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48화 (548/1,007)

27권 7화

게임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 러보면 둠3와 헤일로의 이야기가 다수였다.

그리고 단순히 커뮤니티에서만이 화제가 아님을 알 수 있는 지표는 바로 판매량이었다.

E3가 열린 그날, 마음만 먹으면 소비자들은 게임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99.99달러 그러니까 벤저민 프 랭클린의 초상이 박힌 100달러짜리 지폐 3장을 가지고 매장을 찾으면 X박스 패키지를 살 수 있었다.

패키지의 구성은 X박스 본체, 어댑터, 잡다한 케이블, 그리고 패드 가 전부였다.

X박스에 넣어서 구동할 게임 DVD는 하나에 55달러였고, 2P를 위한 별매 패드의 가격은 49달러였 다.

그러니까 X박스 본체에 게임 DVD 하나와 2인 플레이를 위한 패드 하나를 추가하면 400달러가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기기 가격은 동일했지만, 게임 가격은 이전보다는 조금 비싸졌다, 전생에 X박스가 투박한 모습이 었던 시절 출시된 헤일로의 가격은49.99달러였지만, X박스 기기의 대 대적인 스펙업으로 인해 게임에서 수익을 내야 했기에 가격을 좀 을 릴 수밖에 없었다.

55달러 게임 패키지 하나가 팔릴 때, ID 그룹의 몫으로 주어지는 로 열티는 12달러였고, 게임 제작사는 25달러, 나머지 18달러가 유통마진 이다.

세금이 포함된 금액이니 실제 손 익은 이보다 좀 적을 수가 있다.

보통은 X박스 패키지에 게임 타 이틀 하나를 사서 가는 사람이 제 일 많았고, 그 다음은 의외로 동시 출시된 게임 3개를 다 사는 사람들이었다.

55달러라는 패키지 가격이 좀 비 싸긴 해도, PC로 게임 환경을 만드 는 것보단 저렴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X박스의 주요 구매층은 10대가 아니라 20?40대로 제법 구 매력이 있는 성인 남성들이었기에, 지갑을 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덕분에 X박스 발매 첫날에 100 만 대 판매는 손쉽게 달성했다.

이후 폭발적인 구매 기세는 살짝 꺾이긴 했지만, 꾸준히 구매 행렬 이 이어졌다.

덕분에 발매 첫 주에만 300만

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1천만 대 판매는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예상치가 나왔다.

안타깝게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단계라서 판매량은 곧 손해였 지만, 게임 타이틀 장착률이 예상 보다 좋아서 이익 전환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신호가 왔다.

다만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었 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역시 쉽게 생 각할 수 없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흐음, 플레이스테이션2도 예상 했던 것 이상으로 잘 나가네."

X박스와 동일한 299달러라는 가 격을 책정한 플레이스테이션2의 기 세도 만만찮았다.

유재원 앞으로 온 시장동향 보고 서에 따르면 플레이스테이션2의 판 매량은 X박스보다 더 많았다.

X박스가 발매 후 일주일 동안 200만대에 가깝게 팔아치웠다면, 플레이스테이션2의 판매량은 200만 대를 가뿐하게 넘어서 300만 대 가 까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소매점의 POS 시스템들은 죄다

분산된 형태라서 제대로 된 통계를 뽑아보기 어렵지만, ID 그룹이 제 공하는 POS시스템을 채택한 유통 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 수치 였다.

확실히 매장에서는 X박스보다 플레이스테이션2가 잘 팔렸다.

이는 인터넷 트렌드 분석툴인 넥 스트 트렌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직은 플레이스테이션 쪽의 검 색량이 많았다.

더욱이 플레이스테이션의 탄탄한 판매량 말고도, 갑자기 밟히는 뇌관이 하나 더 있었다.

-가정용 게임의 폭력성, 이대로 괜찮은가?

-허울뿐인 자율 규제.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필요.

한국이라면 익숙한 논조의 기사 였지만 한국에서 나온 기사가 아니 었다.

게임에 대해 긍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훨씬 큰 대표적인 나라를 꼽자면 당연히 한국이었다.

그런데 위의 기사들은 한국이 아 닌 미국에서 튀어나온 따끈한 기사 였다.

뉴스나 드라마만 보고서 마치 미 국을 무척이나 개방적이고 자유로 운 나라라고 알고 있는 한국 사람 들이 참 많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나라가 미국이었다.

논란의 주인공은 역시 둠3였다.

둠3는 그야말로 폭력의 미학을 끝까지 보여주는 게임이었다. 사지 절단은 기본이고, 목을 뎅강 자른 다든가, 척추를 뽑아 버린다든가, 심장을 뽑는 등의 파이널리티 씬이 대거 탑재되었다.

게다가 X박스의 강력한 그래픽 성능 덕에 이러한 화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디스플레이장치 인 투르 시네마 디스플레이와 연결 할 경우 초당 30 프레임으로 반토 막이 나지만, 풀HD의 화질로 이러 한 비주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둠가이가 펼치는 폭력의 대 상은 사람이 아닌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에, 윤리적인 논쟁은 없었다.

그저 인터넷 밈으로 악마가 불쌍 하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가 끝이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적 성향의 사 람들이 보았을 때, 악마를 대상으로 했지만 지나친 폭력성은 문제라 는 지적이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언제 좋아 지려나 몰라."

일부라는 걸 알지만 은근히 스트 레스를 받는 유재원이었다.

단적으로 둠3는 미국의 게임등급 인 ESRB를 통해 성인물인 M등급 을 받고 나왔다. 그러니 피가 튀고 사지가 떨어지는 묘사도 충분히 가 능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처럼 간섭을 하니 문제였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꼭 의견을 모아서 표출한다.

본인이 그런 사상이라면 자기 혹 은 본인의 가족들만 지키면 될 일 인데, 다른 사람들까지 간섭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더욱이 소니는 가족 모두가 즐기 는 게임기라는 모토로 X박스와 대 비 되는 자세를 취했다.

실제 동시 발매된 타이틀을 보면 X박스와 아기자기한 게임들도 많 았다.

본인이 즐기려고 게임기를 사는 사람들은 X박스를 선택했지만, 아 이들에게 선물하려는 부모들은 플 레이스테이션2에 먼저 손이 가도록 유도했다.

그렇다고 플레이스테이션2에 피 칠갑이 되는 게임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성인들이 즐길 게임도 그대로 내 면서 캐치프라이즈는 가족의 게임 기라고 잡은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전략적 행보를 훤히 꿰고 있는 유재원이지만, 따 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한국이 잠잠하다는 건가?"

확실히 이번엔 양상이 좀 달랐 다.

미국에서 나오는 폭력성 논란에 대해 한국에서도 보도를 했지만, 그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좀 특 이한 시선이 있다는 식의 논조였으 니 말이다.

"역시 사주 위에 광고주라는 건 가보네."

사실 방송과 신문들이 이런 반응 을 보여주는 게 당연한 것이 X박 스 런칭 기념으로 어마어마한 광고 의 융단폭격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ID 그룹이 한국에서 매년 소모하 는 마케팅 예산은 조 단위를 훌쩍 넘은 지 오래였다.

이미지 광고부터 세세한 제품 광 고까지 다양했는데, 6월부터는 하 나의 품목, 바로 X박스에만 집중했 다.

신문부터 방송까지 X박스 혹은 X박스 독점 게임의 융단폭격 광고 가 이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플레이스테이 션2에 비해 X박스의 인기가 월등 했다.

게다가 플레이스테이션2가 갖지 못한 장점이 있으니, 바로 완벽한 한국어화였다.

운영체제부터 게임까지, 모국어 로 즐길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강점이었다.

"비장의 카드도 2장이나 있고."

더욱이 유재원은 플레이스테이션 2를 대비한 카드도 2개나 만들었 다.

하나는 바로 미디어 허브였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는 X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2 모두 심각한 문제 를 안고 있었다. 즐길 게임이 적다는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은 10개 남짓, X 박스는 3개에 불과했다.

플레이스테이션2에서 출시된 타 이틀이 10개나 된다고 하면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그 숫자에는 퍼즐 게임이나 캐주얼 게임과 같은 것들 이 반이었고, AAA타이틀은 5개밖 에 되지 않았다.

X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2 같은 차세대 게임기에 어울리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게임 개발사들이 규 모를 키우고 보다 많은 자본을 투 입해야 했다.

픽셀 아트 같은 2D게임들은 인 디 게임 카테고리로 넘어갔고, 이 제부터 게임이란 헤일로와 둠3처럼 하이폴리곤 모델링에 고화질의 텍 스처, 어마어마한 랜더링팜이 필요 한 CG동영상이 기본으로 필요했던 탓이다.

당연히 제작 기간도 길어졌기에, 당장 출시되는 AAA급 게임은 적 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빈자리를 채우는 건 바로 미디어 재생이었다.

대표적인 매체가 DVD였다. CD 가 차세대 매체를 차지한 건 90년대 중반이었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보다 긴 재생시간에 고화질을 담 을 수 있는 DVD미디어가 순식간 에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만 DVD는 재생하는데 제법 큰 힘이 필요했다.

이는 유재원으로 인해 DVD의 기본 코덱이 MPEG2에서 H264급 의 고화질로 급상승한 탓이었다.

화질이 대폭 상승했지만, 그만큼 인코딩을 하는 것이나 재생하기 위 한 연산력은 더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DVD플레이어의 가

격도 조금 올랐다. 그나마 유재원 은 고화질 비디오코덱을 무료로 풀 어버렸기에 부담이 좀 줄긴 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리 기업들은 명 분만 있으면 가격을 높여 받으려고 했고, DVD플레이어에도 이 진리는 그대로 적용되었다.

기능이 좋은 건 100만 원이 홀 쩍 넘었고, 저렴한 모델도 50만 원 은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299달러라는 30 만 원 대 초반의 가격으로 DVD를 재생할 수 있는 게임기는 큰 관심 을 받았다.

실제 저명한 AV매거진에서 DVD

재생기능만 테스트를 했는데, X박스 는 100만 원이 넘는 고가형 DVD 재생기를 뛰어넘는 화질과 편의성으 로 호평을 받았다.

더욱이 게임을 하고 싶은 기혼남 성이 아내를 설득할 때 DVD 재생 기능은 좋은 명분을 주었다.

다만 플레이스테이션2의 DVD 재생 기능도 50만 원대의 전용 재 생기보단 좋았기에, 확실하게 치고 나갈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바로 타임플릭스 서비스였다.

타임플릭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지금까진 2가지뿐이었다.

하나는 타임워너 넥스트컴에 케 이블 TV서비스를 가입하는 법, 다 른 하나는 PC를 이용해 타임플릭 스 웹사이트를 접속하는 방법이었 다.

이제 제3의 방법이 생겼다.

X박스의 기본 운영체제에 설치 된 앱 중 하나가 바로 타임플릭스 였다.

하드디스크를 내장하고 있는 X 박스는 게임 DVD를 넣지 않고 전 원을 켜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바탕화면과 같은 익숙한 화면을 마 주할 수 있었다.

거기에 타임플릭스 앱이 설치되 어 있었고, 3개월 무료 이용 코드 도 내장되어 있었다.

어차피 타임플릭스 역시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을 집행하고 있었고, 3개월 무료 이용권으로 대치해서 탑재했다.

설정에 따라서는 X박스가 자동 으로 타임플릭스로 곧장 접속하도 록 부팅시킬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이스틱을 이용해 조작하는데, 별도로 발매할 리모컨 을 구매하면 완벽한 타임플릭스 접 속기로 사용할 수 있다.

"거실은 X박스가 차지하는 거지."

유재원의 야심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과거의 MS처럼 X박스 로 전 세계 가정집의 거실을 점령 하겠다는 식으로 대놓고 언급을 하 겠다는 건 아니다.

아무리 유재원이라도 가정집 거 실을 X박스를 통해 억지로 차지하 겠다고 해봐야 돌아오는 건 반발뿐 이었으니 말이다.

DVD 재생, 타임플릭스와 같은 미디어 허브 기능을 통해 자연스럽 게 스며드는 것이 유재원의 전략이 었다.

"그래서 LCD TV가 필요한데 말 이지."

그렇기에 유재원이 준비한 두 번 째 비장의 카드는 LCD HDTV였 다.

브라운관TV로는 X박스와 플레 이스테이션2의 화질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러나 LCD와 연결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LCD HDTV를 대량으로 보급하는 게 유재원의 두 번째 카 드였다.

왠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 이 느껴지지만, HD대응이 취약한 플레이스테이션2를 공격하면서 동 시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 권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가장 강 력한 카드였다.

이를 위해 ID 일렉트로닉스에선 HDTV와 HD방송 시스템을 열심 히 연구하는 중이었고, ID 디스플 레이에서는 대형 TV패널 양산을 위해 공정 개선과 생산라인 확충이 순조롭게 이행되는 중이었다.

X박스 프로젝트처럼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내년 여름, 혹은 가을 쯤에 30인치 LCD 텔레비전을 대량 보급할 수 있을 것 같다.

"후우. E3는 그럼 이걸로 됐나?"

기지개를 켠 유재원은 e메일함과 ID톡 메시지함을 체크했다. 조금 전 봤던 ID 디스플레이 현황이 마 지막이었다.

E3에서 X박스를 성공적으로 발 표하는 것으로 2000년 상반기의 주 요 일정은 단 하나만 빼고 모두 마 무리 된 탓에 홀가분했다.

동시에 뭔가 말할 수 없는 느낌 이 밀려왔다.

마지막 하나 남은 일이란 바로 티파니와의 결혼식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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