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538화 (538/1,007)
  • 26권 22화

    "음,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 핏 회장이 빈센트 사장님과 한 살 차이잖아요. 워런 버핏 회장이 은 퇴할 때 같이 하시면 어때요?"

    "워런 버핏 회장님 말씀입니까?"

    과연 워런 버핏이었다.

    빈센트 그린힐이 바로 반응을 보 였다.

    21세기에 더 유명해질 워런 버핏 이지만, 2000년인 지금에도 이미 그의 유명세는 상당했다.

    "후임자도 선정도 빈센트 사장님 의 판단에 맡길게요. ID 인베스트 먼트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주세요."

    "제가 말입니까?"

    "네! 중요한 과제를 내리고서 1, 2년 정도 관찰하면 되지 않을까 요?"

    "그렇게 길게 관찰합니까?"

    "빈센트 사장님의 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죠. 한두 푼 만지 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치명적이니까요. 게다가 제가 일하는 방식도 월 스 트리트의 상식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고요."

    유재원은 누가 되었든 ID 인베스트먼트의 운용 방식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빈센트 그린힐이 본인 과 가장 닮은 사람을 추천해주는 게 유재원에겐 제일 좋은 일이었다. 물론 최선은 빈센트 그린힐이 워런 버핏이 은퇴할 때까지 일해주는 것 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비윤리적이기도 했 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회장인 워런 버핏은 죽을 때까지도 회장직을 놓 지 않았으니 말이다.

    "음, 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어쩔 수 없군요."

    빈센트 그린힐은 잠깐 고심을 하 는 듯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 다.

    후임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잘나 가던 회사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ID 인베스트먼트는 유재원의 의 지로 탄생한 회사였지만, 실질적으 로는 빈센트 그린힐이 벽돌을 하나 하나 올려 쌓아 만든 조직이었다.

    책임감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 었다.

    결국, 빈센트 그린힐은 유재원이 말한 1, 2년 정도는 더 버텨보기로했다.

    유재원에게 있어 참으로 다행이 었다.

    다음 날.

    ID 인베스트먼트 빌딩에 여장을 푼 유재원은 동부에서의 공식 일정 을 시작했다.

    첫 번째 일정은 바로 자선 행사 참가였다.

    뉴욕의 한 호텔을 빌려 만들어진 행사장에는 정복을 입은 군인들도 많았는데, 이는 오늘 자선 행사의 주최는 미국 육군 재향군인회였고, 행사의 내용도 PTSD 치료를 위한 기부금 모집이었기 때문이다.

    참고하자면 단일 재향군인회만 있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재향 군인회는 수십 곳이었다.

    육군부터 해군, 공군, 해병대 별 로 별도의 회가 있었고, 한국전, 베 트남전, 걸프전 참전 용사회 같은 재향군인회도 있었다.

    심지어 미국 행정부 내에 정식으 로 제대 군인부라는 별도의 행정조 직이 있을 정도다.

    하여튼, 오늘 행사는 보통 군인 들을 위한 자선 행사장이지만 오늘 만큼은 아니었다.

    파티장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드 레스와 정장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 다.

    작년과 달리 민간인의 비중이 폭 증하게 된 건 당연히 유재원의 참 석이 큰 이유였다.

    ID 그룹이 성장할수록 유재원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당연히 많아졌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좀처럼 나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미팅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유재원 과 직접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 었다.

    그러다가 이번 행사에 유재원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 초대 장이 동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런 행사에는 잘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VIP들도 여럿이 참 가했다.

    "오! 서부의 패왕이 납시었군!"

    등장할 때마다 화제, 혹은 난리 를 몰고 다니는 테드 터너도 그런 VIP 중 하나였다.

    유재원이 행사장에 들어서자마

    자, 어떻게 바로 알아보고는 곧장 다가와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렇게 먼저 다가와주는 건 참 좋은데, 호 칭이 영 이상했다.

    서부의 패왕이라니.

    "음, 터너 아저씨, 그건 또 무슨 별명이죠?"

    듣도 보도 못한 별명에 유재원은 인사를 생략했다.

    "ID 그룹으로 IT 제국을 이뤄냈 고, 타임워너 넥스트컴으로 미디어 제국도 거머쥐었지. 이젠 셰브롱까 지 가시권에 놓은 거 아닌가? 이러 면 뭐, 서부의 패왕 아니겠는가."

    거침없는 테드 터너의 기질이 그 대로 보이는 대목이었다.

    심지어 입구 근처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이들 중에 유재원과 테드 터너의 대화를 들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차라리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피 식 웃어줬으면 좋겠는데, 정작 말 을 꺼낸 테드 터너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유재원은 바로 반박했다.

    "에이, 타임워너 이사회 지분이 어떻다는 건 뻔히 알면서 그러세요.

    셰브롱도 제이콥이 있는데 무슨 가 시권이에요."

    타임워너 넥스트컴을 유재원 마 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는 건 이사회 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미디어 강화를 위해 타 임워너가 가지고 있던 채널 증 가 장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던 채널 의 운영권을 얻으려고 했다.

    그렇게 확보한 채널로 인기가 검 증된 프로그램을 올려 화려하게 부 활시킨 다음, 독자적인 콘텐츠까지 만들어 유통할 계획이었다.

    21세기 중반까지의 히트작에 대해선 그야말로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니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더욱이 아직도 진행 중인 밀리언 달러 챌린지를 통해 입선된 작품의 영상화 작업 역시 그렇게 확보한 채널을 통해 이루려고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채널의 운영권 은 유재원의 손에 넘어오지 않았다.

    레밍턴에게 부탁한 지 1년쯤 되 었는데, 얽혀 있는 게 많다 보니 한없이 기다리게 된 것이다. 더욱 이 타임워너 이사회에서 노골적이 다 싶은 견제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합작이 아니라, ID 그룹 쪽에 편입될 거라는 위기 감이었다.

    "허허,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 거든. 제이콥 녀석은 아니야. 조카 가 성과를 냈다고 쫓아내는 삼촌이 어디 있나? 제 식구한테도 그러는 데 직원들한텐 얼마나 할지는 뻔하 지, 뭐."

    테드 터너의 입은 거침이 없었 다.

    심지어 티파니가 셰브롱에서 나 와 독립하게 된 연유까지도 정확하 게 알고 있었다.

    "프레더릭 할아버지에게 잘 전해 드리죠."

    이대로 두면 위험한 이야기를 계 속할 것 같았기에, 유재원은 바로 테드 터너의 입을 봉쇄했다.

    "헙. 농담일세."

    아무리 막나가는 테드 터너라고 해도 프레더릭에겐 아직 아니었는 지,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프레더릭 테일러 2세는 지금의 유재원에겐 매우 호의적이지만, 젊 었을 때는 한 성질했다고 한다.

    테드 터너는 그런 프레더릭의 모 습을 잘 기억하고 있는 인사이기도했다.

    "그나저나, 자네가 군인에게도 관심이 많은 건 이제 알았군. 자네 덕에 이런 행사에 다 오게 되었어."

    테드 터너의 말에는 약간의 투덜 거림이 담겨 있었다.

    그를 수식하는 타이틀 중에 자선 사업가라는 단어가 있을 만큼, 자 선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취향은 평화와 환경 이었다.

    재향군인회를 지원한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저 한국인이에요. 그리고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북한과 대치중이고요. 덕분에 평화를 원하 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늘 기억하고 있죠."

    한반도의 남북 대치 상황은 상당 히 옅어졌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단 한 번도 북한에 대해 방심하진 않았다.

    북한은 언제든 상식 밖의 모습을 보여줄 나라라는 걸 잘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년에는 최악의 테러인 941이 벌어진다.

    미리 대비하기 위해선 미군의 고위 장성과 인맥을 쌓아 놓는 게 중 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행사에 기꺼이 참여했다.

    "유 회장님의 말씀이 아주 감명 깊습니다."

    역시나 의도는 적중했다.

    유재원의 말에 기꺼워하며 다가 온 풍채 좋은 중년의 남자가 있었 다.

    바로 이번 행사의 주체인 미 육 군 재향군인회 회장 브린 레이스텐 드였다.

    육군 대장 출신의 그는 펜타곤과 긴밀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오늘의 목표였다.

    첩보 분야는 CIA와의 오랜 협업 으로 인맥이 어느 정도 쌓여 있었 지만, 실제 파견 부대나 미군 상부 와는 아직 접점을 만들어놓지 못했 다.

    클린턴 대통령을 통해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 근차근 다지기 위해 이번 행사를 선택한 것이다.

    "응?"

    안타깝게도 브린 레이스텐드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

    그의 옆엔 불청객이 하나 붙어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 은발에 은테 안 경. 그 이름도 유명한 럼즈펠드였 다.

    " 이분은'?"

    유재원은 다 알아 봤으면서도 짐 짓 모르는 척 물었다.

    "이 친구는 도널드 럼즈펠드라고 합니다. 포드 대통령 시절에 국방 부장관도 역임했었고, 레이건 시절 에는 중동의 특별 교섭인으로도 있 었죠."

    브린 레이스텐드의 소개였다.

    누가 재향군인회 회장 아니랄까 봐 군 경력을 줄줄 읊었다.

    확실히 럼즈펠드는 현역인 시절 에는 매우 유능한 군인이었다.

    "위명이 자자한 유 회장님을 만 나 너무 반갑습니다. 럼즈펠드입니 다."

    "안녕하세요. ID 그룹 회장 유재 원입니다."

    럼즈펠드와 유재원이 서로 인사 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유재원의 명함은 그야말로 간소 한 형태였다. 전면에는 ID 그룹 로 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고, 뒷면에는 회장 유재원이라는 이름, 이메일과 휴대전화 번호가 들어가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대전화 번 호는 비서실에서 관리하는 번호였 다.

    명함의 등급이 제일 낮은 탓이었 다.

    유재원의 늘 들고 다니는 개인용 T터치폰의 전화번호가 박힌 명함도 있긴 있다.

    인재 리스트 최상단에 있는 사람 들을 만나면 바로 꺼내줄 생각으로 만든 명함인데, 아직 이걸 내줄만한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제약?"

    럼즈펠드의 명함은 특이하게도 무슨 군 관련 회사의 이름이 아니 라, 엉뚱한 제약 회사 이름이 박혀 있었다.

    기억을 잠깐 더듬자, 타미플루라 는 문제의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만 든 회사라는 정보가 떠올랐다.

    21세기 초에 여러 신종 독감이 대유행하던 시점이 있었고, 그때 타미플루가 유일한 치료제인 것처 럼 알려지면서 크게 이득을 보았던 회사였다.

    럼즈펠드는 이 회사에서 뭔가 경 영이나 개발에 직접 관여하는 건 아니었고, 정치 인맥 활용을 위한 로비스트 역할을 했었다.

    그러다가 올해 대선을 위해서 직 책을 잠깐 내려놓고, 공화당 진영 에 합류하기 위해 슬슬 발동을 걸 고 있던 상황이었다.

    부시 후보에게 직접 선을 대는 건 아니었고, 부시의 런닝메이트 딕 체니의 라인을 타려는 사람이었 다.

    럼즈펠드가 이번 재향군인회 자 선파티에 참가한 건 딕 체니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움직인 것인 데, 생각지도 못한 거물인 유재원 을 만난 것이다.

    럼즈펠드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 지만, 유재원은 아니었다.

    전생에 부시가 온갖 논란 끝에 앨 고어를 이기고 대통령이 되고서 럼즈펠드는 다시 국방장관이 되었 다.

    그는 이후 벌어진 9.11과 아프카 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미군이 보이는 무능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그때 미국이 좀 더 영리한 판단을 했다면, 중동 문제가 21세기 중 반까지도 불안 요소로 남지 않았을 터인데, 오판에 오판을 거듭하다 보니 문제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꼬 이게 했다.

    당연히 유재원은 럼즈펠드에 대 한 호감이 전혀 없었다.

    "유 회장님이 오늘 행사에 참석 하질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여 기 있는 브린 회장님도 웬만해서 놀라지 않는 양반인데 유 회장이 오신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지요. 게다가 ID 그룹은 방산 분야에 진 출하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그런 유재원의 속마음도 모르고서 럼즈펠드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 으며 말을 이었다.

    유재원이 민주당 성향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것 하 나로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절대 아니었다.

    "ID 그룹의 사회 공헌은 취약 계 층에 대한 집중 지원이죠. 최근에 ID 파운데이션이 그간 무슨 활동을 해왔나 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다 양한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군인 에 대한 건 하나도 없었더군요. 그 래서 이번엔 연초부터 챙기려고 왔 죠. 그리고 방산 분야 사업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에요."

    CIA에 대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납품했다.

    그게 방산 사업이 아니면 뭐겠는 가.

    게다가 하이테크 연구소의 아이 템 중에 거의 10년 동안 한 우물만 파고 있는 게 있었으니, 바로 드론 이었다.

    "드론말입니까?"

    브린 레이스텐드와 럼즈펠드가 곧바로 관심을 보였다.

    이미 미군은 프레데터라는 무인 정찰기를 운영 중이었고, 이를 통 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작전도 많았다.

    2001년부터는 헬파이어 미사일 을 장착한 공격용 무인기 버전까지 띄울 계획이었다.

    "ID 그룹도 프레데터 같은 드론 을 만듭니까?"

    럼즈펠드는 처음 들었다는 듯 되 물었다.

    "92 엑스포에서 쿼드콥터 드론을 처음 선보였었죠. 지금은 영화 촬 영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고요. 당연히 군용 모델도 계속 개발 중 이었죠. 다만 제 성에 차지 않아서 비공개였지만, 올해 말엔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거예요."

    유재원의 말에 브린과 럼즈펠드 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고개를 끄 덕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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