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7화
다음 날에는 케빈 존슨 사장의 말처럼 ID 일렉트로닉스에 인텔로 부터 정식으로 협조 요청이 들어왔 다.
램버스 D램을 양산해 달라는 이 야기 였다.
이에 대해 유재원은 결심한 그대 로 답장을 보내도록 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생산량은 조금 늘릴 수 있지만, 대대적인 공정 전 환은 어렵다는 통보였다.
차라리 DDR 램에 집중하는 게 어떠하냐는 의견도 첨부했다.
지금은 램버스 D램에 밀리지만, 작동 속도를 끌어올리면 성능의 격 차는 빠르게 줄일 수 있다는 정보 였다.
더욱이 이러한 답장은 인텔에 은 밀히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식 보 도문에도 담아 모두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어차피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의 종류나 수량은 숨길 수 없다.
알고자 한다면 다 알아낼 수 있 으니, 다른 업체에 경고를 해 주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더불어 인텔의 삽질도 좀 줄어들 게 하면서 말이다.
앞으로도 거의 20년간은 인텔과 AMD로부터 CPU를 공급받아야 하 는데, 인텔이 삽질하는 만큼 시장 전체로 보면 손해였다.
인텔과 AMD가 공정한 경쟁을 꾸준히 펼치는 것이 소비자와 기업 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본인의 경고 에 인텔이 정신을 차리길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램버스 D램을 시작으로 인텔이 온갖 삽질을 하는 동안 AMD는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AMD의 CPU 가격은 급 등했다. 가성비 하면 AMD 였는데, 가성비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 로 말이다.
반대로 AMD가 제대로 된 제품 을 내지 못하면 인텔이 똑같은 짓 을 했다.
그러니 두 회사들이 불꽃 튀는 대결을 하는 게 유재원과 사용자에 겐 제일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안드로이드사에서도 차기 운영 체제의 개발 현황에 대해 살 펴본 후, 시애틀에 있던 유재원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건 10월 31 일이었다.
20()1년 10월 31일.
달력만 보면 딱히 특별할 것 없 는 평범한 날이다.
하지만 게이머들, 특히 워크래프트를 열심히 즐긴 게이머들은 손꼽 아 기다린 그 날이었다.
한참 전부터 개발 소식이 알려졌 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픈 베타가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이 다.
오픈 베타라는 말은 특별한 자격 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게임을 즐겨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였다.
게임의 완성도와 게이머들의 취 향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그와 함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상상할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렸 을 때, 서버가 잘 구동하는지 등등.
대중으로부터 종합적인 평가를 받는 행사가 바로 오픈 베타였다.
그렇기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는 모회사 ID 엔터테인먼트의 도움 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일단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서버 의 수용 인원이었다.
블리자드는 회사가 준비할 수 있 는 최대의 컴퓨팅 파워를 준비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랄 수 있다고 판단해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서버도 언제든 동원할 수 있게, 월 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서버 프로그 램을 설치해 놓았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온라인 게임 이 출시된 첫날 사람들이 몰려 서 버가 터졌다는 걸 자랑삼는 관행이 여전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터넷 세상을 이 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재원 에게는 치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동시 접속자 숫자가 100만이든 200만이 되었든, 접속한 게이머들은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것이 유재원에게는 더 기쁜 일이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시 유 재원의 생각에 십분 동의했다.
덕분에 오픈 베타 행사가 끝나고 사람이 확 줄더라도, 일단 서버는 최대한 확보해 놓기로 했다.
"너무 부럽다."
티파니의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드 오브 워크 래프트의 오픈 베타를 기념하는 성대한 오프닝 세리머니가 예정되어 있었고, 여기에 유재원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기로 되어 있었다.
게이머들을 위한 행사이니만큼 격식 대신 즐거운 파티처럼 흥미를 끌어내도록 만들어진 행사였다.
유재원은 파티 참석 준비에 한창 이었고, 티파니는 출근 준비에 한 창이었으니 그녀의 입에서 부럽다 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티파니도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행사장으로 바로 와!"
속 편한 소리를 하는 유재원이었하지만 요즘 셰브롱의 내부 분위 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이콥 사망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티파니를 비롯한 후발 주 자들이 프레더릭의 허락 아래 맹렬 한 경쟁 중이었다.
프레더릭도 그냥 티파니나 다른 자식들을 불러들인 게 아님을 보여 주는 듯, 각자 몇 가지 과제를 안 겨 주었다.
티파니에게 주어진 건 텍사코와의 합병이었다. 제이콥이 추진하던 일이라 의미심장한 과제였다.
다만 제이콥의 경우엔 텍사코와 의 합병을 진두지휘했다면, 티파니 는 프레더릭을 돕는 일을 맡았다.
텍사코도 주가 총액 2천억 달러 가 넘는 초대형 석유 회사였기에, 티파니가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프레더릭이 중심에서 합병을 추진하고 티파니가 이를 돕 는 형태가 된 것이다.
티파니의 이모들은 이 소식에 크 게 반발했다고 한다.
제이콥이 하던 사업이었다. 비록 프레더릭이 주도한다더라도 그 상 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한 번 크게 실수한 탓에 대놓고 화를 내진 못 했다.
후계자 레이스에서 제일 앞서고 있는 티파니였지만, 티파니도 나름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죽하면 유재원에게 나이 많은 부하 직원들을 다루는 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유재원은 티파니에게 뭔가 도움의 말을 해 줄 수가 없었 다.
상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유재원은 0부터 스스로 창업 멤 버를 모아 회사를 차렸다.
덕분에 어리다고 우습게 보는 사 람들은 애초에 ID 그룹에 들어올 수도 없었다.
반면 티파니는 셰브롱이라는 100 년에 가까운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 는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조직에 적응을 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기 자리는 내가 지켜 놓고 있 을게."
결국 지금 당장 유재원이 해 줄 수 있는 건 열심히 응원해 주는 것 뿐이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티파니에 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한 준비는 착 착 이뤄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절대 반지와 같은 파워 를 자랑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주 식이었다.
아무리 잘난 임직원이라도 주주 의 권리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셰브롱의 주 식을 열심히 모으는 중이었다.
티파니를 먼저 배웅하고 다시 거 실로 돌아온 유재원은 본인 역시 출근을 위해 집 안을 정리했다.
먼저 텔레비전을 끄려는데 속보 하나가 나왔다.
-특수전 사령부, 아프가니스탄 작전 축소 중.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 멸절작전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종했던 알 카에다는 괴멸 직전에 처했다.
예전 같았으면 탈레반까지 합세 해 미군에 저항했겠지만, 지금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분리 작업이 성공해서 전장이 확대되지 않았다.
더욱이 알 카에다의 지도자인 오 사마 빈 라덴의 숨겨진 카리스마도 박살 나는 중이었다.
델타포스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안 가에서 찾아낸 증거들이 하나둘 공 개되고 있는데, 이슬람 극단주의자라고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술은 기본이고, 컴퓨터 안에서는 성인물 동영상도 가득이었다.
그 파일 목록이 인터넷에 빠르게 유출 중이었다.
원래는 공개되면 안 되는 것들이 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순교하는 영웅이 되는 걸 차단하기 위한 미 국 정보부의 공작이었다.
-긴급 속보!
아프가니스탄 소식을 확인한 유재원이 재차 텔레비전을 끄려는데, 이번엔 긴급 속보가 떴다.
-중국, 스키드로우 해커 송환 거 부
"역시. 좀 무리였지."
이번에도 유재원은 텔레비전을 끄려다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이 정리가 되는 중 이라면, 중국은 이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스키드로우라는 크래커 그룹에 대한 중국의 대처는 역시나 유재원의 예상 그대로 꼬리 자르기였다.
뿌리를 뽑아 버렸다면, 공산당 수뇌부까지도 털어야 했기에 후진 타오 주석에게도 부담이었다.
만에 하나 스키드로우의 상납을 받았던 이들 중에 자기 사람이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당연히 미국은 크게 반발했다.
스키드로우 크래커 그룹 전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말 이다.
심지어 체포된 크래커에 대해 미국 조사 참관은 물론 송환도 거부 했다.
911 테러 처리에 대해 타협은 없을 거라 했던 미국이었으니 다음 절차는 당연히 중국과의 대충돌이 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픈 베 타를 기념하는 행사는 역시나 ID 그룹의 거대 행사가 주로 치러졌던 실리콘밸리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 다.
단 하루짜리 행사였고, 평일에 열렸지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 다.
정성을 들였다는 말의 다른 말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행사장 입구부터 돈을 아끼지 않 았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오크 라이더와 말 탄 기사의 거 대한 전신상이 게이머들을 설레게 했다.
전신상 뒤로 얼라이언스와 호드 의 깃발이 나란히 꽂혀 컨벤션 센 터까지 통로를 만들었다.
물론 컨벤션 센터 입구 상단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타이틀 화 면이 거대하게 걸려 있었다.
평일임에도 통로와 입구에는 게 이머들로 가득했다.
911 테러가 터져서 미국 사회가 순간 경직되긴 했지만, 워크래프트 1, 2를 즐겨 했던 게이머들이 손꼽 아 기다린 날이니만큼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컨벤션 센터를 방문했다.
그렇지만 911 테러 이전과 확연 히 달라진 게 있었으니, 보안 검색 대였다.
공항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금속 탐지기를 지나면 간단한 소지품 검 사가 되어 통과할 수 있었다.
이처럼 철저한 보안 절차를 만든 이유는 당연히 911 테러 이후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 행사 는 테러의 표적이 되기 쉽다.
911 테러 이전에는 그래도 정치 적으로 의미 있는 대상을 테러의 표적으로 삼았지만, 911 테러 이후 에는 확 달라졌으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미국에 잠입한 알 카 에다 조직원들은 아직도 활동 중이 었고, 검거 소식도 어쩌다 한 번 나오고 말았다.
반면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에 유재원과 ID 그룹의 첨단 기술이 톡톡히 공헌했다는 것이 매스컴을 통해 확실히 알려졌기에 보복을 작 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미국에 들어온 알 카에다 조직원 들의 일망타진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는 불편함도 조금 감수하고, 긴 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게 좋았 다.
잠시 후.
사전에 공지된 개회 시간이 되자 컨벤션 센터 메인 스테이지의 조명 이 약해졌다.
그와 함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무대가 공개되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게이머들이 베 일이 치워지자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의 구성이 워크래프트의 배경이 된 아제로스 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화려했기 때문이다.
ID 그룹의 발표는 물론, 이제 웬 만한 신제품 발표 행사장에서는 빠 지지 않는 대형 스크린에 월드 오 브 워크래프트의 로고가 커다랗게 걸려 있어 게이머들의 가슴이 기대 감으로 부풀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