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권 9화
유재원은 이번에도 기꺼이 기술 을 개방했다.
인텔, AMD와는 협력 관계였기 에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의 주력 상품을 정리하면 뉴에그 시리즈와 i 웍스도 상당히 윗부분에 자리한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판매량이 점 차 줄고 있었다.
컴퓨터의 성능 향상이 정체되어 서 신제품 구매의 이득이 사라진 것이다.
인텔과 AMD가 새로운 CPU를 내놓으면 잠재적 구매자가 실제 구 매자로 바뀔 텐데, 이제까지는 소 비자의 선호도를 확 잡아끄는 신제 품은 듀얼 코어 제품 정도였다.
AMD가 선수 친 듀얼 코어는 단 번에 창작자와 전문가 집단의 호응 을 끌어냈다.
고가의 워크스테이션을 구매할 수 없는 이들에게 워크스테이션에 비견되는 성능을 내는 일반용 CPU 는 압도적인 가성비를 가져다주었 으니 말이다.
반면 게이머들에겐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진 못했다.
듀얼 코어를 제대로 지원하는 게 임은 소수였고, 일반적인 게임에선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AMD는 좀 나았다. 인텔 은 1코어가 2개의 스레드를 갖는 하이퍼 스레드라는 기술을 선보였 는데, 게임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았던 탓이다.
생산성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효 과가 났지만, 대다수 게임에서는 하이퍼 스레드 기능을 켜면 오히려성능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다.
인텔도 당연히 진짜 듀얼 코어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문제는 어마어 마한 발열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세화 공 정이 필요했는데, 그게 또 눈 깜짝 할 사이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AMD 역시 CPU의 막대한 발열 은 문제였다. 발열을 잡기 위해 CPU의 작동 속도를 떨어뜨려야 했 고, 그로 인해서 인텔에 비해 작동 속도가 20% 정도 더 낮았다.
낮아진 작동 속도 때문에 게임 퍼포먼스에서 크게 손해를 보고 있 는 실정이었다.
인텔과 달리 AMD의 중?고급형 패키지에 큼지막한 타워형 쿨러가 기본 제공되고 있는 것도, 발열을 잡지 못한 탓에 강제된 선택이었다.
AMD도 인텔처럼 초코파이 형태 의 쿨러만으로 발열이 잡혔다면, 당연히 소박한 쿨러가 제공되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ID 일렉트로닉스가 120나노 공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터진 것이다. 당연히 백지 수표를 들고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HPC 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동일한 건 아니었다.
가격!
가격이 달랐다. HPC 때에는 엄 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라이센스 가 부여되었다. 게다가 반도체 업 체도 가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 당시 한창 대립 중 이었던 일성그룹에도 라이센스가 부여되었을 정도다.
반면 3D 트랜지스터 공정과 고 농도 불산 기체를 이용한 초정밀 식각 방식은 달랐다.
로열티는 제품당 10달러. 인텔이 120나노 제품을 100만 개 생산했 다면, 라이센스비로 1천만 달러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AMD 역시나 마찬가지다.
120나노 공정에 한정된 것이 아 니라, 두 가지 기술을 사용하는 미 래의 모든 실리콘 칩에 대해 10달 러의 로열티가 붙는 것이었다.
2개의 기술은 7나노 공정까지 꾸 준히 사용될 기술이었기에,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100억 단위 는 가뿐하게 넘는다.
다만 3D 트랜지스터 기법의 경 우에는 기존의 라인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기체 불산을 이용하는 방식은 공정 전체를 손봐 야 했기에, 인텔과 AMD에서 120 나노 공정을 제대로 적용한 신제품 을 볼 수 있는 건 빨라야 내년 말, 혹은 내후년이 될 것이었다.
ID 그룹도 내년이 될 때까지는
계약금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ID 그룹, 인텔과 AMD에 기술 지원!
-120나노 공정 신화의 이종효 교수, 로열티 대박!
-산학 협력의 성공 모델!
유재원에겐 아쉬운 일이었는데, 유난스러운 한국의 언론에겐 아니 었다. 인텔과 AMD의 계약이 공시 되자 언론은 일제히 대박을 외쳤다.
특히 집중 조명된 사람이 이종효 교수였다. 3D 트랜지스터 기법에 큰 도움을 준 이종효 교수는 120나 노 공정 개발 성공에 대한 보너스 를 두둑이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ID 그룹이 인텔 과 AMD의 라이센스 계약을 할 때 에도 이종효 교수의 몫이 있었다. 퍼센트로 따지면 0.5% 정도였는데, 100억 달러의 로열티 수익이 나온 다면, 이종효 교수의 몫은 5천만 달러가 되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한국의 언론은 산학 협력의 성공 사례라면서 치켜세우 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다만 이종효 교수에겐 골치가 아 픈 일이었다. 돈을 보고 다가오는 사람도 많았고, 결정적으로 서울대 에서 이종효 교수의 몫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했다.
이종효 교수가 ID 일렉트로닉스 의 120나노 공정에 이바지할 수 있 었던 것은 서울대의 전폭적인 지원 이 있었기 때문이니, 서울대의 몫 도 챙겨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한 ID 그룹의 대응은 무 관심이었다.
애초에 계약 자체가 이종효 교수개인과 맺었던 것이었기에, 제대로 된 몫을 챙겨주는 것으로 ID 그룹 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 으니 말이다.
대신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던 유재원이었기에, 이종효 교수에게 언제든 돌아오라고 말해놓았을 뿐 이다.
120나노의 여파는 이게 다가 아 니었다.
현대의 컴퓨터 시스템에서 CPU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GPU였다.
과거에는 그저 정확한 색감에,
동영상이 매끄럽게 재생되는 것이 최고였다.
이제는 HD 해상도에서 3D 가속 을 제대로 해 줘야 하는 시대에 이 르렀다.
3D 그래픽 가속 방식이 쉐이더 로 바뀌면서 클럭당 처리 속도가 중요해졌고, 동영상 코덱의 하드웨 어 처리도 해 줘야 했다.
GPU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의 숫자도 크게 늘어났고, 덩달아 칩 의 면적도 커졌다. 비디오 전용 램 역시 대폭 확장되었다.
이렇게 판도가 바뀐 GPU 시장에 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 는 두 곳으로, 하나는 ATI 였고 다 른 하나는 엔비디아였다.
제일 처음 3D 가속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부두 사는 3D 가 속 방식이 쉐이더 체제로 급변한 이후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부두5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엔비디아에 인수되고 말았다.
그렇게 남은 ATI와 엔비디아도 120나노 공정 소식에 당연히 ID 일렉트로닉스를 찾았다.
120나노 공정의 라이센스를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두 회사에게는 기술 라이센스를 주지 않았다.
CPU 제조사와 GPU 제조사 사 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자체적인 반도체 생산 공장 의 유무였다. 인텔과 AMD는 대규 모 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GPU 회사들은 팹리스였다.
이들은 설계만 하고 생산은 TSMC와 같은 파운더리 회사에 외 주를 주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라이센스를 주는 건 TSMC에 기술 이전을 해 주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라이센스 대신 유재원이 이들에 게 제안한 것은 위탁 생산이었다. 이는 곧 ID 일렉트로닉스의 파운더 리 산업 진출 선언이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만 만드는 건 부침 이 심했다.
대대적인 시스템 교체기에는 활 황이었다가, 교체가 어느 정도 마 무리되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 락했다.
ID 일렉트로닉스는 MAP 생산으 로 위험도가 살짝 줄긴 했는데, 보 다 확실한 보험을 위해 GPU의 위 탁 생산도 사정권에 넣은 것이다.
아직 두 GPU 회사부터 연락이 온 건 없었다. 아무래도 득실을 따 져 보느라 여념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처럼 ID 일렉트로닉스의 모바 일 사업과 반도체 사업은 고공 행 진 중이었는데, 문제가 되는 부분 이 하나 있었다.
"가전 부문이라는 말이지."
가장 많은 인원이 집중되어 있
고, 생산 설비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협력 업체의 숫자도 반도체와 모 바일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게 가 전 부문인데, 아직도 중구난방이었 다.
오죽하면 ID 디스플레이의 패널 양산 성공 덕에 LCD TV가 빠르게 보급 중이었는데, 제품별 판매량을 보면 ID 일렉트로닉스는 보이지 않 는다.
ID 일렉트로닉스 가전 부분 담당 자들이 들었다면 볼멘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1등이었으 니 말이다.
하지만 유재원의 기준은 언제나 세계였다. 세계 시장에서는 ID 일 렉트로닉스의 LCD 텔레비전은 가 성비 모델이었을 뿐이다.
"가전 부문도 1등이 되어야지."
조만간 가전 부문을 본격적으로 손봐야겠다는 결심을 마지막으로 유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공적인 IDDC 2001과 안드로 이드폰 발표를 위해서 최상의 컨디 션이 필요했고, 컨디션을 올리는 방법에는 숙면이 최고였으니 말이 다.
다음 날, 아침.
IDDC 2001이 열리는 실리콘밸 리 컨벤션 센터로 출발하기에 앞서 유재원은 티파니가 차려 준 푸짐한 아침밥을 먹었다.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구수한 쌀 밥에 각종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간고깃국이 메인이었고, 각종 밑반찬 이 깔린 한국식 아침 밥상이었다.
"이번에도 잘될 거야."
그렇게 아침밥을 잘 챙겨 먹은 유재원을 티파니가 꼭 안아 주면서 힘을 불어넣어 줬다.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 다. 진한 키스 한 번이면 서로 좋 았으니 말이다. 역시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IDDC 2001의 부제는 '인류, 이 어지다(Humanity, Connected)'였 다. 그리고 작년과 달리 하루가 더 늘어난 4일 차 행사가 되었다.
ID 그룹의 규모가 커진 만큼, 발 표해야 할 신제품의 숫자도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티켓은 유료였고, 가격도 49달러로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만, 진작에 4일 차 행사 까지 모두 팔렸다.
티켓값이 조금 비싸긴 해도, 행사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부스에서 그 값 이상 해 준다는 게 경험으로 증명이 된 덕이다.
게다가 경품으로 뿌리는 이벤트 상품이나 쿠폰도 티켓 가격 이상의 가치를 했다.
무엇보다 메인 스테이지에서의 발표를 맨눈으로 본다는 것은 최고 의 콘서트와 같은 경험이었기에 이 번에도 실리콘밸리 컨벤션 센터의 입구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 다.
"애플보다 잘 나왔겠지?"
"그럼! 아이폰이 최초의 스마트 폰 타이틀을 가졌다고 해도, T터치 폰이랑 크게 다른 것도 없었잖아."
"그게 게임기인지, 휴대폰인지 모르겠더라."
"ID 그룹의 스마트폰은 분명 다 를 거야!"
긴 줄 사이에서는 안드로이드폰 에 대해 높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 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IDDC 행사의 티켓을 구매하고 행사장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ID 그룹에 호의적이었다는 의미였다.
아니 호의적인 정도가 아니라 강력 한 지지자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T터치폰 이후 2년 만에 나오는 신형 휴대폰이니 사람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자연스럽게 일주일 일찍 애플에 서 발표한 아이폰드와 ID 그룹의 스 마트폰을 비교하는 말도 많이 나왔 다.
아이폰드는 최초의 아이폰으로부 터 얻은 피드백과 1년 사이에 새롭 게 개발된 신기술들이 모조리 투입 되어 업그레이드된 물건이었다.
최초의 아이폰이 뭔가 좀 어설픈 느낌이 있었다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아이폰드는 스마트폰이라는 개념 에 훨씬 가까워진 물건이었다.
아이폰드의 주요 업그레이드 포인 트 중 하나가 메모리 용량 증설이 었다.
오리지널 아이폰은 메모리가 작 아서 새로운 앱을 실행하면 기존에 실행한 앱을 메모리에서 지워야 했 다.
덕분에 게임 중에 문자가 오면 확인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인터넷을 켜서 뭔가 검색했다가 다시 게 임으로 돌아가려면 게임이 새로 실 행되었다.
아이폰으에서는 앱이 재시작되는 경우를 최대한 줄였고, 멀티태스킹 도 강화되어 빠른 전환이 가능해졌 다.
이밖에도 카메라와 3D 가속 기 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상당히 올라왔다.
여기에 스티브 잡스는 우수한 보 안을 강조했다.
무엇과는 다르게 기본 메시지도 모두 암호화되어 전송된다며 자랑 했고, 철저한 보안 시스템으로 한 번 잠가 놓은 아이폰은 주인이 아 닌 사람이 절대 해제하지 못할 거 라고 자신했다.
더욱이 암호화를 담당하는 별도 의 칩을 부착해 퍼포먼스에는 아무 런 영향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북미의 사용자에게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IDDC 2001을 찾은 ID 그룹의 열성 지지자들이 은근히 걱정이 될 정도였기에, 기다리는 줄에서는 우 려 반, 기대 반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ID 그룹과 유재원은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기대에 1000% 부응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