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9화
"한국은 이쯤하면 됐고."
유재원은 그것으로 한국 관련 서 류들을 모두 닫았다.
제일 먼저 살펴봤던 ID 일렉트로 닉스와 ID 디스플레이의 현황 보고 서에 이어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보 고서를 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내년 총선을 대비한 통일국민당 관련 보고서도 있었고, 청와대 관련 보고도 있었 다.
하지만 유재원은 과감하게 창을 닫았다.
한국의 정치와 언론 분야는 당분간 유재원이 손을 쓸 일이 없었다. 그저 최강욱 부회장에게 맡기면 충 분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아주 노골적 인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선거 연대를 통해 과반을 확보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하고 싶다는 내심을 숨기지도 않았다.
선거 연대에 대한 유재원의 반응 은 긍정보다는 부정이 많았다.
정치공학자들의 손에 의해 억지 로 연대를 해봤자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채득한 상태였다.
당연히 통일국민당은 저번 총선 과 같이 전국에 후보를 낼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전국 정 당으로 자리 잡게 만들 계획이다.
그렇게 한국 관련 보고서를 모두 처리한 유재원은 메인 요리를 꺼내 들었다.
X박스 프로젝트였다.
오늘 낮에도 X박스 팀의 사무실 에 출근했었고, 거기에서 좋은 제 안을 하나 받았다.
-ID 엔터테인먼트의 포트폴리오 중에 제일 취약한 부분이 스포츠 게임입니다.
축구와 농구는 EA가 가졌으니 우리는 MLB와 NFL을 가져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퍼스트파티를 책임지고 있던 마 르커스 루이즈의 말이었다.
무릎을 딱 치는 100점짜리 제안 이었다. 그러고 보니 ID 엔터테인 먼트의 게임들을 쭉 보면 FPS에서 MMORPG까지 다양했지만, 스포 츠 게임은 없었다.
유재원 본인이 스포츠 게임은 그 다지 즐기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스포츠 게임을 즐기는 사 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스포츠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어른들까지도 게임기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잘 만든 게임 하나로 수십 년은 먹고 살 수 있는 게 스포츠 게임의 특징이기도 했다.
참 아쉽게도 가장 대중적 스포츠 인 축구와 농구는 EA가 일찌감치 다 가져가버렸다.
남은 건 메이저리그베이스볼과 미식축구였다.
뭐든 다 먹어 치우는 EA가 둘을 그냥 놔둔 건 비싼 라이선스 가격 과 시장성에 대한 믿음 부족이었다.
축구를 즐기는 인구에 비해 야구 와 미식축구 팬들의 숫자는 확연히 차이가 나니 말이다.
유재원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 다.
유재원은 마르커스 루이즈가 올 린 기획서에 사인을 하고 발송했다.
거기엔 MLB, NFL과의 라이선 스 협상에 대한 권한과 예산 승인 그리고 스포츠 게임을 개발할 게임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ID 엔터테인먼트에 자체적인 개 발팀을 만드는 게 제일 좋겠지만, 시간과 싸움 중인 지금은 능력이 검증된 회사를 인수하게는 게 효율 적이었다.
"음, 그런데 왜 일본에서 연락이 없지?"
사인을 마친 유재원이 작게 투덜 거렸다.
오중근 팀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서드파티 팀은 한창 일본에서 활동 중이었다.
세가와의 협상도 잘 이끌어내서 버추어파이터 3와 차기작이 X박스 독점으로 나오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철권으로 유명한 남코와도 잘 협상해서 철권 테그토 너먼트 역시 X박스 출시를 약속했 다.
그런 오중근 팀장은 최근 코나미 와 접촉 중이었고, 오늘 보고서를 올리기로 했던 날이다코나미 하면 제일 유명한 것은 유희왕이라는 카드 게임이지만, 유 재원이 정작 기대하는 건 따로 있 었다.
바로 메탈 기어 솔리드라는 걸출 한 잠입 액션 게임이었고, 이를 만 든 천재 게임 프로듀서 코지마 히 데오였다.
오중근 팀장이 코나미와 미팅을 잡았다고 보고했을 때, 유재원은 코지마 히데오에 대한 특별한 지침 을 내렸다.
오늘 그 결과가 오는 날인데, 아 직 소식이 없으니 너무도 궁금해졌 다.
띵
"왔나?"
때마침 ID톡 알람 소리가 울렸 다.
역시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 다고 오중근 팀장의 보고서가 들어 왔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발신인 항목을 차지하고 있는 이 름은 그룹 정보팀이었다.
대신 중요도 등급은 최상이었고, 안에 담겨 있는 내용도 심히 우려 가 되는 것이었다.
전직 FBI 출신으로 레밍턴의 추 천으로 정보 팀장으로 스카우트 되 었던 레빈 윌리스는 유능한 사람이 었다.
그렇기에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 이 동안 ID 그룹에서 정보를 다루 는 일을 도맡았고, 정보팀이 회장 직속의 정보실로 확대 개편된 지금정보실장을 맡고 있었다.
이번에도 레빈의 특기가 발동되 어 올라온 보고였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에 ID 그룹 특집 기사가 올라올 예정.
-ID 그룹이 업계 1위가 된 저력 을 분석하는 특집으로 빛과 어둠을 동시에 조망하는 형식, 어둠 파트 에서 인종차별 언급될 가능성 매우 높음!
레빈의 보고서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진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ID 그룹의 정보 조직은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 집하는 건 아니었던 탓이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제약이 많았다.
그렇지만 레빈 정보실장은 10년 에 가까운 연차가 쌓이면서 합법 안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았다.
방법은 인맥이었다.
자발적으로 ID 그룹에 정보원 역 할을 하는 이들을 수백, 수천 명을 만들어놓고 관리했다.
덕분에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이 라면 웬만한 정보 조직에 버금가는 인적 모니터링 시스템이 완성되었고, 이번에 올라온 보고 역시 이를 통해 감지된 정보였다.
"음, 인종차별이라니."
레빈의 보고서를 보고 처음엔 무 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인종차별 이라니.
오히려 유재원이 알게 모르게 인 종차별을 당하면 당했지, 인종차별 을 할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유재원은 바로 첨부된 리포트를 열었고, 레빈의 판단 근거를 확인 하기 시작했다.
"아."
첨부된 문서는 조만간 지면에 실릴 기사의 초고라고 했는데, 2장도 안 되는 용량이었다.
그런데 한 장을 다 읽기도 전에 인종차별이란 말이 왜 튀어나온 것 인지 유재원은 바로 이해할 수 있 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중국이었 다.
ID 그룹의 빛과 어둠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에서, 어둠을 다룰 때 나 올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직원들의 인종 분포란다. ID 그룹에는 백인 과 인도인, 한국인의 비중이 매우 높지만, 히스패닉과 흑인의 비율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종 분포 비율은 미국 평균과 크게 차이가 나며, 유재원 본인이 유색인종이면서 의도적으로 유색인종을 배제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중국인의 경우 핵심직군에 단 한 명도 없어서 의도가 보인다 고 강조했던 것이다.
흑인과 히스패닉이라면 이해한 다.
그런데 뜬금없이 중국인이라니. 결정적으로 이러한 기사를 쓴 사람 은 중국계 미국인 기자였다.
"흐음, 근데 촉은 좀 날카롭긴하네."
반은 정답이었다.
피부색으로 차별하진 않는다.
ID 그룹의 인사 정책은 능력이었 다.
그렇기에 블라인드 테스트에 가 까운 1차 시험이 있는 것이다.
최종 심사인 실무자 면접에서도 주로 물어보는 건 실무에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여기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다.
중국계 혹은 중국 유학생에겐 상 당히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또한 채용에 있어서도 매우 신중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 유출 때문이었다. 이는 역 사 그리고 유재원의 경험이 이야기 해주는 것이었다. 중국의 기술 사 냥은 그야말로 집요할 정도였다.
그리고 중국이 가장 손쉽게 사용 하는 방법이 해외 중국동포들의 애 국심과 중화사상을 이용하는 것이 었다.
국적은 미국임에도 본인을 중국 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중국은 조직적으로 이러한 이들과 접촉했고, 쉽게 설득했다.
아무리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 을 구축해도 사람이 뚫리면 말짱 도루묵이 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어려운 난이 도의 면접을 뚫고 합격한 중국계라 면 합격을 취소하진 않았지만, 중 요한 데이터를 다루는 보직을 주진 않는 것으로, 중국이 사람을 동원 해 기술을 탈취할 가능성을 원천에 차단했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모양인지, 이런 식의 기사를 꾸민 모양이다.
"열심히 써 봐라. 내가 바뀌나."
중국에 대한 유재원의 인식은 죽 을 때까지 바꿜 일이 없을 것이다.
유색인종 고용 비율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깐깐한 검증과 핵심부서 회피 정책은 절대 변함이 없을 것 이라 다짐했다.
띵
레빈, 그리고 비서실에 해당 기 사가 나올 시점에 맞춰 시행할 대 응책에 대해 지침을 줄 때, ID톡이 다시 울렸다.
다행히 이번엔 기다리고 있던 오 중근 팀장의 보고였다. 유재원은 즉각 문서를 열었다.
-코지마 히데오 PD는 애사심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장님의 제안은 고맙게 생각하 지만, 아직 코나미를 떠날 생각은 없다고 확실히 못 박았습니다.
-메탈 기어 솔리드의 X박스 출 시는 긍정적입니다.
오중근 팀장의 보고서에서 유재 원은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아, 이거 토사구팽당한다고 말해줄 수도 없고."
코지마 PD는 능력 있는 게임 개 발자였다.
자기애가 좀 강하다는 게 약간의 단점이었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 뛰어난 감각을 가진 개발자였다.
메탈 기어 솔리드라는 게임에서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데, 잠 입 액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매력적인 세계관으로 전 세계에 수 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장본인이었 다.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열심히 게 임을 만든 코지마에게 코나미가 행했던 질 낮은 푸대접이었다.
후속작이 이어질 때마다 게임 개 발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지만, 판매량은 담보할 수 없게 되자 토 사구팽이 이뤄졌다.
그렇기에 일찌감치 코지마 히데 오를 빼오고 싶었다.
근데 타이밍이 좀 일렀던 모양이 다. 하긴 아직 코나미가 푸대접을 할 때는 아니었으니 코지마 히데오 에게 이직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 다.
안타깝게 됐다.
"어쩔 수 없지."
코지마 같은 사람은 돈으로 움직 일 수 없는 양반이니 스스로 결심 이 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 었다.
"그나저나 오중근 팀장의 성과가 제법이네."
코지마 PD가 좀 아쉽지만 오중 근의 일본 출장은 기대 이상의 성 과를 냈다.
일단 가장 큰 목표였던 세가와의 협력이 성사되었다.
드림캐스트의 처참한 실패로 인 해 세가의 게임 사업은 크게 흔들 렸고, 여기에 초기대작이었던 쉔무가 깡통을 차면서 치명타가 되었다.
세가가 자랑하는 AM2팀이 수년 간 공들여 만든 쉔무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지향했다. 현실을 게임 속에 그대로 이식하는 걸 목표로 삼았고 800억 원에 이르 는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판매량 은 형편없었다.
더욱이 목표로 했던 오픈월드도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서, 기대했던 게이머들의 실망감만 자아냈다.
일본에서의 판매량은 30만 장이 었고, 전 세계를 포함하면 100만 장을 겨우 넘겼다. 그야말로 처참 한 실패였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세가 에게 유재원의 지원금은 가뭄에 단 비와 같았다.
게임당 적게는 수십만 달러에서 버추어파이터 같은 AAA게임의 경 우엔 백만 달러가 넘는 개발 지원 금이 책정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X박스로 게임을 낼 때 부과되는 로열티를 줄여주는 혜택 까지 있었다.
소니 혼자서 잘나갈 땐, 울며 겨 자 먹기로 비싼 값을 치르고 게임 을 유통해야 했다면, 지금은 경쟁 체제로 전환되면서 개발사들의 숨통이 트이고 있었다.
다만 X박스 프로젝트를 위해 돈 을 물처럼 쓰고 있는 ID 그룹의 손 익분기점은 점점 멀리 가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뭐, 이번 세대 X박스로 돈 벌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니까."
유재원의 계산은 간단했다.
X박스 2부터 벌기 시작하면 된 다는 것이다. X박스 1의 역할은 안 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벗어나는 소니에게 치명타를 먹여주는 것으 로 충분했다.
"게임은 안드로이드지!"
최고의 게이밍 시스템은 안드로 이드다!
X박스 프로젝트의 진정한 목표 는 바로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물론 게임 산업이 세계 영화 시 장보다 규모가 더 큰 사업이니, 게 임 업계를 장악하는 것으로 엄청난 수익이 생기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긴 했다.
그렇기에 게임은 안드로이드 운 영체제여야만 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