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0화
일성 전자 생산 시설 독극물 유 출 건부터 차명 계좌, 비자금 등등 으로 고소된 최현희 회장의 1심 재 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구속영장이 나와서 구치소에 들 어가기도 했지만, 1심 재판이 구속 영장 만료 전에 끝나지 않아서 풀 려난 상태였다.
-그들의 지연전술도 이제 끝입니 다. 9월이 되기 전에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입니다.
"중요한 건 판결 내용인데 말이 죠."
재벌들에 대한 역대 사법부의 태도는 항상 일관적이었다.
아무리 중한 죄를 지어도 1심에 서 5년이고, 2심에서는 반으로 줄 고, 3심에선 집행유예 정도로 떨어 진다.
단적인 예가 바로 대한일보 사주 일가였다.
이놈들은 최현희보다 더 질이 나 뗐다.
문제는 대한일보의 경우 1심은 끝났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는 점 이다.
그들의 죄목에는 마약에 성범죄 까지 추가되었는데, 재판의 양상은 최현희와 똑같았다.
추징금이 3,200억 원으로 확정되 었지만, 사주 일가들에 대한 판결 은 징역 5년을 넘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예전과 똑같이 2심 에서 집행유예가 나오고 대법원서 는 형이 확정될 수도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확답을 드리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부회장님이 죄송할 게 뭐 있어 요. 애초에 사법부에서 잘했으면 이런 걱정도 없었죠."
사법부의 부조리 때문에 생긴 일 인데 최강욱이 죄송할 일은 아니었그나마 기대를 하는 건 사법부의 달라진 기류였다.
김&정 법무법인은 대한민국 최 고의 법무법인이 되었다.
이제는 김&장이 짝퉁처럼 느껴 질 정도로 말이다.
법과 양심에 따른 정의로운 재판 을 하면 알아봐준다는 생각도 대법 원에서 대세가 되었다.
예전엔 사법부에서 커리어를 마 치면, 전관예우를 받는 1년 동안 바싹 버는 게 대세였다.
개헌에 전관예우를 막는 조항을 추가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도 사라지진 않았지만, 최고 의 루트는 김&정 법무법인에 들어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김&정 법무법인의 초대 대 표였던 김창완 변호사가 공수처장 이 된 다음부터는 쏠림 현상은 한 층 가속화되었다.
김&정에서 정을 담당하고 있는 정병우 변호사 역시 2000년대 총선 출마가 유력했다.
통일국민당 공천으로 고향인 경 북 봉화에 출마할 거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는데, 지역의 반응은 매우우호적이 었다.
그곳이 민주한국당 텃밭이라고는 해도 정병우의 이름값은 그보다 더 큰 존재감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공수처에서 최현희와 대한일보 사건을 유심히 보고 있다 는 신호를 계속 주고 있으니, 어쩌 면 이번엔 전과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다음 총선에서 압승해서 형법 개정도 수월하게 했으면 좋겠네요."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개헌이 이뤄진 건 정말 기적이었 다.
이후의 국회는 눈치 보기에 들어 가서 변변찮은 개혁 법안이 통과되 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무조건 반대하는 한나라 당과 민주한국당은 트롤링이 무엇 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결정적으로 연정 중인 민주당과 통일국민당 사이에도 의견의 차이 가 컸다.
예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라면 과반을 이용해 불도저처럼 밀고 나 갔을 터인데, 민주적 절차 그리고 합의를 중시하는 국민의 정부에서 는 어려웠다.
"보고해야 할 게 또 있어요?"
-다행히 오늘은 이게 전부입니 다.
전부라는 최강욱의 말에 굳었던 유재원의 얼굴이 풀렸다.
한국에서의 일은 마음대로 풀리 는 게 드물었던 탓에 듣고 있다 보 면 얼굴이 굳어지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물론 최강욱은 본인보다 몇 배는 더할 테니, 유재원은 웬만해선 최 강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 다.
"그러면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할 시간이군요."
안타까운 건 본격적인 일은 이제 부터 시작이라는 점이었다.
이전까진 한국의 상황에 대해 보 고를 받은 것이었고, 이제부터는 그룹의 일을 챙길 시간이다.
-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벌려놓은 판 이 좀 많아요."
단적으로 X박스의 스펙은 IDDC 99 발표 직전까지도 확정되지 않았 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길버트의 일 이후로 스 펙이 대폭 상향된 것이었다.
"문제는 약속한 것들을 잘 처리 하려면 ID 일렉트로닉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엄청나게 힘 들지도 모르겠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직원들은 게 임기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큽니다. CPU와 GPU의 공급만 순조롭다면 양산은 문제없을 겁니다!
최강욱은 믿음직한 얼굴로 답했 다.
그만큼 ID 일렉트로닉스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무려 국내 대기업 3개 전자회사 를 통합한 게 ID 일렉트로닉스였다.
메모리 시장 세계 점유율이 50% 를 넘겼고, 백색 가전의 점유율도 엄청났다.
그만큼 조직 내 중복된 곳도 많 았다.
복잡한 유통망은 기본이고 텔레 비전 생산 라인, 세탁기 라인, 냉장 고 라인 등등.
백색가전의 대표들은 자체적인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걸 정리하는 일은 아직도 진행형이 었다.
그나마 소형 가전은 OEM방식으
로 생산한 게 많아서 정리가 쉬웠 다.
그렇지만 정리해고는 없었다.
중복된 생산라인 중 반을 휴대폰 그리고 게임기 생산을 위한 라인으 로 고치고 있었고, 직원들의 재교 육도 한창이었다.
게다가 2000년 여름부터 주5일 제 근무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오 히려 신규 채용을 늘려야 할 판이 었다.
"여기에 LCD 라인도 늘리고 싶 거든요."
벌려 놓은 일이 많다고 했던 사람이 본인이면서도 유재원은 일을 더 키웠다.
LCD가 브라운관을 대체한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업체들이 망설이 고 있는 건 대량의 설비 투자비용 과 방송 인프라의 HD 전환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던 탓이다.
얼마 전까지 유재원도 이런 기류 에 동의했었지만, 이젠 달라졌다.
질러야 할 땐 확 지르기로 했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도 이 제는 상관없다!
결과가 블루레이라면 지른다!
그것이 21세기를 대비하는 유재 원의 새로운 전략이었다.
디스플레이 장치 분야에서 LCD 가 대세가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 이었다.
본인이 불러일으킨 기술 가속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만든다고 하 더라도, 디스플레이는 예외였다.
아무리 기술 가속이 이뤄져도 갑 자기 OLED나 안경이 필요 없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장치가 튀어 나올 일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미리 공장을 짓는 건 전 혀 부담될 일이 아니었다.
타이밍이 참 공교롭게도 정부가 IMF의 차입금의 조기 상환을 한다 지 않는가.
조기 상환이라는 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예상 밖의 돈이 더 생기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규모가 30억 달러라고 하니, LCD 공장 신설에 사용하면 딱이 다.
-LCD 공장이라…… 규모는 얼 마나 생각하시는지요?
최강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규모 공장 증설은 위기를 동반 하는 탓이다.
만약 신설된 공장이 돈값을 못하 면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32인치 TV용 LCD 패널을 일 일 3만 장 이상씩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이죠."
마음 같아선 처음부터 42인치 대 형 원판을 양산하고 싶지만, 그건 기술과 공정이 아직 따라주지 않아 어려운 일이었다.
-TV용 패널이군요?
"맞아요. 그러니 모니터처럼 고 해상도는 필요 없고 720P 정도면 충분하죠. 그리고 수율에 따라 패 널의 크기를 다양하게 생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원판을 32인치로 생산해서 불량 화소가 없으면 그대로 제품으로 생 산한다.
만약 불량 화소가 있으면 24인 치, 27인치로 크기를 줄여서 자르 면 된다.
어쨌든, 양산되는 원판을 살릴 수 있는 만큼 제품을 최대한 생산 하면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가격도 줄일 수 있다.
"2002 월드컵을 최소 500만 가 구 이상이 HD 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유재원의 구체적인 목표에 최강 욱이 입을 떡 벌렸다.
-회장님께서는 월드컵 HD 중계 를 테스트 방송이 아니라 실질적인 HD 방송의 시작으로 만들고 싶으 신 거군요. 그러면 HD 방송 기술 연구팀이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역시 최강욱은 유재원의 마음을 잘 읽었다.
"오! 정답이에요."
HD 방송은 텔레비전만 준비된다 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방송 시스템 도 중요하다.
편집과 중계, 송출까지 HD에 맞춰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문제는 전문 방송 장비이다 보니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현 단계에선 日日를 지원하는 카메라나 편집 장비는 비 싼 가격이 문제였을 뿐이지만, 송 출 시스템의 경우엔 아직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디지털 신호로 전송해야 하는데, 어떤 주파수를 사용해야 할지, 어 떤 코덱을 써야 할지 정해지지 않 았다.
재미있는 건, 일찌감치 망해버렸 던 대호 전자에서는 먼저 HD 방송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직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는데, 연구팀의 인력 수준은 기대 이상이 었다.
방향만 제대로 잡아주면 꽤나 좋 은 성과가 나올 거라는 게 내부의 판단이었고, 유재원도 동의했다.
방향 설정 하면 또 유재원 아니 겠는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마음먹은 유재원은 미국식이니 유럽식이니 하는 논란 자체를 없애버릴 작정이 었다.
바로 본인이 만든 비디오 코덱과 송출 규약을 한국과 미국의 표준으 로 만들어버릴 작정이었기 때문이 다.
이미 MPEG라는 동영상 전문 표 준화 그룹에 ID 그룹이 큰 지분을 가지고 참여 중이다.
안드로이드 비디오 코덱과 오디 오 코덱에 깜짝 놀랐던 MPEG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유재원은 기 꺼이 합류했다.
MPEG가 표준화를 맡고 있긴 한 데, 강제성이 없어서 그동안 취급 이 좋지 못했다.
그러다가 ID 그룹이 합류하고, 기술 지원과 함께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가 MPEG의 표준화를 적극적 으로 따르면서 존재감이 부쩍 커진 상태였다.
당연히 MPEG가 표준화로 묶은 코덱 기술도 한층 좋아졌다.
최근 발표된 MPEG2 partlO과 MPEG4 part에는 ID 그룹의 코덱 기술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최신 코덱인 MPEG4를 보자면 스트리밍 송출에 최적화가 되었고, 압축률도 더욱 좋아졌다.
21세기 초고화질 코덱으로 사용한 H264에 비견될 정도였다.
유재원이 HD 디지털 방송의 기 본 코덱으로 미는 것도 H264였다.
같은 용량이라도 코덱에 따라 화 질의 차이가 확실히 벌어지는데, 앞으로는 짝퉁 HD라고 불렸던 과 거의 HD방송과는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는 HD, 2006 년 월드컵에는 풀HDTV를 보급하 는 거로 해요. ID 일렉트로닉스가 주도해서 말이죠."
-예, 회장님.
최강욱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최강욱은 컬러 TV 방송이 시작된 날의 기억이 선 명했기 때문이다.
1980년 12월 1일이었는데, 그때 는 집에 컬레V가 없어서 시내의 전자 회사 대리점 진열장에 걸린 TV를 봐야 했다.
이후 집마다 TV가 보급된 건 80 년대 말, 90년대 초가 되어서야 가 능했다.
그런데 차세대 LCD 디스플레이 는 물론이고 HD 방송까지 주도하 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본인이 그걸 챙겨야 하는 자리에 있게 된다는 건 상상의 범 주를 뛰어 넘는 일이었다.
-그러면 신공장의 위치는 어디가 좋을까요?
"대전이죠."
-역시 대전이군요.
ID 디스플레이 공장이 대전에 있 었다.
공터도 많아서 바로 옆에 새로운 공장을 하나 더 짓는 건 문제가 없 었다.
일성으로부터 넘겨받은 LCD 공 장도 비교적 가까운 충남 아산시에 있으니 쉽게 연계할 수 있었다.
신공장으로만 대형 패널을 하루 1만장씩 찍어내는 건 무리지만, 아 산 공장을 동원하면 불가능한 미션 은 아니었다.
그러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HD 텔레비전을 보급할 수 있고, HD 시대도 ID 그룹과 한국이 주 도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회귀로 압도한다