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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584화 (584/1,007)

28권 18화

스키너 요원의 말투에는 스티브 잡스 사장이 일부러 해제할 수 있 는데도, 해제해 주지 않는다고 생 각하는 느낌이 있었다.

실제 애플사는 고객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서 FBI로부터 온 범죄 용의자의 휴대폰 암호 해제 요청을 거절한 적도 있었다.

설마 지금도 그러할까?

무려 911 테러 사태를 벌인 유 력한 용의자의 아이폰S였다.

과거 FBI의 사례와 달리 99.99% 로 범인이라는 게 유력했다. 미국인 전체가 분노했다. 얼마나 분노 의 불길이 거셌으면, 테러 단체는 물론 북한까지도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본인들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 는 성명을 속속 발표하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정보 보호를 빌미로 협조 요청을 거절한다?

FBI 건의 경우엔 보안성 강화와 윤리 의식을 선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설마 스티브 잡스 사 장이 이 사건까지도 그렇게 이용하 려 할까?

워낙 사고방식이 독특한 양반인지라 유재원은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진짜로 암호화 전용칩의 파괴 때 문일까?

암호화 전용칩이 살아 있었으면 애플사도 보다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암 호화 전용칩은 빠른 암호화를 담당 할 뿐만이 아니라, 내부에는 작은 저장소가 있어 사용자의 암호를 저 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스터키를 별도로 가지고 있는 방식이었다면, 이를 이용해 사용자의 암호를 빠르게 유추할 수 있었 을 텐데, 아이폰드의 암호화 방식에 서는 오직 사용자의 암호만 사용했 다.

결국 유재원의 결론은 아직 모른 다였다. 스키너 요원의 판단과는 완전히 달랐다.

모든 걸 시니컬하게 보는 그는 애플사가 이번 911 테러를 소극적 으로 도움으로써 자사의 이익을 위 하는 것으로 보았다. 합동 수사본 부의 TF팀도 뚫을 수 없는 아이폰 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보안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 한다고 말이다.

"설마요."

반면 유재원은 천하의 스티브 잡 스라도 911 테러를 아이폰S 선전에 써먹진 않을 거라 보았다. 그렇기 에 지금 유재원은 애플사가 적극적 으로 협조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쪽이었다.

"그러면 회장님도 애플사와 같은 판단이란 말씀이십니까?"

유재원의 설명에 스키너 요원의 목소리가 한층 딱딱해졌다.

용의자의 아이폰은 겨우 찾아낸 결정적 단서였다. 딴생각을 품은 애플사의 소극적 도움이 없더라도 유재원이면 충분히 해제할 수 있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재원도 협 조해 주지 않으면 최악이었다.

아예 아이폰 속 내용을 열어 볼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 도 있으니 말이다.

"몇 가지만 약속해 주신다면 협 조할게요."

유재원은 약간의 미소를 띠며 답 했다.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해서는 유재 원도 생각이 많았지만, 지금과 같 은 특별한 상황은 융통성을 발휘해 야 할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유재원은 본인의 존재감이 드러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스키너 요원의 도움 요청은 너무도 적절한 상황이었다.

"뭐든 말만 하시지요."

스키너 요원의 말에 유재원은 요 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생각한 것들이 있었기에, 유재원의 입에선 무척이나 구체적인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아이폰S 해킹이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해야 하니, 이에 대한 면책과 해킹 성공 후에 나온 단서 추적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마지막은 이러한 성과를 책임자에게 직접 발 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것들이군요."

다행히 스키너 요원은 유재원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법무부 장관님의 페이퍼 하나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스키너 요원은 그 자리에 서 즉각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유재원의 요구 사항을 직접 전달하기까지 했다.

"법무 장관님이랑 직통 전화도 하시네요."

"비상시국이니까요."

유재원의 감탄에 스키너 요원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 시작하죠. 아이폰 주세 요."

바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유재원은 용의자의 아이폰으를 요구했다. 그러자 처음으로 스키너 요원의 얼 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용의자의 아이폰은 뉴욕 본부에 있습니다. 함께 가시죠."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시간 도 아까운 합동 수사본부였다. 용 의자의 아이폰으에 대한 해킹은 별 도로 진행하면서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스키너 요원을 이곳 으로까지 파견한 것이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서 가죠.

1분 1초가 급할 때니 말입니다."

유재원과 스키너 요원은 바로 공 항으로 이동했다.

회사에는 이동하는 이유에 대해 서 정확히 남겼다. 티파니에게도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행 중인지 통화는 되지 않아서 ID톡에 메시지를 보냈다. 스키너 요원은 수행원 하나를 데려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기에, 김대석은 이번에도 함께 이동했다.

6시간 후.

유재원은 뉴욕 JFK공항에 도착 했다.

띵띵!

지상의 기지국과 연결이 회복된 안드로이드폰이 밀린 정보를 수신 하면서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유재원은 스키너 요원을 따라 이 동하면서 동시에 안드로이드폰에 올라온 알람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회사에서 올라온 보고 사항은 그냥 쓱 보고 넘겼지만, 그러지 못하는 메시지도 제법 있었다.

덕진리의 부모님이 보내신 안부 문자와 먼저 워싱턴 DC로 출발했 던 티파니의 문자였다. 특히나 티 파니의 문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워싱턴 DC의 한 병원에 도착한 티파니와 프레더릭은 영안실에서 제이콥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급히 워싱턴 DC로 향할 때만 해 도 설마하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콥은 평소에 출장을 나간다면서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곳에 가 있던 게 일상이었다. 덕분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워싱턴 DC 에 출장을 간다고 하고서 어디 유 명한 클럽에 가 있을 거라고 기대 했다.

하지만 영안실에 있던 사람은 제 이콥이 맞았다.

텍사스주 상원 의원과 만나 셰브 롱의 신규 사업에 대한 민원을 처 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프레더릭은 오 열했다.

은근히 유재원과 비교를 하면서 제이콥이 정신을 차리길 바랐던 프 레더릭이었다. 뒤늦게 철이 좀 든 제이콥은 그런 프레더릭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셰브롱 의 후계자다운 행보를 시작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911 테러 라는 거대한 대격변에 제이콥이 함 께 엮여 버린 것이었다.

유재원은 바로 티파니에게 전화 를 걸었다.

"티파니! 괜찮아?"

-응, 나는 그나마 좀 나은데, 외 할아버지가 걱정이야.

전화벨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연결되었다. 티파니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제이콥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식구였기에 상실에 대한 슬픔이 컸 던 모양이다. 물론 가장 큰 충격은 아들을 잃은 프레더릭일 것이다.

"그래서 거기엔 둘뿐이야?"

-아, 먼저 와 있던 셰브롱 임원 분들이 좀 있어. 앞으로도 계속 오 실 거고. 부모님이랑 이모들도 오 늘 내로 모일 거야.

"아, 나도 뉴욕이야."

-자기도?

"911 테러 합동 수사본부로부터 급하게 도움을 요청받았거든. 여기 일이 끝나면 바로 갈게."

-아, 응. 무슨 일이 있으면 계속 알려 줘. 나도 바로 연락할게. 사랑 해!

"나, 나도 사랑해."

티파니와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 다.

"제이콥이라면 셰브롱의 후계자 말입니까?"

스키너 요원의 물음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작게 말해도 다 들렸을 텐데, 티파니를 달래주느라 자연스 럽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덕분에 스키너 요원도 다 듣게 되었고, 제 이콥의 죽음도 알게 된 것이다.

"망할 알 카에다."

유재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망할 소리가 절로 나오는 스키너 요원이 었다.

911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까지도 타격을 받아 상원 의 원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오는 중인 데, 셰브롱의 후계자도 있었던 것 이다. 지금 당장은 사고의 수습에 정신이 없지만, 모든 후처리가 끝 난 후에는 대규모의 보복 작전이 실행될 것이다. 상원 의원 다수, 심 지어 셰브롱의 후계자까지 죽은 만 큼 스키너는 그 규모가 얼마나 될 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빨리 가죠."

유재원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급 했다.

티파니는 사랑한단 말이 쉽게 나 오는 보통의 미국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덕분에 사랑한단 말에 깜 짝 놀란 유재원이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커졌다.

티파니가 심적으로 무척이나 압 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였으니 말이 다. 유재원은 아이폰S 해킹 정도는 최대한 빨리 끝내 버리고 티파니에 게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잠시 후, 유재원은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에 도착했다.

911 테러 합동 수사본부가 자리 한 곳이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이 었기 때문이다. 이미 붕괴되어 처 참한 상태인 북쪽 빌딩을 지나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텔레비 전을 통해 봤을 때와,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전달되는 감정의 차이는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혹시나 있을 생존자 수색이 한창 이었기에 폐허 위에는 개미처럼 수 많은 사람이 올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반파된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 로비와 1, 2, 3층은 그야말로 시장 통이었다.

원래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을 이 들이 모두 대피했고, 그 빈자리를 합동 수사본부로 파견된 이들이 자 리하고 있었다. 정해진 자리가 없 이 도착한 대로 알아서 자기 자리 를 만들었기에 그야말로 혼잡했다.

신기하게도 엄청난 혼란 속에 어 느 정도 질서가 있었다. 출신 조직 별로 사람들이 모였고, 수직적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업무에 어느 정 도 체계가 생겼다.

스키너 요원이 맡은 첨단기술분 석팀은 3층의 제일 깊숙한 곳에 자 리하고 있었다. 존재 자체가 대외 비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알아낸 것을 보고하 게."

스키너 요원은 팀원들을 모은 후, 유재원을 소개시킨 후 본인이 출장 중에 처리된 일에 대해 보고 를 받았다. 유재원도 옆에 세워 둔 상태로 말이다. 덕분에 외부인이었던 유재원도 첨단기술분석팀이 어 디까지 접근했는지 바로 알 수 있 었다.

-USIM에 등록된 전화번호 확인.

-전화번호를 통해 통신 기록과 애플 ID 확인.

-애플 ID를 통해 아이폰드에 설 치된 애플리케이션 확인.

-통신 기록에서 거의 3달치에 가까운 통화 목록, 문자 메시지 확 인.

팀원들의 보고가 쭉 이어졌다.

역시 능력자들이 모인 TF 팀이 라 그런지 용의자의 아이폰S 하나 로 상당한 정보를 준비해 놓았다. 문제는 결정적인 단서는 부족하다 는 점이다. 통화 기록이나 통신사 서버에 저장된 문자 내용이 중요한 데, 문자나 통화 모두 딱히 정보는 없었던 것이다.

사용 시간은 무척이나 긴데, 통 화와 문자가 별로 없었다는 건, 아 이폰으에 설치한 별도의 메신저 프 로그램을 이용했다는 게 유력했다. 안타깝게도 ID톡은 아니었던 모양 이다. ID톡에는 용의자의 애플 ID로 접속한 기록이 없었다. 애플 앱 스토어 기록에도 ID톡을 설치한 기 록은 없었다.

결국 아이폰으의 암호 체계를 뚫 고 들어가 봐야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유재원은 주어진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첨단기술분석팀이 보유한 컴퓨터 중에 제일 성능이 좋은 제 품이 주어졌다. 게다가 용의자의 아이폰드로부터 추출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이식된 아이폰과 물려 있는 상태였다.

손을 터는 것으로 가볍게 준비 운동을 마친 유재원이 제일 먼저 실행한 건 ID 웹브라우저였다. 뭔 가 기발한 기술로 애플의 암호 체 계를 박살내 줄 거라 기대했던 첨 단기술분석팀의 팀원들은 갑자기 웹브라우저를 실행하자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팀원들의 반응은 무시하고 유재원은 컴퓨터의 보안 상태를 점 검한 후,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 고서 ID 웹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일련의 숫자를 적었다.

URL 같은 건 필요 없이 아이피 숫자를 그대로 외우고 있는 유재원 이었고, 입력된 숫자는 ID 그룹의 뉴욕시 데이터센터 관리페이지였다.

관리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 자,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에서 띵 하는 알람 소리가 났다. 시스템이 보낸 인증문자였다. 인증문자 번호 를 확인하고 다시 입력하자, 이번 엔 웹페이지의 구성이 확 달라지면 서 커맨드 라인 입력창이 등장했다.

원격으로 뉴욕의 데이터센터를

직접 작동시킬 수 있는 준비가 끝 났다.

"유 회장, 이걸로 애플사의 암호 체계를 뚫을 수 있는 겁니까?"

다들 영문을 몰라 했기에 스키너 요원이 대표로 물었다.

"네. 정면 돌파로 최단기에 뚫어 버리겠습니다."

"정면 돌파?"

말을 마친 유재원은 곧장 일을 시작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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