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23화
이제 보니 오늘 자선파티에 유재 원이 참가한 건 역시나 기부금만 내겠다고 찾아온 게 아니었음이 드 러났으니 말이다.
군사용 드론이라면 당연히 미국 국방부를 상대하는 사업이었다.
방위 사업의 경우 인맥이 특히 필요한 사업이었고, 유재원은 부족 한 국방 분야의 인맥을 찾기 위해 방문했다는 그림이 맞춰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건 본인들이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브린 레이스탠드 재향군 인회 회장과 럼즈펠드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비슷한 성향으로 친분도 어 느 정도 있던 사이였지만, 이 순간 만큼은 라이벌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제가 펜타곤에 아는 친구들이 좀 있는데, 유 회장 님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 오늘 행사에 참여한 친구 중에도 무인기 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좀 있지요."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요 소였다.
먼저 치고 나간 사람은 브린 레 이스텐드였다.
생각이 많아졌던 럼즈펠드는 살짝 멈칫한 반면, 브린은 망설이 없 이 치고 나갔다.
"게이츠가 드론이라고 하면 제법 관심을 보일 거 같군요."
게이츠?
순간 눈이 치켜떠지는 유재원이 다.
게이츠 하면 이제는 역사의 뒤편 으로 사라진 고마운 빌이 떠올랐으 니 말이다.
"로버츠 게이츠라는 친구가 있습 니다. CIA에 있던 친구인데 무인기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지요."
"아, 전임 CIA 국장이었던 로버츠 게이츠 씨군요."
"유 회장님도 게이츠를 알고 있 습니까?"
그건 아니다.
CIA에 검색 시스템을 납품하며 연이 생겼지만, 아쉽게도 로버츠 게이츠는 전임 국장이었기에, 얼굴 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로버츠 게이츠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위명만 들어봤습니다. 저야 소 개시켜주시면 고맙죠."
"물론입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 에 약속을 잡겠습니다."
브린 회장의 말에 유재원은 반색 했다.
이후 유재원은 브린의 소개로 미 군의 고위 장교들 그리고 영향력이 있는 예비역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공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브린 회장에게 직접 돈 을 준 건 아니다.
자선파티였던 만큼, 파티 중간에 기부금을 모금하는 시간이 있었다.
유재원은 거기에 참여해 기부금 을 내는 방식으로 성의를 표시하는 걸로 충분했다.
유재원은 백지수표책을 꺼내 숫 자 3을 크게 쓰고서 0을 6개 이어 붙였다.
3백만 달러다.
얼마를 쓰려나 지켜보던 브린이 깜짝 놀랐음은 당연했다.
재향군인회에게 들어온 기부금 중에 역대 최대치는 아니었지만, 브린이 회장이 되고서 받았던 금액 중에는 최고였다.
"나도 빠질 수 없지!"
유재원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 키고 있던 테드 터너 역시 수표책 을 꺼내 100만 달러를 써냈다.
이 정도 지출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만큼 테드 터너의 재산 은 폭증한 상태였다.
더욱이 테드 터너 본인은 모르겠 지만, 유재원의 회귀 전과 비교하 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 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재원 의 개입이 없었던 예전엔 타임워너 의 합병 대상은 AOL이었다.
모뎀 기반의 서비스였던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그야말로 자기 파괴적이었고, 역사상 최악으로 기 록되었다.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도 없었다.
AOL의 모뎀 기반 네트워크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영상물이 대부 분인 타임워너의 콘텐츠를 활용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AOL은 인터넷 시대 에 적응하지 못한 대표적인 구식 IT기업이었다.
당연히 합병 기업은 1년 사이에 수백억 달러의 손실이 났다.
현금성 자산으로는 타임워너의 주식이 대부분이었던 테드 터너에 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망하지 않은 건 미국
중부에 보유한 어마어마한 부동산 때문이었다.
유재원이 개입한 지금의 테드 터 너는 동부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 었다.
버블 붕괴가 살짝 뼈아프긴 했지 만, 버블이 꺼지면서 옥석 가리기 가 이뤄졌고, 옥석이라 판명된 회 사들의 주식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재원의 회사들은 옥석 중에서도 옥석이었다.
안드로이드 사의 주가는 불과 몇 년 사이에 4배로 껑충 뛰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주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전고점은 1,500억 달러였다.
버블 붕괴 때는 1천억 달러 선이 무너졌고, 800억 달러 후반 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버블 붕괴가 끝난 다음 다시 상승 랠리를 시작했고, 지금 은 전고점 돌파를 위해 맹렬하게 상승 중이었다.
테드 터너의 재산 역시 수백억 달러가 늘어났고, 그만큼 그의 씀 씀이도 커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재향군인회 자선파티에서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 유재원 은 다음 날, 동부 출장에서 제일 중요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워싱 턴 DC로 이동했다.
미국 정치 수도 워싱턴 DC는 1 월임에도 북적북적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판의 가장 큰 이벤트인 대선이 11월에 있으니 당연했다.
특히 미국은 독특한 선거 제도 덕에 선거일이 11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대선 분위기가 풍겼 다.
한국의 경우는 이렇진 않았다.
대선이 있는 해가 되면 후보군을 가지고 여론조사를 하면서 슬슬 바 람을 일으키고, 각 당에서 후보자 경선을 치뤄 대선에 임한다.
후보자 경선이 일찍 끝난 당은 좀 일찍 대선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긴 해도, 정식 선거 운동은 한 달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미국 대선은 다르다.
한국은 직접 대통령 후보에게 투 표하는 직접 선거 방식이지만, 미국은 간접 선거 방식이었고, 선거 인단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치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선 을 치뤄 국회를 구성하고, 여기에 서 총리를 뽑는 방식과 매우 유사 하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 대선에서 뽑 는 선거인단은 오로지 대통령을 뽑 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며칠 후 아이오와 주의 코커스를 시작으로 7월까지 후보자 선출 경선이 이어지는데, 한쪽으로 크게 표가 쏠릴 경우 반대쪽 진영에서 패배 선언을 하는 게 보통이기에, 그전에 경선 레이스는 끝나게 된다.
"길어도 7월이면 후보자 경선은 끝날 것일세."
오랜만에 워싱턴 DC의 안가에서 만난 클린턴 대통령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와 덕담을 주고 받고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제는 당연히 2000년 대선이었 다.
"앨 고어 부통령의 승리로 말이 죠?"
앨 고어의 상대는 전직 뉴저지주 상원 의원인 빌 브래들리였다.
유재원의 기억의 궁전 속에서는 다섯 줄 정도의 기록만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전직 농구 선수로 뉴욕 닉스에 입단해 포워드로 활약했고, 1983년 에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뛰어 난 활약을 했으며,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에 도전해서 뉴저지 주의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하지. 무게감의 차이가 워 낙 나야 말이지. 대선도 큰 걱정이 없을 걸세. 앨이 너무 진지해서 탈 이긴 해도, 그 능력을 인정하는 국 민들은 많으니 말이야."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앨 고어 부통령의 존재감이었다.
과거에도 미국 민주당이 배출한 역대 대선 후보 중에서 제법 강력 한 편이긴 했다.
하지만 IT버블 붕괴 시기와 맞물 리면서 그 인기에 타격을 줬다.
게다가 4대에 걸린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엄청난 부도 보유하고 있었고,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전형적인 미동부 엘리트 이미지가 강해 미국 대중들과 동질감을 이뤄 내지 못했다.
반면 부시 역시 석유 재벌이긴 하지만, 촌티 나는 텍사스 카우보 이 이미지를 영리하게 사용해 친근 감을 높였다.
이러한 이미지의 차이가 2000년 대선의 주요 포인트라는 분석이 있 을 정도였다.
반면 지금은 이야기가 살짝 달라 졌다.
IT버블 붕괴가 훨씬 일찍 찾아왔 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클린턴에게 돌아갔다. 더욱이 타이밍 좋게도 나 스닥과 다우존스 지수 등이 크게 반등 중이었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상승 랠리는 연말까지도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 다.
온갖 지표는 앨 고어에게 유리했 다.
"그나저나 필승의 전략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인가?"
이어진 클린턴의 말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은 유재원이다.
클린턴과의 미팅을 잡을 때, 유 재원은 필승 전략이라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딱 하나만 바로잡으면 이변 은 없을 거라고 했을 뿐이다.
그게 클린턴의 귀에는 필승 전략 이란 단어로 바뀌어 들어갔던 모양 이다.
"이번 대선에서 터치스크린 달린 전자 투표기를 도입할 계획이죠? 그거 쓰지 마세요."
유재원이 단호히 말했다.
기대감이 서린 표정으로 귀를 기 울이던 클린턴은 곧 의외라는 표정 을 지었다.
명색이 세계 최대의 IT기업 회장인 유재원이 전자 투표기에 거부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한 일 이었으니 말이다.
"정보 기술에 대해서 무한한 긍 정을 가진 사람이 유 회장 아니던 가? 최근 시무식에서는 인공 지능 과 시스템 통합을 말하기도 했고. 게다가 전자 투표기기를 쓰지 않는 게 선거 승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지도 모르겠군."
클린턴 대통령이 이상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유재원과 클린턴은 공통의 이익 을 공유하는 파트너 관계였기에, 시킨다고 무조건 따르는 부하직원과 확실히 다른 반응이다.
게다가 클린턴의 의문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고정관념이 드러난 것 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IT라고 무조건 기존의 방식보다 우수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 은데, 다 그런 건 아니거든요. 어설 픈 기술을 도입했다가 정보 기술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는 게 더 큰 타 격이기도 하고요."
"전자 투표기기도 그렇다는 건가?"
이번 대선에서 일부 지역에 한해 시범적으로 도입하자고 이야기되는 투표 방식은 터치스크린 방식이었 다.
컴퓨터 화면을 보고 후보를 선택 하면, 선택된 후보가 펀칭으로 찍 힌 용지가 출력되고 이를 투표함에 넣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펀칭 방식과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지만, 터치스크린을 선택한 순간 선거관리위원회의 서 버로 자동으로 합산이 되기에, 검 표를 할 때에도 편리하다고 홍보하 고 있다.
이러한 터치스크린 방식의 투표 기기를 플로리다 주에는 대규모로, 다른 주에서는 시험적으로 도입할 예정이었다.
"예, 해킹의 위험성이 있거든요."
"해킹?"
다른 누구도 아니고, 유재원이 해킹을 언급하자 표정이 바뀌는 클 린턴이다.
전자 투표기기를 만든 회사에선 해킹에 대해 완벽히 방비를 했다고 자신했지만, 유재원이 해킹의 위험 을 언급하니 체감되는 의구심의 크 기가 달라졌다.
"완벽한 보안 기술이 나오기 전 까지는 전자 투표기기의 전면 도입 은 유보하는 게 좋아요."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는 함부로 쓰기 어려운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은 거리 낌 없이 사용한다.
보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로이드 사의 시큐리티 파트 너로 선정된 업체들도 완벽한 보안 시스템을 제공해준다지만, 유재원이 보면 취약점이 많이 보이는 수준이 니 말이다.
'완벽한'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보안 시스템은 양자 컴퓨 터가 도입되면 사용 가능한 양자 암호가 있다.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니, 좀 더 타협을 한다면 블록체인이 그나마 현실성이 있었 다.
"그러면 전자 투표기만 조심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건가?"
역시 클린턴은 핵심을 잘 파악했 다.
크게 보자면 전자 투표기기 이슈 는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보다 더 핵심인 것은 2000년 대선에서의 앨고어 승리였다.
"음, 기존의 펀치카드 기기도 잘 작동하는지 봐야겠죠."
선거가 끝나고서 쏟아진 앨 고어 의 패인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많 았다.
선거인단 확보라는 미국의 독특 한 간접선거 방식만 아니었으면, 앨 고어의 승리였다.
유권자의 득표수는 앨 고어가 더 많았으니 말이다.
다음 이슈는 플로리다 주의 재검 표 논란이었다.
플로리다 주에서 엄청난 무효표가 쏟아져 나왔는데, 가장 큰 문제 는 투표기기였다.
부시를 찍으면 정상 자리에 찍히 지만, 앨 고어를 찍으면 정해진 자 리를 벗어나 찍히는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무효표를 무시하 도록 하는 의도적인 개입이 있었다 는 것이었다.
마치 부시 측은 그러한 사건의 전모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재개 표를 막아달라고 플로리다 주 법원 에 줄소송을 했다.
여기에 보수 언론의 물타기 기사 가 쏟아졌고 결정적으로 플로리다주자시인 젭 부시의 영향력이 발휘 되면서 재검표는 유야무야가 되었 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이번에는 불 안 요소인 투표기기의 보급을 막고, 플로리다 주 주지사인 젭 부시만 제대로 경계하면 승리는 절대적이 라는 계산을 도출했다.
"음, 자네의 장담이라면 믿어볼 만 하지."
클린턴은 바로 수긍했다.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여 달라고 했으면 꺼낼 생각으로 가져 온 자료는 물론, 해킹에 대해 의구심이 커진다면 시범이라도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쉽게 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잘해보세."
그러면서 클린턴은 악수를 청했 다.
생각 이상으로 클린턴의 신임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지만, 은근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 다.
하지만 플로리다 주만 확실히 모 니터링하면 앨 고어가 질 일은 절 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유재원은 클린턴과 웃으며 손을 맞 잡았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