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권 5화
와아아아!
E3 메인스테이지에는 입추의 여 지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좌석은 이미 만원이었고, 통로와 계단에도 사람들로 가득 미어졌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기 대감이 대단하게 서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작년 IDDC 99에서 발표한 X박스의 스 펙은 워낙 대단한 물건이었기 때문 이다.
동일 스펙의 컴퓨터를 지금 장만 하려고 해도 최소 600달러 이상이 드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소니에 의해 평정된 비디 오 게임기 시장은 슬슬 재미가 없 어지려는 때에, ID 그룹이 경쟁자 를 자처하면서 재미있는 상황이 일 어나고 있었으니, 당연히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유재원이 스테이지에 모 습을 드러내자 그 사람들의 환호성 이 끝없이 이어졌다.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하셔야 제가 발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몇 분이고 이어질 것 같았기에, 유재원이 워워 하면 서 진정을 시켜야 할 정도였다.
물론 유재원은 발표가 시원찮으 면 이러한 환호가 싸늘하게 식어버 릴 거라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었 다.
자신감을 가득 담고 있었지만, 자만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메인스테이지를 꾸밀 때에도 절대 돈을 아끼지 않았다.
X박스의 상징색인 하얀색과 짙 은 형광 녹색을 배치했고, X자 문 양도 예술적으로 박았다.
발표회에 가장 중요한 메인스크 린도 현존 최고 기술인 레이저 프 로젝터를 4대나 동원해 거대하고 선명한 화질의 스크린을 만들었다.
"그럼, 준비된 영상과 함께 쇼를 시작하지요!"
본인의 말에 객석의 환호가 잦아 들면서 경청할 준비가 되자, 유재 원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쇼타 임을 외쳤다.
순간 메인스테이지의 조명이 모 두 최소 밝기로 떨어지면서 세상이 검게 변했다.
그와 함께 지이잉 하고 울리는 중저음의 전자 사운드가 회장을 울 렸다.
급기야 쩍쩍 소리가 나더니 검정으로 가득했던 메인스크린에 균열 이 일어났고, 녹색의 빛이 새어 나 왔다.
균열은 계속 이어졌고, 급기야 쿵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세계가 무너지며 x박스의 X자 로고가 둥 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프닝 씬은 예 술적인 CG가 적극 가미된 X박스 의 홍보 영상이었다.
AMD로부터 최고 품질의 CPU 가 전달되었고, 다음에는 강력한 3D처리 능력이 탑재된 GPU가 이 어졌다.
또한, 수많은 업체로부터 양질의 부품이 전해지면서 녹색의 기판에 하나의 독립된 게임기 시스템을 완 성했다.
이어서 세계적인 인기 캐릭터가 된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타나 CPU 안으로 뛰어들었고, CG로 만들어 진 예술적인 기계 팔이 나타나 주 변기기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DVD롬, 히트파이프와 두터운 방 열판 그리고 저소음 팬이 조합된 냉각 솔루션, 데이터 저장용 하드 디스크 등등.
부품이 더해질수록 X박스의 모
습이 점점 그럴듯해졌다.
마지막에 이르러 케이스가 씌워 졌다.
이번에도 기계 팔이 움직여 4개 로 분리된 케이스를 씌웠는데, 깔 끔한 화이트에 고급스러운 녹색의 톤이 들어가 어디에라도 어울리는 슬림한 형태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제가 게이머 여러분께 말씀드린 X박스입니다."
인트로 영상이 끝나자 유재원이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유재원의 손에는 화면 속에서 보 았던 모습과 똑같은 X박스가 들려있었다.
세팅된 HD 카메라가 그 모습을 확실히 잡았고, 화면에 커다랗게 띄워졌다.
아이러니한 점은 준비된 HD 카 메라는 소니사의 물건이었다는 점 이다.
1988년쯤에 아날로그 HD 방송 을 했던 게 일본이었고, 디지털 HD 방송도 열심히 준비 중인 나라 였다.
특히 강점이 있는 것이 방송 장 비였는데, 720P 해상도의 HD 디지 털 카메라는 상당한 완성도로 만들었다.
다만 독자 규격을 참 좋아하는 소니답게 저장 매체는 DV 테이프 라는 걸 사용했다.
하여튼, 화질에 있어서는 현존하 는 ENG 카메라 중 제일 좋았기에, 유재원의 손에 들린 X박스를 정확 하게 포착해 화면에 띄워 주었다.
준비된 인트로 영상으로 보았던 X박스와 똑같았다.
다만 CG로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모습에 비해 유재원의 손에 들린 X박스는 살짝 고급스러움이 부족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가 절감이라는 숙명 앞에 가장 크게 노출된 파트 가 바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유재원의 마음이야 어떤 집의 거 실에 놓이더라도 돋보이도록 고급 지게 만들고 싶었지만, 고급스러움 은 비용과 비례했다.
결국 최대한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흰색과 형광 녹색 플라스틱 케이스라는 결과를 만들 었다.
덕분에 콘셉트로 잡았던 모양과 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유재원은 단언할 수 있
다.
MS가 선보였던 X박스와는 차원 이 다른 디자인적 완성도를 달성했 다고 말이다.
투박하다 못해 산업용 장비 같은 형태의 모습에서 거실 한쪽을 차지 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 으로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준비된 탁자에 X박스 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준비된 케이 블에 X박스를 연결했다.
0K 신호가 나오자 유재원이 발
언을 이었다.
"그동안 꾹 참느라 힘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께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객석의 게이머들은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X박스에는 목표점이 있었죠. 작 년 IDDC 99에서 제가 직접 잡았 던 바로 그 스펙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이란 그 선에 도달했다 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을 뛰어 넘는 데 있겠지요."
유재원의 말이 이어지자 객석에 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렇습니다. 최종 완성된 X박스 는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을 넘어 120% 초과 달성했습니다."
이와 함께 스크린에 리테일 버전 의 X박스 스펙이 열거되었다.
비교하기 편하도록 IDDC 99에 서 발표한 스펙이 왼쪽에, 오른쪽 에는 리테일 버전의 X박스 스펙이 띄워졌다.
가장 크게 비교되는 건 CPU의 스펙이 었다.
본래는 AMD의 800MHz의 속 도의 듀얼 코어가 탑재될 예정이었 는데, 리테일 판에는 900MHz버전이 확정되었다.
GPU의 스펙 역시 마찬가지였다 엔비디아사의 지포스3 기반의 커스 텀 칩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ATI의 라데온 R200기반의 커스텀칩으로 변경되었다.
원래 유재원은 엔비디아의 지포 스 기반 칩을 쓸 작정이었는데, 엔 비디아보다 ATI가 훨씬 적극적이 었다.
이미 PC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 에 비해 후발 주자였던 ATI는 이 대로 뒤쳐질 수 없다는 판단에 커 다란 배팅을 한 것이다.
X박스만을 위한 커스텀칩 제작 에도 소극적이었던 엔비디아와 달 리 ATI는 무척이나 적극적이었고, 가격 협상에도 우호적이었기에 결 국 최종적으로 ATI의 손을 들어줬 다.
최종적으로 X박스에 채용된 GPU는 R200X라는 커스텀칩으로 작동 속도는 400MHz에 전용 비디 오 메모리 128메가바이트를 자랑했 다.
2000년 대에 출시하는 PC용 그 래픽 카드 중에서도 중급기 이상의 스펙이었고, 웬만한 게임은 720P 해상도에서 60프레임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성능이었다.
"혹시나 스펙이 올랐다고 해서 가격이 오를 거라는 걱정하는 분이 계실까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죠.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 말이죠. 그렇기에 x박스의 권장 소비자 가 격은 299.99달러입니다."
299달러라는 가격이 스크린에 크 게 박혔다.
살짝 긴장감이 서려 있던 객석에 서 환호가 큼직하게 터져 나왔다.
보다 높은 스펙을 달성했지만, 약속했던 299달러를 지켰다.
당연히 엔터테인먼트 시장 장악 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원가 이 하로 팔겠다는 유재원의 전략적인 결정 덕에 정해진 파격적인 가격이 었다.
하지만 의외로 ID 그룹의 손해는 막대한 수준은 아니었다.
대당 200달러도 각오했지만, 실 제 완성된 기기는 100달러 중반 대 정도로 손실을 낮췄다.
이는 대량 생산의 힘이었다.
CPU만 해도 한 번 주문에 1천만 개를 넣었다.
ID 그룹의 대량 주문으로 악성
재고 걱정이 사라지면서 AMD도 듀얼코어 제품 생산에 집중했다.
대량 생산을 하면서 공정에 익숙 해졌고, 불량률은 떨어지고 수율은 높아졌다.
가격 경쟁력이 생겼고 이는 가격 하락 요인이 되었다.
앞으로 X박스가 수천만 대씩 팔 린다면 부품의 원가는 더욱 낮춰질 것이고, 손해 보지 않고 팔리는 때 도 찾아올 것이다.
열광적인 반응 속에서 유재원은 잠깐 숨을 골랐다.
아직 발표가 다 끝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게임기의 미 덕이 강력한 스펙만이 전부일까 요?"
몇 초간 숨을 고른 유재원은 다 시 발언을 시작했고, 객석의 게이 머들은 유재원에게 눈과 귀를 집중 했다.
"그건 답이 아니라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X박스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바로 퍼스트 파티, 서드 파티의 확보였 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X박스 퍼스 트 파티가 준비한 런칭 타이틀을 지금부터 확인해 보실까요?"
유재원의 말이 끝나자 메인스테 이지가 어둠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중저음의 신디 사이저 소리와 경쾌한 기타 리프, 그리고 중성적인 목소리의 하모니 가 울려 퍼지며 하늘색의 타이틀 화면이 펼쳐졌다.
X박스의 영원한 파트너, 헤일로 의 역사적인 데뷔였다.
헤일로 (HALO)!
전쟁의 서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SF FPS 장르인 헤일로는 서 양인들이 좋아할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게임이었다.
타이틀 이름이기도 한 헤일로는 게임 속에서 직경 수천 Km에 달하 는 고리 형태의 인공 천제 구조물 을 의미하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 정도는 간단히 초월 한, 수억 광년에 걸친 전 우주적 스케일을 자랑하는 초고대문명이 만든 범우주적 전략 병기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헤일 로를 만든 초고대문명은 멸절했고, 이와 단절된 채 아주 일부의 기술 만 계승한 외계 문명 코버넌트가 있었다.
코버넌트는 몇 개의 외계 종족이 연합한 형태의 문명이었고, 이들은 초고대문명의 의지를 계승하는 걸 사명으로 삼는 이상한 종족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초고대문명의 비 밀이 지구에 숨겨져 있다는 걸 알 고서, 대대적인 침공을 해왔다.
초고대문명과는 단절되어 일부의 기술만 계승한 코버넌트였지만, 그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했다.
우주전함의 스케일이 수 km 단 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구에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스터 치프, 녹색의 전신 강화 슈트를 입은 슈퍼 솔저가 되어 지 구를 구원하고 초고대문명의 비밀 을 푸는 이야기가 바로 헤일로였다.
"우와!"
객석의 VIP자리에 앉아 있던 길 버트는 다른 이들처럼 자리에서 일 어나 환호했다.
톡톡, 기프티콘, N페이.
무려 3개의 아이템을 ID 그룹에 매각하고서 단번에 억만장자가 된 길버트는 실리콘밸리의 차세대 스 타였다.
심지어 아이템 매각 후에 손을 털고 일어난 게 아니라 ID 테크놀 로지의 소셜 네트워크 최고 기술 책임자가 되어서 유재원과 한솥밥 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길버트와 함께 작업했던 팀 원 역시나 그에 버금가는 보상을 받았다.
쉬지 않고 달렸던 터라 지금은 긴 휴식기를 보내는 중이었는데, E3와 같은 빅 이벤트를 놓칠 수 없 는 길버트였다.
작년이었다면 모자이크인지 라이 브 스트리밍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저화질의 인터넷 중계를 보면서 입 맛만 다셨다면, 지금은 이렇게 당 당하게 VIP로 초청을 받아 무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생한 화면과 현장의 감각을 즐길 수 있었다.
길버트는 한눈에 헤일로라는 게 임에 푹 빠져버렸다.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다.
당장 무대 위로 달려가서 패를 잡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게임이었다.
대형 스크린에 고리 형태의 인공구조물이 나왔을 때부터 눈이 돌아 갔다.
그리고서 이어진 유재원의 시범 에 완전 반해버렸다.
사실적인 광원에, 화면 속 캐릭 터들은 실제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움직였다. 3D 캐릭터들이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입과 눈이 움직이는 모습이 사람처럼 자연스 러웠다.
더욱이 이미 랜더링된 CG영상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통해 실시간으 로 랜더링되는 화면이라는 게 더 충격적이 었다.
-런칭 타이틀은 2개나 더 있습 니다.
유재원의 말이 이어졌다.
헤일로의 소개 그리고 무대에 세 팅된 기기를 통해 초반 10분의 플 레이를 직접 보여주었던 유재원은 게임을 정지하고, DVD 꺼내기 버 튼을 눌렀다.
쿵쿵
곧이어 무대가 암전되더니, 호쾌 한 타격음이 터졌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