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권 24화
단적으로 유재원은 강설량을 확 인하고 싶어서 2개의 폰 모두 날 씨 앱을 실행했다.
T터치폰은 진작 실행되어 날씨 가 나온 반면, 아이폰은 아직도 로 딩 중이었다. 똑같은 플래시 메모 리를 스토리지 매체로 쓰고 있지 만, 실행 속도의 차이가 컸다.
실행이 되고 나서도 GPS 위치 를 잡는다고 기다려야 했고, 데이 터를 불러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었다.
다만 최종적인 결과는 T터치폰 과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날씨 데이터는 넥스트컴에서 제공 중이 었는데, 오픈 API형태로 제공되어 T 터치폰과 아이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메모리 상주와 멀티태스 킹도 잘 안 돼서, 날씨를 켜 놓고 확인을 하려다가 메시지가 와서 메시지를 보고 돌아오려면, 새로 실행이 되는 수준이었다. 운이 좋 으면 바로 전환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대신 실행이 되어서 화면에 뜨 면 의외로 쾌적하게 구동된다. 3D 폴리곤을 사용한 게임도 아이폰의 스펙에 맞게 제작되었다면, 제법 매끄럽게 구동된다.
유재원의 기준에서는 단점이 많 은 물건이지만, 최초의 스마트폰이 란 타이틀에는 부족함이 없다.
시장에서도 비싼 가격, 모자란 소프트웨어 완성도 등으로 말이 많았지만, 판매량은 의외로 괜찮았 다.
애플의 고정적인 팬층도 있었고, 통신사의 약정 할인으로 그나마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으니 말 이다.
더욱이 인터넷에서는 애플의 제품을 쓰면 마치 시대를 앞서간다 는 인식이 있었다.
T터치폰은 아저씨들의 물건이고 아이폰은 잘나가는 첼럽들의 필수 품처럼 인식되었다.
혹시 바이럴 마케팅인가 싶어 조사해 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21세기가 되면서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비싼 물건을 거침없이 구매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성향이 복합적 으로 결합되어 나온 현상이었다.
유재원이 T터치폰의 차기작으로 스마트폰을 선택한 이유도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ID 그룹의 임원들은 인터넷에서 의 반응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유재원은 달랐다.
이미지가 고착화되면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터넷 여론의 급격한 쏠 림은 경고등이 켜질 만한 일이었 다.
아이폰의 판매량만 보면 아직 때가 된 건 아니었지만, 숫자만 따 지다간 ID 테크놀로지의 휴대폰이 진짜로 아저씨용 휴대폰으로 인식 이 고착될 것 같았다.
기왕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제대 로 된 물건을 만들겠다는 생각으 로 이어졌고, 그 결과 리사 수 박 사팀을 이끌고 대전까지 오게 된 것이다.
리사 수 박사팀의 목적은 간단 했다.
대전의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사업부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여 기에서 차기 스마트폰에 탑재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생산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기 위함이다.
T터치폰에 탑재되는 MAP 버전
2까지는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 (TSMC)에서 위탁 생산 중이었다.
차기 버전도 TSMC를 통해 생 산하는 게 쉽고 빠르겠지만, 유재 원은 자체 생산으로 마음을 굳혔 다.
미래전자와 일성전자를 인수한 덕에 세계 반도체 기업 순위에서 ID 일렉트로닉스는 단번에 인텔 밑까지 뛰어올랐다.
이러한 대규모 생산 라인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찍어낼 이유는 없었다. PC용 CPU는 무리겠지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시도해 볼 만했다.
덤으로 낀 티파니의 경우엔 단 순 견학이었다.
티파니 역시 전공은 컴퓨터 공 학이었고, 거기엔 반도체 관련 커 리큘럼도 있었기에, 반도체 생산 라인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컴퓨터 공학과는 좀 거 리가 있는 일을 하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컴퓨터나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더욱이 한창 뜨거울 신혼이었기 에, 유재원이 가는 곳에 티파니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후 2시.
ID 일렉트로닉스 대전 공장 공 장장인 강찬호가 회사 입구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 었다.
당연히 유재원과 리사 수 박사 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의 재벌들과 달리 매우 소 탈한 유재원이었기에, 직원들을 도 열시키는 등의 의전을 챙길 필요 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강찬호 말고 도 제법 많은 직원들이 나와 분주 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쉼 없이 떨어지고 있 는 하얀 악마의 가루. 함박눈 때문 이었다.
혹여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 이었기에, 자동차가 들어올 자리와 동선은 깨끗하게 쓸어 놓았다.
문제는 쓸고 지나간 자리도 몇 분 지나지 않으면 눈이 다시금 쌓 인다는 점이다. 군 복무 시절 쓸어 도 쓸어도 끝이 없던 악몽이 떠오 르는 강찬호 공장장이었다.
쓸고 난 자리가 또 하얗게 되는 걸 보고 다시 쓸어야 하나 고민할 때.
"옵니다!"
타이밍 좋게도 대형 외제 승용 차들이 줄줄이 공장 안으로 들어 오기 시작했다.
유재원과 리사 수 박사팀 그리 고 김대석 비서실장과 경호원들의 차량이었다.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한달음에 유재원과 티파니가 탄 차에 다가간 강찬호가 깍듯한 인 사부터 올렸다.
그와 함께 공장 입구와 주차장, 출하장에서 눈을 쓸고 있던 직원 들도 부랴부랴 모여 고개를 숙였 다.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군기가 바싹 든 모습이었다.
"오랜만이죠?"
그 모습에 할 말이 무럭무럭 피 어나는 유재원이었다.
특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 지 않았다.
유재원도 전생에 군대에서 눈 쓸어 본 기억이 선명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짜증이 났었는지 말도 못 할 정도 였다.
유재원의 불만도 여기에 있었다.
눈이 쌓이면 치워야 하는 건 틀 림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첨단 의 반도체 공장에서 눈을 치우는 데, 굳이 빗자루를 들고 사람들이 직접 쓸어야 하냐는 것이다. 제설 용 전문 기계들이야 찾아보면 얼 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말이다.
강찬호 공장장에게 왜 제설용 장비를 미리 구비해 놓지 않고 있 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ID 그 룹이 자린고비처럼 예산 집행에 짜디짠 기업도 아니고 말이다.
유재원은 인사말을 줄이는 대신 김대석을 조용히 불러서 눈 치우 는 기계를 알아보도록 했다.
비단 대전 공장뿐만이 아니라, 수원 공장 그리고 한국의 ID 그룹 사업장 모두를 조사해서 제설 기 기가 없는 곳을 조사해 일괄 구입 하도록 했다.
유재원의 직감은 대전 공장만 인력으로 제설 작업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알려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오! 시설이 무척이나 좋네요!"
리사 수 박사의 호들갑이 끊이 지 않았다.
유재원과 티파니 그리고 리사 수 박사팀이 새하얀 방호복을 차 려입고 반도체 생산 라인에 들어 선 것이 30분 전이었다.
클린 룸에 외부인이 들어서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할 일이었기에, 생산 라인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최대한 줄였다.
그리고 외부 먼지 제거를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생산 라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기에 리사 수 박사의 호들갑도 좀더 커졌다.
게다가 생산 라인의 규모도 상 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대전 공장에서만 월 100만 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생산 라인은 최대한 자동화 를 시켰다.
웨이퍼의 운반은 공장 천장에 레일을 부착했고, 레일에는 중앙제어로 움직이는 자동화 카트를 달았다.
생산 직원들이 웨이퍼를 다루는 건, 생산 라인에 투입할 때나, 생 산 공정 끝에 나온 결과물을 테스 트할 때 말고는 거의 없었다.
특히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 를 만들거나, 이물질을 세척할 때 엔 완전히 외부와 격리된 환경에 서 유독 물질을 다루도록 했다.
이는 일성전자 인수로 획득한 수원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애초부 터 라인 설계에 결함이 있었던 수 원 공장은 아예 생산 라인을 멈추 고 다 뜯어고쳤는데, 대전 공장을 최대한 참고해 새롭게 라인을 구 성했다.
그러면서 ASML 으로부터 최신 의 노광 장비를 구매해 미세 공정 수준을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렸 다.
"예, 수 박사님 말씀처럼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 시설이라고 자부합니다."
리사 수 박사의 호들갑에 강찬 호 공장장이 자부심 가득한 목소 리로 답했다.
"메모리 반도체 한정으로 말이 죠."
자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재 원이 바로 초를 쳤다.
사실 메모리 반도체 한정이라고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10년 전만 해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는 일본이었고, 한국 은 그런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해 서든 기술 이전을 받으려고 난리 였다.
지금은 ID 일렉트로닉스가 전 세계에 메모리 반도체 공급량의 60% 이상을 책임지고 있었다.
더욱이 단순 생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기술도 앞장서서 개발했고, 덕분에 JEDEC 표준에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
그렇지만 이처럼 빛나는 성과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로 가면 유 재원의 말처럼 힘이 빠진다.
자랑스러운 대전 공장이었지만, 아직 인텔과 AMD가 보유한 공장 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덕분에 강찬호 공장장은 물론이 고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사업 부 임원들의 얼굴이 대번에 돌처 럼 굳어졌다.
"괜찮아요. 이젠 달라질 겁니다. 이번에 MAP 3가 제대로 뽑힌다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치고 나갈 수 있으니까요."
MAP 3의 설계는 진작에 끝났 다.
아이폰이 나오는 동안 리사 수 박사팀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니었 으니 말이다.
T터치폰 발매 후 쏟아지는 피드 백을 모두 받아 MAP 3에 적용했 다.
그리하여 MAP 3는 T터치폰에 탑재된 2와 비교해 전체 성능은 3 배 빨라졌고, 3D 가속 모듈까지 통합했다.
3D 가속 모듈의 경우엔 ATI의 라데온1 아키텍처를 빌려와 모바 일용으로 튜닝한 것으로 아이폰에 탑재된 人으보다 2배는 강력한 성능 을 자랑한다.
대신 회로의 복잡도가 MAP 2 보다 좀더 올라갔고, 칩의 크기도 좀더 커졌다.
MAP 2의 양산도 힘겨워하던 대전 공장이 이보다 난이도가 올 라간 MAP 3의 양산은 더더욱 힘 들 거라는 건 강찬호를 비롯한 반 도체 담당 모두가 예상한 일이었 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리사 수 박 사팀을 이끌고 대전으로 온 것이 다.
구리 배선이라는 신기술을 통해 반도체의 작동 속도를 한 차원 끌 어올린 유재원과 리사 수 박사였 다.
이번에도 반도체의 성능을 획기 적으로 끌어올릴 기술을 풀 작정 이었다.
"시범 생산 준비부터 확인해 볼 까요?"
"예! 그럼 시험 생산 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강찬호 공장장이 앞장섰다.
걸음을 옮기는 강찬호 사장의
최대한 팀에선 양산은 나오는
얼굴엔 불안감이 살짝 일었다. 유 재원의 요구에 맞춰 하긴 했는데, 반도체 로는 비메모리 칩의 울 거라는 이야기가 이었던 탓이다.
준비 이걸 어려 상황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팀은 구 일성전자, 구 미래전자의 반도 체 전문가들이 모인 한국 최고의 반도체 엘리트 팀이었다.
그렇기에 준비 상태만 보고도
어느 정도 견적이 바로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기존과 크게 달라진 재료는 웨이퍼 세척용으로 쓰는 불산의 상태가 액상에서 기체로 달라졌다는 게 전부였다.
다만 강찬호 사장이 마냥 불안 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껏 유재 원이 보여준 행보는 상식 파괴였 다.
이번에도 유재원이라면 뭔가 다 른 걸 보여줄 거라는 희망이 일어 나는 중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