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25화
"근래에 듣던 이야기 중에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구만. 굼벵이처럼 느린 무선통신으로 인공지능이라 니."
"모든 기술은 발전하는 법이죠.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라는 건 극소수만 아는 물건이었고, 전송 속도도 형편없었죠. 그런데 지금 은? 북미의 대다수 가정에서 8Mbps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요. 한국처럼 인구가 오밀조밀하게 모인 나라의 경우엔 50Mbps짜리 VDSL이 서비스 중이거든요."
"뭐? 50Mbps? 초당 6메가바이 트를 주고받는다고?"
"비대칭이라 다운로드 속도만 그 렇게 나오긴 하지만요."
유재원의 말에 마크 박사는 꽤나 신선한 자극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 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장은 짐승의 모습을 따라한 4 족 보행 로봇인 빅독의 프로토타입 을 만드는 중이었고, 사람처럼 걷 는 이족보행은 겨우 하부만 완성하 고 외부 전원에 자세 고정 케이블 을 달고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무도 먼 나 라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나쁜 건 아니다.
새로운 물주가 확고한 비전을 가 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박사님!"
"웅'?"
"귀한 투자자님을 이렇게 입구에 너무 오래 세워두고 있잖아요. 감 기 들겠어요!"
한참 대화중이었는데, 마크 박사 와 함께 나와 있던 연구원이 깜빡 하고 있던 걸 일깨워줬다.
이야기가 잘 통하다보니 입구에 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좀 춥긴 했다.
겨울에도 훈훈한 샌프란시스코와 달리 보스턴은 칼바람이 싱싱 불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으로 듭시다!"
마크 박사도 이제야 한기를 좀 느낀 모양인지 본사 안으로 유재원 일행을 안내했다.
마크 박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재원이 꺼낸 투자 계약서는 마 크 박사의 기대감을 300% 충족시 켜 주었다.
"지분 51%에 510만 달러라. 그 러니까 우리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1천만 달러짜리 회사로 평가한다는 이야기군요."
"예. 넉넉하게 잡아드렸어요. 혹 시 부족한가요?"
유재원의 물음에 마크 박사는 순 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크 박사가 생각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가치는 300만 달러 정도였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자산이라고 해봐야 수십만 달러 정도를 투입해 만든 시제품 몇 가지 그리고 시제 품에 탑재된 프로그램 정도가 전부 였다.
지금 입주한 건물은 MIT로부터 저렴하게 빌린 것이라 회사의 가치 계산엔 포함되지 않았고, 연구 인 력들 역시 마크 박사가 MIT에 재 작하던 시절 눈여겨보았던 제자들 을 데려온 것뿐이었다.
벤처 기업의 가치 계산에서 제일중요한 특허는 생각보다 적었다.
로봇 분야는 이미 터줏대감이 있 는 산업이었다.
유럽 기업들은 무서웠고, 일본 기업들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 었다.
미래에 크게 성장하는 보스턴 다 이나믹스이지만, 지금은 걸음마 수 준이었다.
제대로 된 특허가 나오는 건 이 족보행 로봇인 아틀라스의 프로토 타입이 나오는 시점이었으니, 지금 은 마크 박사 혼자서 이끌어가는 일인 기업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제시한 지분 51%에 510만 달러라는 건 마크 박 사나 직원들이 보기에 엄청난 고평 가였다.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다.
덕분에 마크 박사는 혹시 본인도 모르는 모종의 이유로 보스턴 다이 나믹스가 필요해진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금액을 좀 더 높이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 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는 완벽한 헛다리였다.
마크 박사의 자체 평가나 ID 그 룹 비서실에서 사전 조사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현재 가치는 200만 달러 후반 대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배나 높여준 건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물론 유재원의 양심은 ID 그룹의 성장을 위해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는 상태이긴 했다.
ID 그룹 운영에 불법은 절대 없 을 거라고 다짐하긴 했지만, 그와 는 별개로 미래 지식으로 선점한 기술이나 아이템, 심지어 유망한 기업들도 많았고, 이를 발판으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역시 마찬가 지다.
사실 미래엔 구글 이상으로 커나 가는 기업이다.
사실 지분 51%에 510만 달러라 는 것도 헐값이긴 했지만, 인수 후 에 압도적인 지원으로 보답해줄 예 정이었다.
510만 달러라는 것도 마크 박사 의 열정에 대한 보답이었다.
"음, 51%를 원한다는 건 이 회 사의 경영권을 갖겠다는 말이군."
"예. 잘 아시겠지만, 제가 벤처 기업에 투자할 때는 웬만하면 경영 권까지 확보하고 있습니다. 횡포를 부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벤처 기 업의 장점인 개발 능력을 극대화해 드리기 위함이죠. 보스턴 다이나믹 스 역시 부차적인 경영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전력으로 개발에만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겠 습니다."
유재원은 그러면서 준비한 계약 서를 마크 박사에게 넘겨줬다.
ID 그룹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 제시하는 표준 계약서였다.
약간의 수정이 있긴 했지만, 마 크 박사가 받은 계약서의 골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사인만 하면 월급도 따박따 박 나오는군. 계약 기간도 10년 단 위로 초장기 계약이기도 하고."
MIT의 박사님이라 그런지 계약 서를 보고 핵심을 바로 짚었다.
마크 박사가 상상 이상의 금액을 제안 받고서도 살짝 망설였던 것은 경영권을 넘겨야 했던 탓이었다.
그런데 계약서를 보니 그게 딱히 나쁜 것 같지도 않았다.
월급날이 될 때마다 부담을 느끼 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마음에 들 었다.
오히려 월급 받는 사람이 되어서 연구에만 집중하면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을 것 같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약서에는 ID 그룹에 편입되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들어 있었는 데, 각종 기술 지원은 물론이고 풍 족한 예산까지도 지급 받는다.
학교 동문들의 후원이나 DARPA 와 같은 정부기관에서 연구 지원금 을 받아 겨우 회사를 돌리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렇게 되면 180도 달 라지는 것이다.
사인만 하면 말이다.
하지만 마크 박사는 아직도 약간 망설였다.
보통 이렇게 좋은 조건이면 사기 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마크 박사는 투자 제안을 받기도 했었는데, 거부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의 직감이 망설이게 만들었던 탓이다.
덕분에 유재원과 마크 박사의 미 팅을 멀리서 지켜보는 직원들의 눈 빛이 무척이나 간절해졌다.
월급이 밀린 적은 없었지만, 제 발 이번만큼은 마크 박사가 변덕을 부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전에 방문했던 고만고만한 캐피 탈이나 투자자들과 유재원은 존재 감부터가 차원이 달랐으니 말이다.
"후우. 사인하겠소."
마크 박사의 감은 뭔가 망설임을 만들었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냉정하게 따져보았을 때, 이보다 좋은 조건은 앞으로 10년이 더 지 나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탁월한 선택이세요."
유재원은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전해줬다.
계약서를 쓸 때만 사용하는 아주 고급스러운 만년필이었다.
"나 같은 공돌이에겐 이거 더 어 울리는 법이지."
만년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마크 박사는 책상 위에 있던 볼펜을 잡았다.
라운드스틱이라는 Bic마크가 달 린 평범한 볼펜이었다.
필기구는 평범했지만, 사인이 갖 는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니었다.
이를 통해 계약은 완료되었고, 마크 박사의 개인 회사였던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지분 51%는 유재원 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계약을 완료했지만, 유재 원은 바로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떠 나진 않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뭔가?"
마크 박사가 유재원이 내민 스케 치를 보고 되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세주를 만 난 듯한 눈빛이었는데, 스케치 본 마크 박사의 눈빛은 180도 달라져 서 너도 그런 사람이었느냐 하는 듯했다.
"로봇 청소기에요."
유재원의 설명에도 마크 박사의 눈빛은 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네모나고 넓적한 모양의 로봇 청소기에는 무려 바퀴 가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마크 박사가 바퀴를 혐오하는 건 아니었지만, 본인이 만들고 싶었던 로봇은 인간형 안드로이드였다.
덕분에 마크 박사는 실망감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크 박사의 비전에 공감해줬던 유재원이었는데, 사인이 끝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낸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족 보행 로봇을 포기할 생각 은 조금도 없어요. 다만 로봇 기술 이 이렇게나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최대한 빨리 보여 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서 선택 한 아이템이 로봇 청소기고요."
"확실히 로봇 기술은 좀 먼 나라 이야기 같긴 하지."
"게다가 갑자기 동물의 모습과 똑같은 빅독이나 사람처럼 자연스 럽게 움직이는 로봇이 나와 봐요. 얼마나 놀라겠어요. 불쾌한 골짜기 라고 그런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러니 먼저 청소기 로봇처럼 로봇 기술 완성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릴 생각이에요."
덤으로 ID 일렉트로닉스의 가전 부문 역량도 강화하면서 말이다.
유재원의 빠른 설명에 마크 박사 의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흠. 이 녀석은 친근해 보이긴 하는군."
한 발 더 나아가 관심을 보이기 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케치는 단순히 연필로 끄적인 수준이 아니라 컴퓨 터 그래픽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 모습이 귀여움을 극대화한 모습이 었으니 말이다.
"로봇 청소기에 필수 요소는 뭔 가?"
"일단 무선으로 움직이죠. 장애 물은 초음파 센서로 감지하고, 다 녀간 길을 기억해서 청소의 효율성 도 극대화해야겠죠. 충전용 스테이 션을 따로 둬서 배터리 잔량이 떨 어지면 알아서 충전하도록 하고요. 사용자는 그저 청소기에 먼지가 가 득 차면 비워주기만 하면 되도록말이죠. 물론 가득 찬 먼지통도 자 동으로 비워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요."
유재원의 설명에 여러 가지 요소 들을 가늠해보던 마크 박사가 한마 디 했다.
"꽤나 비싼 물건이 되겠군."
"후후, 초반엔 그렇겠죠. 하지만 100만 대씩 찍어내기 시작하면 이 야기는 달라질 겁니다."
ID 일렉트로닉스를 보유한 유재 원의 자신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박사님이 제대로 된 로봇 청소기를 만들어주셔야겠 지만요."
"알겠소. 한 번 제대로 만들어 보리다."
마크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 신감을 보였다.
초음파 센서, 고성능 청소 모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같 은 주요 부품은 그룹 내에서 다 구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로봇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마크 박사가 제대로 각을 잡고 만든다면 시대를 초월하는 물건이 나올 가능성도 컸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는 유재 원의 마음은 가벼웠다.
21세기 전략의 핵심 중 핵심 인 물을 ID 그룹의 울타리 안에 포섭 하는 데 성공한 덕이었다.
덕분에 동부 일정의 마지막은 제 법 부담이 되는 일이었음에도, 마 음은 편했다.
그렇게 유재원 일행은 버지니아 주, 랭글리의 CIA 본부를 향했다.
랭글리로 가는 이유는 역시나 그 것 때문이었다.
빅데이터 검색기의 세팅 말이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유재원밖에 할 수 없는 작업이었고, 지금도 마찬 가지였다.
이는 빅데이터 검색기의 핵심 알 고리즘은 완벽한 오버 테크놀로지 였기 때문이다.
10년쯤 뒤에나 나올 물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유나바머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 았더라면, 빅데이터 검색기를 그렇 게 일찍 선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나바머의 폭탄 리스트에 본인 이 어째서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놈을 잡기 위해서 빅데이터 검색 기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미국 정부가 빅데이터 검 색기의 유용성을 모르고 지나칠 일 은 없었고, 여러 이야기 끝에 CIA 에 납품하게 되었다.
당시 납품된 빅데이터 검색기의 규모는 1천대 규모의 클라우드 컴 퓨팅 시스템이었다.
여기에 유재원이 직접 빅데이터 검색기를 세팅해주고 받은 시스템 전체의 납품 가격은 2천만 달러였 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