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권 17화
다음 날.
전 세계는 911 피해자와 미국을 향해 애도의 뜻을 전했고,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 덴을 비난했다.
어제의 동시다발적 항공기 납치 테러는 911 테러라고 명명되었고, 아침이 되자 전체적인 피해 규모가 나왔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 붕괴.
-펜타곤 서쪽면 25m가량 붕괴.
-미국 국회의사당 일부 붕괴.
-납치된 비행기 4대 전파.
회귀 전의 911 테러와 비교한다 면, 치명적인 피해는 줄었지만 범 위는 늘어났다.
남쪽 빌딩과 충돌하려던 항공기 는 전투기의 요격에 허드슨강으로 추락했다. 그렇다고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이 무사한 건 아니었다.
붕괴된 북쪽 빌딩과 가까웠기에, 파편을 다 뒤집어썼다. 남쪽 빌딩 북쪽면은 건물 내부 구조가 보일 만큼 크게 찢긴 상태로, 안전을 위 해서는 복구보다 붕괴를 선택하는게 나을 정도로 심한 타격을 입었 다.
다행인 건 세계무역센터에서 실 종자는 크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다.
CNN이 빠르게 붕괴를 예측했 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현장 책임자가 바로 퇴각을 지시한 덕이 다. 고집을 부려서 끝까지 수색을 하겠다고 남은 이들이 조금 있긴 했지만, 대피를 우선시했기에, 실종 자 숫자는 1천을 넘지 않았다.
1 천.
수백 명의 사람이 아직 세계무역 센터가 붕괴된 잔해 속에 남아 있 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유재원이 크게 줄었다 고 말하는 건, 남쪽 빌딩까지 붕괴 했던 과거의 911은 사망자만 수천 단위로 뛰었기 때문이다.
펜타곤에서도 사망자는 50명 정 도 나왔다. 이는 과거의 911보다 2 배는 많아진 것인데, 타격이 좀 더 직접적으로 이뤄진 탓에 붕괴된 지 역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국회의사당 일부 붕괴 피해가 있다.
미국 국회의사당 피해는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 붕괴가 너무도 충격적이지만, 상징으로만 따지면 국회의사당 공격이 더 컸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에 대 한 공격은 미합중국에 대한 공격과 도 같았으니 말이다.
사망자 명단이 나왔는데, 당연히 미국의 국회의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상원, 하원 가릴 것도 없었고 민주당과 공화당도 가리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의 국회의원 사무실 배 분 법칙 당색에 차별을 두진 않았 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국회의원 사무 실에 근무하는 비서관들 그리고 직 원들이 었다.
미국 국회의사당 테러의 사망자 숫자는 30명 정도로 다른 두 곳에 비해 숫자는 제일 적었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의미가 줄어드 는 건 절대 아니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사당이 타격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 어마어 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 이다.
그로 인해 911 테러 후에 일어 날 후폭풍은 유재원도 예상하지 못 하고 있었다.
확실한 건 딱 하나다. 이전보다 훨씬 크고 격렬하게 미국의 분노가 쏟아질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제이콥이 있었다.
미국 국회의사당 테러로 인한 사 망자 리스트가 발표되기 몇 십 분전에 미국 정부로부터 한 통의 연 락이 온 것이다.
제이콥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가 발견된 곳은 텍사스 주 상 원 의원인 케이 베일리 허치슨의 사무실이 었다.
셰브롱의 후계자와 텍사스 주 상 원 의원과의 만남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셰브롱이 보유한 유전지대 중 텍사스의 비중은 매우 컸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상원 의원 의 서포트가 있으면 한결 수월해질 것이고, 케이 베일리 허치슨 의원 역시 셰브롱의 지원으로 본인이 하 려는 정치적 행보에 힘을 실을 수 있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유재원 은 무척이나 놀랐다.
상상도 못 해 본 일이었으니 말 이다. 카오스 이론에 따라 나비의 날갯짓에 나오는 바람이 태풍이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제이콥의 시신 수습을 위해 프레 더릭 테일러 2세가 워싱턴 DC로 출발했다. 티파니도 프레더릭과 함 께 가기로 해서 벌써 집을 나선 상 황이었다. 유재원은 장례식이 준비 되면 움직이기로 했다.
"어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슬픈 표정의 티파니를 배웅하고 나서 집에 돌아온 유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을 일찌감 치 했던 유재원이었다. 비록 매우 적극적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본인 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 다. 덕분에 이전과 비교해 인명 피해는 크게 줄였다.
그렇지만 후폭풍의 크기를 따지 면 이전보다 몇 배는 거대해지리라 는 걸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 보면 국회의사당을 타 격당한 미국의 분노는 훨씬 거대할 것이다.
제이콥의 일 역시 마찬가지다. 셰브롱이라는 세계 7대 석유 업계 의 후계 구도도 이제는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가 없다.
"회장님,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 다."
잠깐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 보 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유재원 역 시 할 일이 많았다.
"빈센트 사장님?"
회사에 도착하고서 제일 먼저 챙 긴 일은 역시나 ID 인베스트먼트였 다.
유재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메인 모니터에는 빈센트 그린힐과 ID톡화상 미팅을 켜고, 다른 모니터에 는 ID 인베스트먼트가 제공하는 HTS에 접속했다.
-예, 준비되었습니다.
9월 11일 어제만 종합 주가 지 수가 -6% 하락한 미국 증시였다. 하나의 종목이 아니라 종합 주가 지수가 -6%를 찍었다는 이야기다.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수치 였다. 하지만 증시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6%는 생각보다 조금 떨 어진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무역센터가 터졌을 때만 해 도 주식 시장은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펜타곤이 타격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미국 국회의사당이 항공 기 자살 테러에 당하자, 더는 버티 지 못하고 주식 거래 정지 조치가 이어진 것이었다.
정상 마감 시간까지 주식 거래가 계속 이뤄졌다면 -6%보다 더 떨어 졌을 텐데, 일찌감치 정지가 되면 서 하락이 멈춘 것이다.
억지로 거래를 정지시켜 놓은 것이라 그 후유증이 오늘 제대로 터 졌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숫자가 정 상인가요?"
HTS상에 제일 크게 보이는 수치 는 종합 주가 지수였다.
-예, -2,642포인트이고 퍼센트로 는 -14.2%입니다.
시작부터 -10%를 찍었던 주가 지수는 꾸준히 하락해서 현재는 -14.2%를 찍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야말로 모든 종목의 하락을 의미하 는 파란색이었다. 이 숫자를 찍기까지 사이드 카는 물론 서킷 브레 이커까지 내려졌지만, 하락세를 막 을 수가 없었다.
9월 10일 직전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2만 선을 넘니 마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1,188포인 트가 빠졌고, 오늘은 2,642가 빠진 상태였다.
나스닥 지수 역시 -10.8%를 찍 고 있다.
당연히 나스닥에 상장 중인 유재 원의 안드로이드사 역시 파란 비를 뿌리고 있었다. 911 직전까지 주가 총액이 1,400억 달러를 찍고 있던 안드로이드사였는데 , 지금은 1,100 억 달러다. 이틀만에 300억 달러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은 그나마 선 방했는데, 위기 상황에서 CNN과 인터넷 미디어가 보인 강력한 영향 력이 확인된 덕분에 그나마 -8%만 하락하고 말았다. 8% 하락도 보통 일은 아닌데, 그나마라고 붙일 수 있는 건 911 테러였기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에겐 주가의 하 락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풋 포지션 청산을 시작하 세요."
-예, 회장님!
헤지용으로 보유하고 있던 풋 옵 션은 더는 보험이 아니었다. 주객 전도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HTS상에 뜬 헤지용 풋 옵션의 수익률은 수천 퍼센트에 이르렀다.
배수로 따진다면 85.6배다.
1억 달러가 85.6억 달러가 된 것 이다. 더욱 놀랄 일은 주식 시장에 등록된 풋 옵션 중에는 이보다 더높은 수익률을 찍고 있는 것도 수 십 개나 된다는 점이다. 911과 같 은 사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유재원의 지시가 있은 지, 몇 분 후.
-완료했습니다.
빈센트 그린힐의 무거운 목소리 가 전해졌다. 무려 85억 6천만 달 러치 매물인데도 순식간에 사라졌 다. 지금의 미국 주식 시장이 얼마 나 비이성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케이스였다.
-두 번째, 단계를 실행할까요?"
"예, 10억 달러만 남겨두고 나머 지는 미리 정해 준 주식들을 매입 하세요. 콜 옵션도 적당히 사들이 시고요."
911 테러로 붕괴된 미국의 시스 템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전 세계 주식 시장은 세상 이 망한 것처럼 팔고 있었다.
조만간 이성을 찾으면 떨어진 낙 폭도 회복될 것이기에 유재원은 미 리미리 점찍어 둔 기업과 콜 옵션 을 매수하라고 지시했다.
10억 달러를 따로 빼놓은 건, 911 테러의 희생자들을 위해서였 다. 어디에 따로 기부할 건 아니고 ID 파운데이션이라는 자선 재단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직접 적으로 희생자들과 접촉해 지원을 해 줄 생각이었다.
규모는 상당했지만, 풋 옵션으로 벌어들인 공돈인 만큼, 유재원은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 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일을 처리한 유재원은 다른 계열사들의 긴급 보고 사항을 보며 업무를 처리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 뜻을 이 루진 못했다.
예상치 못한 방문객 때문이었다.
"어? 스키너 요원님?"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아주 오래전, 유력한 살인 용의 자로부터 나온 증거 중에 암호화가 걸려 풀지 못해, 유재원을 찾아와 협조를 구했던 FBI 요원이 있었다.
너무도 얼음장 같은 얼굴이었는 지라,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 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번에도 그때처럼 도움을 청하 기 위함입니다."
악수 한 번 하고서 바로 본론으 로 들어간 스키너의 말은 놀라웠다.
스키너 요원은 당시엔 현장 책임 요원이었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지금은 미연방 정부의 모든 수사 기관들이 모여 만들어진 합동 수사 본부의 첨단 기술 분석 책임자라고 했다.
"허드슨강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테러 용의자의 것으로 유력해 보이 는 휴대폰을 찾았습니다."
문제는 아주 강력한 암호가 걸려 있어 풀지 못하고 있는데,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풀기 위해 전문가 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고 한다.
전 세계 최고의 IT 전문가는 유재원이었고, 암호학에도 특출한 능 력이 있음을 공인받고 있었으니, 바로 유재원에게 달려왔다고 한다.
"응?"
그러면서 휴대폰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이를 확인한 유재원 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키너 요원이 본인을 찾아온 걸 보고 테러범이 안드로이드폰을 사 용한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 속에 있는 휴대폰은 아이폰S였다.
"아이폰S라면 애플사의 엔지니어 를 찾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요?"
사진을 확인한 유재원이 그렇게 물어보자, 스키너 요원의 차가운 얼굴이 더더욱 굳어졌다.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스키너 요원이라고 유재원이 아 는 걸 모르겠는가.
아이폰드의 암호 해제를 위해 당 연하게도 제일 처음 애플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답 을 들었다.
"애플사의 잡스 씨는 암호와 전 용칩이 훼손되면 본인들도 복구할 수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아."
스키너 요원의 대답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의자의 휴대폰이라 제시된 사 진은 아이폰드의 뒷면도 같이 찍혀 있었다. 사진 속 아이폰은 심하게 불탄 듯 뒷면의 기반이 보일 정도 였는데, 그중에서 일부 칩은 불에 녹아 버리기도 했다.
분명 허드슨강에 추락했던 걸 똑 똑히 봤다. 비행기 안으로 물이 차 올라왔을 텐데, 이렇게 뒷면이 다 녹을 만큼 뜨거운 불은 또 어디서 났겠는가.
"다행히 데이터가 저장되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칩은 무사합니다. 그 래서 우리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칩 만 떼어, 정상적인 아이폰S 기판에 이식했소."
괜찮은 방법이었다.
컴퓨터로 치면 고장 난 제품에서 하드 디스크만 떼어 멀쩡한 컴퓨터 로 이식한 것과 같았다.
문제는 그 하드 디스크 전체가 암호화되었다는 것이다.
아이폰드의 보안 구조에 대해서는 유재원도 리버스 엔지니어링 보고 서를 보고 이해했다.
암호화 칩에 의해 플래시 메모리 칩의 사용자 데이터를 모두 암호화 해서 저장하는데, 당연하게도 그 암호화 방식은 유재원이 발표한 AES 방식과 매우 유사했다.
"스티브 잡스 사장 말로는 현재 상황에서 애플사가 해 줄 수 있는 건 오류 횟수 초과 시 카운팅 초기 화 정도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