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64화 (564/1,007)

27권 23화

다음 날.

-회장님! 대박입니다.

유재원은 9시가 땡 하자마자 최 강욱 부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의 일정은 티파니 그리고 리사 수 박사팀과 대전의 ID 일렉 트로닉스 반도체 공장을 방문할 예정이었기에 한창 외출 준비 중 이었다.

반면 최강욱 부회장의 전화는 예정에 없던 전화였다.

"네? 대박이라니요?"

대박이라면 절대 나쁜 소식은

아니었기에, 유재원은 가볍게 되물 었다.

-사택 지하에서 대박이 터졌습 니다.

사택이라고 하면 어제 불도저로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대한일보의 사택이 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박이랄 게 있 던가?

어제 용역들과 함께 고미술 전 문가가 먼저 사택 안으로 들어가 서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은 이삿 짐용 파란 박스에 넣어서 가지고 나왔다.

이후 전문 감정 장비가 있는 곳 에 가서 감정을 해 봤는데, 기대와 달리 개털뿐이었단다.

그럴듯해 보였던 그림들은 사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조품이었고, 도자기 역시나 근대에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판정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산 압류가 전격적으로 행해졌 다면, 결과가 좀 달랐을 수도 있었 다.

그런데 배상금이 확정될 때까지 의 기간도 길었고, 대법원에서 확 정되고 나서 압류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도 길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한국은 군부 독재가 아니 었다. 절차의 정당성은 합법적 절 차에 따라 완성해야 했다.

덕분에 대한일보 측에서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시간에 멍하니 승소하기 만 기다리고 있진 않았으리라 예 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압류가 되기 전에 값나가는 것 들은 죄다 빼돌려졌고, 허접한 것 들로 채워진 것이다. 덕분에 박스 에서 나온 잡동사니의 감정가를 다 더해 봐도 고미술 전문가의 출 장비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대박이라니.

-허물어진 잔해를 치우는 중이 었는데, 지하실이 나왔습니다.

"지하실이요?"

-예!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번 에 나온 지하실은 시청에 등록된 설계도에도 없는 지하실이라는 겁 니다.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이어진 이야기는 몹시 흥미로웠 다.

현장에서는 싸그리 밀어버리라 는 유재원의 지시를 확실하게 이 행했다.

덕분에 철거 작업도 과감하게 이어졌고 쉽게 끝났다. 곧이어 잔 해를 치우는 중이었는데, 지하실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다.

원래 그 사택에 지하실이 있긴 했다. 보일러실을 겸한 창고였는 데, 이번에 찾은 건 그러한 지하실 밑에 숨겨진 지하실이 더 있었다 고 했다.

"그 안에 뭐가 있었는데 대박이 라고 하신 거예요?"

-청자와 백자 같은 도자기가 10 여 개, 고서화(古書≪)가 수십여 점 나왔습니다. 감정사들 평가에 의하면 청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고 하고, 백자는 징더전 것 과 고려백자 같다고 합니다. 징더 전의 것은 명나라 대인지, 송나라 대인지 조사해 봐야 합니다. 아! 서화는 아직 제대로 된 조사를 못 했습니다. 품목이 많고 보관 상태 가 좋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조사 해 봐야 합니다. 아! 작은 불상도 있답니다.

진짜 대박이다.

고려하면 청자가 유명하지만,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숫자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품질이 좋지 않은 건 불 과 10여만 원 정도면 충분히 구매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고려 백자는 정말 귀한 물건이었다.

명나라로부터 백자 기술이 막 들어온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라, 기술적인 완성도가 좀 떨어지는 게 고려 백자의 특징이다.

우유처럼 새하얀색이 아니라 석 고처럼 좀 누르스름하다. 하지만 고려 대의 도자기 기술을 바로 볼 수 있는 만큼,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았다.

현재 전해지는 물품의 숫자도 적어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징더전의 백자 역시 높은 가치 를 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송나라 대의 백자라면 수억 원은 기본일 것이고, 명나라 대의 것이라도 나 쁜 가치는 아니다.

더욱이 서화가 도자기보다 훨씬 많다고 하니 그야말로 보물 창고 였다.

"그런데 집 안에 있는 물건은 다 빼돌렸으면서, 왜 그 지하실은 남겨둔 거죠?"

-아직은 추측입니다만

유재원의 물음에 최강욱 부회장 이 조심스럽게 가설을 말했다.

현 대한일보의 사주는 2대인데, 대한일보를 물려받으면서 이 사택 도 함께 받은 것이었다.

대한일보의 1대 창업자인 방 모 씨라 알려져 있지만, 여기엔 속사 정이 있었다.

대한일보는 원래 구한말 창간된 민족 정론지였다. 그러다가 일제강 점기에 사정이 어려워진 조선일보 를 교동광산에서 금광을 찾아 벼 락부자가 된 방 모씨가 인수하고 나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논조도 확 달라지게 되었다.

방 모씨의 고상한 취미가 동양 의 고미술품 수집이었는데, 이번에 나타난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도 방 모씨의 수집품일 가능성이 매 우 높았다.

다만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못해 잊고 있었던 것들이 지금에 야 발견된 것 같았는 이야기다.

최강욱의 추측은 과연 타당했다.

숨겨진 지하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이 안에 있던 물건들도 당연히 옮겨졌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지하실의 입구는 시멘트로 발려 있던 터라 전혀 티가 나 지 않았다고 했다. 굴착기로 콘크 리트를 깰 때 와르르 무너지면서 드러났다고 하니, 집을 허물기 전 에는 절대 발견하지 못할 장소였 다.

"음, 그러면 법적인 소유권은 누 구에게 있는 거죠?"

-당연히 회장님의 소유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경매 에 걸린 것이 사택에 대한 모든 권리였고, 유재원은 합법적인 수단 으로 이를 인수했다.

땅에 묻힌 유물이 공사 중에 출토된 상황이라면 문화재청과 의논 을 해야 할 사안이겠지만, 지하실 에서 나왔으니 문제없다는 것으로 최강욱과 ID 그룹 법무팀이 일치 된 결론을 내렸다.

"잘됐네요."

역시 착한 일을 하니 복을 받는 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유재원이 었다.

-이걸 어떻게 할까요?

도자기와 그림을 모두 처분한다 면 낙찰가로 치른 돈을 꽤나 회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재원에게 돈이 부족할일은 없었다.

ID 그룹의 2000년도 사업 성과 는 여전히 탄탄했다. ID 테크놀로 지에서 X박스 사업을 한다고 수억 달러를 퍼붓고 있긴 했지만, 그렇 다고 ID 테크놀로지가 적자로 전 환되지는 않았다.

ID 오피스와 T터치폰, 라이브팟 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고, 애드 센스와 같은 인터넷 신기술이 새 로운 먹을거리를 창출했기 때문이 다.

게다가 CIA에 프리즘 시스템을 납품하면서 벌어들인 수익도 어마 어마했다.

심지어 계열사들은 ID 테크놀로 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이 고 있었다.

ID 인베스트먼트도 꾸준한 수익 이었고, 여러 신작을 발표한 ID 엔터테인먼트도 큰돈을 만지는 중 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성과를 내는 곳은 안드로이드 사로 ME를 발표한 안드로이드 사의 매출액과 순이익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IMF 조기 졸업을 내세우며 상환한 30억 달 러도, IMF를 통해 다시 유재원의 계좌로 돌아왔다. 전체 금액의 30% 정도가 돌아온 것이지만, 한 국의 웬만한 대기업들 순익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이제는 돈을 버는 것보단 새로 운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고 민해야 할 때였다.

그렇다고 유재원이 문화재를 좋 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재원의 관심은 항상 미래였고, IT와 전기, 전자에 집중되었으니 말이다.

결론은 처분할 필요도 없지만, 집에다 두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유재원에게 좋은 생각 이 떠올랐다.

"아, 덕진사학재단의 대학교가 내년에 개교하잖아요. 거기에 박물 관이나 만들어서 전시해 놓으면 좋겠네요."

몇 년 전쯤 유재원은 아버지 유 봉만에게 대학교도 만들어 보시라 고 권한 적이 있었다.

이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 느새 개강 준비가 다 끝났다고 했 다.

올해 수능 응시생부터 신입생을 받아 내년 3월부터 정상 운영된다 는 것이다. 당연히 대학 설립에 최 강욱이 열심히 힘을 보탰고, 국가 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 덕에 신입 생 정원 600명 규모의 전문공대가 완성되었다.

대학교의 이름은 역시나 덕진공 과대학이었고, 줄여서 덕진공대였 다. 위치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자리를 잡았다.

공대이긴 해도 대학교 안에 자 그마한 박물관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지하실서 나온 컬렉션으로 부족 하다면, 해외에서 유통 중인 한국유물을 매입해 추가하면 된다.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그럼 준 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강욱도 유재원의 아이디어에 바로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이제 껏 지하실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한 유물이니, 이제라도 전시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라 여긴 것이 다.

아침부터 대박을 맞은 유재원은 그야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대전의 반도체 공장으로 내려갈 수 있었 다.

"눈이다!"

티파니의 외침에 유재원은 고개 를 들어 창 밖을 보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가 싶더니, 곧 눈으로 바뀌고 있는 게 보였다. 하늘을 보아하니 짙은 구름이 깔 려있는 게, 잠깐 오고 말 것은 절 대 아닌 모양새였다.

"함박눈이 제대로 올 거 같네."

"함박눈이라고?"

유재원의 말에 티파니가 무척이 나 좋아했다.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에도 선선 한 정도였기에 눈 내리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다.

나중에 기후 변화가 오면 샌프 란시스코에서도 겨울에 눈 내리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그 건 미래의 일이었다.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티파니와 달리 유재원은 시큰둥했다.

유재원의 고향인 덕진리는 겨울 에 눈이 많이 내렸던 동네였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눈이 온 탓에 안전 운전 을 위해 속도를 줄이면서 목적지 까지의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 게 걱정이다.

마음은 이미 대전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답답해진 유재원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날씨 앱을 열어 서 기상 특보를 확인할 생각에서 였다.

"아이폰도 써?"

티파니의 말처럼 유재원의 주머 니에서 나온 건 T터치폰과 아이폰 2개였다.

아이폰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 링 보고서는 진작에 받았던 유재 원이었다. T터치폰의 기술을 교묘 하게 따라해서 눈에 거슬리는 건 있긴 했지만, 법에 걸릴 만큼 대놓 고 따라한 부분은 없었다.

특히 모바일 기기의 핵심인 AP 로 채용된 ARM의 프로세서는 ID 테크놀로지의 모바일 애플리케이 션 프로세서와 구조가 많이 달랐 다.

그렇기에 리버스 엔지니어링 보 고서가 법원으로는 가지 않았다. 대신 애플 사의 기술 수준을 확인 하는 정도로 활용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내부적으로 내린 ID 그룹과의 기술 격차는 1년.

애플이 1년 앞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1년 뒤처져 있다는 이야기 다. ARM의 AP만 비등할 뿐, 나 머지 부분에서는 부족했다.

그런데도 아이폰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스티브 잡스의 의지 덕 이었다.

그러면 아이폰은 괜찮은 물건인 가?

"쓸 만해?"

티파니의 물음에 유재원은 고개 를 크게 젓는 것으로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 보고서에서 예상은 했지만, 실사용에서 느껴지 는 아이폰에 대한 감상은 설익은 물건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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