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74화 (574/1,007)

28권 8화

이 정도 키워드라면 911을 대비 하는 데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여 기는 유재원이지만, 확신을 할 수 는 없었다.

그렇다고 오사마 빈 라덴이 9월 11일에 비행기 납치를 기획했고, 납치된 비행기의 목표가 펜타곤, 국회의사당, 세계무역센터라는 걸 직접 말해 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앨 고어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믿지 않을 게 분명 했다.

게다가 사건이 예정대로 터지면, 이후에 또 다른 추궁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회귀 전 마스터플랜을 짤 때부터 고안한 것이 러시아발 첩보였다.

미국 정부가 혹시나 하고 유재원 의 첩보에 대해 러시아에 문의한다 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신혼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푸틴 과 만났을 때, 아프가니스탄에 대 해 깊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말이 다.

유재원의 바람은 항공기 테러에 대한 경각심으로, 항공기 운항 안전 수칙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하이재킹이 불가능하게 이륙 후 에는 조종석 문이 폐쇄되도록 만드 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

"정 안 되면, 프리즘에 가는 로 우데이터를 손보면 되겠지."

9월이 될 때까지 변화가 없으면 유재원은 인위적인 조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911에 대한 정리를 마친 유재원은 본업인 ID 그룹 경영으로 돌아왔다.

"이게 최종 버전인가요?"

"예, 회장님!"

유재원은 ID 일렉트로닉스 황찬 규 사장이 007가방에 담아 온 안드 로이드폰을 꺼내 들었다.

최고 보안 등급이었던 탓에 007 가방과 황찬규 사장의 손목에는 수 갑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호들갑스럽게 전해진 안드로이드 폰으로부터 가장 먼저 전해진 느낌은 여전히 무겁다였다.

무게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배터리인데, 이번에는 1800mA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채택했 다. T터치폰에 비해 용량이 많이 늘어난 만큼 무게도 T터치폰보다 20g 정도 더 무거워졌다.

대신 스마트폰의 화면이 커졌음 에도 작동 속도는 더 길어졌다. 배 터리 용량이 늘어났고, 여기에 120 나노 프로세서로 전력 효율성도 더 욱 좋아진 덕이다.

디자인적으로도 완벽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에 이음 새도 최소화해서 이리저리 둘러봐 도 손에 걸리는 게 없다.

홈 버튼을 비롯해 볼륨 조절과 전원 버튼이 눌리는 감각도 훨씬 경쾌하고 정확했다.

본체에 배터리를 내장하는 게 단 점이긴 해도, 이를 통해 디자인적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번 안드로이드폰에는 방수 기 능까지 추가함으로써 값비싼 휴대 폰을 어이없이 망가뜨리는 일도 방 지했다.

완벽한 방수는 아니었지만, 생활 방수보다는 훨씬 강력했다. 변기에 빠뜨려도 10분 안에 꺼내면 문제없 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안드로이드폰의 방 수 기능을 전면에 내세울 작전은 아니었다.

소송의 나라인 미국인 만큼, 방 수 기능을 선전했다가 기대에 미치 지 못하면 대규모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안드로이드폰의 핵심은 ID 그룹 이 내는 최초 스마트폰이었다.

동시에 작년에 출시된 아이폰과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아이폰으까지 도 압도할 스펙이 최대 장점이었다.

유재원이 최종 버전을 열심히 조 작하는 동안, 이를 바라보는 황찬 규 ID 일렉트로닉스 사장은 입맛이 조금 썼다.

그도 그럴 것이 핵심 부품이며 설계까지 모두 ID 그룹 미국 법인 의 주도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폰 이었다.

사실 ID 일렉트로닉스의 한국 출 신 연구원들은 안드로이드폰 제작에 관심이 많았다.

동시에 참여만 한다면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 었다.

PCS 시절, 구 일성전자는 에버콜 이라는 브랜드를, 구 미래전자는 걸리버라는 브랜드로 자체적인 브 랜드의 휴대폰 사업을 한 적도 있 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의 PCS 사업 부가 AS를 위한 최소한의 자원만 남기고 모바일 사업부로 통합되었 다.

안드로이드폰 개발에 이들 인력 이 포함되긴 했지만, 모바일 애플 리케이션 프로세서나 운영체제와 같은 핵심 기능 개발은 미국 인력 의 몫이었다.

한국 사업부의 몫은 생산이었다.

물론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었 지만, 많이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그러는 사이 최종 프로토타입을 열심히 만져 본 유재원이 입을 열 었다.

"좋네요. 이대로 양산하죠."

"예, 회장님!"

유재원의 허락이 떨어졌고, ID 일렉트로닉스는 즉각 대량 생산 체 제에 돌입했다.

정식 출시 예정일은 8월 IDDC 2001에서였으니, 6개월이나 빠른 시작이었다.

하지만 황찬규 사장에겐 그 시간 도 빠듯했다.

전 세계 동시 출시를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양산품을 만들고 미국 을 비롯한 유럽 등의 국가에 전파 인증 등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유통망 구성 역시 ID 일렉트로닉 스의 일이었다.

산적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있 어 6개월의 시간은 그다지 많은 것 이 아니었다.

황찬규 사장의 우려대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눈 깜짝할 사이에 8월이 되어 버렸다.

내일 드디어 IDDC 20()1이 열린다.

재작년 이 자리에서 안드로이드 ME와 X박스, ID 오피스를 발표한 것 같은데 벌써 2001년 IDDC가 개최된다.

이번 IDDC 20이의 주인공은 누 구나 예상했듯 안드로이드폰이었다.

ID 그룹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 여 발표와 함께 전 세계 동시 발매 를 시작할 것이라 다들 수고가 참 많았다.

한국과 미국은 기본이고 깐깐한 유럽에 인증을 받기 위해서 직원들이 부리나케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 다.

또한, 수많은 나라의 언어에 맞 게 현지화도 진행해야 해서 반년 동안 ID 그룹 전체가 정신이 없었 다.

대신 안드로이드폰의 완성도는 T 터치폰보다 몇 차원 더 높아졌다는 건 확실했다.

아이폰드가 어떻게 나오든 소프트 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절대 따라 잡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정도다.

"흐음, DIT는 한창 방학이겠네?"

그렇게 만반의 준비 덕분에, D데 이까지 딱 하루를 남긴 시점에서 서재에 앉은 유재원에겐 살짝 딴생 각이 들었다. IDDC 2001의 메인 스테이지 발표 정도는 유재원에겐 조금의 부담도 아니었던 것이다.

야웅?!

책상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던 고양이 디디도 유재원의 말에 동의 하는 것처럼 소리를 냈다.

DIT 라는 건 덕진공학대학교의 다른 말이었다.

올해 3월부터 신입생을 받기 시 작했다. 프로 야구를 그렇게나 좋 아하시던 아버지가 야구단보다, 핸 드볼 협회보다 더 챙긴 프로젝트가 바로 덕진공과대학교였다.

최강욱 부회장도 옆에서 많은 도 움을 주었고, 유재원도 스탠포드 대학교의 교수님들 중에 몇 분을 덕진공학대학교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연구 지원금, 최신의 연구 설비 그리고 최고 연봉을 걸 고서 겨우 모셔 왔다.

덕분에 신입생 입시 결과에 대해 기대가 무척이나 컸는데, 다행히 첫해부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자 공학에 한해서는 서울대보 다 높았고, 나머지 공과 학부의 경 우에는 서울대와 연세, 고려 사이 에 위치했다.

기존의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같 은 이과 중심의 특수대학교도 단번 에 뛰어넘는 위업을 보였다.

이는 덕진공학대학의 특수성 때 문이었다.

ID 그룹이 설립한 대학교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졸업생에겐 ID 그 룹 입사에 특혜가 있다.

졸업장만 있어도 입사 시 특별 가산점이 부여되고, 장학금을 받으 면 가산점이 더 커진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무조건 입사 다.

반쯤은 억지를 부려 IMF 조기 졸업에 성공한 한국이었다. 하지만 이전의 한국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가 없었다.

IMF로 인해 달라진 한국의 모습중에 가장 체감하기 쉬운 건 바로 취업이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 졌다.

ID 그룹의 경우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회사였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신입 직원의 실수령 월급이 400만 원을 넘는 회사는 한국에서 ID 그룹 계열사들밖에 없다.

ID 그룹에서 특수 직종으로 쳐주 는 개발자나 연구직에 입사한다면 연봉은 1억 원부터 시작했다.

한국의 그 어떤 대기업도 맞춰 줄 수 없는 조건이었기에, 매해 ID 그룹의 문을 두드리는 예비 취업자 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그렇지만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공채가 없는 ID 그룹이었기에, 채 용 공고가 언제 나오는지 눈을 크 게 뜨고 주시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신입생이 대거 배출되는 졸업 시즌에 맞춰서 채용 공고가 나오긴 하는데, 다른 대기업 공채 에 비해서 자릿수가 너무 적었다.

입사 시업 자체도 특이하고, 면접도 실전 테스트라 난이도가 상당 했다. 게다가 지원자들의 수준도 날로 높아져서 상향 평준화가 이뤄 지는 중이었기에, 약간의 가산점도 합격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덕진공학대학교가 개교한 것이다.

ID 파운데이션이라는 자선재단에 뛰어난 교수진이 있고, 신생 대학 교답지 않은 탄탄한 커리큘럼을 갖 추고 있는 것이 신입생 입결을 높 이는 요인이었지만, ID 그룹 채용 가산점은 결정적이었다.

우수한 인재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유재원에게도 나쁠 게 없다.

다만 우려되는 건 한국의 입시 제도에 덕진공학대학교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 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에서 중점 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바로 교육이 었다.

그중에서도 대입이었는데, 수능 위주의 입시 제도에 수시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미국의 입시 제도를 그대로 가져다 놓는 것인데, 미국의 교육 제도 가 딱히 우수하다고 생각지 않는 유재원이었으니,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그건 그거고."

고민해 봐야 지금 당장 답이 나 오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덕진공학 대학교에 대한 일은 이쯤에서 접어 두는 유재원이었다.

" 다음은……

유재원의 컴퓨터에 떠오른 다음 사안은 ID 일렉트로닉스였다.

안드로이드폰 양산을 준비하면서 ID 일렉트로닉스에 가장 많은 시간 을 썼던 유재원이었다.

2월까지 한국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ID 일렉트 로닉스의 사업장이었다.

거기에서 안드로이드폰 생산을 총괄했지만, 최고 책임자였기에 자 연스럽게 ID 일렉트로닉스의 전체 상황이 절로 눈에 들어왔다.

안드로이드폰과 T터치폰을 중심 으로 하는 모바일 사업부, D램과 MAP 생산을 주력하는 반도체 사업부는 정상 궤도에 올랐다. 아니 정상 궤도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 최고에 올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드로이드폰은 오직 ID 그룹에서만 만들 수 있는 최첨단의 기기였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반도체 사업부의 120나노 공정이었다.

D램에도 120나노 공정이 적용되 면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하나는 칩의 다이 면적을 그대로 두고 용량을 4배로 늘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용량을 그대로 두 고 칩의 사이즈를 줄인 경제형 제 품을 동시에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다.

전자의 것은 기업이나 정부를 상 대로 하는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겨 냥했고, 후자는 일반 시장용을 압 도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120나노 공정을 통해 작동 속도를 대폭 향상할 수 있어 서, 컴퓨터의 퍼포먼스도 크게 끌 어올렸다.

단적으로 이전 세대의 최고 품질 메모리칩과 비교해서 성능이 4배나 올랐다. DDR이라는 대역폭을 두 배로 향상하는 기술과, 작동 속도 가 2배가 빨라지면서 얻어진 드라 마틱한 효과였다.

오죽하면 기존의 CPU와 메인보 드가 빨라진 메모리 속도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할 정도였다. HPC 때 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때에도 구리 배선 공정이 미적 용된 칩과 적용된 칩 사이의 성능 차이는 극과 극이었는데, 이번에도 120나노 공정과 그 이전의 칩 사이에 성능의 벽이 생겨난 것이다.

이후의 그림 역시 HPC 때와 똑 같았다.

인텔과 AMD의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한국에 들어왔다.

120나노 공정으로 찍혀 나온 메 모리칩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 로세서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두 회사가 공정 향상을 위해 쏟 아붓는 연구 개발비의 규모는 어마 어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능 의 향상은 그다지 극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ID 그룹은 벌써 두 번째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HPC 때와 마찬가지로 기술을 전수 받기 위해 인텔과 AMD에서 백지 수표를 들고 한국을 찾은 것 이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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