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권 8화
#386. 월드 투어
유재원이 X박스를 준비하고, E3 에서 성공적으로 발표하는 동안에 도 결혼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었 다.
보통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주 싸우기도 하고, 최악에는 결혼을 준비하다 커플이 깨지는 경우도 왕왕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재원, 티파니의 경우엔 단 한 번의 말싸움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재원은 결혼 준비에 대해 전적으로 티파니 에게 위임을 했기 때문이다.
X박스 프로젝트라는 수억 달러 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결혼 식 준비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 었다.
티파니도 그러한 유재원의 상황 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무리하게 결혼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결혼식이 간소화된 것 도 아니었다.
결혼식의 형태는 미국식으로 정해서 한국식 결혼보다는 간소화하 긴 했는데, 신부가 가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 았고, 티파니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유재원 역시 스드메 같은 기초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여기서 스드메는 보통 스튜디오 사진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을 묶어 부르는 웨딩업계의 축약어 다.
다만 유재원, 티파니 커플은 이 스드메를 조금 다르게 적용하였다.
일단 기간부터 달랐다.
한정된 일정 안에서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속도로 정신없이 진행되 는 게 보통이지만, 유재원의 스케 줄에 맞춰 매우 여유롭게 진행되었 으니 말이다.
사진 촬영도 낯선 사진 스튜디오 에서 찍는 건 몇 번 없었고, 이미 완공된 신혼집, 혹은 프레더릭의 저택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 진행했 다.
당연히 촬영을 담당한 포토그래 퍼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작 가로 섭외했고, 덕분에 사진도 무 척이나 잘 나왔다.
드레스나 메이크업에서도 남들과 달랐다.
웨딩드레스 대여점에 함께 가서 예비 신부가 여러 가지 후보 드레 스를 갈아입을 때마다 리액션을 해 주는 건, 유재원도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바빴던 탓에 현실적 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에게 티파니의 취향대로 만든 맞춤 드레 스 몇 벌을 만들었고, 촬영과 결혼 식에도 입는 것으로 했다.
메이크업 역시 전문가를 초빙했 는데, 여기엔 유재원이 본인의 취 향을 조금 강하게 주장했다.
2000년대의 과도한 미국식 화장 은 유재원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으 니 말이다.
소위 투명 메이크업이라는 게 취 향 저격이었는데, 다행히 이 분야 의 전문가인 김샘물 선생님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는 건 미래 지식 을 통해 유재원 혼자만 알고 있었 다는 것이었다.
김샘물 선생님께 처음 연락을 드 릴 때는, 순간 장난전화인 줄 아셨 다고 했다.
다행히 어렵게 모셔온 선생님의 메이크업을 받고는 티파니도 무척 이나 마음에 쏙 들어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재원, 티파 니 식의 스드메는 누구나 할 수 있 는 방식은 아니었다.
편안하면서도 퀄리티는 확보된 방법이긴 한데, 정산할 때 나오는 금액은 전혀 편안하지 않은 숫자였 으니 말이다.
유재원의 수입에 비하면 부담이 전혀 없었지만, 과거의 평범했던 시절의 금전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던 탓에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 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언론에서도 유재원과 티파니의 호화로운 결혼식에 대해서 떠드는 곳이 많았다.
유재원, 티파니 커플은 연예인이 아니었음에도, 웬만한 셀럽들보다 관련 기사가 많이 쏟아졌으니 말이 다.
그도 그럴 것이 외형적으로만 봐 도 IT기업의 젊은 황제와 셰브롱의 외손녀의 결합이니 여러 가지 상상 의 나래를 펼칠 껀덕지가 많았다.
게다가 결혼식의 규모도 엄청나 게 성대했으니 젊은 여성들을 자극 할 이야깃거리도 쏟아져 나왔다.
더욱이 이런 기사를 만드는 곳은 소규모 인터넷 전문 미디어였다.
거대한 메이저 언론이었다면 ID 그룹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제시키는 것도 가능했 는데, 이런 곳은 오히려 규모가 작 고 숫자는 많아서 관리하는 게 불 가능했다.
업체 측에서도 쓰기만 하면 클릭 수 확보는 식은 죽 먹기였으니, 인 터넷은 유재원과 티파니 이야기로 가득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2000년 7 월 1일, 토요일이 되었다.
양가의 부모님, 친척들, 그리고 레밍턴, 최강욱 등등 수많은 하객 의 축하를 받으며 유재원과 티파니 는 부부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제법 규모가 있 는 교회에서 목사님이 주례를 봤다.
유재원의 경우엔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니기도 했고, 티파니나 티파니의 가족, 프데러딕 테일러 2 세는 물론 친인척까지도 모두 개신 교였으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는 하객들로 가득했다.
유재원과 티파니의 존재감이 그 대로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다만 하객들의 분위기는 유재원 측이냐 티파니 측이냐에 따라 극명 하게 갈렸다.
유재원의 경우엔 실리콘밸리의 작은 컨퍼런스 같은 느낌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제왕 인텔부터 AMD나 엔비디아 같은 컴퓨터 하 드웨어 관련 기업의 사장들부터, 수많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관계자 들까지 모두 찾아와 주셨다.
또한, 한쪽 구석에는 인터넷 서 비스 관련 기업인들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PC 완제품 은 물론이고 소프트웨어, 심지어 인터넷 서비스까지 ID 그룹이 다루 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기업들과 원만한 관 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들은 기꺼이 유재원의 결혼식 축하를 위 해 찾아왔다.
한국에서 와주신 고마운 분들도 있었다.
부산그룹의 박 사장님 가족들이 나 TG 그룹의 이용권 회장, 유경그룹의 류준식 회장도 와주셨다.
마지막으로 주민이와 은혜 같은 국민학교 친구들 역시 와주었다.
학교 친구들 빼고 나머지 사람들 의 공통점은 경제인들이라는 점이 다.
유재원이 ID 그룹의 회장이었으 니 관련된 인맥도 경제 분야에 집 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재원의 하객이 모두 다 경제계 인물만 있 는 건 아니었다.
미국 민주당의 의원들, 샌프란시 스코 시장과 경찰서장 등 유재원의 후광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도 빠 지지 않았다.
심지어 앨 고어 후보까지도 일 정을 앞당겨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유재원은 마음만 받겠다고 하며 경선에 집중하시라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은 이미 끝났고, 대 선에서도 자신감을 보이는 앨 고 어 진영이지만, 여기서 가장 조심 해야 할 것은 이미 대통령이 된 것처럼 거만한 자세를 취하는 것 이었다.
자만을 경계하라는 교장 선생님 의 조언은 비단 유재원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한국의 통일국민당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당 대표는 물론이고 이번 1992 년부터 2000년 총선까지 3번 연속 으로 당선된 3선 의원들까지도 총 출동했다.
전명헌의 수첩을 물려받은 유재 원이 통일국민당의 숨은 실세라는 게 확인되는 손님들이었다.
한편, 티파니의 하객들은 당연히 프레더릭 테일러 2세의 영향을 크 게 받았다.
유재원과 딜리 교우관계가 폭넓 은 티파니답게 또래 친구들도 많이 찾아와 주었다.
그런데 티파니 또래로 보기 어려 운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가장 큰 갭이 보이는 건 나이 지 긋하신 할아버지들이었다. 바로 석 유업계 사람들이었다.
티파니의 외할아버지는 쉐브롱이 란 세계 7대 석유 업체의 오너인 프레더릭이었다.
티파니도 그 영향으로 쉐브롱에 서 일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쉐브 롱에서 나오긴 했지만 석유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유재원과 티파니의 결혼식을 명분으로 석유 업계의 소규모 미팅이 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액손모빌, 로열더치쉘, BP, 토탈, 코노코 같은 회사의 큰손들이 찾아왔다.
해당 기업의 월급쟁이 임원들이 아니라, 거대한 지분을 가진 진짜 주인들이었기에, 이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유재원도 처음에는 몰라 봤다.
새신랑으로서 결혼식장 앞에서 찾아온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중 에, 프레더릭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소개를 해주고 나서야 허여멀 건 할아버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유재원을 메이저 업체 오 너들에게 소개하는 프레더릭을 못 마땅하게 보는 제이콥의 모습도 기 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쉐브롱의 후계자로 낙점된 제이 콥과 만나는 건 이번이 5번째쯤 되 었다.
유재원과 프레더릭이 만난 건 그 보다 훨씬 많았지만, 제이콥은 무 슨 이유에서인지 프레더릭 집안의 행사에 적극 참석하진 않았던 탓이 다.
어쩌다가 한 번 보는데, 한 번씩 볼 때마다 제이콥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다.
유재원은 제이콥에 딱히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호의가 있으면 더 있었 다. 일단 티파니의 외삼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이콥은 아니었던 모양 이다. 진짜로 티파니나 유재원이 본인의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 았다.
어쩌면 프레더릭이 제이콥의 포 텐션 폭발을 위해 유재원과 비교하 면서 압박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상을 하던 쉐브롱 의 후계자라는 자리가 위태로울 일 은 없을 텐데 참 이상한 모습이었 다.
더욱이 제이콥이 다크서클 깔린 퀭한 눈으로 노려본다고 겁먹을 유 재원도 아니었다.
결혼식은 그렇게 교회에서 비교 적 간소하게 치러졌다. 다만 미국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결혼 피로 연이었다.
피로연은 화려하게 꾸며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좋은 호텔의 행사장을 꽃으로 장식했고, 수십 개의 라운드테이블을 마련했 다.
음식과 와인, 샴페인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 겸손은 딱히 미덕도 아 니었고, 하객으로 오신 이들을 위 해서라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 접을 했다.
한국의 결혼식이면 이렇게 함께 식사를 마치면 끝이지만, 미국식은 하나의 순서가 더 있었다.
바로 댄스 파티.
댄스 파티의 시작은 신부인 티파니와 장인어른이었다.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라 그런가 따듯하고 경건한 분위기 였다.
다음은 유재원과 어머니의 차례 였다. 유재원의 어머니인 김말숙은 무슨 춤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고정 식순이라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순서는 없다. 그냥 다들 플 로어 위로 쏟아져 나와 즐겁게 노 는 것이었다.
샌님 같았던 실리콘밸리의 사장 님들도, ID 그룹의 임원들도 의외로 춤 실력이 있었다.
프레더릭 쪽이야 말할 것도 없었 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던 길버 트나 영식이 정도만 어색한 모습이 었지만, 타피니의 들러리를 해준 친구들의 이끌림에 의해 무대로 나 섰고, 결국 저주 받은 춤 실력을 선보여야 했다.
춤꾼이 가득한 클럽이었다면 몇 분 버티지도 못하고 밀려났을 테지 만, 이날만큼은 주인공이었으니, 웃 음 대신 박수가 쏟아졌다.
쏟아진 박수갈채를 본인의 실력덕이라 착각하고 진짜 필드에 나간 다면 큰코다치겠지만, 유재원은 자 기객관화가 잘 훈련된 사람이었다.
유재원의 엉망진창 춤이 있고 나 서, 본격적인 피로연 파티가 시작 되었고, 그 흥겨움은 저녁 늦게까 지 이어졌다.
다음 날.
격정적인 피로연을 마친 유재원 과 티파니는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 며 전용기가 대기 중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유재원과 타피니 뿐만이 아니라 배웅을 위해 나온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도 함께 였다.
전용기를 동원하는 신혼여행이라 니.
당연하게도 절대 평범한 스케일 은 아니었다. 일단 여행의 전체 일 정만 최소 한 달이었고, 전 세계를 구석구석 돌아볼 예정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