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44화 (544/1,007)

27권 3화

살짝 망설이다 나온 영식이의 말 에 유재원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 다.

구글 형님들이라면 넥스트컴의 차세대 검색 엔진으로 채택된 구골 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는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 지라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두 대학 원생이 만든 검색엔진이다.

핵심 기술은 페이지 랭크였는데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쏟아지는 웹 사이트에서 사용자가 찾는 중요한 정보가 담긴 페이지를 찾아내 가중 치를 부여하고 검색의 결과를 높이는 알고리즘이었다.

이들은 처음엔 구골 플렉스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게 어색하게 들 렸던 유재원은 본인에게 훨씬 익숙 한 구글을 권유했다.

당연히 둘은 유재원의 제안을 받 아들였고, 회사의 이름을 교체했다.

"잘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면 뭐든 적극 이용해야 하는 법이지."

효율을 내기 위해서 직장 동료끼 리 무한 경쟁을 시키는 것도 한 방 법이긴 했지만, 서로 힘을 모아서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영식이가 회사 동료들을 이용해 예정보다 일찍 모니터링 프로그램 을 완성한 것이 특히나 만족스러웠 다.

"이건 우리만 몰래 사용하는 거 야?"

"아니! 잘 가다듬어서 유료 서비 스로 제공해야지. 넥스트 트렌드라 고 명명하면 되지 않을까?"

검색 범위를 설정에 따라 다양한 데이터로 추출해낼 수 있는 분석 도구로도 활용이 가능했다.

전 세계 인터넷 전체, 혹은 한 나라 아니면 특정 사이트로 검색 범위를 조정해서 원하는 수준의 트 렌드를 볼 수 있고, 인트라넷에 설 치해 특별히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나저나 검색 결과는 따로 저 장하고 있지?"

"응! 네 부탁인데 어떻게 까먹겠 어. 그런데 그게 왜 필요한 거야?"

"흐음, 비밀이야. 나중에 말해줄 게."

다만 영식에게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영식이가 만든 모니터링 프로그 램은 단순한 트렌드 파악을 넘어서 훨씬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

바로 인공지능과의 결합을 염두 에 두고 만든 프로그램이었으니 말 이다.

당장 올해 말 출범을 목표로 잡 은 ID 그룹의 통합 시스템에 인공 지능과 이 모니터링 툴이 더해지면, 전사적 그룹 경영이 가능해진다.

'덤으로 911도 대비하고 말이지.'

뜬금없이 911이 나온 이유도 따 지고 보면 전혀 생뚱맞지 않았다.

유재원은 CIA에 납품된 빅데이 터 검색기의 알고리즘을 잘 알고 있다.

조만간 프리즘이란 정식 명칭이 부여될 빅데이터 검색기는 오퍼레 이터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 로 활동하면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수집 대상에서 북미 지역 정보고속도로를 만든 ID 그룹은 당 연히 빠질 수가 없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협조하기 로 협약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많이 챙겨갈 수 있었다.

이렇게 프리즘으로 첩보망을 강 화했다지만, 유재원은 911의 사전 감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난립하고 있는 정보기관끼리 공조가 거의 이 뤄지지 않았고, 조직 간 알력도 상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 정보당국이 전과 같 이 헛다리를 짚고 있으면, 프리즘 이 수집하는 로우데이터에 인위적 인 조정을 가해 사전에 포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할 작정이었다.

참 복잡한 방법이었지만, 대놓고 알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이 20()1년 9월 11일에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 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니겠 는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유재원은 i웍스 노트북을 켜놓고 동부 출장부터 오늘까지의 성과를 정리했다.

미국 대선 대비에 프리즘 프로젝 트도 완수했고, 보스턴 다이나믹스와 인터넷 모니터링까지.

그야말로 21세기의 테크노 르네 상스를 위한 필수 요소를 모두 갖 추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음?"

경쾌하게 키보드를 누르던 유재 원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테크노 르네상스라고 하니 뭔가 좀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결국, 메모장에 입력한 단어는 기술로 이룩한 유토피아란 의미의 테크노피아였다.

2000년 1월 11일 자 유재원의

비밀 다이어리의 마지막엔 21세기 테크노피아를 위한 모든 준비 완료 라고 쓰였고, 마침표도 힘차게 찍 혔다.

#.385 E3

(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벌써 6월 이 되었다.

그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면, 아무리 충격적인 뉴스라도 3일은 가지 않았으니 말 이다.

그렇게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ID 그룹의 지분은 그다지 많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작년부터

연초까지 벌려 놓은 일이 워낙 많 아서 이를 처리하는 데만 그룹의 역량이 총동원 되어야 했던 탓이다.

세계구급 전자 회사가 된 ID 일 렉트로닉스의 사업체들을 정리해 중복된 조직은 최소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갖춰야 했다.

게다가 X박스처럼 굵직한 프로 젝트도 벌려 놓았으니 ID 그룹이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여력은 없었 다.

그러는 사이 국제적으로 굵직한 뉴스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재원은 수년 전에 푸틴에게 접 촉해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지만, 뜬금없이 당선된 것처럼 보는 사람 도 많았다.

특히 한국과 같이 공산권 국가와 교류가 낮은 나라들은 더욱더 정보 가 부족했다.

X박스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 었던 유재원이었지만, 당선 축하 전화는 빠질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푸틴의 통화 우선순 위에서 유재원은 상당히 상위권에 있었기에, 빨리 그리고 길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덤으로 크렘린으로 정중한 초청 을 받기도 했다.

유재원도 기꺼이 이를 받았고, 7 월쯤에 한번 보기로 했다.

X박스 프로젝트가 끝나면 티파 니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고, 결 혼식 후에 신혼여행이 예정되어 있 었다.

그 기간이 무려 한 달이었다.

그동안 유재원은 휴식을 잘 챙기 지 못했는데, 일생에 한 번 있는 결혼을 기념해 한 달 동안 쉬기로 한 것이다.

전 세계 휴양지는 다 돌아볼 예 정이었는데, 유럽이 빠질 수가 없 었다.

유럽에 들를 때 러시아도 찾기로 했다.

4월 한국에서는 총선이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유재원은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예전에는 선거 전략부터 광고까 지 큰 그림을 그려줬지만, 이번엔 광고에도 나서지 않았다.

대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었고, 온갖 잡 음이 터져 나오는 공천에서 교통정 리를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당들, 특히 야당은 공천에 서 온갖 잡음이 나왔으니 말이다.

폭로전은 기본이고 공천 불복에 출마 강행까지, 막장 중의 막장인 한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 었다.

덕분에 선거 결과도 뻔하게 나왔 다.

민주당이 120석을 석권했고, 통일국민당이 가까스로 100석을 달성 했다.

한나라당은 70석이었고, 나머지 10석이 민주한국당의 몫이었다.

민주당 단독 과반은 실패했지만, 통일국민당과 연정이면 220석이나 되는 압도적 의석을 자랑했다.

마음만 먹으면 개헌을 또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론적인 이야기였을 뿐 이고, 실제로는 안정적인 국회 운 영만 가능한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당과 통일국민당의 정치 성향에 차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정부의 형태만 놓고도 큰 정부를 지향하는 통일국민당과, 작은 정부를 향하는 민주당이었으 니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장 가장 크게 충돌하는 건 3개 사안이었다.

첫 번째는 교육 문제로 대입에서 의 무시험 대학 전형의 대대적인 확대 문제였고, 두 번째는 국민연 급의 전면 도입이었다.

유재원은 두 가지 사안 모두 심 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기에 당연히 반대했지만, 민주당쪽 사람 들은 이것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마지막은 대한 일보의 처리였다.

대한 일보는 벼락 끝에 몰린 상 태였다.

사주 집안의 주요 인물들은 구속 을 피할 수가 없었고, 천문학적인 추징금도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두 가지 모두 대법원 판결만 남 았는데, 대한 일보의 분위기는 절 망적 이었다.

마지막 희망인 대법원에서도 뒤집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되자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했 다.

바로 청와대와 민주당에 대한 우 호적인 기사를 연달아 쓰면서 정치 적 화해를 모색한 것이다.

언론과의 전쟁이 부담스러운 김 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쯤에서 화해를 하고 싶어 했고, 유재원은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 었다.

아직 연정이 깨질 정도의 충돌이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이러한 의 견 대립은 순식간에 커나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은 사라졌 네'?"

한국의 정치 동향 보고서를 보고 있던 유재원이 의문을 가졌다.

한국 정보팀이 보낸 정치 동향을 열심히 봐도 남북 정상회담은 원래 6월 13일에 있어야 할 이벤트였는 데, 지금은 물밑 접촉 이야기만 있 을 뿐이고, 당분간 만날 기미는 없 었다.

"음, 나 때문인가?"

북한 관련해서는 워낙 큰 변수가 생겨난 상태다.

원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역사적인 남 북 정상회담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 성이 역사적 첫 번째 남북 정상회 담이 되었고, 전명헌이 총리 시절 이나 대통령 때에도 있었다.

이젠 남북 정상회담이 주는 임팩 트가 많이 사라졌다.

대신 경협처럼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였다.

최강욱 부회장의 보고에 따르면 그것도 연말쯤 남북 합동으로 커다 란 이벤트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케도(KEDO)를 통해 북한에 지 어지고 있던 경수로의 완공이 코앞 에 있었다.

완공식을 기념해서 성대한 축제 가 예정되어 있었고, 김대중 대통 령의 참석도 유력하다는 이야기다.

"한국 소식은 이쯤하면 됐고."

유재원은 정치 동향 보고서를 접 고 새로운 파일을 열었다.

이번에 선택된 파일은 경쟁사의 동향 분석이었다.

ID 그룹이 잠깐 숨 고르기를 하 는 동안 경쟁사들은 빠르게 쫓아오 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회사를 꼽자면 역시 애플사였다.

1월 말 애플은 맥월드에서 신제 품을 발표했다.

아이팟 3세대였다

매년 신모델이 나오는 아이팟이었지만, 3세대 아이팟은 좀 달랐다.

2년 전 아이팟을 처음 보고 달라 진 게 하나도 없다고 평가했던 유 재원이었다.

그런 유재원이 3세대 아이팟을 보고는 헉 소리를 냈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던 아이팟 이 3세대에 와서는 싹 달라졌기 때 문이다.

전면의 커다란 LCD 디스플레이 에 감압식 터치스크린이 도입되었 고, 볼륨 버튼과 전원 버튼은 옆면 으로 모두 이동했다.

음원 파일은 물론이고 고화질의 비디오 파일을 재생할 수 있었고, 내장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게 임도 실행이 가능했다.

전략 기획실에서는 마치 라이브 팟을 최대한 참조해 만든 것 같다 는 판단을 했다.

유재원도 동의했다.

유재원이 알고 있는 아이팟 3세 대는 이런 모양의 물건은 절대 아 니었으니 말이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2007년에 나 나올 물건이었다.

바로 아이팟 터치가 이와 무척이 나 흡사했으니 말이다.

다만 아이팟 터치에 비해서는 완 성도는 많이 떨어진다.

이번에 나온 아이팟 3세대는 오 지리널 아이팟 터치와 비교해 디스 플레이 모듈의 크기나 해상도가 많 이 떨어졌고, 프로세서의 능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먼저 나왔던 ID 테크놀로 지의 라이브팟과 비교하면 디스플 레이 부품을 뺀 나머지 것들은 모 두 앞선 성능을 보여주었다.

"흐음, 조만간 아이폰이 나오려나본데?"

그렇기에 유재원이 판단한 아이 팟 3세대의 역할은 선발대였다.

원래 아이팟 터치는 아이폰이 나 오고 나서야 발매된 물건이었다.

아이폰에서 GPS와 통화 기능을 뺀 물건이 아이팟 터치였으니 말이 다.

이번엔 그게 거꾸로 되어서 아이 팟 3세대를 통해 아이폰의 가능성 을 따져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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