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61화 (561/1,007)

27권 20화

스팀은 아직 정식 서비스를 시 작하진 않았고, 내부 테스트 단계 였다.

게이브 뉴웰은 이미 완성된 다 운로드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인 터페이스와 클라이언트 프로그램 그리고 라이브러리 구축에 힘을 쏟는 중이었다.

당연히 X박스에도 ID 앱스토어 대신 탑재될 예정이기에, 이렇게 유재원이 내부 테스트용으로 먼저 사용해 볼 수 있었다.

스팀에 올라온 GTA 3의 전체 용량은 무려 3기가바이트가 넘는다.

오리지널 GTA 3는 이렇게 큰 용량은 아니었다. 그런데 X박스의 스펙 업그레이드가 이뤄졌고, 개발 비 지원 덕에 고화질 텍스처와 하 이 폴리곤 모델링이 대거 쓰이면 서 게임의 용량이 대폭 늘어났다.

다행히 다운로드 완료 예정 시 간은 7분 정도였다.

이는 ID 그룹의 데이터센터와 유재원의 집이 광케이블로 연결된 덕에 무시무시한 속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직도 다운로드는 느리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원의 입 에선 느리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속도는 상대적인 단위였다. 8Mbps짜리 ADSL 서비스를 사용 하는 사람이라면 이 속도도 엄청 나다 여겼을 테지만, 유재원은 ID 데이터센터에서 광케이블을 끌어 와 시스코에 특별 주문해 설치된 라우터와 연결했고, PC와 라우터 역시 PCI-X버스의 광케이블로 연 결된 상태였다.

그런데 AV룸의 X박스는 겨우 lOOMBps짜리 랜카드라서 속도가 좀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X박스에 lOOMBps짜리 랜카 드가 달린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으로 내장된 랜카드는 lOMBps 짜리의 저렴한 모델이었 고, 유재원의 X박스는 랜카드와 하드디스크 크기 둥둥이 개조된 버전이었다.

일반 게이머들은 더 느릴 텐데, 이를 빠르게 극복하는 게 스팀의 빠른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띵!

멍하니 다운로드가 완료되길 기 다리는데, T터치폰의 알람이 울렸다.

이번엔 최강욱이었다.

-대한일보 사건이 드디어 마무 리 되었습니다!

-압류된 자산들의 경매가 곧 시 작될 예정입니다. 회장님이 언급하 셨던 그 집도 포함되었습니다. 우 리도 경매에 참가합니까?

"당연히 해야죠!"

오늘은 무슨 날인가 보다.

너무도 반가운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DH사건이란 대한일보와 DH호

텔이라는 두 개의 큼직한 스캔들 을 하나로 묶어 이르는 말이었다.

대한일보의 경우엔 배임과 횡령, 외환 관리 위반, 공정 거래 위반 등등의 죄목으로 고소되어 수천억 원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 배상이 내려졌고. DH호텔의 경우엔 마약 과 매춘 등의 죄목으로 오너 일가 들이 쇠고랑을 찼다.

그런데 빠르게 결론이 내려진 DH호텔 건과 달리 대한일보의 경 제 범죄의 경우엔 대법원까지 올 라가야 했다.

대한일보라는 회사 입장에서만 보자면 오너 일가들이 쇠고랑을 차는 것보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벌금과 배상금이 더 큰 타격이었 다.

오히려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오너 일가를 감옥에 보내 는 것도 용인한 것처럼 보일 지경 이다.

대신 어떻게 해서든 대한일보에 부과된 천문학적인 배상금과 벌금 을 줄이기 위해 애를 썼다.

대법원까지 항소하는 건 당연했 고, 대법원에서도 고등법원의 판결 이 그대로 인용되자, 자산 압류를 최대한 미뤄보고자 온갖 지저분한 수를 썼다.

대한일보가 가장 많이 공을 들 인 건 정치적 타협이었다. 청와대 와 여당 등등 힘이 되어 줄 만한 모든 곳과 접촉했다. 덕분에 정치 권에서 언론 탄압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이 대한일 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몇 마디 말이 전부였다. 헛다리를 단 단히 짚었다. 대한일보의 몰락을 가장 바란 건 유재원이었으니 말 이다.

유재원의 의지가 확고부동했기 에 국민의 정부에는 멋대로 타협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청와대의 힘은 유재원의 뜻과 달리 대한일보에 대한 처벌 을 솜방망이로 만들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단적으로 유재원이 한국에 가진 영향력이란 어마어마 했던 탓이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었다.

그것은 바로 ID 그룹의 자본력 이었다. 백호펀드, ID 마이크로크 래딧 그리고 ID 그룹이 존재 자체 로 뿜어내는 중이었다.

백호펀드는 IMF에 직격당해 파

산한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들의 재활 센터였고, ID 마이크로크래딧 은 제도권이 닿지 않는 사회안전 망 밖의 서민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마지막으로 ID 글로벌 헤드쿼터 빌딩으로 상징되는 ID 그룹 본사 는 매년 어마어마한 법인세를 납 부하면서 한국 정부의 살림에 커 다란 보탬이 되었다.

셋 중 하나만 덜컥거려도 한국 경제가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일보를 멋대로 사면 해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었다.

그 결과, 오늘 대한일보의 자산 들은 압류 절차에 들어갔다.

국민의 정부는 그나마 대한일보 를 위해 신문 발행에는 지장이 없 도록 윤전기나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대한일보 본사 건물의 압류 순위를 뒤로 미루었다. 대신 가장 먼저 빨간 딱지가 붙게 된 건 신 문 발행과는 거리가 먼 자산이었 다.

여기에 유재원이 언급한 '그 집' 이라는 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 집이란 당연히 대한일보의 현 회장이자 2대 사주가 가는 사택이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회사가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집이라는 의미이긴 한데, 이 사택 은 특별했다.

딱 보면 입이 떡 벌어지고, 잠시 후엔 충격을 받는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현대에 이 런 집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충격 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위치는 동작구 혹석동이다. 흑석동 한강변을 쭉 훑고 내려가 다 보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야 할 자리 하나가 녹색의 숲으로 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이 아파트의 숲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든 그린벨트인가 싶지만, 절대 아니다. 그곳이 바로 대한일보 회장님의 집이었다.

서울 금싸라기 땅 중앙에 자기 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사택의 넓 이만 축구장 3개를 붙여 놓은 것 보다 넓고, 그 안을 생태 공원인 것처럼 자연을 꾸며 놓았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러한 대한일 보 회장의 사택은 한강변에 맞닿 아 있는 게 아니라, 한 블록 떨어 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데, 대한일보 회장의 사택에서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이 가 빠진 것처럼 아파트가 들어서 지 못했다.

한강 조망권이 대한일보 사택에 우선한다는 명분이었다.

재미있는 건 원래 그 자리에 들 어설 아파트는 미래건설이 지을 예정이었다는 점이다. 즉, 미래그 룹과 대한일보의 충돌이었다.

법원으로 소송이 올라간 건 당 연했다. 자그마한 사업도 아니고, 무려 아파트 단지를 짓는 일이었 으니 말이다.

그 자리는 아파트 2동이 들어설 만큼 넓은 땅이었다.

결과는 지금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대한일보의 승리와 미래그룹 의 패배였다. 미래그룹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했지만, 대 한일보가 더 강했던 것이다.

이처럼 대단한 사택인데, 소유는 대한일보 회사 소유였다.

서울의 땅값은 떨어질 줄을 모 른다. 거기에 엄청난 넓이를 차지 하고 있으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한일보 회장은 이 집의 명의를 대한일보로 올렸고,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한 것이다.

덕분에 이번 대한일보의 압류 절차에서 제일 먼저 빨간 딱지가 붙은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 집 하나만으로 1천억 원은 넘을 겁니다.

"제법 비싸네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유재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ID 글로벌헤드

쿼터 빌딩 최상층에 유재원의 펜 트하우스가 만들어졌을 때, 서울에 서 가장 비싼 집이 어느 집이냐는 물음이 유행이었다.

여러 회장님네 집들이 열거되었 지만, 결국에는 유재원의 펜트하우 스냐, 일성그룹 최현희 회장의 집 이냐로 좁혀졌다.

그러다가 이번 일로 서울서 가 장 비싼 집은 대한일보 회장네 집 으로 확정된 모양새다.

유재원의 펜트하우스를 털털 털 어도 대한일보 사택의 땅값만 못 했으니 말이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우리가 낙찰받으세요."

-다행히 실제 낙찰가는 1천억 원이 넘진 않을 겁니다. 대한일보 자산 압류품 경매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가율이 그 렇게 높을 것 같지 않거든요. 몇 번 유찰이 되면, 반토막이 나거나 그 이하 가격으로 내려올 가능성 이 매우 높습니다.

대한일보는 종이호랑이로 전락 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대한일보가 무서운 사람들이 많았 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겐 대 한일보의 압류 경매가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보복이 두려워서 쉽게 참가하지 못한다.

건설기업들은 흑석동 사택의 땅 이 무척이나 탐스럽게 보일 것이 다. 거기에 아파트 단지만 지으면 앉은 자리에서 엄청난 돈을 땡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건설기 업들만큼 뒤가 지저분한 곳은 또 없다.

대한일보가 종이호랑이로 전락 했다지만, 대놓고 씹으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기에 이번 경매에 참여할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줄 어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정적으로 유재원이 눈여겨보 고 있는 매물이라는 소문이 나면 선입찰하려는 이들은 더더욱 줄어 들 것이다.

"잘됐네요."

유재원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 다.

"낙찰받으면 바로 밀어버리세 요."

-아, 밀어버리실 겁니까?

"예. 서울의 스카이라인과는 전 혀 어울리지 않는 흉물이니 치워버리는 게 낫죠."

대한일보의 사택이나 조경은 보 존해야 할 가치가 하나도 느껴지 지 않는 것들이었다. 애초에 1천억 원에 달하는 경매 시작 가격도 땅 의 가치가 대부분이지 건물 가치 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 알겠습니다.

최강욱도 유재원과 같은 생각이 었기에 두 번은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밀어버린 다음에 무얼 할 지에 대해 유재원은 아직 생각나 는 게 없었다. 당연히 아파트를 지 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금싸라 기 땅이니 여러모로 부가가치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걸 짓고 싶었다.

"시간 참 빠르네."

유재원은 차창 밖 풍경에 시간 이 빠르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다며 호 들갑을 떨었던 게 어제 같은데, 벌 써 연말이었다. 자동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추수감 사절을 맞아 활기찬 모습이었다. 따듯하게 차려입고 선물 꾸러미를 든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 다.

"그치? 나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 같아."

비단 달라진 건 거리의 모습뿐 만이 아니다.

유재원의 옆자리에는 보통 김대 석이 있었지만, 지금은 티파니가 있었고, 금색의 눈에서는 꿀이 떨 어지는 듯 달콤했다.

유재원과 티파니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곳은 그녀의 외할아버 지인 프레더릭 테일러 2세의 저택 이었다.

추수감사절마다 티파니네 식구 들은 프레더릭 테일러 2세의 집에 모이는데, 올해에는 이제 유재원도 당당하게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는 비 행기를 탔고, LA공항에서 프레더 릭의 집까지는 준비된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재원아! 저기 GTA 에디션이 야!"

티파니도 거리를 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종합 쇼핑몰에서 나오는 부자(父子)가 보였다. 아들의 품 안에는 X박스 GTA3 에디션이 안겨 있었고, 얼 굴엔 세상 날아갈 듯한 표정이 걸 려 있었다.

덕분에 유재원의 미소도 짙어졌 다.

추수감사절 시즌을 겨냥해 출시 된 GTA3는 게이머와 평론가 모두 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공전 의 히트를 기록 중이었다.

유재원은 GTA3 출시를 기념해 본체 패키지와 게임을 동봉한 X박 스 GTA3 에디션을 발매하도록 했다. 본체에 GTA3 로고가 추가되 었고, 게임도 기본 제공된다.

다만 가격은 본체와 게임을 따 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판 다. 저 부자는 운 좋게 GTA3 에 디션을 손에 넣은 모양이다.

꼬마 녀석이 12살밖에 되지 않 아 보이는데, GTA3에 담긴 콘텐 츠를 제대로 즐길 수나 있을지는 걱정이다.

그러는 사이 유재원과 티파니가 탄 자동차는 계속 움직였고, 곧 LA 시내를 벋어나 프레더릭 소유 의 대지에 들어섰다.

저 멀리 프레더릭 테일러 2세의 저택이 슬슬 보였지만, 부담스러움 보다는 반가움이 먼저 올라왔다.

제이콥이나 티파니의 이모들처 럼 껄끄러운 사람들 몇이 있긴 한 데, 프레더릭 테일러 2세가 유재원 에게 매우 호의적이라는 게 더 중 요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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