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9화
게이머들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 트에 열광하고, 영화 마니아들이 마법사의 돌의 개봉을 기다리는 동 안에 새로운 뉴스는 계속 흘러나왔 다.
오픈 베타를 시작한 지 대략 10 일 정도 지났을 뿐인데, 벌써 60레 벨 만렙 유저가 나왔다던가, 첫 번 째 20인 던전이 공략되었다던가 하 는 뉴스도 상상 그 이상이었다.
당연히 공략에 성공한 나라는 한 국이었다.
콘텐츠 소모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한국은 가장 많은 만렙 유저들이 있었고, 유저 들은 정규 공격대라는 걸 조직해서 매우 조직적인 행태로 움직이며 보 스를 잡아 나가고 있었다.
원래 만렙 정도는 오픈 베타를 시작하고 나서 한 달쯤 후에나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보 다 3배는 빠른 속도였다.
덕분에 정식 발매 후 즐길 게 없 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 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만렙용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보강했고, 오픈 베타로 모 든 지역을 다 공개하지도 않았다.
진영 간 전쟁이라는 유저 참여형 콘텐츠도 잘 준비가 되었기에 정식 발매 후에도 유저들이 즐길 거리는 많았다.
게이머들이 이렇게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에 몰입하는 동안, 핫이슈 는 계속 쏟아져 나왔다. 추수 감사 절을 준비하는 건 ID 그룹뿐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추수 감사절 시즌을 뜨겁게 달군 뉴스는 역시나유재원이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게 있으니 논란의 소지가 무척이나 큰 뉴스였다는 것이다.
-긴급 속보! 유재원 회장, 911 테러 조치에 대한 공로로 명예시민 추진 중.
추수 감사절 일주일 전에 터진 속보였다.
명예시민 수여를 놓고 논란은 걷 잡을 수 없이 커졌다.
백악관에서도 이러한 여파가 일 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밀 리에 추진했던 것인데 같은 민주당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야 기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 모양이 다.
-현존 인물에 명예시민 수여 케 이스는 단 2번뿐!
-과연 유재원 회장의 업적이 윈 스턴 처칠과 테레사 수녀를 능가하 는가?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역대 명예시민에 선정된 이들을 열거하면서 유재원의 성과가 이들 과 같은지 따져 보자는 뉴스 정도 는 애교였다.
황색 저널리즘을 지양하는 저질 의 뉴스에서는 유재원이 큰돈을 주 고 명예시민증을 사려 한다는 말까 지 나오고 있었다.
논란이 너무도 거세게 일어나자 앨 고어 대통령이 나서게 되었을 정도였다.
-앨 고어 대통령, 우려와 논란 충분히 이해해.
-다만, 유재원 회장의 공로에 대 해서 말 못 할 이야기가 너무 많 음. 기밀이 해제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국회의 판단을 100% 존중할 것.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민주당 의 원들도 모두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 서 표결에 들어갔고, 반대표가 찬 성표를 압도했다.
민주당에서는 찬성표가 기대 이 상으로 나오긴 했는데, 공화당에서 전원 반대를 표하면서 부결되었다.
"음, 911 테러 정도로는 무리였 나?"
유재원도 국회 표결 결과는 텔레 비전 속보로 확인했다.
오랜만에 쓴맛이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911 테러 사건을 통한 명예시민증 확보는 그 마스터플랜 에도 오른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드론 개발부터 상당히 공을 들인 일이었는데,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는 것을 확인한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미국 국회의원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내려면 이보다 훨씬 큰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확실히 이해했 다.
그렇지만 씁쓸함이 오래가진 않 았다.
ID 그룹을 운영하는 데에는 영주 권 정도로 충분했고, 만약 이보다 큰 사업 영역을 얻고자 한다면 정 식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 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미국에 연연하지 않고 지 금처럼 활동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유재원도 사람이었던지라 조금 허탈하긴 했다. 백악관에서 연락이 올 때만 해도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해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신약 개발 아이템을 생 각해 봐야겠네."
결국 유재원은 명예시민 추진은 보다 신중히 검토하기로 마음을 먹 었다.
띵!
유재원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마침 안드로이드폰이 울렸다.
티파니를 시작으로 뉴스 속보를 보고 유재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 는 지인들이었다. 레밍턴과 앨런은 물론 영식이도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누가 봐도 생색을 내 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유재원을 각별하게 생각하 는 게 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방송국은 꼭 가지고 있 어야 하는데."
인터넷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었지만, 방송국의 역할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심지어 미래에 도 변하지 않는다.
SNS의 유명 인사들이 수십만, 수백만의 팔로워를 자랑하고 여론 을 주도해도, 언론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었다.
또한, 고퀄리티의 프로그램을 만 들고, 빠르게 배포하는 데에는 방 송국만큼 좋은 수단이 없었다.
더욱이 유재원이 머릿속에 담긴 수많은 콘텐츠를 유통하는 데 있어 공중파만큼 좋은 채널도 없다. 타임플렉스의 잠재력은 상상 그 이상 이지만, 폭발력이 제대로 나오려면 아직도 10년은 더 있어야 하니 말 이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에 공중파 채널이 매물로 나오지 않았나?"
유재원은 오랜만에 기억의 궁전 에 들어갔다.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뉴스 라이 브러리에서 2000년대 초반의 기사 들을 검색했다. 그러자 NBC라는 이름이 크게 박힌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NBC의 합 병이었다.
NBC는 미국의 6대 공중파 채널 중 하나다. 그 유명한 RCA를 소유 하고 있는 방송국으로 1919년 10 월에 출범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6년 모기업인 RCA 가 제네럴 일렉트릭에 인수된 상태 로 있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NBC는 프렌즈라는 걸출한 드라 마로 최고의 인기를 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내실이 좋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2004년 5월쯤에 비방디 유니버설에 합병되기도 했고, RCA 를 인수했던 GE가 NBC의 지분을 매각해 버리기도 했다.
프렌즈가 있어서 좀 버틸 수 있 었던 것이지, 프렌즈가 아니었으면 1990년대 말에 매물로 나왔을 거라 는 게 NBC의 현재 상태다.
"NBC 인수를 해 봐?"
NBC 인수는 원래 계획에는 없 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려 보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소유하고, 경영권은 온전히 유재원이 행사하면 될 일이 다. 물론 인수 대금은 ID 그룹이 전부 준비하면 깐깐한 시어미 같은 타임워너 이사회가 밥숟가락 올리 는 일은 간단히 막을 수 있다.
유재원은 곧장 NBC의 자산 현 황과 ID 그룹의 사내유보금의 규 모, 각종 법적인 요건에 대한 검토 를 해 보라고 비서실, 전략기획실 에 명령했다.
그와 함께 레밍턴 부회장에게도 본인의 뜻을 전했다.
그렇게 연락을 다 돌린 후 안드 로이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한 사 람이 더 생각났다.
"아! 이런 일은 터너 씨 전문이 니 한번 조언을 구해 볼까?"
유재원은 동부 시간을 확인하고 는 곧장 테드 터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요즘은 기본인 컬러링 대신 따르 릉거리는 클래식한 전화벨이 두 번 쯤 울렸을 때.
-우리 젊은 회장님께서 무슨 일 이신가?
테드 터너의 화통한 목소리가 전 해졌다.
가끔 통화도 하는 사이였기에 안 부를 챙기는 데 몇 마디 말이면 충 분했다. 유재원은 곧 NBC 인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했다.
이에 대한 테드 터너의 반응은 간단했다.
-이거 누구 생각인가? 대박인 데?
대박이라니.
그건 또 어디서 배운 말인가?
인터넷으로 하나 되는 세상이라 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레밍턴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보스, 좋은 소식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타임워너 이사 회로부터 회장님의 NBC 인수 제 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습니다.
" 진짜요?"
유재원이 놀라 물었다.
어제 나온 아이디어였는데, 이렇 게나 빨리 결정이 되다니.
전통적인 경영관을 가지고 있는 타임워너 이사회를 생각하면 그야 말로 번개 같은 결정이었다.
-테드 씨가 큰 역할을 해 주셨습 니다.
역시 테드 터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타임워너 넥 스트컴이란 타이틀을 빌린 게 주요 했다고 한다.
원래 유재원이 생각한 미국 방송 계로의 진출은 타임워너의 방송국 중 하나를 넘겨받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고려하지 못한 건 타임워 너 이사회의 입장이었다.
법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들도 문 제지만, 타임워너 이사회가 제일 두려워하는 건 본인들의 커리어가 부정되는 것이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유재원의 방 송국 인수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NBC의 인수라면 이야기 가 달라진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보다 더 큰 욕심은 바로 타임워너라는 미디 어 제국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NBC의 인수라면 이들의 욕심에 방점을 찍는 일이었다.
몇 년 전 테드 터너가 뜬금없이 타임워너와 넥스트컴캐스트의 합병 안건을 상정했을 때에도, 이종의 합병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결국 찬성한 것은, 미디어 제국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타임워너 측이 얼굴마담을 하고, 유재원이 인수 대금을 책임지는 형식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 론도 금세 나왔다.
여기에 타임워너의 라이벌 유니 버설이 NBC 인수에 대해 고려 중 이라는 증권가의 풍문은 이사회의 빠른 결정을 가속화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통신 위원회에서 승인이 날까요?"
국가 기관 시설인 공중파 방송국 이니 인수에도 여러 가지 승인이 필요했다. 그중에 최대 난관은 바 로 미국 연방 통신 위원회의 승인 이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너무 덩치 가 크다고 생각하면 승인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반반입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힘을 써 보겠다고 합니다. 테드 터 너 씨도 열성적이고요.
아직 확실한 건 없다는 이야기 다.
유재원도 납득했다. 그래도 명예 시민보다는 긍정적이라고 보았다.
원래 역사를 따져 보면 유니버설 과 합병했던 NBC는 이후로도 이 리저리 팔려 다니는 신세였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는 컴캐 스트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지금이야 컴캐스트는 넥스트컴과 의 합병으로 사라진 회사였지만, 회귀 전만 해도 북미 지역의 인터 넷과 케이블 TV에서 절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비록 타임워너 넥스트컴 이라는 긴 사명 중에 겨우 한 글자 차지하고 있는 신세지만, 그래도 NBC와 합병이 되면 회귀 전의 흐 름과 맞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레밍턴과 NBC 인수에 대한 구
체적인 사안에 대해 한참 이야기한 후에, 화상 미팅을 마무리할 수 있 었다.
"그러면, 주말에 봐요."
대신 마지막 인사말이 평소와 달 랐다.
다음 주가 바로 추수 감사절이었 고, 레밍턴 가족들은 고향인 샌프 란시스코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 문이다.
셰넌과 엠마를 보는 것도 오랜만 이었다. 더욱이 올해 추수 감사절 은 작년과 다른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바로 마법사의 돌 단체 관 람이 었다.
단순한 단체 관람 행사가 아니었 다.
마법사의 돌 영화의 첫 개봉을 기념하여 제작자과 배우들은 물론 원작가인 조앤 롤링이 참여하는 프 리미어 레드카펫 행사였다.
영화 시청 후에는 감독과 배우들 의 무대 인사도 계획되어 있었으니 해리포터 관계자들에겐 매우 큰 행 사였다.
일반석은 P마켓의 영화 예매 페이지를 통해 풀렸는데, 역시나 시 간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될 만 큼 인기도 엄청났다.
유재원과 티파니도 오랜만에 함 께 집을 나섰다. 당연히 마법사의 돌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하기 위함 이었다. 유재원에게는 총괄제작자라 는 타이틀이 주어졌기에 레드카펫 에 서는 명분은 확실했다.
유재원과 티파니도 할리우드의 배우들처럼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니 는 존재였기에, 레드카펫에 서자 취재진으로부터 플래시가 끊이지 않았다.
이어서 한참 전부터 약속했던 레 밍턴 가족이 입장했다.
마지막으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찾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입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ID 일렉트로닉스 가전 부분 사장과 임원들이었다.
ID 일렉트로닉스의 가전 부문 연 말 결산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찾 은 이들인데, 유재원의 단체 영화 관람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 영화가 유재원이 투자한 마법 사의 돌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단체 관람 장소에 프리미 어 레드카펫 행사가 열릴 줄은 몰 랐다.
할리우드의 명성답게 화려하게 꾸며진 행사장이었고, 평소에 이런 행사장을 찾을 일이 없었던 사장과 임원들은 그야말로 어색한 모습이 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해프닝을 남긴 레드카펫 행사가 끝나고, 마법사의 돌 영화가 상영되었다.
전설의 시작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