뀐 지 오래였지만, 마음의 고향 은 여전히 덕진리였다.

    덕분에 덕진리 앞에 마련된 덕진 리 공장은 규모가 커졌으면 커졌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부산 그룹의 곡물 가공 공장이 크게 들어왔고, 유경 그룹의 닭 가 공 공장과 물류 공장이 한층 거대해져 있었다.

    그리고 두 분의 공장들을 다 합 친 것보다 더 큰 공장이 있으니 ID 그룹의 소프트웨어 패키지 공장이 었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부터, ID 오피스, ID 엔터테인먼트에서 출시 하는 PC용, 엑스박스용 게임 패키 지를 만들어내는 공장이었다.

    친구들과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했 던 패키지 공장은 이제 전 세계에 수백, 수천만 개의 소프트웨어 패 키지를 공급할 만큼 거대했다.

    스팀이 크게 활성화되면 소프트 웨어 패키지의 생산량도 줄어들 것 이다. 하지만 21세기 중반에도 기 업용이나 소장용 패키지 시장은 살 아 있었기에, 일각의 우려와 달리 미래도 탄탄한 공장이었다.

    유재원이 두 분을 만난 장소도 덕진 공단 앞에 마련된 카페였다.

    공단에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많 은 만큼, 덕진 공단 앞에는 커다란 상권이 생겨났다. 대형 마트는 물 론 각종 음식점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입점한 상태였다.

    여러 가지 밀린 이야기가 참 많 았다. 덕분에 공적인 일이라면 만 나자마자 바로 본론에 들어갔던 유 재원이지만, 이번만큼은 거의 1시 간이 지나서야 본론이 나올 수 있 었다.

    "2002 월드컵은 잘 준비하고 계 시죠?"

    "그럼!"

    "물론이다!"

    유재원의 물음에 두 사장님은 자 신 있게 답했다.

    "당장이라도 평소의 2배 물량을 뽑아낼 준비가 끝났다."

    "우리도 2배는 문제없단다."

    박상권 사장과 류준식 사장의 말 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2배?

    그걸로는 어림도 없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이서 준비하는 건 바로 스포츠 관람 중 가장 간편 하게 즐길 수 있는 먹거리인 치킨 과 맥주였기 때문이다.

    부산 그룹의 대표 맥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바뀌 었다. 옛날엔 동양 맥주로 유명했 고, 8, 90년대엔 BB 맥주였다가, 지금 BB 라거라는 이름으로 맥주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경쟁자들이 히트, 키스 등등의 신세대 감각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 에 3,000m 지하 암반수 등등 감각 적인 요소를 가지고 열심히 광고 중이었지만, BB 라거를 넘진 못했 다.

    유경 그룹은 당연히 치킨이다.

    유경 치킨이 유경 그룹의 모기업 이었고, 90년대 초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치킨 업계를 이끄는 중이었다.

    2002 남북 월드컵은 한국 스포 츠사에 길이 남을 이벤트였고, 게 다가 축구 단일 종목이었다. 긴 90 분이라는 경기 시간은 치킨과 맥주 를 먹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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