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6화
바로 티파니와의 결혼 때문이었 다.
결혼에 부담감을 느끼는 건 절 대 아니다.
티파니와 약혼을 했으니 언젠가 결혼을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 다.
다만 언제 결혼을 할지 정하지 않고 약혼을 했던 탓에, 결혼 일자 는 유재원과 티파니가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했다.
만약 유재원의 처지가 전생처럼 평범한 상태였다면, 신혼집을 마련 한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다행히 회귀 후의 계획들이 모두 어마어마하게 성공을 해서 집 걱정 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 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골드게이트 휴양지 근처에 빼어난 절경을 가진 해안가 절벽에 유재원이 스케치했 던 그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원반형 UFO가 절벽에 반쯤 걸 쳐 내려앉은 형태였고, 절벽의 수 직 벽을 타고 해안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와 해안가의 접안 시설 도 예정대로 지어지고 있었다.
행정적 허가부터, 시공까지 난제 들이 제법 있긴 했지만, 여기는 돈 으로 안 되는 게 없는 미국이었다.
대호 건설 미국 지사에서 바로 공사에 들어가서, 지금은 전체적인 모습이 거의 보일 만큼 순조롭게 건설 중이다.
내년 봄이면 건물 공사는 모두 끝나고, 내부 인테리어까지 추가하 더라도 초여름쯤엔 완공될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집이 다 지어지면 당연히 입주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그 전에 필수적으로 거처야하는 일이 결혼식이지만 말이다.
바로 여기가 초조함이 발생하는 지점이었다.
티파니에게 결혼을 청하는 것부 터가 일이었다.
일이 너무 많다 보니, 프러포즈 같은 개인적인 일을 뒤로 미루게 되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추 수감사절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 다.
추수감사절은 유재원이 프러포즈 데드라인으로 잡아 놓은 날짜였다.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마찬가지로 집안 식구들이 다 모이게 된다.
이때, 결혼을 발표하는 게 괜찮 을 거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더욱이 티파니네 집안 그리고 외 가는 보통 집안이 아니었다.
장인어른인 핑크 집안도 보통은 아니지만, 외가인 프레더릭 테일러 는 더 특별한 집안이니 말이다.
당연히 지금 유재원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성공적인 프러포즈 를 하는 가였다.
티파니가 이벤트를 기대한다고
압력을 준 건 없었다.
다만 전생에 말도 못할 고독을 느끼다 죽은 만큼, 이번엔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여름부터 그런 고민을 하긴 했는 데, X박스 프로젝트를 본궤도에 올 리는 일이나,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HxT 복귀 등 시급한 사안들이 쏟 아지면서 뒤로 미뤄졌고, 결국 이 사달이 나버리고 말았다.
"뭐가 좋을까."
오랜만에 기억의 궁전에 접속한 유재원은 아카하이브에서 프러포즈 항목을 검색 중이었다.
웃기게도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놨던 마스터 플랜에도 본인의 결혼 과 관련된 플랜은 단 하나도 없었 다.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던 당시, 마 음에 맞는 천생연분을 찾는 것만으 로도 행운이라고 보았다.
다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사정이 훨씬 나아질 것이니, 결혼을 하는 것에는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보 았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이 제야 깨달았다.
유재원은 티파니와 진정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렇게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 이지만, 비즈니스적으로 갖는 의미 도 엄청났다.
장인어른이 운영하는 블랙스톤은 이제 무시하지 못할 금융 기업이 되었다.
운영 자금만 천억 달러 이상이었 고, 안드로이드 사와 타임워너 넥 스트컴의 지분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외가인 셰브롱도 빼놓을 수 없다.
셰브롱의 법적인 상속 순위에서 는 티파니가 뒷줄에 있긴 했지만, 프레더릭 테일러가 눈여겨보는 순 위라면 최상위권이었다.
오죽하면 제이콥에 줄을 섰던 이 들이 강한 경계심을 보일 정도였으 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들도 유재원과 티파니의 결혼은 긍정적이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이종결합으 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처 럼, ID 그룹과 셰브롱도 충분히 가 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러한 이유로 유재원은 프러포즈부터 허투루 할 수 없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기억의 공간에 담아둔 아 카아히브에는 프러포즈에 관한 데 이터도 제법 있었다.
"영화관을 빌려? 이건 너무 진부 한데. 그렇다고 시상식 자리를 빌 리는 건 부담스럽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영화 관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영화 상영 후에 다음 영화 상영 까지 생기는 텀을 이용해 준비한 영상을 스크린에 트는 것이다.
일반인도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라지만, 유재원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영화계의 거물이 영화제 시상식장을 빌려 프러포즈 했다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자는 좀 심심한 느낌이라면, 후자는 너무 과했다.
유재원도 영화계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편이었다.
거대한 자금을 움직이는 투자자 였고, 투자한 것마다 대박을 터트 리는 미다스의 손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타임워너라는 거대한 배 급사의 대주주이기도 했으니, 마음 만 먹으면 아카데미 시상식 중에도 시간을 만들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기각이다. 티파니 의 성격을 보자면 그렇게 엄청난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받는 건 부담 스러워할 게 분명했다.
"음? 응? 이거 괜찮네."
한참 아카하이브를 검색하던 유 재원에게 괜찮은 목록 하나가 보였 다.
어떤 인디게임 개발자가 애인에 게 방금 완성된 게임이라면서 테스트를 부탁했고, 영문을 모르고 게 임을 하던 애인은 감동했다.
스테이지의 끝에 다다르자 생각 지도 못한 결혼 이벤트가 연출되었 기 때문이란다.
이건 기사는 아니었다.
익명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 물이었는데, 갈무리를 하면서 같이 담긴 모양이다.
게임이라면 유재원도 자신 있는 분야이자, 티파니도 좋아하는 것이 었다.
티파니는 한국서 열리는 e스포츠대회를 챙겨볼 정도로 게임을 좋아 했으니, 이걸 이용하면 실패할 일 은 없어 보였다.
마음을 먹은 유재원은 바로 작업 에 착수했다.
게임 선정도 즉각적이었다. 예전 부터 만들고 있던 게임이 있었으니, 키보드 워리어2였다.
키보드 워리어와 유재원은 떨어 질 수 없는 사이였다.
그 후속작을 2000년 초에 발표 할 생각으로 틈틈이 만들고 있었다.
장르는 키보드 워리에과 같은
FPS였고, 타자를 치는 것으로 총을 대체하는 것도 전작과 똑같았다.
등장하는 적에게 체력 대신 타자 연습을 하기 좋은 문장들을 담고 있었고, 그 문구를 입력하면 처치 되는 식이다.
그 정도만 해도 3D 시대에 맞는 타자 연습기로서의 역할은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본인에게 너무 도 각별한 키보드 워리어의 차기작 을 그렇게 단순히 만들 생각은 추 호도 없었다.
1탄에서 그랬던 것처럼 곱씹어볼수 있는 스토리를 담았고, 플레이 어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의 분기도 나눠지며, 상호작용도 적극적으로 이뤄지도록 설계했다.
둠에서 시작해 하프라이프로 완 성된 현대적 FPS의 시스템을 그대 로 담았다.
전작에서 호평이었던 멀티플레이 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아예 싱글 플레이에서도 다른 플 레이어들과 협동 미션도 여러 개를 준비했다.
협동 미션 하나를 통째로 개조해 서 티파니도 감동할만한 이벤트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배경도 스탠포드 대학교나 ID 테 크놀로지 본사 등으로 꾸미고 유재 원 본인과 티파니를 모델로 한 캐 릭터도 등장시키는 것이다.
다만 베이스 게임이 키보드 워리 어인지라 텍스트가 많이 필요한데, 다행히 티파니와의 추억은 책 한 권을 써도 될 만큼이었기에 큰 걱 정은 없었다.
더욱이 티파니와 처음 만난 계기 도 각별했다.
그때는 쥐구멍을 찾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오해를 했었다.
자전거 도둑으로 티파니를 오해 했고, 부리나케 쫓아가 잡은 것으 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딱 떠오르는 카피가 있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 로 들어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의 류 광고 문구였다.
유재원은 곧바로 ID워드프로세서 를 실행해 그 문구를 시작으로 본 인과 티파니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 기 시작했다.
특별 이벤트에 들어갈 스크립트 였다.
유재원의 키보드를 치는 속도는 순식간에 최고조에 올랐다.
많은 게임을 만들고, 세상을 바 꾼 프로그램도 여럿 만들어냈던 유 재원이다.
그렇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딱 한 사람을 위해 만드는 건 처음 이었다.
덕분에 그 어떤 상황보다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은 기적을 만 들었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키 보드 워리어 2를 기반으로 한 이벤 트 스테이지가 완성되었다.
1999년 11월 23일, 화요일.
ID 테크놀로지 본사 사람들 대부 분이 살짝 들뜬 모습이었다. 퇴근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올수록 들뜬 모습은 빠르게 전염되었다.
추수감사절 시즌에 맞춰 정식 판매에 들어간 뉴에그3의 뜨거운 판 매량 때문일 수도 있었다.
예약된 물량은 한창 발송 중이었 고, 미처 예약하지 못한 이들은 ID 플래그쉽 스토어에 풀린 한정 수량 을 손에 넣어야 했는데, 쌀쌀한 날 씨임에도 긴 줄이 늘어선 스토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뉴에그3에 대한 뜨거운 반응으로 ID 테크놀로지 본사 전체 가 들떴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회사의 규모는 이제 실리콘밸리 에서도 최대 규모였고, 뉴에그3 말 고도 잘 나가는 아이템은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내년 6월 E3쇼를 D-데 이로 삼고 있는 X박스 팀의 경우 엔 ID 테크놀로지 본사 한 파트를 당당히 차지한 이후부터 항상 시끄 러웠다.
그렇기에 회사 내부의 상황은 평 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직원들을 흥분시킨 건 일 상에서의 상황이 아닌, 매우 특별 한 이벤트 때문이었다.
일단 북미라는 지역에서 가장 큰 명절로 인식하고 있는 추수감사절 연휴가 바로 내일부터 시작이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다음 주 일 요일까지 무려 5일간 추수감사절 휴가다.
ID 그룹 자회사 중에 북미에 자 리한 회사들은 일괄적으로 쉬기로 했다.
다만 소비자들과 쉼 없이 만나야 하는 플래그쉽 스토어나 고객센터 등은 추수감사절 당일만 쉬고, 추 수감사절 앞뒤의 날에는 로테이션 을 돌려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 다.
물론 남들은 다 쉬는데, 일하는 이들에겐 2배의 일당은 기본이고 인사고과에도 높은 점수를 주기로 했다.
덕분에 자발적 근무자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추수감사절 연휴를 더욱 즐겁게 할 보너스도 빠질 수 없었 다.
추수감사절에 보너스가 나오는 건 미국의 많은 회사도 하는 평범 한 혜택이었다.
하지만 이번 ID 그룹은 조금 특 별했다.
바로 ID 그룹 창립 10주년 특별보너스와 근속자 포상이 있었으니 말이다.
원래는 8월쯤에 해야 할 일이었 다.
하지만 IDDC 99 준비로 바빠진 탓에 하루 쉬기만 하고 보너스와 포상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가 이번 에 그것을 실시했다.
1994년에 5년 근속자가 대략 600명이 조금 넘었다.
1999년 오늘 10년 넘게 근속한 사람은 200명에 살짝 턱이 걸린 수 준이다.
이직이 적은 굴뚝기업이라면 상 당한 사람들이 이탈했다는 의미였 겠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업 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실리콘밸리 에서 10년 근속자가 200명이 넘는 다는 건 상당한 로열티가 있는 기 업이라는 인증이었다.
반면 5년 근속자 숫자는 엄청나 게 늘어나서 이제는 거의 1만 명에 육박했다.
그룹의 폭발적인 성장은 물론이 고 인수와 합병으로 한 식구가 된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으니 말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